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3·6교실/신약신학 교실

[스크랩] 바울서신요약연구

류성련 2016. 1. 12. 04:28

바울서신요약연구

신약성경 27권중에 바울은 13서신을 기록했으며 저자미상인 히부리서의 문체가 바울의 문체와 비슷하다하여 히부리서를 포함하면 14서신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신약성경의 2분의1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의 기록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오하시고 우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는 복음과 우리 자신의 변화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1. 바울서신서의 특징

 

1) 교회의 당면한 문제를 위한 내용임

 

로마서를 제외하고 바울의 서신서들은 당시 사도이자 각 교회의 개척자요, 순회 목회자였던 바울이 각 교회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쓴 것들이다. 교회의 타락, 교회에 닥친 이단의 물결, 교회의 내분, 교회의 시행 착오와 오해등 교회가 시급히 고치고 해결하고 해소해야 하는 문제와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래서 바울서신서에는 어느 특정한 교회의 명칭들이 붙은 것이다. 고린도 교회, 갈라디아, 에베소 등이 그와 같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교회의 당면한 문제들이 오늘의 교회들과 그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의 문제라는 점이다. 신학적인 오판, 이단의 침투, 내적인 내분과 갈등, 성도의 삶 속에 늘 닥치는 시험과 애로 사항은 시대와 환경이 변해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당시 교회에 보내어 교훈하고, 권면하고, 교정하고, 설득하고, 위로한 바울의 편지는 오늘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영원한 신앙과 삶의 지침서 역할을 한다.

 

2) 유언 예방적임

 

다른 선지자나 사도의 글 속에서도 비장한 유언적인 색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편지들 속에서는 그 색채가 더 강하다. 자신의 목숨, 삶을 걸고 말하는 예가 많다. 또 그 편지가 자신의 마지막 것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간혹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당시 초대교회의 사도로서 늘 위기를 당하고 있던 사도 바울의 환경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소신과 이론이 사람의 생각이 아닌 성령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뜻임을 확신한 연유에서 기인됐을 것이다. 절대적인 뜻을 뭇사람들에게 전하는 자세는 그처럼 유언적이어야 당연하다. 그 다음 예방적인 색채가 강하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나, 사실들은 곧잘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조한다. 일종의 예언자적인 논조다. 교회의 변질과 이단의 창궐, 적그리스도의 출현, 말세 성도들의 세속화 풍조 등을 예상하고 그것을 방지할 것을 외친다.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은 사도 바울의 예상의 중심이다. 이는 회심한 후 성령과의 특별한 교제를 통해 계시를 받은 경험 안에서 하늘의 큰 비밀을 알고 있는 예언자적인 경향에서 기인됐을 것이다(고후12:1-4 ; 갈1:1,11, 12).

 

3) 이방세계 중심의 선교

 

로마서를 제외하고 사도 바울의 편지들은 거의가 이방 세계 교회를 향한 것이다. 로마서도 사실은 유대 율법 종교의 불완전성을 밝히고 믿음으로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속 은혜에 참여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바울서신서에서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 공격적인 자세가 간혹 엿보인다. 그의 초기 편지인 살전2:15에서는 아예 온 유대인들이 주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도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대적자들로 묘사한다. 이는 기독교의 유일성을 맨처음 세계에 알린 교회의 선구자로서 당연히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 본질이 다름을 강조하려는 의지의 발로다. 여하튼 바울서신서가 없었다면 우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대로 알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4) 그리스도 중심임

 

바울서신서의 내용의 가장 뚜렷한 특성은 모든 이론들이 예수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복음 진리 중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그 구원의 뜻과 은혜와 섭리도 그리스도 안이다. 성도의 삶과 인격과 영광과 고난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내가 사는 것도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바울은 곧잘 고백한다(빌1:21). 성육하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는 성경의 모든 예언의 초점이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섭리의 근거와 목적과 수단임을 사도바울은 강조한다. 그와 같은 바울의 신학 사상은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 사상과 이론과 구분시키는 열쇠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세계와 나를 재발견치 못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2. 바울서신의 구성과 내용

 

1) 데살로니가전·후서

기록 시기는 주후 51년경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 바울의 가장 초기의 서신서로 불린다. 교인들의 신앙을 고무시키고 그릇된 종말 재림 풍조를 바로잡기 위한 내용이다.

