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교실

[스크랩] 창조부터 서기 1000년까지의 기독교 역사와 세계 역사 정리(천정현)

류성련 2010. 6. 12. 14:56

천정현내과 원장께서 혼자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입니다

기독교와 세계 역사로 방대한 자료지만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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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부

 - 창조부터 서기 1000년까지(AD 1000) -

BC (Before Christ)


?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노아시대, 바벨탑 사건 (창 11: 1-9)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셈의 후손: 페르시아, 앗시리아, 히브리, 아시아 민족들....

   함의 후손: 이집트, 아프리카, 팔레스타인(가나안)...

   야벳의 후손: 지금의 중부 유럽지역, 스키타이인(루마니아, 우크라이나지역),

                러시아의 그루지아

   

4000  지금의 이집트 쪽에 도시들의 형성 - 함 족이 도시국가(Nomos) 건국 (BC 4000)

3500  이후 상, 하 두 왕국으로 통합

3300  이집트, 문명의 시작

          네스 왕의 통일 (BC 3000) → 이후 26 왕조 흥망

              메고 왕국 시대 (BC 2850 ∼ 2060)

              1∼10 왕조/ 수도: 멤피스/ 피라미드 건설

              중왕국 시대 (BC 2060 ∼ 1670)

              11∼17 왕조/ 수도: 테베

              BC 1670 이래 힉소스의 지배

              신왕국 시대 (BC 1570 ∼ 525)

              18∼26 왕조/ 수도: 아마르나

3000 수메르인에 의해 두 강(티그리스, 유프라데스) 사이의 비옥한 지대에 도시국가 생김

       - 우르, 우르크 등: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가진 신전이 국가의 중심

3200 수메르인의  설형 문자의 발명(인류 최초의 문자)

2570 이집트 대 피라미드 완성

2350  셈계의 아카드인이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도시국가 통일

2333  고조선 건국(단군신화)

2200 -2091 

       아브라함 출생,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도착 (창 11:27,12:4,12:56)

2066  이삭의 출생 (창 21:23),  욥의 고난과 축복

2006  에서와 야곱이 출생 (창 25:26)

2000  알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이 지금의 그리스 본토에 정착

2000  파피루스 발명

1950  아무르인이 바빌로니아 왕국 건설

1991  아브라함의 사망

1929  야곱의 하란도피 (창 28:10)

1918  유다의 출생 (창 30:24)

1915  요셉의 출생 (창 30:24)

1898  요셉 이집트로 팔려감 (창 37:36)

1886  이삭의 죽음 (창 35:29)

1885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됨 (창 41:46)

1876  야곱의 이집트로 이주 (창 46:7)

1859  야곱의 사망 (창 49:33)

1850  함무라비 법전 편찬

       함무라비는 BC 1850년과 1750년 사이의 약 43년간 바빌로니아를 통치함

       300년이나 된 고대법들을 개정함으로써 새로운 체계를 확립시켜 이름 붙여진 법전

1805  요셉의 사망 (창 50:26)

1527  모세의 출생 (출 2:12), 모세의 시 (시 90)

1550  오리엔트 최초의 철기 사용자인 히타이트인이 바빌론왕국 위협

       이후 카사이트인이 진출하여 바빌로니아 지배

1600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던 알카이아인이 크레테 문명과 교류하여 미케네 문명 이룸

1447  모세와 바로(파라오)의 1차 접견 (출 5:1)

1446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람세스 출발 (출 12:37)

       홍해 <얌 수프>도착 (출 14:11)

       만나, 메추라기 시작 (출 16:13)

       시나이 광야 도착 (출 19:1), 십계명 받음 (출 20:3 -17)

1445  성막 건축 (출 40:33), 레위기의 규례들 지시, 첫 번째 인구조사 (민 1:2)

       시나이 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민 33:16), 70인 장로 선정 (민 11:24)

       가데스 정탐꾼 파견 (민: 13:3)

1406  모세의 유언 설교 (신:1 -33장), 모세의 죽음 (신 34:5), 아론의 죽음 (민 20:28)

       모압 광야 도착, 두 번째 인구조사 (민 26:1), 후계자 여호수아 임명 (민 27:23)

       요단 동편 정복 (민 32:1)

1405  요단강을 건넘 (수 3:17), 이스라엘 가나안 도착, 두 번째 유월절 (수 5:10)

       만나가 드디어 그침 (수 5: 12), 요단 동편 땅을 분할 (수 13:15-31)

1400  요단 서편 땅 분할 (수 14장 - 수 17장), 실로에 회막을 세움 (수 18:1)

1390  여호수아 사망 (수 24:29)

1375  사사 통치의 시작

1384  웃니엘(40년사역) (삿 4장-5장)

1316  에훗(80년사역) (삿 3:15-30)

1250(?)  미케네 문명시의 그리스가 트로이 공격(트로이 전쟁)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중

         메넬라스/ 헬레네/ 파리스/ 아가멤논/ 아킬레스/ 헥토르

1236  삼갈 (삿 3:31)

1216  드보라와 바락(40년 사역) (삿 4장, 5장)



1200  페니키아인, 알파벳 발명

      페니키아는 오늘날의 시리아와 레바논 해안지대, 즉 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이다. 일반적으로 북쪽으로는 오늘날 카비르(Kabīr) 강으로 불리는 엘레우세루스 (Eleutherus)강에서 남쪽으로는 카르멜(Carmal) 산까지를 가리키나 시대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진다. 하나의 정치 단위로 통일된 적은 없으나 시기마다 세력이 강력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 연맹의 형태를 취했다. 주요 도시로는 베리투스 (Berytus, 오늘날의 베이루트), 티레(Tyre), 트리폴리(Tripoli), 시돈(Sidon), 아크레  (Acre, 아코: Akko), 비블로스(Byblos), 우가리트(Ugarit, 오늘날의 라스샴라: Ras Shamra) 등이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주로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종사했으며, 발굴 자료에 따르면 이집트 제 4왕조(BC 2613 ~ BC 2494 추정) 때부터 이집트와 비블로스(Byblos) 간의 상업 교역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페니키아인의 기원은 셈어족(Semitics)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BC 3000년 경 서쪽으로 이주하여 동지중 해안에 정착한데서 주로 찾는데, 그들의 원래 고향이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페르시아만 연안으로 추정되고 있다.

      페니키아인은 초기에는 가나안(Canaanites)계(系)가 주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아계, 후리르계와 혼혈을 이루어졌다.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불렀는가는 확실치 않으나, 페니키아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포이니키스, 즉 '자(紫)색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페니키아인들이 값 비싼 보랏빛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BC 1200년 경 페니키아가 해상 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페니키아는 본래 이집트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BC 1500년 경까지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 3세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BC 14세기에 들어 히타이트와 아모리인(Amorites)이 이집트를 공격하면서 페니키아는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독자적인  해양 세력으로 성장했다. BC 1250년경에 이미 페니키아는 동지중해연안과 에게해 연안을 장악했으며, 티레, 시돈, 트리폴리, 아라두스, 비블로스 등의 도시 국가들이 크게 발전했다.

      BC 12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영향력이 매우 약해지면서, 페니키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스스로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연안의 사이프러스, 코카서스, 사르다니아, 이베리아 반도 등을 식민지화 한 것은 물론이며,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서안과 동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해상 교역과 문화 전파를 통한 페니키아의 전성기는 약 400년간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에 오늘날 알파벳의 모태가 되는 페니키아어 알파벳이 발명·보급 되었다.

      그러나 BC 9세기에 이르러 아시리아 세력이 팽창하면서 페니키아의 독립성은 점차 축소되었으며, 기원전 538년에 이르러서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BC 4세기 무렵 그리스가 성장하자 페니키아는 BC 350년에 시돈이 공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리스의 한 속주가 되었다. 특히 티레는 BC 333년 ~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직접 통치를 받았으며, BC 64년 페니키아 전역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로 편집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그리스의 통치 하에 있었다.


