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 연구교실

[스크랩] 예배의 감격이 있습니까

류성련 2010. 7. 26. 15:10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적어도 매주 한번은 예배에 참석하기에 신앙생활의 중심에 예배가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예배를 정의해 보라고 하면 예배는 주일날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 기도, 찬양, 설교말씀 듣는 것 등을 언급할 것이다. 이는 예배의 초점이 주로 예배시간에 성도들이 하는 행위에 맞춰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들, 예배위원이나 심지어 목사들도 예배의 목적보다는 예배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무슨 찬송을 부
르고 무슨 말씀으로 설교를 할 것인가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사실이다.
Robert Webber는 그의 “Worship Old and New”라는 책에서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만남”이라고 정의
한다. “이 만남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임재하시고 백성들은 찬양과 감사로 응답한다. 이를 통해 백성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시는 분과 개인적인 접촉을 하게되고, 예배자는 이 마주침으로부터 타락한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Webber는 전능자 하나님과의 마주침의 중심에는 성도들의 찬양과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보여 주시고 자신을 내어 주신 하나님께 성도들은 감사와 경배의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응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고 하나님께 우리의 응답과 헌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다운 예배에는 하나님을 만난 감격이 있게 마련이다. 영어로 예배가 worship인데 이 말은 worthship에서 나온 단어이다. 하나님의 worth, 즉 가치를 고백하며 그에게 엎드려 절하고 경배한다는 뜻이다. 예배에서 만난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며 엎드려 주님께 입 맞추는 사랑의 고백과 감사와 찬양으로 경배하는 것이 예배다운 예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는 예배를 드리는 첫 번째 열쇠는 예배자의 자세이다. 예배시간에 단상에
서 회중을 바라보면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게 된다. 물끄러미 어딘가를 바라보는 분,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하는지 조는지 하는 분, 옆 사람과 소곤거리는 분, 무언가 적고 계시는 분, 예배와는 상관없이 성경책 읽으시는 분, 눈물을 글썽이며 은혜 속에 계신 분,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시는 분들을 같은 예배시간에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같은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분은 지루함을 느끼고 어떤 분은 엄청난 은혜를 느끼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것일까?
우리 교회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예배를 드린다. 1부 전통예배, 2부 현대예배, 3부 절충예배, 4부 청년을 위한 현대예배로 드리는데 모든 예배에서 같은 현상을 보게 된다. 어느 예배에나 조는 사람이 있고 은혜의 도가니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전통예배보다는 현대예배가 더 역동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전통예배에서도 그 나름대로 차분하고 깊이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러므로 꼭 음악의 종류나 예배 순서, 사도신경을 외우느냐 아니냐가 예배의 감격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예배의 방법과 형식이 아니고 예배자의 자세가 예배의 감격을 맛보는 열쇠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편 42:1-2).
시편 42편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갈급한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사모하며 거룩하신 하나님
의 임재 앞에 나아올 때 그 예배에는 감격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죄인됨과 연약함과 부족함을 다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와 털어 놓고 회개하는 심령을 하나님은 가까이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만나는 감격이 있는 예배를 여는 두 번째 열쇠는 성령의 충만함이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은혜와 감격이 넘치기 위해서는 예배가 성령의 능력과 충만하심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예배에 있어야 성도들이 감명을 받고 결단과 헌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예배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의 부재로 메마르고 불만족스러움으로 성도들이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우게 되는 안타까움을 경험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예배를 인간의 활동 수준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으로 승화시킬 책임이 있다는 것을 교회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채워주시기를 열망하고 계신다. 예배에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 부으심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예배 준비를 위한 간절한 합심기도는 감격있는 예배를 깨우기 위한 필수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감동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형식적인 예배와 성령충만한 예배는 아버지 추도예배와 생신잔치의 차이와도 같다.
돌아가신 분을 기억만 하고 기념하는 것이 추도예배이다. 성령충만한 예배는 살아계신 주님을 축하하고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기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예배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고 예수의 이름이 선포되는 성령충만한 예배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허식이 없으며 진심으로 성령의 만지심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유함이 있는 것이다.
작년 9월에 사망한 폴 뉴먼이 살아 있었을때에 이런 일화가 있었다. 한 여인이 Kansas City Plaza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또 다른 손님이 문을 들어섰다. 그 여인이 아이스크림을 주문을 하고 막 돌아서는데 바로 코앞에 폴 뉴먼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영화촬영을 위해 그 동네에 마침 들렸던 것이다. 그의 푸른 눈을 보는 순간 그 여인의 무릎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슴이 너무 뛰어서 돈을 치르자마자 재빨리 가게를 나와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아이스크림이 손에 없지 않은가? 다시 돌아서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폴 뉴먼이 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아이스크림콘을 찾고 계신가요?” 그녀는 말을 못하고 고개만 끄떡거렸다. “아까 거스름돈하고 같이 가방에 넣으셨는데요.”

살아계신 주님의 임재의 아름다움 앞에서 넋을 잃고 내가 하던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린 경험이 계십니까?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앞으로 나아가서 사모하는 마음을 만족케 하시는 주님을 경험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누리고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고백하며 은밀한 밀월의 경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한 능력 가운데 예배드릴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능력의 역사와 모든 속박에서 풀어주시는 자유케하심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소망과 감격으로 가득 찬 은혜를 예배에서 늘 경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김지나 목사는 Alliance Theological Seminary와 A s h l a n d T h e o l o g i c a l S e m i n a r y 에 서 M . D i v . 를마쳤고, Drew Theological School에서 D.Min. 과정 중에 있다. 오하이오에서 10년간 미국인 교회를 섬겼으며, 현재는 뉴져지연합감리교회 수석 부목사로 장년사역, 제자훈련, 속회, 1.5세 청장년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출처 : 대전소망성결교회
글쓴이 : 종준수은민주민정민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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