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2·6교실/교회사2 교실

[스크랩] 존 웨슬리의 웨슬리예배당, 웨슬리하우스 등 (런던)

류성련 2014. 9. 27. 10:13

웨슬리 관련 영국 지도

 

웨슬리 예배당 입구

 

런던 웨슬리 예배당은 세계 감리교회의 모 교회이다. 지금도 이 곳에서는 2백여 명이 예배를 드린다. 영국 여성수상 대처가 이 곳에서 결혼식을 하면서 기념으로 제단을 기증하였다. 또 이 예배당의 대리석 기둥 일부는 찰스 왕이 기증한 것인데 감리교 운동이 신앙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개혁운동으로 이어져 영국 사회를 살렸기 때문이다

 

웨슬리 채플내부

 

웨슬리 채플은 1778년 건축가 조지 댄스가 설계했고 건축업자요 속회 인도자 겸 순회 설교자이기도 했던 사무엘 투스가 지은 예배당이다. 건축 당시의 내부는 매우 단순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기념 조형물과 스테인드 글래스가 덧붙여졌다. 영국 곳곳에 세워진 대성당(cathedral, bishop의 교좌가 있고 교구의 중심이 되는 성당)에 비하면 규모가 미미하고 예술적인 섬세함이나 장중미도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나름대로 소박미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웨슬리는 이 채플이 지어졌을 때 "완벽하게 산뜻하기는 하지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했다고 한다

 

웨슬리 채플내부 회중석

 

웨슬리 채플내부의자 및 바닥

 

웨슬리 소천 장면, 웨슬리채플 지하 박물관

 

웨슬리 채플 밑 지하실에는 1984년 개관된 웨슬리 박물관이 있는데 웨슬리가 사용했던 강대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초상화들과 여러 가지 웨슬리 유품들을 전시해놓았다

 

웨슬리 소천 장면, 웨슬리채플 지하 박물관

 

"나의 생의 최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두 번 외치고 세상을 떠날 때 주위에 20명이 둘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침대 주위에 흰 오라가 비추었다고 한다

 

웨슬리 묘지, 채플 뒷편 정원 

 

웨슬리 예배당 뒤편 뜰에는 존 웨슬리의 무덤이 있다.  웨슬리 채플과 웨슬리 하우스 바로 건너편에는 번힐 필즈라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주로 비국교도들이 묻혔던 곳이다.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의 유해가 바로 이곳에 안장되어 있었으며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다니엘 디포와 음유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버니언 등의 무덤 역시 이곳에 함께 있다. 수잔나는 영국성공회신부의 아내로 국교도들의 무덤에 묻혀야 되지만, 감리교운동의 지도자의 어머니란 이유로 이 곳에 묻히게 된 것이다

 

웨슬리 묘지, 채플 뒷편 정원 

 

웨슬리의 무덤에 얽힌 일화가 있다. 1791년 3월 2일 오전 10시 경 향년 88세를 일기로 웨슬리 선생이 서거했을 때 자기의 시신을 절대로 값비싼 비단으로 감싸지 말고 그저 평범한 울이면 족하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만일 자기 주머니에 조금이라도 돈이 나올 경우 자신이 지명한 가난한 순회 설교자 4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라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에는 절대로 영구차나 사륜 마차를 쓰지 말라고 당부했으며 관을 운반할 때 실직해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 6 명을 고용해서 1파운드씩 주라고도 부탁했다. 웨슬리의 제자들은 장례식 때 몰려들 인파를 걱정한 나머지 문상객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에서 3월 9일의 장례식을 횃불을 밝힌 채 새벽 5시에 서둘러 시작해서 동이 트기 전에 끝냈다고 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객들은 웨슬리의 초상이 새겨진 기념 비스킷을 하나씩 받았다고 한다. 더욱이 웨슬리의 유해는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웨슬리 채플 뒤뜰에 다른 감리교 설교자들과 나란히 묻어 전혀 화려하지도 두드러지지도 않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웨슬리의 무덤은 내부가 7층으로 되어 있어서 선생의 여동생 마르타 홀 등 10 여구의 시신이 함께 안장되어 있다고도 했다. 일생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청빈 생활을 했으며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고결하기 짝이 없었던 웨슬리를 생각했을 때 경모의 정은 깊어만 갔다

 

 파운더리 기념 예배당(Foundery Chaple)

 

웨슬리 예배당 옆에는 파운더리 기념 예배당(Foundery Chaple)이 있는데 웨슬리 당시의 의자(benches), 찰스 웨슬리의 오르간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파운더리 기념 예배당 웨슬리 당시 의자

 

파운더리 기념 예배당 촬스 웨슬리 오르간

 

웨슬리하우스

 

웨슬리하우스의 웨슬리 의자

 

웨슬리하우스의 웨슬리 침실

 

웨슬리의 집(Wesley's House)은 존 웨슬리가  1779년에 직접 지어서 마지막 생애 11년 4개월을 지낸 곳으로 찰스 웨슬리, 플레쳐(John Fletcher) 등 많은 설교가들이 생활하였던 곳으로 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존 웨슬리의 방에는 웨슬리가 마지막 숨을 거둔 침대가 있다. 물론 당시 침대는 아니다

 

웨슬리하우스의 웨슬리 기도실 (power room)

 

웨슬리 집에서 가장 역사적인 방은 역시 웨슬리의 작은 기도실이다. 이 곳에서 새벽마다 기도함으로 세계적인 감리교회를 만들었다는 뜻으로 '능력의 방(Power Room)'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촬스웨슬리 초상화, 웨슬리하우스 1층 영접실, 촬스 웨슬리가 가장 만족했던 초상화이다

 

웨슬리하우스의 우울증 치료 전기기구

 

사람들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던  18세기의 전기 기계이다. 웨슬리는 그의 책 "원시의학(Primitive Physic)"에서 변비가 심한 사람은 자두를 먹을 것이며, 미친개에 물렸을 때에는 소금을 물에 타서 바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자신이 미친개에 여섯 번 물리기도 하였다. 또한 하루에 여섯 번 냉수 목욕을 권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했다.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는 은퇴 후 자원봉사를 하는 할아버지였는데 병원이나 약국에 가기보다 웨슬리가 말한 방법대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웨슬리하우스 구제 서랍

 

웨슬리의 방에는 남모르게 돈을 모아두었던 서랍이 있다. 웨슬리는 이것으로 모두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글, 사진  출처 (sola-gratia, 웨슬리 신학, 역사 연구원)

출처 : 성화사랑
글쓴이 : bae sung hw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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