1169  기드온(40년사역) (삿6장 8장)

1120  돌라와 야일 (삿 10:1-5)

1117  룻과 나오미

   ?  사무엘의 출생

1100  중국, 주 왕조 성립

1100  고조선 8조금법 시행

1100  입다(6년사역) (삿 11:1-3)

       입산, 엘론, 압돈 (삿 12:8-15)

       삼손 (삿13장-16장)

       사무엘 사역 (삼상 7:3)

       미스바 대회개 (삼상 7:3-11)

1050  사울 치하의 통일왕국 시대 (삼상 10:24)

1040  다윗의 출생; 초기 생애 (시 7:11-13, 17, 22, 23, 34, 35, 52, 56, 57, 59편)

1025  기름부음 받은 다윗 (삼상 16:13)

1020  다윗과 골리앗 (삼상 19:1-15)

1017  사무엘의 죽음 (삼상 25:1)

1010  사울의 전사 (삼상 31:6,대상 10:6), 다윗의 등극(헤브론) (삼하 2:4, 대상 11:3)

       왕정초기 (시8, 9, 15, 16, 18-21, 24, 26, 29, 36, 58, 60, 68, 101, 108, 110편)

1003  다윗의 통일 왕국 (삼하 5:5)

       예루살렘 천도 (삼하 5:9, 대상 11:7)

       법궤의 예루살렘 안치 (삼하 6;16, 대상15:29)

991   다윗의 간음죄 (삼하 11:1-21)

       범죄 후 망명전 (시 5, 6, 32, 38-41, 51, 55, 64편)

990   솔로몬의 출생 (삼하 12:24)

979   압살롬의 반란 (삼하 15:10-12),

       망명시기 (시 3, 4, 27, 28, 31, 61, 63, 69, 70, 143편)

       아삽의 시 (시 50, 73-83편)

       고라 자손의 시 (시 42, 44-49, 84, 85, 87, 88편)

       헤만의 시 (시 88장)

       왕정 말기 (시 3, 37, 103, 139편)

973   블레셋의 침입 (대상 20:4), 다윗의 인구조사 범죄 (삼하 24:1-7, 대상 21:1)

970   다윗의 죽음 (왕상 2:10, 대상 28:11-21)

       솔로몬의 등극 (왕상 2:12),

       솔로몬의 시 (시 72, 127편)

966   성전기공 (왕상 6:1, 대하 3장, 4장)

965   아가서 기록

959   성전완공(7년) (왕상 6:38), 왕궁 기공 (왕상7:1)

       솔로몬의 잠언 (잠 1장 -잠 9장, 잠 10:1-22, 16:25-29, 31장),

       아론의 잠언 (잠 30장)

935   솔로몬의 전도서 기록

931   솔로몬의 죽음 (왕상 11: 43, 대하 9:31), 왕국 분열 (왕상 11:43 - 12:20)

926  이집트왕 시삭의 침입 (왕상 14: 15-28)

910  아사의 유다왕 즉위 (왕상 15:8, 대하 14:1)

885  오므리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상 16:23)

875  엘리야의 사역 시작 (왕하 2:13)

874  아합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상 16:29)

872  여호사밧의 유다왕 즉위(왕상 22:41, 대하 17:1)

853  벤하닷의 사마리아 침입, 아합의 전사(대하 18:34)

848  엘리사의 사역시작 (왕하 2:13)

841  예후의 이스라엘왕 즉위 (왕하 10:30), 아달랴 왕후의 유다 섭정 (대하 22:12)

835  요아스의 유다왕 즉위 (왕하 11:21)

      요엘의 사역시작

814  여호아하스의 이스라엘왕 즉위

814  카르타고 건설

         티레의 고대 페니키아인(人)이 북아프리카의 튀니스만(灣) 북 연안에 건설한 도시           및 도시 국가

800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집필 

797  엘리사의 사역 종결 (왕하 13:20)

796  요엘의 사역 종결

793  요나의 사역 시작,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왕 즉위 (왕하 14:23)

790  웃시야의 유다 왕 즉위 (대하 26:1)

783  살만에셀 4세의 앗시리아 왕 즉위

776  그리스 도시국가(폴리스)들의 성립 및  그리스 올림픽 경기 시작

      본래 올림픽 경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경기(祭典競技)의 하나로, 종교·예술·군사훈련 등이 삼위일체를 이룬 헬레니즘 문화의 화려하고도 찬란한 결정체였다. 여러 신을 섬기던 각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올림픽 대회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면 올림피아로 몰려들어 신전에 참배하며 제례를 지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 경기가 훈련의 성격을 띠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고대올림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았지만, BC 776년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스가 스타디온 달리기에서 우승했다는 문헌상의 기록을 근거로 통상 이때를 올림피아의 원년으로 본다. 이후 1,200여 년 동안 계속되다가 그리스가 로마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황제는 올림픽 제전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 AD 394년 폐지를 명령하는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바로 AD 393년에 열린 제293회를 마지막으로 고대올림픽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경기 종목은 장거리 및 단거리 경주, 권투, 경마, 마차 경주, 트럼펫 경연이다. 승자에게는 월계관이 씌어졌으며, 500드라크마의 상금이 주어졌다. 또한 공개적인 축하행사에서 귀빈석을 차지할 수 있는 권리와 평생 연금을 받았다.

772  앗술단 3세의 앗시리아 왕 즉위

760  아모스의 사역시작 (암 1:1)

759  요나의 니느웨 전도 (욘 3:1-10)

754  앗술니라리 5세의 앗시리아 왕 즉위

753  스가랴의 이스라엘 왕 즉위

      요나의 사역종결

753  4월 21일 로물루스가 로마의 팔라티누스(팔라티노) 언덕에 성벽을 쌓고 도시건설

      로마의 시초 : 처음부터 벌써 왕, 원로원, 민회 3중 구조로 국정을 나눔

752  살룸의 반람, 살룸이 시해

751  요담의 유다 왕 즉위

746  선지자 호세아의 사역 시작 (호 1:1)

742  미가의 사역 시작

      브가히야의 이스라엘 왕 즉위

      아하스의 유다 왕 즉위

740  이사야의 사역 시작 (사 6:1)

733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유다 침입 (사 7:1)

      - 앗시리아의 지원으로 완패함

732  호세아의 이스라엘 왕 즉위

      다메섹의 함락

728  유다왕 히스기아의 종교개혁 (왕하 18:4, 대하 29-32장)

724  앗시리아의 3차 침략 (왕하 17:5)

      선지자 호세아의 사역 종결

722  북이스라엘의 함락 (왕하 17:6)

      호세아왕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다.  사라마리아에서 9년간 재위 중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가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을 보내사 사마리아를 취하고 왕을 잡아다가 금고하고 백성을 사로잡아다가 여러 곳에 분산시키니 유대 왕 히스기야 6년이었다 (왕하 18:9-12).

      미가의 예언 성취 (미 1:67)

715 로마 2대 왕 누마 (BC 715-673)

714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침입 (대하 32:1)

701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

697  므낫세의 유다 왕 즉위 (대하 33:1)

695  미가의 사역종결

689  앗시리아의 통일 (고 바빌로니아 완전 지배)

681  이사야의 사역 종결

673 로마 3대 왕 툴루스-호스틸리우스 (BC 673-641)

669  앗술바나팔의 앗시리아 왕 즉위

663  테베의 멸망

642  아몬의 유다 왕 즉위

641 로마 4대 왕 안쿠스-마르티우스 (BC 641-616)

640  요시야의 유다 왕 즉위 (왕하 22:1, 대하 34:1)

      나훔, 스바냐의 사역 시작

630  스바냐의 사역 종결

627  예레미야의 사역 시작 (렘 1:1)

622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615  로마 5대 왕 타르퀴니우스-프리스쿠스 (BC 615-579)

     - 에트루리아출신 왕, 최초로 선거운동을 통하여 왕이 됨

612  느브갓네살 왕은 앗시리아의 니느웨 정복, 바빌론 재통일

      신 바빌론 제국 시작

      나훔의 예언 성취 (나 2, 3장)

      힐기야의 율법 책 발견 (왕하 22:8, 대하 4:14)

      하박국의 사역 시작

609  요시야 왕의 전사

      여호야김의 유다 왕 즉위

608  하박국의 사역 시작

605  갈그미스 전투(왕하 24:1) - 갈그미스는 유프라데스강 상류 오른쪽 지역 

      신바벨론(이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집트 군을 대항하기 위해 갈그미스로

      진군 후 이집트군 제압. 내친김에 하티나라 정복. 하티나라에는 팔레스틴이 포함됨.

