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교실

[스크랩] 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의 구원론, 영성

류성련 2010. 11. 16. 12:31

기독교대한감리회 웨슬리의 구원론, 영성

 

웨슬리의 구원론

   웨슬리는 ‘구원의 성서적 방법(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이라는 설교에서 구원의 과정뿐만 아니라 구원의 분명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선재적(先在的) 은총 :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찾아오시며 우리 삶에서 이미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이 은총은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는 은총이다.

2. 회개(悔改) : 죄를 깨달을 뿐 아니라 모든 죄에서 거룩한 것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의를 신뢰하던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상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칭의(稱義-의인화) :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이 아니고서는 타락한 죄인에게 의롭다 하심이 일어날 수 없다. 십자가의 은총은 주관적, 인간적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수동적으로 다가오는 전적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으로, 의로움이 전가(轉嫁)되고 옷 입혀지는 단계다.

4. 거듭남 : 칭의가 우리 밖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객관적 은총이라면, 거듭남은 우리의 내면에서 경험되는 주관적, 실제적인 변화다. 우리 내면은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되는 영적 아기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

5. 성화(聖化) : 성화란 의인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거듭남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난 영혼이, 내주(內住)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은총이다. 성화는 의롭다 함을 얻는 순간에 시작하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져 날마다 성장하여 완전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성숙하여, 결국은 기독자의 완전(完全)에까지 자라는 과정을 의미한다.

6. 완전 : 완전은 완전 성결의 상태를 의미한다. 완전은 죄의 뿌리까지 뽑히는 것을 뜻하며,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 형상이 회복되는 단계다.

7. 영화(靈化) : 구원의 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영화는 예수의 부활의 몸과 같이 부활의 영화된 몸을 입는 단계이며,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서 받게 된다.

 

웨슬리의 영성

   웨슬리의 영성(靈性)의 핵심은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슬리는 신앙인의 삶, 즉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삶을 완전을 향해 날마다 거룩하게 변해가는 성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의롭다 인정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의롭게 즉 성결 되게 변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화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계는 초기의 성화로서, 우리가 거듭남으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아직은 온전한 성화에 이르지 못한 영적인 상태를 말한다.

둘째 단계는 온전한 성화로서, 깊은 영적 체험에 의해서, 죄 된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고, 온전한 변화를 이루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웨슬리는 이 온전한 성화를 기독자의 완전이라 부르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온전한 성화, 즉 기독자의 완전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결한 자가 지켜야 할 조항은 다음과 같다.

① 자만(自慢)하지 않도록 경계하여 기도할 것

② 자만심의 열매인 열광(熱狂)을 경계할 것

③ 도덕 무용론자(無用論者)를 주의하여 방종한 생활을 삼갈 것

④ 게으름을 멀리할 것

⑤ 하나님 이외의 것을 열망하지 말 것

⑥ 그리스도 교회를 분열케 하는 당을 짓지 말 것

⑦ 범사에 남의 모범이 되고 등불이 될 것

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출판국 자료

 

   나는 만 1살이 되던 부활절에 대전제일감리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사진으로만 알 수 있는 일이어서 내가 거듭났다는 인식을 할 수가 없다. ‘성령’에 대한 인식을 한 것은 대학교 1학년생으로 겨울수련회에 갔을 때이다.

돌아가면서 기도하게 되어서 무척 당황하고,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심히 걱정했는데 내 차례가 되기 전전이 되었을 때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성경말씀이 있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태복음 10장 20절)” 이었다. 무난하게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어서 내 자유의지로 믿은 것이 아니므로 대학교 1학년 새내기 때는 바라는 것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께 반항하여 3개월여 주일성수(主日聖守)를 하지 않았던 ‘기복적(祈福的) 믿음’을 가졌었다.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수준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28년간 지방에서 근무하였기에 성실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했다.

지금은 ‘오래된 초보 그리스도인’으로서 2007년에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2009년 1월 14일부터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의 뜻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하나님을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도구로 삼기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쓰임 받는 종’으로서 내가 하는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출처 : hyosunla
글쓴이 : 나효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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