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 연구교실

[스크랩] 위대한 기도부흥(the Great Revival)과 현대선교운동, 세계적인 “기도운동”과 전례없는 19세기의 선교

류성련 2010. 7. 26. 15:09

위대한 기도부흥(the Great Revival)과 현대선교운동, 세계적인 “기도운동”과 전례없는 19세기의 선교

 

이미생교수

 

7권의 기독교팽창사를 쓴 예일대학의 교수, 케넷 스캇 라투렛(Kenneth S. Latourette)은 19세기를 가리켜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 했다. 전세기에 없었던 복음전파와 세계선교의 진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세기에 세계선교에 더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던 중보기도-성령부흥-세계선교라는 패러다임의 제2차 영적대각성운동은 현대선교운동을 탄생시켰고, 평신도들로 주도된 “위대한 기도부흥(1857-1858)”으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제1차 영적대각성운동(1730-1770년대)이 잠잠해진 어느 크리스마스(1781년) 새벽 3시에, 영국 콘월에서는 신실한 믿는 자들이 크리스마스축하 기도회로 모인다. 6시간이 넘도록 부르짖는 중보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셨다. 중단없이 기도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다음 해 3월부터는 자정까지 기도모임이 계속된다. 83세 된 요한 웨슬리가 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1784년), “영국전역이 불 가운데 있고 마을에서 마을로 불길이 전파되고 있다”고 감탄했다. 크리스마스 콘월기도부흥은 영국, 프랑스, 북미, 많은 나라들로 번져간다. 스위스 제네바의 소위 “제2의 종교개혁부흥”(1816년), 하와이부흥, 1830년대의 남아프리카와 1840년대의 호주부흥, 중동지역과 중국부흥 등으로 부흥이 번져간다. 이때에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으로 선교사들이 나가면서, 현대선교운동이 탄생된다.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는 인도로, 아도니람 저드슨은 버마로, 사무엘 마즈던은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에게 선교하러 간다.
미국 서부개척의 시작점인, 켄터키-테네시에서는 1801년 그 유명한 “케인리지부흥(Cane Ridge Revival)”으로 6일간 계속된 캠프 미팅에 2만 명이나 모여 부르짖을 때 변화와 구원의 역사를 경험한다. 당시 숲속의 까마귀보다도 그 수가 더 많다 하는 피터 카트라잇(Peter Cartwright)등의 감리교 순회설교자들의 전도는 침례교 전
도자들과 더불어 그 활약이 대단했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다. 1802년 예일대학에서는 에드워즈의 외손자 드와잇(Timothy Dwight) 총장이 설교할 때 전 학생의 3분의 1일이 회심하게 되며, 곧 달마우스, 윌리엄스, 암허스트대학 등으로 부흥이 번져간다.
한편 뉴잉글랜드와 뉴욕에서 수십 년간 거듭된 부흥 가운데 “현대부흥주의의 아버지” 찰스 피니의 부흥은 번개와 천둥 같은 설교로 유명하다. 어떨 때는 전 마을이 다 예수님께 돌아오는 피니부흥에서 백 명 중 85명은 믿음의 후진을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놀라운 부흥의 비결은 중보기도인 것으로 밝혀진다. 내쉬 목사 (Father Nash)와 아벨 클래리(Abel Clary) 같은 숨은 중보자! 클래리는 자신도 설교자였지만, 기도에 대한 중한 짐으로 중보 기도자가 된다. 때때로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강력해서 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던 클래리가 죽은 후 그의 기도노트를 발견했는데 피니사역의 순서대로 중보기도의 짐을 졌던 것을 보고 피니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내쉬 목사도 중보기도자로 살았는데 피니사역의 스케줄을 따라 중보하며, 때때로 숲속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그의 기도소리를 새벽녘에 사람들이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속된 영적대각성운동은 “1857-1858년의 위대한 기도부흥(The Great Revival)”으로 그 정점에 이르게 된다. 제3차 영적대각성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위대한 부흥은 자신의 도시의 영적상태에 부담을 갖고 있던 한 평신도의 기도운동으로 시작된다. 1857년 9월 23일 가을날, 뉴욕 맨하탄의 현 금융가, 훌톤가와 윌리엄가
코너에 위치한 교회에, 수요 정오 기도모임이 준비되어 있었다. 정오가 가까와 오자 백만 명이 넘는 맨하탄의 사람 중에 오직 한 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48세 된 평신도선교사, 예레미야 랜피어(Jeremiah Lanphier)였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에의 응답인 이 첫 기도모임에 6명이 참석했고, 다음 주에는 20명, 3째 주에는 약 40명이 기도에 동참한다. 기도의 열기에 힘을 얻은 뉴욕의 사업가와 직장인들은 곧 매일 모이기 시작했고, 11월 중순이 되자 만 명도 넘게 모여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받으며, 부흥과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정오가 되면 뉴욕의 상점가에는 “문을 닫아서 죄송합니다. 기도모임이 끝나는 데로 다시 엽니다”라는 사인을 붙인 가게들이 늘어간다. 다음 해에는 주요 신문들이 이 기사를 특집으로 다루고, 3월 20일자 뉴욕 타임지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가장 놀라운 부흥의 파도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여행자들도 이 기도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쁘고. 교회가 차고 넘치며, 은행사무실은 설교강단으로, 학교는 예배실로 바뀌어 가고, 수천, 수만 명의 회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기도부흥의 파도는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플로리다로 번져갔고, 판사, 대학생, 사업가와 주부들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일어난다. 남북전쟁(Civil War)도 이 부흥과 선교의 물결을 막을 수 없었는데 십오만 명이 넘는 남군(Confederate Army)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이 부흥으로 인해 백만 명이 넘는 새신자들이 미국교회에 들어온다. 대서양을 건너 대륙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영국에서는 백만 명 가까운 회심자들이 교회에 더해진다.


중보기도-성령부흥-세계선교! 전례 없는 19세기의 세계선교는 그 힘이 부흥에 있었고, 그 시작과 원동력은 중보기도였음을 교회역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배운다.

 

 

이미생 교수(Dr. Meesaeng Lee Choi, Ph.D.)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서울신학대학원
(M.Div)과 미국 애즈베리신학대학원(Th.M)을 거쳐 드류대학원에서 역사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마친 후 미국 켄터키주, 애즈베리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와 역사신학 교수로 있다.

 

 

 

출처 : 대전소망성결교회
글쓴이 : 종준수은민주민정민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