      따라서 예루살렘 1차 침공은 갈그미스 전투 후 유대까지 정복한 것을 나타냄.

      바벨론의 1차 침입 (1차 포로) -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감 (렘 46:2, 단 1:12)

602  여호야김의 반 바벨론 정책

601  이집트와의 재동맹 (렘 22:13-17)

579  로마 6대 왕 세르비스-툴리우스 (BC 579-534)

598  바벨론의 2차 침입 (2차 포로) (왕하 24:10)

597  시드기야의 유다 왕 즉위 (대하 36:11),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감

      하박국의 사역종결

593  에스겔의 예언시작 (겔 1:12)

       - 그의 예언의 요지는 예루살렘의 망할 것과 장래의 구원으로 본국이 회복될 것으로 포로된 동포를 위로 하였다.

586  남왕국 유다의 함락 (3차포로), 예루살렘 함락

      바벨론 포로가 됨 (왕하 25:8, 대하 36:17)

      하박국의 예언 성취 (함1:5-11), 스바냐의 예언 성취 (습 1:8-18)

      예레미야의 사역 종결 (렘 39:1-18), 오바댜의 사역시작

583  오바댜의 사역 종결

580  다니엘의 풀무불 (단 3:19-25)

572 피타고라스 출생

570  에스겔의 사역 종결

562  느부갓네살의 사망

559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Cyrus:키루스 2세) 즉위

     키루스 1세(Cyrus Ⅰ)는 페르시아인들을 통합했으며, 그의 아들 캄비세스(Cambyses)는 메디아왕국(Media)의 공주 만다인(Mandane)과 혼인함으로서 페르시아와 메디아를 통합했다. 캄비세스의 장남 키루스 2세(Cyrus Ⅱ, BC 559~529 재위)는 쿠루쉬(Kurush)라고도 불렸으며, 주변국들을 점령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초석을 마련했다. 왕위에 오른 키루스 2세는 BC 550년 메디아의 수도 에크바타나를 점령하여 새로이 페르시아 제국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 신흥국가에 대하여 동맹을 체결하고 대항한 카르디아, 리디아, 이집트 가운데 그는 우선 리디아를 쳐서 수도 사르디스를 함락하고, 소아시아 연안의 많은 그리스계(系) 식민도시를 수중에 넣었다(BC 545년). 그리고 군대를  카르디아로 진격하게 함으로써 BC 538년 수도 바빌론을 무혈 점령하고, 바빌론에 유폐되어 있던 이스라엘인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며, 유대교의 신앙과 제례 의식도허가하였다. 이와 같이 제국 내의 많은 민족이 갖고 있는 종교나 관습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것은 이 왕조의 방침이었다. 따라서 이것이 페르시아 문화가 다른 많은 문화의 영향을 받아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원인이 되었다.

    이사야는 고레스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보았다 (사 44:27,28, 45:1-5). 고레스 BC 539년 10월 29일에 바벨론에 입성했으며, 자신을 백성들의 해방자로 자처했다. 그래서 그는 바벨론에 남겨두었던 신상들을 원래 있던 성읍들로 되돌려 보냈으며, 포로된 사람들을 귀향시키는 인정을 베풀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다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권면했다 (대하 36:22,23, 스 1:1-6). 그는 아들 캄비세스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BC 530) 후 원정을 나갔다가 그해 가을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 44:28, 45:1, 대하 36:22, 스 1:1-8, 4:4, 단 1:21,6:28, 10:1)

550   다니엘의 4짐승 환상 (단 5:30)

540   피타고라스 정리 발견 - 피타고라스는 또한 음률법을 고안함

539   고레스의 바벨론 점령 (단 5:30)

538   다니엘의 사자굴 (단 6:16-24), 고레스의 1차 귀환조서 (대하 36:23)

537   1차 귀환 (스 2:1) - 스룹바벨이 인솔자가 됨

536   성전 재건 작업 1차 시작 (스 3:8), 성전 재건 작업 1차 방해, 중단 (스 4:4-23)

534   로마 7대 왕 타르퀴니우스 (일명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BC 534 - 509)

530   다니엘의 사망

522   다리오(다리우스 1세)의 바사(페르시아)왕 즉위

520   학개, 스가랴의 사역 시작 (슥 1-8장), 성전 재건사업 재개 (스 5:2, 학 1:1)

516   제 2 성전 완공 (스 6:15), 스가랴의 사역 (슥 9-14장)

509   유니우스 부르투스에 의해 로마 공화정 탄생

       - 왕 대신 민회에서 2명의 집정관을 선출하기로 결정 (임기1년)

499   페르시아에 정복된 여러 도시가 반란을 일으키자 아테네가 이를 원조

496   그리스의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집필

492   페르시아 전쟁 시작

       다리우스 1세는 BC 513년 도나우 강을 건너 스키타이를 정벌하고, BC 492년과 BC 490년 두 번에 걸쳐 그리스로 원정하였다. 이 전쟁은 페르시아의 실패로 끝나기는 하였으나, 그의 위정자로서의 공적이 대단하여 대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부왕의 유지(遺志)를 따라 그리스와 전쟁을 시도(테르모필레 협곡의 전투)하였으나 유능한 지휘관 마르도니우스가 이미 죽어 실패로 돌아가고, 그 후 그는 궁정 내의 음모로 살해되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Artaxerxses Ⅰ: BC 424년 사망)때 키몬의 평화체결로 그리스 원정의 결말을 보았다(BC 449). 그의 비문(碑文)에서는 아후라 마즈다 외에 토착신앙의 미트라와 아나히타의 신명(神名)을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제1차 그리스원정은 492년 폭풍으로 실패, 제2차는 기원전 490년 에게해를 따라 행해졌으나, 478년 살라미스 해협에서 대패, 기원전 481년 제3차 전쟁 이후 페르시아의 패배로 그리스 원정을 단념하였다.

483   인도, 석가 죽음

486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 1세 BC 486-466))의 페르시아 통치

479   공자의 죽음

479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로 간택된 에스더 (에 2:17)

478   살라미스 해전 후 그리스 폴리스들간의 페르시아 침략 저지를 위한 동맹 결성

       (딜로스 동맹), 처음에는 본부가 딜로스에 있다가 후에 아테네로 옮겨짐

       이때부터 아테네는 강제적으로 다른 폴리스들을 간섭하고 지배함

475   스가랴의 사역종결

474   하만의 책략

       - 하만은 페르시아의 총리로 사울에게 죽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임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에 대한 적개심으로

       유대인 학살계획을 세움 (이때 학살날짜를 정하는데 사용한 게 주사위 "푸르")

473   부림절 제정

      - 결국 하만의 계획은 왕에게 발각되고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 의해 처형

        이날을 기억하기 위하여 부림절 제정 (어원은 푸르에서 옴)

469   소크라테스 출생

465   아닥사스다(아르타 크세르크세스 1세)의 바사(페르시아) 통치

460  데모크리토스 출생

458   2차 귀환 조서 (스 7:11), 2차 귀환 (스 7:9), 성곽중수 필역 (느 6:15)

438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완성

435   말라기의 사역 시작

433   바벨론으로 돌아간 느헤미야 (느 13:6), 말라기의 활동

432   느헤미야의 2차 귀국 (느 13:7)

431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는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레폰네소스 동맹이 체결되는데 딜로스 동맹의 아테네의 지배력이 여기까지 미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테네는 지배공동체를 확장하기 위해 코린토스로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다. 이 싸움은 그리스 전역으로 확산되어 자그마치 30년 이라는 장기전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싸움은 후에 ‘그리스의 자살’ 이라고까지 평해졌다. 페스트까지 겹치며 싸움은 지지부지 계속되다가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를 거두며 끝났다.

