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2·6교실/교회사2 교실

[스크랩] 존 웨슬리의 New Room, 촬스웨슬리하우스 (브리스톨)

류성련 2014. 9. 26. 20:20

최초의 감리교 예배당 브리스톨 New Room

 

뉴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감리교 예배당으로 1739년에 지어졌고 1748년에 수리되었다. 일반적으로 뉴룸으로 알려져있으나 브리스톨에서는 존 웨슬리의 채플로 불려진다. 이곳은 존 웨슬리 사역의 중심 역활을 하였다. 18번의 연회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 (글- 웨슬리스토리)

 

브리스톨 새 회당(New Room)

 

브리스톨 새 회당(New Room) 기초석(1739년)

 

브리스톨 새 회당(New Room) 내부

 

브리스톨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웨슬리 성지 순례는 미완성이다. 웨슬리 당시 브리스톨은 인구가 5만 명 정도로서 런던의 1/10 크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 혁명이 동터오면서 브리스톨은 갑자기 영국 서남부의 무역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무엇보다도 탄광 노동자들의 집합지가 되었다. 1738년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뒤 웨슬리는 이른바 '야외 설교'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브리스톨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영국 국교회들이 웨슬리 일파를 광신도로 규정하여 설교권에 목줄을 죄어오기 시작했고 특히 조지 휫트필드가 옥외 설교를 통하여 놀라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동요되어서 브리스톨에서부터 옥외 설교의 불길을 당겨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1739년 3월에 브리스톨로 내려간 웨슬리는 그 다음달부터 옥외 설교를 시작했는데 한달 총 인원이 4만 5천 여명, 매 집회 평균 3천 여명이 자신의 설교를 들었다고 일지에 적고 있다. 브리스톨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최초의 감리교회라고 할 수 있는 새 회당(New Room)과 촬스 웨슬리가 살았던 집을 탐방했을 때였다. 야외 설교를 통하여 수많은 결신자들을 얻은 웨슬리는 여러 신도회들을 결성하여 이들을 조직 안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던 차에 1739년 6월 3일 두 개의 신도회 조직이 새 회당에 함께 모여 역사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후 새 회당은 초기 감리교도들의 예배 처소로서 뿐만 아니라 평신도 설교자들을 훈육하는 선지 학교로서, 병자들에게 필요한 각종 약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시약소로서 등등의 다목적용으로 활용되었다. 새 회당은 웨슬리가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마지막으로 개최된 1790년도의 연회를 비롯하여 모두 18 차례의 연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했다. 새 회당은 예배드릴 수 있는 채플과 웨슬리 형제의 침실들, 순회 설교자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 그리고 마구간 등으로 이루어졌다. 채플은 모두 여섯 개의 돌기둥들이 발코니와 이층의 여러 방들을 떠받치고 있었다. 채플 위로 난 발코니에는 등 없는 나무 의자들이 삥 둘러 놓여 있었는데 설교가 길어질 경우 매우 불편할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일층 채플에 놓여 있는 등받이 의자들 역시 본래 웨슬리 당시에는 등이 없는 나무 의자였는데 새로 교체해놓았다고 한다. 기댈 곳이 없게 만듦으로서 웨슬리 특유의 훈련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보았다. 웨슬리가 직접 기증해서 걸어 놓았다는 발코니의 벽시계는 세월의 무상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 회당 채플에서 눈에 색다른 것은 이중 구조로 된 설교단이었는데 아래 단에서는 성경 봉독을, 윗 단에서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설교단 바로 앞에는 웨슬리 형제가 성찬식을 집전했던 18세기식 성찬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브리스톨 새 회당(New Room) 설교단

 

웨슬리 당시에 회개의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폭도들의 공격이 잦았는데 그래서 1층엔 창문이 없고, 설교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설교단이 사회단 위, 2층에 자리한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예배당 위쪽에서 웨슬리가 설교자와 회중의 태도를 지켜보았던 창문도 인상 깊었다. 또한 웨슬리 형제와 설교가들―프랜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 아담 클라크(Adam Clarke), 존 플레쳐(John Fletcher) 등―의 방에는 웨슬리가 입던 사제복을 비롯해서 초기 감리교의 활동을 잘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뉴 룸 뒤쪽에 있는 찰스 웨슬리의 동상이 있다 

 

브리스톨 새 회당(New Room) 설교단

 

브리스톨 새 회당(New Room) 오르간

 

건반을 잘 보시면 까망과 하양이 바뀐게 인상적입니다.  1761년 오르간이고 1930년에 뉴룸으로 왔습니다. 뉴룸 초창기에는 오른간이 없었고 아카펠라로 불렀습니다

 

존 웨슬리 관련 유물들, 사교실  (출처- 웨슬리스토리)

 

