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편
서론
1. 성지연구에서 애굽,
즉 이집트을 보려면 성지순례에 있어 최초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인 것이다. 이집트를 방문하게 되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바쁜 일정상 수도 카이로에 남아있는 ‘예수 피난교회’를 중심으로 한 시내 관광과 고고학 박물관, 시내에 인접한 기자(GIZA)지구에 있는 피라밋과 스핑크스만을 돌아 보고 나서 나쁘게 시내산으로 달려가게 된다.
그러나 꼭 가보아야 할 곳은 요셉의 전성시대에 야곱의 식구 70여명이 이주해와 번성하여 히브리민족을 태동하게 한 옛 고센땅, 즉 비돔과 라암셋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여정 가운데 중요한 숫곳과 더한 시간적 여유가 허락한다면 모세가 활동했던 룩소(LUXO)와, 그리고 고대 철학의 중심지요, 최대교회 및 교부들의 활발한 활동 무대였던 북부의 알렉산드리아 등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꼭 돌아볼 필요가 있는 지역으로 추천하고 싶다.
2. 애굽, 즉 이집트를 소개하면
1)성서적 배경
이집트(애굽)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인하여 피신한 그 애굽이며(장 12:10;11:14, 13:1), 이 나라에서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노예에서 죄수로, 죄수에서 총리대신이 되었고(창37:28, 39:1, 40:5, 41:46, 출1:1:5), 또 이 요셉의 초청으로 야곱의 가족이 이주하여 살았으며(창46:4:6:7:8), 모세가 바로 딸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40세까지 성장하고(출2:10), 창세기 15장16절의 예언대로 400여 년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까지 번성하고 생활한 나라이다(출3:11,12:40). 또한 예수님이 헤롯의 학정을 피신하신 곳이며(마2:13-19), 구약성경과 깊은 관계가 있는 나라이다.
2)역사적, 지리적, 인종적 배경
이집트를 소개하려면 역사적 개관은 물론 지리적·인종적 배경도 함께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이집트라는 국명의 의미적 배경과 전체적으로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나머지는 순례를 하기 전과 순례를 하는 동안,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례를 마친 이후에 주어지는 순례자 자신의 몫이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어서 하지 FootNote 않았다.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 가장 좁은 의미로는 제1폭포로부터 북방으로 오늘날의 카이로 부근까지 이르는 나일강 양안(상부와 중부 이집트)과 나일 삼각주(하부 이집트)를 가리킨다. 본 항에서는 포괄적인 성서적 명칭인 미스라임과 상부 이집트를 지칭하는 바드로스를 둘다 포함해서 애굽(이집트)으로 통칭한다. 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명칭은 최근에 붙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멤피스의 별칭, 곧 “프타(신)의 영의 집”이라는 뜻의 “히-쿠-프(Hi-Ku-Piah)”에서 유래된 듯하며, 미스라임이라는 명칭은 이집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 명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드로스는 [남쪽나라]라는 뜻의 이집트어 “피-토-레시”(Pa-To-resi)에서 유래된 명칭이며 성서의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에 해당되는 이집트식 표현은 “믹돌에서부터 수에네에 이르기까지”-북동의 한 국경 요새지에서부터 제1폭포의 아스완에 이르기까지-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그만 이집트를 두고 그리스의 철학자요 정치가였던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나일강의 선물”(Gift of the Nile River)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나라에서는 유일한 강을 따라 인류 4대 문명이 발생되었다. 계절을 따라서 적도부근의 강우와 다비시니아의 강우가 결합하여 나일강의 수량을 증대시킴으로써 연례적인 범람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 범람은 7월에 시작하여 9월까지 계속 물이 빠지면서 이집트에 광범위하게 물을 공급해 준다. 고로 이집트의 번영은 잦은 범람과 그리고 그 범람된 물을 최대한의 기간 동안 계획적으로 보존하는 것에 달려 있다.