429   플라톤 (국가론, 파르메니데스) 집필

425   헤로도토스 (역사) 집필

403  중국, 전국시대 시작

399   소크라테스의 죽음

387   플라톤 아카데미아 개원

384   아리스토텔레스 출생

359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에 의해 마케도니아 성장

337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정복

335   아리스토텔레스, 리케이온 설립

334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헬레니즘 시대가 개막

330   알렉산더대왕의 소아시아 정복

       - 유대인들이 종교 활동에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음

          대제사장에 의한 유다 식민 통치

325   유클리드  2 옥타브 선법 창시

323   알렉산더가 죽은 후 4장군들이 제국을 분할 점령함

       헬라본토: 카산드 (알렉산더 씨 다른 여동생)

       트라키아, 베두니아: 리시마커스

       이집트:  프톨레미

       나머지 땅: 안티고노스

300   유클리드 기하학 집대성

301   프톨레미 2세의 등극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우스 왕조 BC 301-201)에

       의해 팔레스틴 지배

282   히브리어 성경이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에 의해 헬라어로 번역 (70인 역)

271   에피쿠로스 (자연론, 신에 대하여) 집필

221   진의 시황제, 중국 통일을 완성하고 황제를 칭함

220   아르키메데스 부력의 원리 발견

218   제2차 포에니전쟁(한니발전쟁) 발발

       로마인과 카르타고인의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 부르는데, 100년에 걸쳐 세 차례 일어났다. 제2차는 특히 한니발 전쟁이라고 하는데 스페인에서 알프스를 넘어간 한니발은 연전연승하며 로마를 괴롭혔으나, 로마가 결국 승리하여 지중해 주변을 손에 넣었다

214   제 1차 마케도니아 전쟁 (로마와 마케토니아령 히스파니아의 전쟁)

202   유방에 의한 한 제국 건설

200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

200   밀로의 비너스

198   지금의 시리아의 셀류크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가 헬라 잔존 세력 간의

       권력 다툼 끝에 팔레스타인 차지 (BC 198-167) 

197   로마가 2차 마케도니아 전쟁 승리

171   로마의 3차 마케도니아 전쟁

167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헬라화 정책

       성전 모독 (성전이 제우스에게 드려짐) 및 약탈

       -1000명 이상의 하시딤이 처형 당함 (유대인 박해)

168   로마의 3차 마케도니아 전쟁 승리: 마케도니아를 4개의 독립 공화국으로 나눔

166   마카비 혁명

       레위지파의 하스몬 가문의 제사장 맛다디아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음

        ; 존, 엘레조, 유다(마카비), 요나단, 시몬

       이중 유다(마카비)에 의해 혁명의 본격화: 헬라화 정책 반대 투쟁

164   성전을 정화하고 제사 드림: 유대인 성전 봉헌 축제 (하누카: 수전절)의 기원

      - 그 동안 헬라화로 성전이 엉망이 됨; 이방 신상, 돼지피 등등..

160   맛다디아의 넷째 아들 요나단이 독립군 지도자가 됨

       이후 요나단은 사독가문의 대제사장직 (이들의 후예가 사두개파) 을 대신하게 됨 (셀류크스 왕조의 데메트리우스 1세와 정적이었던 알렉산더 발라스를 지지해준 대가로 후에 대 제사장이 됨)

153   시리아 (셀류크스왕조)의 내분

         알렉산더 발라스가 스스로 안티오쿠스 4세의 아들이라고 주장. 시리아 왕 데메트리우스 1세 공격. 둘 모두 권력 투쟁 과정에서 유대인에게 도움을 청함.

         요나단은 발라스를 지지했고, 발라스가 승리 후 요나단에게 대제사장 및, 유대 지방 총독으로 임명.

150   에세네파 쿰란 공동체 형성(사해사본, 쿰란사본 등의 유물 남김)

        - 에세네파는 마카비 독립 운동을 도왔던 하시딤 (경건한자)들 중 한 분파로

        후에 요나단이 시리아의 도움으로 대제사장직을 수락한 것을 보고 하스몬가와

        결별 후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매우 금욕적이고 경건한 종교생활을 하며

        신비적인 색체를 띠는 종교 활동을 전개함. 영지주의에도 영향을 주고받음. 

151-146  로마는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아카디아 동맹과 다시 싸워 복속시킴

147   로마의 카르타고 함락

146   마케도니아가 로마의 속주로 개편

146   아카디아 동맹: 로마에 병합

143   요나단 죽음 - 셀류크스 왕조와 결탁한 것으로 의심한 경건한 유대인(하시딤)에 의하여 살해

142   요나단형제 시몬에 의하여 하스몬 왕조 수립(BC 142-63)

     - 다시 시리아 내분이 일어나고 시몬은 이번에 데메트리우스를 지지해 줌. 이에 대해

       데메트리우스는 유대인들에게서 받던 세금을 면제해 줌. 이에 유대인들이 시몬을

       영구적인 영도자와 대제사장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결국 하스몬 왕조가 인정되게 됨

     - 하스몬 왕조는 에돔 사람들과 전쟁을 해서 합병하고 강제로 할례를 받게 해서

       유대인으로 만들기도 함. 이로 인해  에돔사람 헤롯이 유대인이 되게 됨.

134   시몬이 프톨레메에 의해 암살됨

134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히루카누스가 하스몬왕조 통치

      - 히루카누스에게 바리새파가 대제사장 직을 내 놓으라고 요청하자 관계가 나빠짐

        사두개파와 손을 잡음

134   시리아 안티오쿠스 7세는 프톨레메오의 요청으로 예루살렘 포위.

       유대 자치권은 허용

       하지만 시리아에 조공을 바치게 함

108   고조선 멸망, 한사군 설치

104   하스몬왕조 히루카누스 사망

104   히루카누스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즉위, 일년 간 다스림

103   히루카누스 사망 후 그의 처가 히루카누스 재위시 투옥한 형제들을 석방하고

       히루카누스의 큰형과 결혼, 큰 형 알렉산더 얀네우스가 대제사장이 됨.

       유대인들은 시리아 원조를 받는 얀네우스를 싫어하고, 바리새인과 함께

       얀네우스에게 저항(바리새인의 반란)  - 이에 얀네우스는 바리새인을 탄압.

       바리새인 800명을 십자가 처형하고 그의 처자들까지 잔인하게 몰살.

       영웅주의에 사로잡히고, 영토를 다윗 왕국 때처럼 확장.

100   줄리어스 시이저 로마의 수부라 지구에서 태어남

89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 부여

88    술라 집정관 취임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으로 로마 내란에 빠짐

81    술라,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 국정개혁 착수


78    술라 사망 품페이우스 대두

76    얀네우스 사망

76    얀네우스의 처인 알렉산드라가 즉위, 대제사장을 맏아들 힐카누스 2세에게 맡김

     - 바리새파를 너무 박해한 것에 대해 정치적 고민하던 남편의 유언에 따라

       바리새파와 화해를 함 

       두 아들이 있음; 히루카누스와 아리스토 불루스.

73    스파르타쿠스 반란.

71    크라수스, 스파르타쿠스 반란군 진압

70    크라수스와 품페이우스 집정관에 취임

69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 딸로 태어남.