 

2)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이 세 서신을 일명 교리 서신아라고도 부른다. 로마서는 3차 전도 여행의 말미에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울서신서의 백미다.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기독교의 대헌장이 여기서 발출됐다. 로마서를 읽지 않으면 성경과 기독교의 본질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갈라디아서는 제2의 로마서다. 유대 율법 종교에 대한 확실한 결별이요,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종교요,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임을 선포한다. 주후 55년경 에베소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린도전·후서는 구원에 대한 교리보다는 교회의 규례에 대한 가르침의 책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한 교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고린도전·후서는 바울 자신에 대한 교회의 불신임과 오해에 대한 변호로 가득 찼다. 그와 맞물려 성도의 신앙윤리 문제들을 교훈하고 지도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오늘 우리가 목회자를 비롯하여 이웃 성도들과 참된 교제를 하려면 고린도전·후서를 늘 읽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송가는 바로 성도 윤리와 덕의 기초가 된다.

 

3) 옥중서신

에베소서, 빌리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으로 부른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호송되어 황실 재판소 감옥에 구금되어 있을 주후 60-63년경에 기록된 것들이다. 그런데 그 내용들은 놀라웁게도 하늘의 권능과 영광과 은총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옥중서신서는 이외에도 그리스도 신성, 하나님의 예정 섭리와 중요한 교리가 풍성하며 그 교리와 더불어 성도들의 진실되고 거룩한 빛된 생활에 대한 교훈이 풍성하다. 특히 빌레몬서는 오네시모라는 종을 용서하라는 내용으로 용서의 편지라고 부른다.

 

4) 목회서신

마지막으로 바울서신의 가장 말기 기록물인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가 있다. 이 서신들은 로마 감옥에서 풀려나 재투옥, 순교당하는 기간중에 쓴 것으로 추정한다. 수재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올바른 목회 지침과 방향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힘을 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특히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 직전에 쓴 것으로 바우의 유언장이라고 할 만큼 비장한 어조로 쓰여졌으며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듯한 내용이 기록되었다(딤후4:6-8).

 

천문학적인 사람들이 바울서신의 내용과 그 영향력에 전도받고 감화되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교회를 위기에 몰아넣고 변질시키려는 시기마다 바울서신은 사람들의 신앙을 다시 정화시켜 예수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복음 진리에로 회귀시켜 왔다.

어거스틴의 회심도 바울서신의 로마서 때문이며, 요한 웨슬리의 열심도 바울서신서에서 기인됐다. 루터의 대개혁 의지도 바울서신의 연구 결과이며, 칼빈의 절대 하나님 주권론도 바울이 신서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근데 신정통주의 신앙의 아버지 칼 바르트도 바울서신서의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바울서신서의 내적, 외적인 중요성과 가치는 무한하며 거룩하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인격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진리와 그 은혜로 충만해 있었으며,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인류의 대사도로 세우신 까닭이리라.

 

 

제 1 강 로마서

1. 저자와 저작 연대

 

1) 로마서의 저자

로마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견해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으며,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로마서 서두(롬1:1)에서도 바울이 저자라는 것을 본인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인 송영 부분이 바울이 사용한 문체와 어휘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면서 바울의 저작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를 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위 있는 사본들이 이 송영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이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이들의 주장은 합당하다고 할 수가 없다.

