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4·6교실/감리교신학 교실

[스크랩]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하)

류성련 2015. 9. 17. 16:02
“기도는 하느님과 맺는 사랑의 관계” 성녀 가르침 온전히 남아
수도회 창립·쇄신운동으로
쇠퇴하는 교회에 활력 불어넣어
「완덕의 길」 「영혼의 성」 등 저서
영성·기도생활 집대성한 걸작

알바 데 토르메스 수녀원 박물관
성녀 심장·왼팔 안치… 완덕 기려

 

 

 ▲ 3000여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유적 도시 톨레도 전경. 명실상부한 스페인 신앙의 수도로 불린다.
알바 데 토르메스

스페인 사람들은 알바 데 토르메스를 약칭으로 ‘알바’라 부른다. 알바 가르멜 수녀원이 없었다면, 이곳도 그저 조용한 시골마을로 불렸을지 모른다.

알바에 도착한 순례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잰걸음으로 수녀원 성당 제대 뒤편에 자리한 박물관 위층부터 찾는다. 바로 데레사 성녀의 유해 일부가 안치된 곳이다. 순례객들이 유리관 너머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성녀의 심장과 왼쪽 팔이다.

데레사 성녀는 1582년, 아빌라로 가던 도중 알바에서 선종했다. 그가 직접 세운 17개 수녀원 중 마지막 순번인 부르고스 수녀원을 창립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후 수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도 알바로 이어졌다. 그런데 성녀가 선종한지 몇 년이 흘러도 그의 무덤에서는 꽃향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기이한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살라망카대학교 교수들이 무덤을 열자, 성녀의 유해는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고 한다. 성녀의 심장과 왼팔은 당시 별도로 꺼내 지금까지 박물관에 계속 전시하고 있다.

 ▲ 알바 데 토르메스 가르멜 박물관에 전시된 데레사 성녀의 심장.

 ▲ 알바 데 토르메스 가르멜 박물관에 전시된 데레사 성녀의 왼팔.


서양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인 유해는 치유 등 다양한 기적을 일으킨다는 믿음이 자리해, 예전부터 공동체든 개인이든 유해를 자르고 쪼개 서로 가지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게다가 데레사 성녀는 ‘심장 뚫린 은총’을 받았다고 알려져, 그의 유해는 더욱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심장 뚫린 은총’은 실제 심장에 성흔이 생긴 것이 아니라, 심장이 터질 정도로 하느님을 사랑한 성녀의 모습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대개 성녀를 신성시하고자 한 세태와 그러한 세태에 편승해 글을 적은 전기 작가들의 탓으로 본다.

박물관에서는 성녀의 삶에서 주요 장면을 형상화한 성화들을 비롯해 작품 전집의 복사본 등을 볼 수 있다. 또 박물관 안쪽의 좁은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성녀가 임종했을 당시 모습을 재현한 수방과 마주한다. 성녀가 임종한 곳은 정확히 말하면 이곳이 아니라 현재 성녀의 관이 보관된 수방이다.

수녀원 성당 안쪽에는 벽면마다 수녀원 설립과 운영에 도움을 준 여러 은인들의 석관이 안치돼 있다.

 



 

 ▲ 박물관 안쪽에는 데레사 성녀가 선종할 당시 머물렀던 수방을 재현한 곳이 있다.


신앙의 쇄신

수녀원을 세우고 수도자들을 양성하면서 데레사 성녀에게 지워진 짐은 수없이 많았다. 성녀는 알바에 머무르면서 마지막까지 몇 가지 난제들을 해결했는데, 그중 하나가 창립에 공헌한 은인과 수녀원과의 관계 문제였다.

데레사 성녀는 수녀원을 창립할 때마다 후원자들의 인품을 식별하는 과정을 빼놓지 않았다. 물질적 후원을 해준 귀족들이 수도공동체 삶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모습들이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귀족들의 경우 후원금을 내는 조건으로 수녀들이 자신을 돌보게 하고, 수녀원 또한 자신의 소유로 취급하기도 했다.

되짚어보면 모양새는 다르지만, 세속화된 행태들은 일부 수녀들의 삶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귀족의 자녀들이 수도회에 입회하는 경우, 본가에서 부리던 하녀를 데리고 들어와 계속 수발을 들게 하는 모습 등이다.

15세기 즈음 가르멜 수도회의 열정과 엄격함도 일면 사그라들었다. 서방교회의 분열과 ‘백년 전쟁’으로 인한 피해, 대학들을 중심으로 촉발된 각종 신앙 논쟁, 수도생활의 세속화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흑사병이 창궐해 수도원도 텅텅 비자, 식별이 덜 된 지원자들을 받아들인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데레사 성녀가 맨발 가르멜 수도회 창립과 개혁운동 등에 박차를 가한 것도 이러한 시대 흐름 안에서 쇠퇴해가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뜻이었다.

특히 데레사 성녀가 남긴 모범과 영성적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이른바 영성 분야의 교과서로 전해진다. 성녀가 직접 쓴 자서전과 수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쓴 「완덕의 길」, 영적 완숙기에 접어들어 쓴 「영혼의 성」 등의 작품은 그의 영성생활과 기도생활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윤주현 신부(한국 맨발 가르멜 수도회, 대전가톨릭대 영성신학 교수)는 “영성은 하느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 각자가 드리는 고유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영성생활은 우리가 믿는 바를 실생활로 이어주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영성생활은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기도해야할까 고민될 때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다시금 묵상하면 좋을듯하다. 성녀는 “기도는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라 하느님과 맺는 우정과 사랑의 관계가 영글어 가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이자 벗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의 정점인 완덕의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도 자체만이 아니라 덕을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Los Cuatro Postes’. 네 개의 기둥들이란 뜻. 데레사 성녀가 순교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출, 오빠 로드리게스와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으로 가다가 숙부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지점에 세운 기념 십자가와 기둥들이다.
 ▲ 톨레도 대성당 성광. 높이 3m에 무게가 180kg이나 되는 대규모로, 조립하는 데에만 1만2000개의 황금과 은 나사가 사용됐다. 평소에는 성당 우측에 있는 보물실(Sala del Tesoro)에 보관돼 있다가 일년에 딱 한 번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만 일반에 공개돼 미사와 성체행렬 등에 쓰인다.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출처 : 세포네
글쓴이 : 세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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