67    품페이우스, 지중해 해적 소탕 지중해 전역, 팍스 로마나 확립

67    알렉산드라의 아들 아리스토 블루스 2세가 즉위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 왕)

63    줄리어스 시이저; 호민관 라비에누스의 협력으로 최고 제사장 취임

       키케로 집정관 취임

       옥타비아누스 출생

63    품페이우스 유대 점령 -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감, 성전모독

63    하스몬왕조 멸망

      -하스몬왕조의 아리스토 불루스 2세와  힐카누스 2세와의 권력투쟁이 계속 되던 중, 결국 로마의 품페이우스가 예루살렘 점령 후, 친로마 정권인 힐카누스 2세를 괴뢰 정권으로 만들고 로마의 속국으로 삼는다. 이과정에서 힐카누스의 신하였던 안티파테르가 로마책으로 활약을 했다. 

61    줄리어스 시이저 에스파니아 총독으로 부임

60    줄리어스 시이저 귀국하여 이듬해 집정관에 출마

60    줄리어스 시이저 , 품페이우스, 크랏수스와 삼두정치 시작

58    줄리어스 시이저 갈리아 정복

57    박혁거세, 신라 건국

49    줄리어스 시이저 루비콘 강을 건넘

45    줄리어스 시이저가  품페이우스 아들들에 승리하고 1인 지배자가 됨

45   시이저는 힐카누스 2세와 안티파테르가 품페이우스쪽에서 자기 쪽으로 지지를 바꿔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힐카누스 2세를 왕으로, 안티파테르를 유다의 태수로 임명함.

      이미 안티파테르에게 실권이 있었으므로, 두 아들 중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헤롯에게는 갈릴리를 맡김. 

   

44    시이저 부루투스의 칼에 사망

       이때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롯은 부루투스를 지지

43  옥타비아누스, 레피투스, 안토니우스 제 2 삼두정치

43  안티파테르 암살

40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카시우스 (부루투스와 한편)와 시리아에서 싸움

    이때 힐카누스 2세와  헤롯은 중립을 지킴, 안티고누스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지지함. 이 싸움에서 이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힐카누스 2세의 의 귀를 자르고 추방함. 헤롯은 로마로 도망.

    파사엘은 자살함.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안티고누스를 유대 왕으로 세움.

 

37  이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에서 헤롯은 이후 동방에서 세력이 강한

    안토니우스를 지지하고, 다시 유대의 왕이 됨

37  주몽, 졸본에서 고구려 건국

31  악티움해전 (옥타비아누스 대 안토니우스) - 옥타비아누스 승리

     헤롯은 다시 옥타비아누스를 찾아가서 자신의 왕관을 벗어 바치고 자신을 처벌해

     달라고 함. 옥타비아누스는 헤롯을 용서하고 왕관을 씌워줌 (헤롯대왕)

30  세네카 실천윤리학 (스토아 학파) 창시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집권

23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원수 정치 (프린키파투스)

      - 제정로마시대의 시작

18   온조, 위례성에서 백제 건국

5    세례 요한의 탄생 

4    예수님 탄생 (마 2:11), 헤롯대왕의 유아 학살 (마 2:16-18), 헤롯 대왕의 죽음

          - 이후 팔레스틴은 4분 영주 시대로 접어듦

4   헤롯 안티파스 즉위 (BC4- AD39); 갈릴리와 베레아의 영주; 헤롯대왕의 아들

           - 동생 헤롯 필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 헤로디아는 당시 살로메라는

              딸이 있었고, 후에 이들에 의해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함

      참고)헤롯가문의 족보(신약개론 46p)


A.D (Anno Domini) 


 8  유아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

14  아우구스투스 사망 

14  티베리우스(디베료 가이사)의 로마황제 즉위 (AD 14-37)

26  세례 요한의 사역 시작 (막 1:4)

26  본디오 빌라도의 유다 총독 부임 

27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마 3:13-17, 막 1:14, 눅 1:36)

    예수님의 제1차 갈릴리 사역, 가나안의 첫 이적 (요 2:1-11)

    니고데모의 전도 (요 3:1-21) 

28  12제자를 세우심 (마 10:1-4, 막 3:13-19)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과 나다나엘(바돌로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유다(동생 or 아들), 마태, 열심당원 시몬, 도마,

            가롯유다(후에 맛디아로 교체)  

    예수님의 제2차 갈릴리 사역 

29  오천 명을 먹이심 (마 14:13-21, 요 6:1-15) / 물 위를 걸으심 (요 6:16-21) 

     베드로의 신앙 고백 (눅 9:18-22) / 예수님의 제3차 갈릴리 사역 

30  승리의 입성 (마 21:1-11)/ 성전 숙정 (눅 19:18-22) / 주의 만찬 (막 14:22-25)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마 27, 28, 막 15:24-16:8, 눅 23:26-24:12,

    요19:17-20:1)/ 그리스도의 승천 (행 1:9-11)/ 오순절의 성령강림 (행 2:1-4)

    스데반의 순교 (행 7:60) 

32  사울의 다메섹 회심 (행 9:1-9)

32  고구려, 낙랑군 정벌 

35  바울의 예루살렘 1차 방문 (행 9:26, 갈 1:18)

37  칼리굴라 로마황제 즉위 (AD 37-41)


37 헤롯 아그립파 1세(헤롯대왕 손자) 즉위 (AD 37-AD 44)

                팔레스타인의 실질적인 왕으로 자녀로는

               헤롯 아그립파 2세, 버니게, 드루실라(로마총독 벨릭스의 아내)가 있슴

41  클라우디우스 1세 로마황제 즉위 (AD 41-54)

42  김수로, 금관가야 건국

44  요한의 형제 제자 야고보의 순교 (행 12:12)

          - 가버나움 게네사렛 호숫가의 어부, 세베데의 아들 

            요한과 더불어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음(다혈질)

            마리아와 그의 어머니는 종자매

            헤롯 아그립바에게 참수, 스페인으로 시체 옮겨짐

            순례지(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가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야고보 성일: 7월 25일

44  제자 바돌로매(나다나엘)의 순교

           가나출신, 빌립에 의해 전도

           예수님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고 곧바로 랍비로 모시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

           브릿지아, 히에라폴리스, 중앙아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인도까지 전도

           아르메니아 알바노폴리스에서 칼로 죽음 시체는 자루에 넣어져 바다에 던져짐

           피부가 벗겨져 십자가 처형당했다는 설도 있슴

           성일: 8월 24일

44  베드로의 투옥 (행 12:4)

45  대기근 <글라우디오 치하-클라우디우스 1세 > 

47  바울의 1차 전도여행 (행 13:1-14:28) 

49  예루살렘 최초의 교회 협의회 개최(예루살렘공회) (갈 2:1)

50  바울의 2차 전도여행 (행 15:36-18:23, 살전 1:56, 3:1-6) 

51  데살로니가 전. 후서 기록

53  고구려, 태조왕 즉위 (53 - 146)

53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행 18:23-21:16)

          로마서 기록

          고린도 전.후서 기록 

54  네로의 로마 황제 즉위 (AD 54-68)

            본명: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Lucius Domitius Ahenobarbus)

            후에 의붓아버지 이름을 따라 Nero Claudius Caesar 로 바꿈

54  제자 빌립의 순교

            갈릴리 벳새다 출신, 어부, 예수님이 찾아오심, 나다나엘 전도

            오병이어 때 계산적 사고를 함, 신중한 성격

            헬라인들을 예수님께 소개시키기에 앞서  안드레에게 자문함

            예수님께 하나님 보여 달라고 청함

            소아시아에서 주를 섬김

            브루기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

            유언: 자기의 시체를 세마포대신 갈대로 싸달라고 함

            성일: 5월1일 

56  갈라디아서 기록 

58  바울 체포 (행 21:27-39) 

59  베스도의 유다 총독 부임

59  바울의 로마여행 (행 27:1-28:15) 

60  히브리서 기록

60  제자 마태의 순교

         - 세리, 원래 이름 레위, 후에 예수님이 마태라 이름주심

           나사렛 출생, 가버나움에서 일함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에 극적인 결단

           모든 것(과거) 버리고 일어나(현재) 따름(미래)