 

2) 저작 연대

로마서가 기록된 연대는 다소 정확히 알 수 가 있다. 바울은 자신이 기록하였던 서신은 자신이 머물던 곳에서 기록하였기에 로마서의 기록 연대를 알기 위해서는 정확한 기록 장소를 먼저 알아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곳은 그리스이다. 정확히 말해 고린도에서 기록하였다(행20:1-6). 이것은 바울이 머물렀던 집 주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롬16:23), 왜냐하면 집 주인인 가이오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전1:14). 그리고 로마에 본 서신을 전달한 사람이 여성도인 뵈뵈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시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의 정확한 연대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기 직전인 주후 57년의 후반기나 58년의 초반기 쯤으로 볼 수 있다.

 

 

2. 수신자와 기록 목적

 

1) 로마서의 수신자

로마서의 서두에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보면 pro" Romaiou"(프로스로마이우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의 뜻은 '로마인에게'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사본들-바티칸(B)사본, 에브라임(C)사본-에서도 로마인과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로마에 교회를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본 서신이 로마교인들이나 로마인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반 교회들에게 회람되도록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로마서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교회들에게 하는 연설이라고 한다. 즉 예루살렘 교회가 로마서의 드러나지 않은 수신인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로마서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편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왜 바울이 로마에 이 편지를 보냈느냐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설명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로마서의 기록 목적

로마서의 기록 목적은 본 서신의 서두(롬1:10-15)와 후반부(롬15:14-33)에 잘 나타나고 있다. 즉 로마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며 그들과 함께 쉬기 위함인 것을 나타내 준다. 한편 본 서신은 로마에 있는 강한 자와 약한 자, 유대인 기독교인과 이방인 기독교인과의 화목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율법 주의자들과 대항하여 그들의 생각을 교정하기 위해 로마서를 썼다고 한다. 또 반율법주의자들에 대항해서 이방 기독교인들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 본 서신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의 마음에는 두 가지 근심이 있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과 또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의 구제 헌금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바울은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줄 것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결국 바울은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하여 구속사적 목적을 보여 준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도구가 된 것이다.

 

 

 

3. 주제와 특징

1) 로마서의 주제

로마서의 주제를 단일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로마서에서는 교리적인 진리를 보여 주고 있으며, 성도들의 실천적인 면을 제시하고 있다. 로마서의 주제를 단일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 중심되는 화제는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주제는 '하나님의 의'라고 할 수 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과정에 대한 진리와 그것이 이루어 나가는 전개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구원얻은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윤리적 교훈들을 제시하고 있다. 본 서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이신칭의 교리는 인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롬1-3장), 열매를 맺는 것이며(롬 5-8장), 이것은 과거에서부터 있어져 왔던 역사적인 사실이며,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똑같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엡2:8) 것이다. 이러한 선물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의 생활을 할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본 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이신칭의라고 할 수 있으며, 구원얻은 성도들이 해야 할 마땅한 삶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로마서의 특징

바울은 특별한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말하면서 인간의 죄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인 문제를 사용하였다. 바울이 다른 사신에서보다 본 서신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사도성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에 부여되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그것을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복음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 서신이 조직 신학의 총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기독교 교리의 핵심 교리를 말하고 있다. 본 서신은 서신서이면서도 신학적인 성격을 띤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위대한 로마서는 종교개혁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이 본 서신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제 2 강 고린도전서

1. 저자

고린도전서의 저자가 바울이란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째, 서신 자체가  바울이 이 서신의 저자라는 사실을 증거한다(고전1:1 ; 고전3:4-6 ; 고전16:21). 둘째, 서신의 문체와 사상이 바울 서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 초대교회의 여러 교부들이 이 서신의 저자가 바울 사도임을 증거했다. 주후 95년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가 고린도 교회에 글을 보내어 그들의 계속되는 분과 문제에 대하여 언급할 때 이 서신을 인용한 것으로 입증된다. 또한 이그나티우스(Ignatius), 폴리갑(Polycap) 등 많은 교부들이 이 사실에 동의하였다.

