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성모영보(L'annunciazione)', 1472~1475, 98×217cm,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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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마리아'(Ave Maria)라는 말은 원래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탄생 예고를 위하여 나자렛의 마리아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루가 1, 28)고 인사했던 말의 라틴어 표기이다. 그러나 후일의 교회가 루가의 복음서 1장 28절과 2장 42절에 청원기도를 추가하여 하나의 기도문을 완성하고, 머릿 글자를 따서 '아베 마리아'라는 기도문 제목을 붙임으로써 '성모송'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과 엘리사벳의 이 인사를 합쳐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는 '성모송'의 토대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찬미하고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 주실 것을 간청하는 두 가지 주제의 이 성모송은 원래 6세기경에 만들어졌으나 1568년 교황 비오 5세가 이를 '성무일도'에 수록하면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베 마리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모송을 가리키는 라틴어 '아베 마리아'는 우리 가톨릭 신도들의 기도 속에만 갇혀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계에서는 성모 마리아님을 칭송하는 가곡을 통털어서 '아베 마리아'라고 부르고, 대개가 성모송의 라틴어 원문을 가사로 하여 종교적 열정을 노래하는 장중한 곡들이다. 16세기의 아르카델트가 자신의 세속적인 곡에 성모송의 가사를 들어 맞춘 곡이 '아베 마리아'의 효시가 된 이래, 퍼시칸, 샤를르 구노, 쥬세뻬 베르디, 그리고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작곡한 곡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깊은 감명을 준다. 대개 라틴어로 부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교회 밖의 무수한 사람들도 절로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성모님께 기도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귀에 익었고 감동을 더 해주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독창곡은 그 가사가 '성모송"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시인 월터 스코트(1771 - 1832, '아이반호'의 저자)의 시 '호상의 미인'(The Lady of the Lake)인 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스코트의 이 시는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시적 아름다움과 감각이 결코 수그러들지 않은 당대 최고의 서정시로 알려져 애송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의 슈토르크가 번역하여 독일인들도 너나 할 것없이 애송했다고 하는데, 슈베르트가 이 독일어 번역시에 아름다운 곡을 붙여 그의 '아베 마리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슈베르트는,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서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였고, 또 일생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내며 활동하였지만 베토벤과는 사뭇 다른 음악의 길을 걷고 있었다. 베토벤은 음악을 계시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선민으로 자처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독일 유식계급의 눈에 비친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 초기 활동의 지도이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와 같은 선민의식을 갖지 않고, 스스로 즐기고 또한 타인도 즐겁게 해 주려고 작곡하였다. 여기에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이 있 다고 보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음악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열정이 극치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 마리아! 자비로우신 동정녀여,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쓸쓸하고 거친 이 바위동굴에서 나의 뜨거운 기도를 당신께 드립니다.
인류가 여전히 비참한데도 우리는 아침까지 편안히 잠을 잡니다. 오, 동정녀여, 어린 소녀의 슬픔을 보소서. 오, 어머니여, 간청하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숭고하신 동정녀여! 땅과 대기의 악마들은 당신의 자비로운 눈앞에서 도망을 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의 미소와 장미의 향기가 이 축축한 바위동굴로 날아들어옵니다. 오, 어머니여, 당신 아기의 기도를 들으소서. 오, 동정녀여, 어린 소녀의 울음을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는 1826년 7월 25일, 부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호상의 미인"을 작곡한 저의 새 곡은 성공했습니다. 제가 동정 성모의 찬미가에 표현한 종교적 감정이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고 놀라게 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감동하고 장엄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무리하게 종교적 감정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저 자신보다 강한 그 무엇인가에 의해 느낀 감정에 따라 신성한 음악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정말로 순수한 종교적 감정일 것입니다."슈베르트의 편지에 의하면, 이 성스러운 노래는 교회에서 바치는 전례용과 달라서 아무런 종교적 장식이 없고, 단순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쇼팽의 Nocturn(저녁 기도)이 전례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전례용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그러나 그 신앙적 열정과 정신은 전례적인 성가 못지 않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줄 안다.
한 마디 부언하고 싶은 것은 슈베르트 외의 다른 '아베 마리아'가사는 모두가 성모송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작곡가에 따라 음악적 분위기가 다를 뿐이다. 슈베르트의 것과 쌍벽을 이루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성모송을 토대로 전례용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곡의 취향이 딴판이고 안톤 브루크너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자가 '떼데움'을 작곡한 성직자란 선입관 때문인지 지나치게 무겁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음악평론가 이용숙(안젤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성모에 대한 찬미의 가사와 정제된 선율로 우리의 마음을 맑게 승화시켜 준다면,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와 애잔한 선율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노래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어느 때보다도 가난과 병마에 처절하게 시달리던 스물여덟 살 때 작곡한 것으로, 그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어난 희망의 선율이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당시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준 '아베 마리아'는 슈베르트 자신도 즐겨 연주한 곡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아베 마리아는 구노와 카치니 아베 마리아와 비교했을 때 가장 노래다운 멜로디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사 안에서 '아베 마리아'라는 곡 만큼 작곡가와 더불어 연주가가 많은 곡도 드물다. 현대에도 여러 작곡가들의 아베 마리아가 연주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슈베르트의 곡은 유명 소프라노 등이 대형무대에서 한번쯤은 꼭 선보이거나 음반에 싣는 곡으로 통한다.
1475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영보 L'annunciazione'를 보면 천사는 오른손을 세운 채 단호한 표정으로 처녀를 응시하고 있고, 왼손을 들어올린 처녀는 놀랍고 곤혹스런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이때 천사는 입을 열어 "아베 마리아!"라고 처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라틴어의 '아베(ave)'는 '안녕'이라는 뜻의 인사말이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 1, 28). 가브리엘 천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다 빈치는 나중에 '성모영보'를 다시 한 번 그렸다. 마리아가 천사 앞에서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림이다. 충격의 순간이 지나간 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출처: 복수의 가톨릭 관련 사이트에서 발췌, 재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