           12 제자 중 요한과 함께 복음서를 집필

           아라비아와 에디오피아에서 사역

           에디오피아에서 공주를 그리스도인으로 개종, 수도 생활하게 됨

           결혼 대상자였던 힐타고가 마태를 칼로 목 베어 죽임

           T형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함

           성일: 9월21일

61  바울의 로마 투옥 (행 28:16, 엡 3:16, 엡 1:12) 

62  야고보서 기록

         주의 형제 야고보의 순교

          - 주의 형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부활 후 그리수도 믿음, 자신을 주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로 칭함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의 감독, 아나누스 제사장에 의하여 고소

             공회에서 돌에 맞아 죽음

62  에베소서 기록/ 빌립보서 기록/ 골로새서 기록/ 빌레몬서 기록 

63  바울 석방

           디모데를 권고하여 에베소 교회에 머물게 함 (딤전 1:3)

           디모데전서 기록 

64  로마 대화재, 네로의  박해 <1차 박해>

         베드로전서 기록 

66  유대인의 반란

         디모데후서 기록/ 디도서 기록/ 베드로후서 기록

67  바울의 순교

         - 칼에 목이 베어 순교

      (처형인: 네레가, 파테미우스, 이 둘 모두 바울이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소원,

       그리스도를 믿기 원함)

68  제자 베드로의 순교

         - 갈릴리 가버나움의 어부, 안드레의 형제. 시몬 베드로

           다혈질, 설교의 달인 (한 번 설교 시 3천 명 씩 회개 함)

           안드레에 의해 전도, 예수님이 게바(반석)라 칭함

         - 베드로의 실수

              변화산에서 실수, 갈릴리 호수에서 물위를 걸을 때 실수,

              십자가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탄의 대변자가 되는 실수,

              교만한 실수(일곱 번 용서 발언, 부자 청년에 반한 자신들의 보상이 무언지 생각), 예수님이 제자들 발 씻길 때 이랬다 저랬다 함,

              겟세마네에서 예수님 기도하실 때 잠만 잠,

              닭 울기 전 세번 부인하리라는 말에 목숨 걸고 그럴 리 없다 맹세하였으나, 예수님이 잡혔을 때 몰래 구경꾼으로 가장하여 들어간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어린 계집종이 알아보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여 부인하기 시작하여, 계속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맹세하고 부인하고 저주하면서까지 세 번 부인함

           - 네로의 박해를 피하여 로마를 빠져나오다가 환상 중 예수님을 보고

              Domine,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Venio Romana iterum crucifigi"(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기 위해 로마에

              들어간다)라고 하자 "그리 마옵소서 제가 가겠나이다" 라고 하고

              다시 돌아가 성도를 격려하고 부인이 먼저 순교할 때 주님을 기억하시오

              라고 위로하고 자신도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

          성일: 6월 29일

69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즉위 (AD 69-79)            

           베스파시아누스의 예루살렘 침입

69   제자 안드레의 순교 (11월 30일)

         - 갈릴리 벳세다의 어부, 세례요한 제자, protokletos (먼저 부름 받은 제자)

            베드로의 형제

            베드로전도, 오병이어의 어린이 인도, 헬라인 인도

           겸손한 개인전도의 표상  

           러시아 , 그리스, 소아시아, 터키 등에 복음 전파,

           그리스 아케아 페르타스에서 총독에 의해 엑스자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

           순교시 "아멘 ,주 예수여.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라고 말함

           그 후 엑스자 십자가는 안드레 십자가로 불리우고 스코틀랜드의 국기가 됨

70  예루살렘 함락 /산헤드린 공회 폐지

73  바나바 순교

          - 사이프러스 출신, 유대인자손  

70  유다서 기록

79  티투스 황제 즉위 (AD 79-81)

             베수비오 화산 폭발, 품페이 멸망

80 콜로세움 완성

81  도미티아누스 황제 즉위 (AD 81-96)

          - 즉위 기간 동안 자신을 하나님이라 부르도록 강요함 <2차 기독교 박해>

95  제자 요한의 밧모 섬 유배 (계 1:6), 요한계시록 기록

         - 어부,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의 동생, 세례요한의 제자,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 품에 의지하여 누움

           예수님이 끌려갈 때 대제사장의 뜰 까지 동행함

           예수님이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고, 평생 마리아를 봉양

           평생 사랑을 강조한 사랑의 사도

           다섯 권의 성서 집필 (요한복음, 요한123서, 요한계시록)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되어 기름 끓는 솥에 던져짐

           기적적으로 피해 달아남, 밧모 섬으로 추방

           

96  도미티아누스의 죽음 

96  네르바 황제 즉위 (AD 96-98)

          -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풀려나 에베소에 거함

98  타키투스 - 게르마니아 집필.

           로마 제정시대의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98년 게르만인의 풍속ㆍ관습ㆍ사회를 간결한 필치로 기술한 단편 《게르마니아》를 간행하였다. 이는 라틴어로 된 지리적ㆍ민족학적 작품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저서이며, 고대 게르만 민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44-100 

    나머지 제자 및 사도들의 순교 (연대가 불확실함)

          

         제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

          - 마태 (알패오의 아들 레위)와 형제로 추정

            어머니는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와 더불어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됨

            열심 당원 (Zealot-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는 자)

            스페인에서 순교; 돌로 맞아 죽지 않자, 목을 톱으로 잘리움

        

          제자 맛디아 (AD 61 또는 64년 순교)

          - 기도 후 제비 뽑기로 제자가 됨

             에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 돌매질 후 교수형

             성일: 2월 24일

         마가

         - 레위족속,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우상인 세라피스를

           기리는 종교 의식을 할 때 몸이 찢기는 처형 방법으로 순교


         제자 유다 (AD 70-100년에 순교)

         - 별명이 다대오(Thaddeus)인 렙베오(Lebbaeus)로 불림

           열심당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의 동생 (아들:히브리말로 아들과 동생이 같음?)

           소아시아,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에 전도

           남부 러시아 에데사에 복음전함

           아르메니아와 커디스탄까지 가서 선교하다가 활에 맞아 순교

           성일: 10월28일


         제자 도마

         - 디두모 (Didymus)<쌍동이>라고도 불림

           약간 용감하며 비관적인 성격

         - 천국의 처소에 대한 얘기를 예수님이 들려주며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고 그 길을 너희가 안다"고 하자, 도마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어찌 길을 알겠냐고 반문함.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심.

           예수님 부활을 보지 못한 도마가 다른 사도들에게 옆구리 창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봤냐고 까지 말하며 반문함. 후에 다시 나나타신 예수님께서 도마의 의심에

           눈높이 교육을 하시며 손가락 넣어보라 말씀하심. 도마는 "나의 주이시며 하나

            님이시니이다"라는 강력한 신앙고백을 하며 의심이 허물어짐.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너는 보고 믿었지만 보지 않고 믿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심

         - 페르시아를 지나 인도까지 복음 전함

           인도 칼라미나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노한 이교도 제사장에 의해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음

           성일: 12월 21일.

      

        누가

         - 의사, 안드레에 의해 예수님 앞으로 인도되어온 헬라인중 한명이라는 전승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

           그리스의 우상숭배 제사장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 당함

       

       제자 시몬

         - 가나안인 시몬, 젤롯 시몬 (열심당원)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 흑해지역, 바벨론 등에서 복음전파

           일설에 영국선교 얘기도 있음

           페르시아 전도중 이교제사장과 마술사에 의해 톱질 당해 죽음

           십자가형이라는 설도 있음

    

98  트라야누스황제 (AD 98-117) 즉위

          - 안디옥 감독 익나티우스 순교

     [ 익나티우스의 순교상황 ]

     황제가 말했다. " 이 악마같은 자야! 너는 도대체 누구기에 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느냐?"  익나티우스는 대답했다 "어느 누구도 테오포루스를 악마와 같은 자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그러면 좋다. 테오푸루스는 누구냐?" 황제는 물었다.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익나티우스는 대답했다."황제는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면 우리 안에는 우리의 적들을 항거하여 돕는 신들을 지니고 있느냐?" 그러자 익나티우스는 다시금 담대히 말했다. "악마들과 거의 다르지 않는 자들을 당신이 신들이라고 부르니 실수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사모하는 왕국으로 오직 그리스도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황제는 다시 물었다. "네가 말하는 그리스도란 본디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박은 그자를 의미하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 분이 죽으심으로 죄와 죄의 아들를 못박았고, 악마의 온갖 사악한 것들도 자신의 가슴에 안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이렇게 익나티우스는 대답했다. 다시금 황제는 " 그러면 네 안에 그리스도를 지니고 있단 말이지?" 라고 물었고, 익나티우스는 " 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나는 너희 안에 너희는 내 안에 있다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익나티우스를 죽이도록 명했고, 익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었다. 콜로세움에서 맹수에게 찢겨 순교하였다.