범람된 물은 저수지(Catch basin)나 운하를 이용해 강의 제방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거리에 가능한 한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다. 건조기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양수 장치들이 이용되어 왔는데, 현대적인 댐 설비가 도입되기 전에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매년 생기는 새롭고 기름진 침전토는 천연 비료의 구실을 했다. 관개수, 비옥한 침식토 그리고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부드럽고도 시원한 계절풍과 맑은하늘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농경 사회가 발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력을 제공해 주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길쭉한 구유 모양의 상부 이집트는 불모의 홍해 사막과 삭막한 리비아 사막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북동쪽에는 시내 광야가 있어 아시아로부터의 접근을 차단시켜 주었으며, 북서쪽의 리비아 해안은 이집트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인데, 지극히 제한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이집트는 고대로부터 지중해인종(Mediterranean race)이라 불리우는, 체형이 가늘고 갈색 피부를 지닌 그들 종족적 특징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었다.
3)현재 이집트
(1)위치 : 아프리카 동북부
(2)면적 : 1,001,450㎢(한국면적/ ㎢)
(3)인구 : 약 5,800만명
(4)종교 : 이슬람교(수니파-국교), 콥틱, 기독교, 유대교.
(5)언어 : 아라비아어, 영어, 프랑서어도 부분적으로 사용함.
(6)시차 :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늦다
(7)통화 : 1$=2.80LE(이집트파운드)
(8)기후 : 3-10월(최저기온 12~16℃ -최고기온 33~36℃)까지는 반팔셔츠, 10-2월(최저기온 9~11℃ -최고기온 19~28℃)까지는 긴팔셔츠 일몰후 급격한 기온하락 현상이 가끔 있음
본론
1. 출애굽 이전
1)요셉의 여정 참고-창세기37장16-17: 도단에서 미디안 상고들에게 팔아넘기움
37;16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켠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나게 가르치소서
37:17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가 도단에서 그를 만나니라
참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감
37: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 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에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37:36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2)모세의 출생
출애굽기 2장 1-10
2:1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사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2:2 그 여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라
3)모세의 소명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출애굽기 1장 8절)라는 말씀대로 애굽의 바로는 히브리인들을 비돔(Pithom)과 라암셋(Rameses)을 건설하는데 동원하며 그들을 핍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로인한 히브리민족의 고통과 신은소리를 들으신 야웨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 백성을 구언하시려는 계획을 하셨습니다.
참고 - 출애굽기 3장 10절
3: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2. 고센
1)풍요의 땅 고센
2)라암셋 노역 고센의 풍요로움과 잘 정비된 관계수로(B. C 4000년 전부터 정비된 수로로 현재까지 농수로) 고센(Goshen)은 나일강 델타지역으로 비옥한 퇴적토가 형성된 요셉과 그의 가족들이 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고센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중요한 지역이다. 야곱의 가족들이 정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였던 곳이기 때문이다.(창47:27)
구약성서에서 '좋은 땅 라암세스'(창47:11)라고도 하였던 고센땅은 하부 이집트의 델타지역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고센땅은 비교적 많은 강우량과 나일강의 손쉬운 관개시설 때문에 실제로 애굽에서 '가장 좋은 땅'(창47:6,11)이었다.
고센땅이 애굽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긴 하였지만,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침입자들의 공격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중심 도시를 멤피스처럼 델타지역에서 보다 내륙 쪽으로 떨어진 곳에 건설하거나, 테베와 같이 나일강 상류 쪽에 건설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옥한 고센땅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 아래 번성할 수 있었고, 그 인구수와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고센땅이 위치하였던 하부 이집트의 델타지역은 멤피스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약 200km의 삼각주지역이다. 지중해 해안이 되기도 하는 델타지역의 북쪽편의 길이는 약 250km이다. 이 지역은 지리적 여건상 물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나일강의 관개시설이 B. C 4000년 부터 시작되어 농경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고 이곳은 지중해의 영향으로 이애굽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강우량이 비교적 많은 지역이었다.
나일강
적도 부근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위치 : 적도부근, 지중해
면적 : 300만 7,000㎢
길이 : 6,690km
- 나일강의 삼각주 -
총길이 6,690km. 유역면적 300만 7,000km2. 총길이는 남반구의 부룬디 ․탄자니아 국경 부근에서 강 어귀까지이며, 유역면적은 아프리카대륙의 약 1/10을 차지한다. 나일강에는 몇 개의 원류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오지에 있는 것은 부룬디 산맥에서 발원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카게라강이 되어 빅토리아호(湖)로 흘러든다. 빅토리아호부터는 빅토리아나일이라 하는데, 키오가호를 지나 머치슨 폭포를 거쳐 앨버트호의 북단으로 들어간다. 앨버트호에서 수단 국경까지는 앨버트나일이라 하며, 여기까지의 나일강은 산악지대를 지나면서 머치슨 폭포 같은 경관을 이룬다.