 

 

2. 저작 장소와 시기

 

본 서신을 쓰기 전에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냈다(고전4:17 ; 고전16:10 ; 행19:22). 디모데가 마게도나를 거쳐 고린도로 가고 있는 동안에 고린도로부터 사람들이 와서 여러 가지 소식과 문의 편지를 받고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고린도전서를 써준 것으로 생각된다. 고전16:8로 보아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썼다고 여겨진다.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 머무른 것은 두 번 알려져 있는데, 한 번은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후 잠깐 방문했던 적이 있으며(행18:18-21), 또 한번은 3년간 장기적으로 머문 적이 있다(행20:31), 고전16:19에 아시아의 여러 교회의 문안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 바울은 이미 그곳에 상당 기간 머무르고 있었다고 여겨지며,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여름철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바울이 두 번째 에베소에 체류하던 시기에 본 서신을 기록했다고 보면, 그가 에베소를 떠나기 전인 주전 54년 속은 55년으로 그 저작 시기를 생각할 수 있다.

 

 

3. 고린도

 

고대의 화려하고 부유했던 고린도 시는 주전 146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오랜 후에 시저(Caesar)에 의하여 그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어 주전 29년 이래로 아가야 속주의 수도가 되었다. 새로이 건설된 고린도는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동서 교역로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고린도는 동서 사방으로부터 문물이 모이는 무역 항구로 부유한 도시가 된 동시에 수많은 민족들과 종교, 사상들이 혼합을 이루는 장소였다. 그 도시의 도덕적 분위기는 매우 타락되어 있었으며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에는 수많은 종교적 창녀들이 있어 간음과 같은 성적인 타락 행위를 공공연히 유포시켰다. 이 도시에 있던 12개 이상의 신전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사랑의 여신 아데미에 바쳐진 신전이었다. 아데미 여신의 숭배자들은 이 신전에서 봉사하던 여사제들과 어울려 종교 의식의 한 절차로 음행을 저질렀는데, 한때 이 신전에는 1천명의 여사제들이 있었다. 이처럼 고린도는 거대한 상업 도시로서 음란과 방탕이 만연해 있었으며, 아데미 여신 숭배를 종교라는 미명하에 음란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4. 고린도 교회

 

제2차 전도 여행 중 바울은 주후 49년경에 마게도냐로부터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무르면서 손수 장막을 지음으로 그의 일행의 경비를 충당하였다. 그 때 로마로부터 황제의 추방령에 의하여 고린도에 온 유대인 그리스도인 부부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그를 도왔다(행18:1-3). 바울의 헌신적인 전도 활동의 결과 고린도에는 상당히 큰 그리스도인 회중이 형성되었다. 그 교회는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얼마간 포함되어 있었으며(행18:4 ; 고전7:18), 사회적으로는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상류 계급과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전11:21). 고린도 교회의 주요 인물들로는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행18:8), 디도 유스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글로에, 스데바나, 가이오, 에라스도 등을 들 수 있다.

 

 

5. 저작 동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 그 교회는 계속 성장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정되고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고전1:11)을 통하여 들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은 바울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 분파가 생겨서로 다툰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바울을 분노케 한 것은 이방인들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여전히 용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자가 자기의 계모와 동거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교회가 그것을 묵인하며, 어떤 자들은 교인으로서 여전히 창녀들과 간음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교회에서 성찬을 하기 전에 온 교우가 함께하는 예찬에서 부유한 자들은 실컷 먹고 마시는데,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빈약한 음식으로 인하여 모멸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성찬 전에 실컷 먹고 마신자들은 이미 취하여서 성찬에 경건하게 참석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편 영적인 감성주의에 빠진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절제치 못하여 예배의 질서가 파괴되곤 하였다.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령의 역사를 오해하는 경향도 있었다. 또하나 바울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한 것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전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며 장래의 부활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거나 영적인 부활만을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소식들 외에 고린도 교인들이 써 보낸 편지(고전7:1)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 되었다. ①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하는 것이 좋은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이방인과 결혼한 자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하는 것, ② 그리스도인이 된 종과 주인의 관계는 어떠해야 되는지, 또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종노릇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하는 것(고전7:21-24), ③ 시장에서 파는 우상의 제물을 사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 ④ 예배 참석시의 복장 문제로 특별히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 가장 큰 위험을 미친 것은 영지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육을 벗은 영적 인간에게는 완전한 구원과 무조건적 도덕적 자유가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향이 고린도 교회에 부도덕한 생활과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오해와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만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이단적 영향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고전1:20-25)