100  얌니아 회의- 산헤드린(의회)이 열림         

              유대교와 기독교가 정식으로 분리

              이때부터 유대교는 예배 때 기독교를 저주하는 시간을 가짐

      사도 요한의 죽음

105  채륜, 종이 발명

117  하드리아누스 (AD 117-138) 즉위


138  안토니우스 피우스 (AD 138-161) 즉위

150 프톨레마이오스(그리스의 천문, 지질학자) , 7개의 선법 집대성 

161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AD 161-180) 즉위: 명상록의 저자, 스토아학파

          - 서머나 감독 폴리갑 순교

     [ 폴리갑 순교상황 ] (유세비우스 기록)

     그가 성에 이르자 호민관이 권고했다. ‘그대는 왜 가이사에게 경배하지 않으며 모든 신들에게 제사하지 않는가? 어서 순종하고 생명을 구하라’ 그러자 폴리갑은 호민관의 말에 복종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가 경기장으로 끌려 들어갈 때 돌연히 하늘로부터 “폴리갑이여 담대하라. 용감히 싸우라”는 음성을 들었다. 로마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총독은 그의 고령을 고려하여 죽음을 면해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총독은 ‘내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황제에게 충성 맹세하면 당장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자, 이 말을 듣고 그는 대답하기를 ‘주여, 이 믿음 없는 자들을 주장하소서.’ 기도한 후 총독을 노려보면서 ‘지난 86년 동안 나는 예수님을 섬겼소. 그러나 그는 한번도 나를 버린 일이 없었소. 어떻게 그를 모른다고 하여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욕되게 할 수가 있겠소. 총독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시오’ 하였다. 그 날은 맹수와의 싸움이 이미 끝난 후여서 그를 맹수에게 던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그를 불에 태우라고 했다. 그러자 총독도 하는 수 없이 그를 벌거벗겨서 산같이 쌓아 놓은 장작더미 위에 집어던지게 했다. 이때 그는 기도를 올렸고 동시에 사형 집행자들은 나무에 불을 질렀다. 폴리갑은 타는 불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 저 같은 것을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해 주시고, 예수님의 고난의 잔에 참여시켜 주시는 이 날을 감사 찬송 드리나이다” 기도하면서 불길과 더불어 순교했다. 이때 이상한 것은 불길이 폴리갑의 몸을 태우지 않고 좌우로 갈려 그의 몸을 보호하는 듯 했다. 놀란 로마병사 한 사람이 창으로 그의 몸을 찌르니 피가 흘러 마치 큰비를 맞은 듯 불이 꺼졌다는 것이다.


167  순교자 저스틴

     [ 기독교 변증법 학자였던 저스틴의 순교]

     저스틴과 그와 함께 체포된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제독 루스티쿠스 앞으로 끌려왔다

     루스티쿠스 : 네가 고백하는 문학과 원리는 도대체 무엇이냐?

     저스틴 : 저는 원리와 배움과 같은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마침내 저는 기독교 원리를 수용했습니다. 거짓되고 어리석은 견해들을 고수하는 자들은 이 원리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루스티쿠스 : 기독교의 신조는 도대체 어떤 것이냐?

     저스틴 : 우리 기독교인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신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 예언자들이 예언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구원의 저자시며 설교자, 그리고 인류의 재판자이신 분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 모입니다. 하나님은 장소에 매이지 않으시고 그분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든 계십니다.

     루스티쿠스 : 너는 기독교인이냐?

     저스틴 : 예! 그렇습니다.

     루스티쿠스 : 들어보라. 네가 웅변적으로 답하고 있는데 정말 네가 올바른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것인데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느냐?

     저스틴 :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고수했던 자들은 위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루스티쿠스 : 너는 지금 하늘로부터 보상을 받는다고 상상하고 있느냐?

     저스틴 : 저는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것입니다.

     저스틴과 더 이상 논쟁할 수 없음을 알아차린 제독은 저스틴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신들께 희생제를 드리지 않는 경우 무자비한 고문이 있을 것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이에 대하여 저스틴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 더 귀중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입니다. 누구든 그분이 주도하시는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결코 우상들에게 희생제를 드릴 수 없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제독은 그들에게 고문을 가하고 참수형을 내리라고 명했다. 저스틴과 함께한 그들은 범죄자들이 처형되는 장소로 끌려 나갔다. 그들은 먼저 고문을 당하고 그리고 참수형을 당했다. 그가 순교를 당했던 때는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치리했던 167년이었다.


174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집필

202  셉티무스 세베루스 (AD 202-211) 즉위- 북아프리카까지 기독교 핍박


203  퍼피튜아 순교

     [ 북아프리카의 순교자 퍼피튜아 (Perpetua) ]

     3세기 초 기독교 박해가 널리 퍼진 가운데 북아프리카에선 박해가 더욱 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죽은 영혼을 섬기는 애굽의 세라피스교 신자였던 황제 셉티무스 세베 루스는 주후 202년에 유대교나 기독교로의 개종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로마령인 북아프리카의 대도시 카르타고에서는 기독교의 큰 부흥이 일어나 관리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이들은 황제의 칙령을 개종자뿐 아니라 개종을 시키거나 가르치는 자에게까지 확대하여 시행하였다. 황제의 칙령이 시행되는 와중에 비비아 퍼피튜아와 그녀의 여종 펠리시타스는 새투러스라는 교사가 있는 카르타고의 교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퍼피튜아는 어린 자녀가 있었고, 펠리시타스는 임신 8개월이었다. 그들은 곧 형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존경받는 귀족이었던 퍼피튜아의 아버지는 그녀가 신앙을 부인하도록 여러 가지로 달랬다. 그녀는 결코 동요하지 않았지만 어린 자녀를 보고 근심에 빠지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녀는 어린 자녀와 함께 있도록 허락을 받은 후 안정을 찾았다. 그녀의 처형 날이 다가오면서 가족들이 다시 그녀를 회유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투러스와 퍼피튜아, 펠리시타스와 세 명의 남자들은 관중들이 있는 투기장에서 곰, 표범, 멧돼지 등의 공격을 받아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당했다. 퍼피튜아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의 펠리시타스는 옷이 벗겨진 채 미친 암소가 있는 투기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광경은 잔인한 관중들 조차 “그만 멈춰”라고 소리칠 정도로 참혹하였다.

     그들이 투기장에서의 일차 놀림감이 된 후 사형집행인에게 끌려가는 가운데 퍼피튜아는 슬픔에 잠겨있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형제, 자매들에게 전해주세요. 믿음 안에 굳게 서고 서로 사랑하며 우리가 당한 환난이 믿음의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하라고요.”라고 말했다.

     이런 핍박의 격랑 이후 교회는 퍼피튜아와 그의 동료들이 당했던 핍박을 더 이상 겪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용기 있고 담대한 신앙은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이후 50여 년간 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였다.


204  플로티노스 신플라톤주의

220  중국, 삼국시대

226  사산왕조페르시아 성립

235  트라티아누스 막시무스 (AD 235-251) 즉위 -기독교핍박


249  데시우스 (AD 249- 251) 즉위

      [ 파비안 순교 ]

       새로운 로마감독이 된 파비안은 14년 동안 감독직을 성실하게 수행함.

