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서 교실

[스크랩] 갈릴리호수, 팔복교회

류성련 2010. 6. 14. 23:50

 갈릴리 지방은 해수면보다 210 m 낮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 바다 (혹은 호수)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요단강 계곡의 평야화 이즈르엘 평원 (yizreel Valley)으로 인하여 고대로부터 각종 산업과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다른 지방에 비해 천연적인 혜택을 많이 받은 곳이다.

그러나 정치적, 종교적 배경으로 볼 때는 구약시대의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역사, 종교의 변방으로서 실상 "멸시를 당하던 스블론과 납달리 땅" (사 9:1) 이었으며, 솔로몬 왕때는 성전을 짓기 위해 수입한 백향목, 잣나무 값으로 인하여 진 부채를 값지 못해 두로 왕 히람에게 갈릴리 지방의 성읍 20개를 떼어 주었으나, 그의 눈에는 들지 않았다 (왕상 9:10 ~ 14). 갈릴리 북부의 대부분은 산지로서 크게 유용하지 못하였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BC 721년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로부터 멸망당한 이후 이 지역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이방인의 갈릴리"(사 9:1)가 되었으며, 마카비 전쟁때 "갈릴리에 사는 전 이방인들이 합세하여 유대인들을 멸망시키려 하자 구출을 위해 진군" 하는 기록에서도 그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헤스모니안 왕조의 아리스토불러스 1세 ( BC 104 ~ 103) 는 갈릴리를 정복하여 이방인들을 유대교로 개종 시킴으로써 갈릴리의 유대 재편입을 이룩하였다. 헤롯 대왕이 죽은 후 갈릴리는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통치되었다. 기원 1세기겨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율법을 증오하는 갈릴리 사람들이여"라고 말하면서 이들을 종교적 이유로 비판하였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 (요 7:49)로 규정하고,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 (요 7:52)고 확신하였다. 또한 베드로를 '갈릴리 사람'(눅 14:70)으로 구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야 말로 메시아를 대망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자들이었다. 제1차 유대 반란의 진원지가 바로 갈릴리였음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한편 지리적 위치로 보면 예수의 공생애 활동의 선교 본부였던 가버나움은 다양한 계층의 '허다한 무리' (마 4:25)가 통행하던 해변의 길 (Via Maris) 의 통로로써 이곳을 지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받았던 사람들이 많았음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복음서의 천민 (창녀 눅 8:2) , 귀족 (헤롯 안티파스와 함께 자란 요안나, 눅 8:2), 왕의 신하 (요 4:46 ~ 47), 부자 (눅7:36), 군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 (눅 7:2 ~ 10)등의 다양한 계층이 등장하는 것은 예수 시대의 이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예수님의 미래의 선교 전략을 위한 기초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복음을 받은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이 자발적으로 확산되게 하는 이중적 효과를 예견한 그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초대교회의 복음의 확산과정을 보면 사도들 중심의 선교사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숨어 등장하는 익명의 많은 사람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4개의 복음서에 모두 보도하고 있는 유일한 기적 가운데 하나인 오병이어 사건 (마 14:13 ~ 21, 막 6:30 ~ 44, 눅 9:10 ~ 17, 요 6:1 ~ 14) 의 현장에 세워진 기념교회로 희랍어로는 'heptapegon'(일곱 개의 샘) 이라 한다.
'일곱'이라는 숫자인 hepta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며, 히브리어 명칭의 'Ein Sheva'는 일곱 개의 샘이라는 뜻으로 역시 일곱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다.

누가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께서 산에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눅 6:17) 여러 지방에서 온 무리들에게 여러 내용으로 가르치신 후 '빈 들' (눅 9:12)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의 백성을 먹이셨다. 현재 이 사건을 기념하여 세워져 있는 기념교회는 팔복산으로부터 바다로 경사를 내려와 바닷가에 세워져 있으며, 5세기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위에 1936년에 다시 세워진 카톨릭 성당이 있다. 비잔틴 시대의 남은 모자이크 가운데 오병이어의 모자이크는 매우 유명하며, 갈릴리 호수 주변의 생물들을 새겨놓은 모자이크는 당시의 생태계를 연구할 수 있는 매우 값진 자료가 된다.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 부터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1932년 이 비잔틴교회 유적지에 물고기, 새, 꽃 등 아름다운 모자이크 그림들이 발굴되었다. '두 마리의 물고기와 5개의 빵이 들어 있는 바구니' 모자이크도 이곳에서 함께 발굴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확인하게 된다. 이 모자이크들 위에 1936년에 건립된 교회를 '오병이어 교회 (Church of the Multiplication)'라고 부른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8)

 

 

 갈릴리호수에서 바라본 현대 디베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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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뒷산 팔복을 선포하신 은혜의 산에서 디베라를 향하여 내려다 본 갈릴리호수^^ 저 멀리 산이 끝나는 부분이 남쪽 요단강으로 흐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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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버나움에 좋은 호텔들이 많이 세워져 있고 주로 이곳에서 갈릴리 호수를 전체 조망하기 위해 배를 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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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의 말씀을 선포하셨던 그곳에 세워진 필복기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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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정면에서 담았습니다. 뒤로 갈릴리호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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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편에서 바라본 교회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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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복교회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좌측 끝자락이 뱃세다 광야이고 갈릴리 수원이 흘러 들어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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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교회에서 남동쪽을 바라본 갈릴리호수 거너편이 거라사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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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교회에서 바라몬 갈릴리호수 남서쪽 방향으로 우축이 디베라이고 가운데가 요단강으로 흘러 내려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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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전소망성결교회
글쓴이 : 종준수은민주민정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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