수단령으로 들어서면 서쪽에서 흘러오는 지류인 바르알가잘강과 노호(湖)에서 합류하는데, 이것을 바르알자발강이라 한다. 바르알자발강은 광대한 습지대를 지나오면서 유량의 절반은 부평초(浮萍草)에 흡수당하거나 증발로 인하여 줄어든다. 이곳에서부터 수도 하르툼까지를 백나일이라 한다. 백나일은 건조지대로 들어서 하르툼에 가까워지면 완전한 사막지대를 지난다. 여기서는 남동쪽에서 흘러오는 소바트강이 합류한다.
- 이집트의 나일강 -
백나일은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청나일(아랍어로는 바르알아즈라크)과 하르툼에서 합류하여 나일강이 된다. 하르툼을 떠난 나일강은 도중에 에티오피아에서 흘러오는 또 하나의 지류인 아트바라강과 합류하여, 이집트 국경 근처에서 인공 호수인 나세르호(湖)로 흘러든다. 아스완 하이댐과 아스완댐을 거쳐 이집트 영내로 들어가면 합류하는 지류도 없고, 카이로 북쪽에 거대한 삼각주지대를 만들면서 지중해로 흘러든다. 아스완과 하르툼 사이에는 6곳의 급류가 있어 유량이 적은 2~7월에는 항행할 수 없으나, 그 밖의 계절에는 작은 선박이면 지중해에서 머치슨 폭포까지 항행할 수 있으며, 우간다에서 빅토리아호를 지나 카게라강을 약 160km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일강은 고대부터 사하라 사막을 넘어 북부아프리카와 적도 이남의 내륙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로였으며, 고대 이집트문명이 지금의 하르툼 북쪽 메로웨를 거쳐 에티오피아에 영향을 준 통로가 되었다. 1816년경 이집트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하는 모하메드 알리가 착수할 때까지 나일 강물의 제어(制御)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며,1861년 카이로 북쪽에 댐이 완성됨으로써 삼각주지대의 농산물 재배가 활발해졌다. 내륙 수로로서의 개발은 19세기 말부터 1900년에 걸쳐, 부평초 때문에 항행할 수 없는 수단 남쪽의 습지대를 우회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생긴 바르엘제라프강(바르알자발강의 중앙부에서 동쪽을 북진하여 백나일과 소바트강의 합류점 부근에 이르는 강)에 일부 인공을 가하여 항행을 원활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1902년 아시우트와 아스완에 개폐식 댐을 완성, 계절적인 범람에 다소의 제어를 가하여 관개용수의 이용을 유효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공사는 그후 이스나(1909), 센나르(1925), 나그함마디(1930), 제벨아울리아(1937) 등에서도 행해졌다. 1970년 아스완하이댐이 완공되어 강의 범람을 완전히 제어하게 되었고, 이 다목적댐에 의하여 나세르호가 생겼다. 그 결과 이집트의 약 2만 4,300km2, 수단의 약 4,050km2의 농경지가 관개되었다. 나일강은 국제하천이므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우간다 사이에 수리(水利)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수자원의 적극적인 개발과 이용은 1954년 우간다에서 오웬폭포에 댐을 완성하고 수력발전을 개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60년에는 구(舊)아스완 댐에서도 수력발전이 시작되었다. 나일강 중류 이북은 옛부터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으나, 원류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곳에 대한 탐험이 시작된 것은 17세기부터이다. 1613년 포르투갈의 파에스 신부가 청나일을 탐험하고, 1770년 영국의 J.브루스가 타나호(湖)를 탐험하여 그것이 나일강의 원류임을 확인하였다.