       기독교인들의 무덤인 카타콤을 복구.

       로마제국 황제 데시우스는 분명한 혐의도 묻지 않고 기독교를 지도하는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파비안을 참수형 시킴.

       당시대의 인물 카르타고 감독 키프리안은 그를 가리켜 ‘견줄 데 없는 사람’이라고 부름.

       그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에 묻힘.


       [ 키프리안 추방 ]

        카르타고 감독으로 있던 중 데시우스에 의해 추방.

        로마교회 감독 스테판과 이방인에 의한 세례를 놓고 논쟁을 벌임.

               

        [ 오리겐 감금과 고문]

         초대 교부 중 한 명.

         가이사랴에서 사역하던 그는 로마제국 황제 데시우스 (Decius)의 핍박으로 인해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됨.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음.

         그런 후 고문 결과 로마제국 황제 갈루스(Gallus) 시기에 69세의 나이로 페니키아의 두로에서 죽음.

257  발레리아누스 (AD 257-260) 즉위 -기독교 핍박

     로마 감독 스테판 순교

258  카르타고 감독 키프리안 순교

270  아우렐리아누스 (AD270-275) 즉위 - 기독교 핍박             

286  로마 분할 통치

303  디오클레티아누스 (AD 303 -311) 즉위

         - AD 293년에 4부 정치제 시작

         - 기독교 대핍박

306  콘스탄티누스 황제 (AD 306-337) 즉위

             동서방의 정부황제가 시행되는 4부 정치 상황

             서방의 부제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의 아들로 원래 태양신 숭배함

313 동부황제 리키니우스와 '밀라노 칙령' 발표

          종교의 자유를 허락(기독교가 박해에서 풀려남)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완전하진 않지만 기독교적 사고를 하게 됨

316 중국, 5호16국 시대(~439)

317  중국, 동진의 성립(~419)

320  인도, 굽타 왕조 성립(~550)

323  콘스탄티누스가 리키니우스를  격파하고  단독 황제가 됨

325  니케아 공의회 (아타나시우스 대 아리우스) 

           ; 삼위일체 논의- 아타나시우스 승리-> 삼위일체 인정

340  울필라스 고트족에서 선교 시작

350  로마, 교회음악의 학교 스콜라 칸코룸 창설

354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이 음악 채용.

355  아리우스파(삼위일체 부정) 일시 승리 : 이후 삼위일체 갑론을박

372 고구려 불교 전래

375  게르만족의 대이동

381  콘스탄티노플 제2차 보통 공의회

             바실리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니싸의 그레고리오

                                    등의 신학자에 의하여 삼위일체 정립

384 백제 불교 전래

385  인도, 찬드라굽타 2세의 치세 (~413?)

387  아우구스티누스 - 고백론, 삼위일체론 집필

392  로마,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승인

395 로마 제국, 동서로 분열

400  이집트 수도사들이 이디오피아어로 성경 번역

427  고구려 장수왕, 평양 천도

436  아우구스티누스《신국론》 저술

450  왕들의 주도하에 지역단위로 기독교 개종

476 서로마제국 멸망

484  동ㆍ서교회의 분리

486 프랑크왕국 성립

494  부여, 고구려에 의해 멸망

496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기독교 개종

498  기독교 복음이 중앙아시아 전역에 전파

        -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이 1350년까지 투르키스탄에서 활약

500  인도-힌두교 창시

500  로마네스크 양식 처음 출현

        11세기후반에서  12세기를 로마네스크라 부름

        미술 면에서는 켈트·게르만계의 추상적 미술이 그리스도교에 수용되는 한편 고대 로마의 전통과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아 구상적·인간주의적 미술도 차차 들어와 카롤링거왕조 때에는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위와 같은 여러 유산(遺産)을 종합하여 매우 대담한 창작에 의한 종교적 감정의 표현을 의도한 것이다.

500 보에티우스(음악의 체계에 대하여) 집필

         보에티우스는 마지막 로마인이자 중세기의 창립자요 최초의 스콜라 학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음악의 음향적 요소에 흥미를 나타냄.

504 모자이크 미술 (빵과 물고기의 기적) - 비잔틴

523  유대인 아랍왕 두누와스의 박해로 아라비아 나란과 힘마지역에서 14,000여 명의

      아랍 크리스찬이 학살

527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즉위 (~565)

529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로마법대전) 편찬

532 금관가야 신라에 멸망

532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 건설 시작 (565년 완성) 

540  저스티니안 황제의 명으로 비잔틴 제국 주변의 모든 야만족이 기독교 개종

      소아시아 7만 명에게 강제 세례

549  네스토리안 대주교가 중국 만리장성 북방 헤프탈릴 지경의 백인 훈족에게

      주교를 파송

552 돌궐제국 성립

563  콜룸바가 스코트랜드에 복음 전도

579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 출생

589  중국, 수(隋)의 중국 통일

598 수 문제, 고구려 침공

590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교황권 확산 (그레고리오 성가) 편찬

         - 6세기에는 수도원에서 음악교육도  시작함

596  그레고리 대제가 영국에 어거스틴 주교를 파송 

606  비잔틴 제국과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싸움

610  이슬람교 창시

612  고구려 살수대첩

618  당(唐)의 건국

635  네스토리안 선교회 중국 도착

637  롬바르드족의 개종

638  이슬람의 예루살렘 점령     

646  당의 현장, 인도 여행 《대당서역기》 저술

660  백제 멸망

668  고구려 멸망

676  나당 연합군에 의한 삼국통일

685  윌 프리드 영국의 기독교 개종을 완성

687  피핀, 프랑크 왕국의 정권 장악

698  발해 건국

732  프랑크 왕국, 사라센(이슬람)의 침입 격퇴

750  위구르, 내몽골 통일. 아바스왕조 성립 (~1258)

751  카롤링거 왕조 성립 (~1258): 메로빙거 왕조를 쿠데타로 장악한 후 세움

771 카롤루스대제(피핀의 아들)  프랑크 왕국 통일

780  촬레마그네가 쌕슨 족에게 강제로 세례, 그리고 세례 거부자는 하루에 4500명을

      처형하고 수천 명을 유형지로 추방함

8세기경   

      북방 게르만족인 바이킹(노르만족) 대이동 시작

826  덴마크왕 하랄드 세례

827  안스갈의 덴마크 복음화 운동 전개

831  안스갈의 스웨덴 복음화 운동 전개

843 베르됭 조약 체결 (동, 서 프랑크 분할)

862  러시아 건국

870  메르센조약, 프랑크왕국 완전 분열

875  중국, 황소의 난 (~884)  

807  중국, 당의 멸망. 5대10국 시대 (~960)  

892  견훤, 후백제 건국  

901  궁예, 후고구려 건국  

916 거란, 요의 건국 (~1125)  

918  왕건, 고려 건국  

926  발해, 거란에 의해 멸망  

935  신라 멸망  

936  고려 후삼국 통일  

950  영국, 노르만 건축 도입 - 영국의 로마네스크 양식   

954  러시아의 올가 공주 세례     

956 중국, 송(宋)의 성립  

960 중국, 송(宋)의 건국(~1227) 

962  신성 로마제국 성립(~1806) - 오토 10세 

979  송 태종, 북한 평정하고 중국 통일  

987  프랑스 위그 카페 , 카페왕조 시작  

987  러시아 왕자 블라디미르 세례  

1000 송, 나침반ㆍ화약 발명  

1000 로마네스크의 절정기  

1000 귀도 4선 악보 창안    

         작곡가들은 4선의 보표와 함께 울퉁불퉁한 검은 4각과 마름모꼴의 음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000  레이프의 그린랜드 복음 선교 


그리스도 이후 32 세대인 서기 1000년 당시 세계는 18.7%가 기독교인이며 25%가 복음화 되었으며 성경은 17개어로 번역되었다.

출처 : 드림미션콰이어
글쓴이 : 드림테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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