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3·6교실/구약이해 교실

[스크랩] [해외성지] 예루살렘 대성전 / 솔로몬성전(제1편)

류성련 2015. 5. 11. 00:05
 

예루살렘 대성전 / 솔로몬성전


예루살렘 대성전 터 -
 
예루살렘 대성전 터 (Temple of Jerusalem)-
 

솔로몬 성전 - 제1성전(Solomon's Temple - First Temple)

 

 

솔로몬 성전이 있는 모리야산의 단면도. 성전을 만들기 위해 동쪽과 서쪽 언덕을 메웠다.

 

솔로몬 성전

 

솔로몬 성전 단면도

 

 

솔로몬 성전 성소


 

1.물두멍(받침대)  2.청동 바다 모형  3.보아즈  기둥  4.야킨 기둥 


하느님의 집을 봉헌하면서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는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이 장엄하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에 머무르실 하느님이 아니시다.

현인 솔로몬은 주님의 집인 성전을 짓고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우상숭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겠다고 하신 이곳’(1열왕 8,27-29; 2역대 6,18-20)을

기도에서 언급하면서 논쟁을 피해 갔다.

온 우주의 하느님은 솔로몬의 성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시라

 당신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이루시려 현존하시는 곳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당신을 경외하는 모든 이방인들의 하느님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의 하느님은 우주의 유일하신 하느님이시기에

 이방인들까지 아우르는 보편적이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주 저의 하느님!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고 말씀 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에서 들어 주시어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께 죄를 지어 이 땅에 기근이 들 때, 흑사병과 온갖 환난과

질병이 번질 때 이 집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무엇이나 기도하고 간청하면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어 용서해 주시고 행동하십시오.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그 모든 행실에 따라 갚아 주십시오.

 비록 이방인이라도 그가 당신 이름 때문에 먼 고장에서 찾아와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면 당신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이방인이 당신께 호소하는 모든 것을 들어 주십시오.

 죄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지은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하면 당신이 계시는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청을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돌보아 주십시오’

(1열왕 8,22-61; 2역대 6,12-42 참조).

 

솔로몬의 치세는 약 40년간 계속 되었으나

 솔로몬이 유지하려 했던 국가적 통합은 기원전 931년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

 다윗과 솔로몬의 지도 아래 약 80년간 통일 왕국은

 정치와 신앙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 약 350년은 정치적 분열의 역사요

 군사적 패배의 역사이며 종교적 분쟁의 역사였다.

솔로몬은 하느님 대신 군사력에 의존하면서

 외국의 많은 여자들을 후궁(왕족출신 아내 700명과 후궁 300명)으로 맞아들이면서

 그들의 이방신들을 허용하고(1열왕 11,1-8 참조)

모세의 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였다(신명 17,3.17; 18,9-14 참조).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할되었고(1열왕 12장),

 북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기원전 721년에 멸망한다(2열왕 17,6).

남 유다는 히즈키야 왕의 개혁(2열왕 18,1-8;2역대 32,1-8 참조)과

요시아 왕의 개혁(2열왕 22,1-2; 23장)과 노력이 있었지만

 므나쎄 왕 시대(기원전 697-642년 재위)에

 유다 땅은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고,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기원전 605-562년 재위)이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유다인들은 바빌론 땅으로 가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2열왕 25장; 2역대 36,17-20).

바빌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은 모두 파괴되었고,

 유다인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성전의 기물들은

 전리품으로 빼앗겼다(2열왕 25,1-21; 예레 52,13.17-23).

이렇게 처녀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짓밟히고 말았다(애가 1,1-4,22 참조). 

                                    @  제2차 성전 시대(기원 전 515-기원 후 70년), 

                                             바빌로니아 유배에서 귀한 후의 성전


페르시아 아카이메니아 왕조의 창시자이자 

바빌로니아를 무너트린 키루스(고레스) 2세는 기원전 538년 칙령을 내려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다

(2역대 36,22-23; 에즈 1,1-5).

 바빌론으로의 유배를 모면하고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한 토착민들과의 갈등 속에서

 즈루빠벨에 의해서 어렵게 성전을 재건 ?

봉헌한 것은 기원전 515년(에즈 5,1-6,18)이었지만

 70여년 만에 재건한 예루살렘은 예전의 화려했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1성전에 비하면 규모도 적었고 볼품도 없었으며

성벽은 여전히 허물어져 있었고 성문들은 불탄 채였으며

귀향민과 토착민간의 갈등은 여전했다(느헤 1,1-4).

그리고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계약의 궤는 안치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신탁을 받고

 천막과 계약 궤를 들고 모세가 죽어 묻힌 느보 산 어느 동굴에 숨기고

 입구를 막아 버렸는데 그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2마카 2,4-8).

이 제2성전 시대에 예식은 의식화 되고 희생제사가 중시되게 되면서

 예루살렘은 잠시 평온을 되찾게 된다(느헤 3장).

기원전 332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으로 팔레스티나 전역은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기원전 332-167년).

팔레스티나에는 그리스식 도시들, 극장과 목욕탕,

경기장들이 건설되었고 시민들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정신문화까지 급속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의 현현’이라고 불리는

 시리아 왕 에피파네스 안티오쿠스 4세(기원전 175-164년 재위)는

 기원전 167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이교제사를 거행하고

 유다인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 제우스 신전을 짓고 숭배하도록 강요하였고,

더 나아가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돼지고기를 먹도록 했으며

 안식일을 위반하도록 하고 할례를 금지시켰다(마카 상 1,44-50).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기원전 167년에 급기야

 마카오베오 형제들이 이끄는 독립군은 3년 만에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 제의를 회복하였으며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웠지만

 이들은 왕가의 후손도, 제사장인 사독 가문의 출신도 아니었기에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급기야 여러 종파간의 갈등 속에 예루살렘은

기원전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 Pompeius Magnus,

기원전 106-48)에게 정복되고 로마의 지배하에 머물게 된다.

출처 : `깨비가족"의 휴식공간
글쓴이 : Berardu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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