웨슬리의 유품들

 

웨슬리가 사용하던 성경책, 쇠 바클, 웨슬리가 입었던 가운, 기념품들

 

웨슬리를 기념하는 도자기들 

 

기념품들과 킹스우드 학교에서 가져온 웨슬리 침대

 

웨슬리의 서재

 

촬스 웨슬리의 동상

 

교회 마당에 서 있는 촬스 웨슬리의 동상이다. 왼손에는 펼쳐진 성경이, 오른손은 펴서 방뭉객을 맞이한다.  (출처- 웨슬리스토리)

 

존 웨슬리 기마상

 

마상 전도하는 존 웨슬리

 

오른손에는 성경이 펼쳐져있는 이 기마상은 1932년 Walker. Sc 에 의해 만들어졌다. 조각상 뒤 오른쪽 편에는 이곳을 방문했던 설교자들을 위한 마구간이 남아있다. (웨슬리스토리)

 

마구간 안장 등 여러장비

 

마구간 건초더미

 

촬스웨슬리의 집 (출처- 웨슬리스토리)

 

촬스 웨슬리 하우스


새 회당에서 한 칠분 정도를 걸어가면 촬스 웨슬리(1707-1788)의 집이 옛날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촬스는 요한보다 네 살 어렸는데 일생 동안 7천 곡 이상의 찬송시를 작사한 시인이었다. 엄격하고 조직적이었던 요한에 비하여 훨씬 더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넘쳤다는 촬스는 본래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출산 만기일이 되어서 눈을 뜨고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담요에 싸서 그냥 놔 누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그래서 때문인지 촬스는 타고난 건강 체질인 요한과 달리 유난히 잔병치레를 많이 했으며 자신의 각종 병력을 소상하게 기록으로 남겨두기까지 했다고 한다. 요한과 달리 촬스는 샐리 그윈(Sally Gwynne, 1726-1822)과 일생 동안 매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했다. 1749년 4월 8일 촬스의 나이 40이 훨씬 넘었고 샐리의 나이 23세였을 때 두 사람은 요한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이 신혼 살림의 둥지를 튼 곳이 바로 브리스톨의 촬스 웨슬리 하우스였으며 이곳에서 이들은 근 20년 동안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꿈결같은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촬스 부부는 팔 남매를 낳았지만 다섯은 영아기에 사망했고 셋만 살아남았는데 한결같이 음악적인 천재성을 발휘했다고 한다. 특히 막내아들 사무엘(1766-1837)은 브리스톨의 모차르트로 불릴 정도로 음악적인 재기가 남달랐는데 그의 아들 사무엘 세바스티언 웨슬리(1810-1876)는 영국 최고의 작곡가요 대성당 오르간 연주자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고 한다. 과연 삼층 벽돌집으로 지어진 촬스 웨슬리 하우스는 행복한 웃음과 찬송 소리, 악기 연주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듯 아늑하고 편안했다. 삼층 골방 가장 조용한 곳에 놓여 있는 촬스의 책상을 보았을 때 안내자의 설명이 남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촬스는 집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자마자 '펜! 페이퍼! 펜! 페이퍼!' 하고 소리를 외치며 자신의 서재로 돌진해 들어가곤 했답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이 쓴 찬송시를 가지고 나와서 아래층에 있는 식구들이나 손님들에게 읽어주곤 했답니다."

 

촬스웨슬리하우스 The Music Room

 

촬스웨슬리하우스 핲시코드

 

촬스웨슬리하우스 해시계

 

촬스웨슬리 부인  샐리 그윈(Sally Gwynne, 1726-1822)

 

촬스는 샐리 그윈(Sally Gwynne, 1726-1822)과 일생 동안 매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했다. 1749년 4월 8일 촬스의 나이 40이 훨씬 넘었고 샐리의 나이 23세였을 때 두 사람은 요한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이 신혼 살림의 둥지를 튼 곳이 바로 브리스톨의 촬스 웨슬리 하우스였으며 이곳에서 이들은 근 20년 동안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꿈결같은 시간들을 보냈다고 한다

 

촬스웨슬리가 목회하던 세인트 제임스교회, 촬스의 아내 사라와 딸의 무덤  

 

촬스 웨슬리

 

미 샌프란시스코 닛사의 그레고리 교회는 Episcopal Church이다. 에피스코팔은 스코틀랜드와 미국의 성공회를 가리키는 독립적인 이름이다. 특히 닛사의 그레고리 교회는 실험적인 예전(liturgy)이 특징이다. 이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인 벽화 "Dancing Saints" 중 찰스 웨슬리의 모습이있다

 

사진, 글 출처 (sola-gratia, 웨슬리 신학, 역사 연구원)

출처 : 성화사랑
글쓴이 : bae sung hw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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