백나일은 이집트 탐험대가 1821~1842년 수단 남단에 가까운 주바의 급류까지 탐험하였는데, 1830년에 그 때까지 백나일의 상류라고 생각한 나이저강이 별개의 큰 강임을 확인하였다. 1858년 영국인 스피크는 빅토리아호가 나일강의 수원일 것이라 추정하고 탐험을 시작하여, 1860년 버튼과 함께 그 추정의 정당함을 확인하였다. 또 영국인 S.베이커는 1861년부터 2회에 걸친 탐험으로, 수단 남쪽의 습지대에서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앨버트호와 머치슨 폭포를 확인하였다. 그후 187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군인 C.G.고든과 그 부하들이 나일강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 성공하고, 이어서 M.스탠리가 빅토리아호를 주항(周航)하여 백나일의 원류지대를 상세히 밝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런던의 왕립지리학협회가 아프리카 내륙 탐험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1870년대에는 나일강의 모습이 거의 알려졌다.
*백나일강에 대한 자세한 자료
길이 2,084km.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발원하는 지류 청(靑)나일에 대하여, 우간다의 앨버트호(湖)에서 발원하는 지류를 백나일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으나, 본래는 수단 남부의 노호(湖)에서 청나일과 합류하는 지점, 즉 하르툼까지의 구간을 가리켰다. 나일강 지류가 수단으로 흘러든 뒤 노호까지의 구간은 바르알자발강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노호 부근에서 남서쪽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바르 엘 가잘강과 합친다. 그 합류점에서부터 청나일이 합류하는 지점까지가 백나일인데, 또 흔히 바르알자발강을 백나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백나일은 열대지역을 흐르기 때문에 증발량이 많고, 따라서 아스완하이댐에 흘러드는 총수량의 15%를 차지하는 데 불과하지만, 큰 호수를 수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량이 항상 일정하여 건계에는 특히 큰 몫을 한다. 한편 하르툼 부근에서 건계에는 총유수량의 83%, 홍수기에는 총유수량의 10%를 차지한다.
*청나일강에 대한 자세한 자료
아랍어로는 바르알아즈라크, 아바이강이라고 한다. 길이 1,460km. 에티오피아의 타나호(湖:해발고도 1,860m)에서 흘러나와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백(白)나일과 합류할 때까지의 강이름이다. 나일 강물의 대부분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는 많은 지류로 이루어진 것이며, 타나호의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우기와 건기에 따라서 청나일강과 나일강 본류의 수량은 현격한 차이가 생긴다. 백나일강의 물이 회백색인 데 비하여 이 강물은 맑은 청색이기 때문에 청나일강이라고 한다. 타나호 근처에서 수력발전에 이용되고 있다.
*나일강이 홍수가 나는 이유
나일강은 근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여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산악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이루는 청나일이 수단의 카루틈 남방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의 젖줄이 된다. 여기부터는 전혀 유입되는 물없이 곧장 지중해 까지 북으로 흘러간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하는데 대개의 홍수는 수해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나일강 홍수는 7월에서 10월에 걸쳐 이집트의 완만한 사막을 서서히 흘러 가면서 온갖 수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뭇 짐승들이 서식 할 수 있도록 한다.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란 넓은 대평원을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땅이 한때는 세계의 곡창이라고 알려진 비옥한 땅인데, 이것은 홍수가 싣고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자연의 퇴비를 깔아주는 결과이다. 이와같이 해마다 부엽토를 더해 가면서 이 비옥한 땅은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 땅이란 뜻에서 케미(KEMI)라고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은 자연의 선물을 남겨 주면서 서서히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약 6500 Km의 장구한 여행을 마친다.
연중 행사처럼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여 수해가 아닌 수해를 안겨주는 나일강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았고 또한 숭배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절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일강의 범람과 연관 된 것으로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이다.
이렇게 수천 년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사람의 힘으로 조종해 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 되어서 19세기초 케네디 모하멧 알리 (Khedive Mohammed Ali)는 이집트 현대화 작업을 시작하여 나일강을 알렉산드리아의 식수원이 되게 하였고 카이로 북쪽에 갑문장치를 설치하여 많은 농토를 확보하기도 하였고, 1972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 내년 범람하던 나일강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강변의 많은 땅들은 전천후의 농토가 되었다. 그러나 나일강의 선물인 천연 퇴비는 영영 잃어 버리게 되었다. 위와같이 하류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한강이 범람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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