2010년 4월 12일. 그분이 한국땅에서 눈을 감으신지 꼭 40주년 되는 날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그 강산이 벌써 4번이나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이땅에 뿌려놓으신 사랑의 씨앗은 든든한 자양분이되어 한국과 캐나다 곳곳에서 싹을 티우고 열매를 맺는 빛과 소금이 되고 있습니다.
선교사이며 수의과 학자로 이땅에 머문 1916년 부터 1920년.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 분은 학자로서도 많은 제자들에게 서양의 지식과 정보를 나누어주는 일에 전력을 다 하셨습니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 가담해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가며 기록한 사진과 신문 기사등,관련 자료들을 해외로 나가는 선교사들을 통해 꼼꼼히 해외로 전달하는 어려운 일을 마다 않고 하신 분 입니다. 비록 한국에 머문 4년이라는 짧은 기간 이였지만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명도 다하셨습니다.
1920년. 일본에 쫓겨가듯 캐나다 돌아와 1956년 구엘프 대학의 수의과 교수 자리에서 은퇴 하는날 까지 학문적 업적은 물론 후학들의 양성에 혼신을 다하신 분입니다. 이 과정 중에서도 늘 가슴에 새겨놓은 한국 방문을 위해 5년 동안 월급을 쪼개 여비를 모으신 열정을 지니신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1958년. 대한민국 독립 운동 유공자 자격으로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고 한국으로의 영구 귀국을 선택 하셨습니다. 대학에서 은퇴후 편안히 보장되는 노후 생활를 뒤로 하고 당시 6,25전쟁 이후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다시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서울대 ,연세대등 여러 대학의 강의를 통해 오랫동안 수의 학자로 쌓아오신 그 지식과 경험의 보따리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활짝 풀어 놓으셨습니다. 그 뿐아니라 6.25전쟁 이후 급증했던 고아들을 돌보고 지원하기 위해 해외의 지인들에게 보조금 지원을 요청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쌈짓돈을 풀어 학비를 지원 하는 일도 마다 하지 않으셨지요. 캐나다 ,미국 등을 직접 방문해 가며 전후(戰後)에 사정이 어려운 한국을 적극 지원 해야 한다는 호소를 하고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그뿐아니라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와 박정희 시대의 유신 독재에 대해 위정자들에게 직접 쓴소리를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임종하시기 하루전. 남긴 전 재산 2,577불 중 1,500불은 보육원으로, 1,000불은 서울 중앙 기독교 청년회로 , 나머지 77불은 양아들 3달치 학비로 써달라는 부탁을 미리 남겼습니다. 다음날인 1970년 4월 12일. 81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시며 내가 죽거든 한국땅에 묻어 주고. 내가 돌보던 소년,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돌봐 달라는 유언을 남기신 채 모든것을 내려 놓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
아낌 없이주는 나무 였던 스코필드 박사(한국 이름 석호필). 그 자양분을 받고 자란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제 한국 사회 곳곳(김근태 전 복지부 장관,정운찬 국무 총리등)에서 사회의 동량(棟樑)으로서 빛과 소금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그의 서거 40주년 기념 행사의 뜻 깊은 의의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그분의 유지가 한국은 물론 이곳 캐나다 땅에서도 후세에 오래 남겨 질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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