 

제 3 강 고린도후서

1. 기록 동기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파견한 후(고전4:17 ; 고전16:10) 그가 그 곳에 도착하기 전에 들려온 소식과 편지에, 고린도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다. 그러나 바울의 편지는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고 교회 내부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 교회를 잠깐 동안 방문하였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두 번째 방문으로 고린도전서를 쓴 후 고린도후서를 쓰기 이전 중간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고후13:2에 이 두 번째 방문을 말하고 있는데 그 때에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극심한 긴장 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고후12:14고후13:1에서는 세 번째 방문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두 번째 방문에서 돌아온 후에 고린도 교회에서는 바울의 대적자들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곧 다시 오겠다던 바울이 여행 계획을 변경시키자 그를 허튼 사람으로 공박하고(고후1:15-24), 바울은 아무런 추천장도 없는 자로(고후3:1 ; 고후4:2), 그의 말은 분명치 않고 떨어져 있을 때나 큰 소리치지 막상 대면하여서는 보잘것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하였다(고후10:1,10).

또한 그는 다른 위대한 사도들에 비하여 사도의 자격이 없는 자로 그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한다고 평론하였다(고후11:7 ; 12:13). 이에 대하여 바울은 소위 '눈물의 편지' 혹은 '중간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심히 마음에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가는 것을 그만두고 디도에게 그 엄중한 편지를 주어서 고린도 교회에 가지고 가게 하였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여정을 자세히 의논하여 디도가 돌아오는 길에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정한 시기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디도를 기다렸으나 그가 오지 않으므로 바울은 매우 초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 보고를 들은 바울은 모든 걱정하는 마음이 풀리게 되었다. 고린도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바울의 정책에 굴복하여 회개할 뿐 아니라 바울과 화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기쁨과 감사 가운데 다시금 위로와 권면의 글로 고린두후서를 써서 디도로 하여금 고린도 교회에 가지고 가게 하였다.

이 때에 바울은 디도와 함께 다른 두 형제를 파송하였는데 그들을 보낸 목적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준비케 하기 위함이었다.

 

 

2. 저작 연대

 

고린도전서를 주후 54년이나 55년 여름 전에 썼다고 할 때 고린도후서는 그 다음 해인 55년이나 56년 가을쯤에 기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디모데가 고린도전서 편지를 전하고 돌아온 후 얼마 있다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했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고린도로부터 전해지는 괴로운 소식을 듣고 '눈물의 편지'를 써서 디도로 하여금 고린도 교회에 전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드로아로 갔다. 다시 마게도냐로 건너가 거기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고린도후서를 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였을 것이다.

고후8:10고후9:2에 고린도 교회에서 자진해서 1년 전부터 모금을 시작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전16:1에 쓰여진 바울의 지시를 따라 모금을 시작한 지 적어도 1년이 지난 후에 고린도후서가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달력으로는 새해가 가을에 시작되었음을 감안할 때 고린도전서가 쓰여진 1년 후의 새해인 55년이나 56년 가을에 마게도냐에서 고린도후서가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3. 서신의 통일성

고린도후서의 본문을 연구하는 동안에 학자들은 본 서의 통일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이유는 10-13장과 1-9장 사이의 내용상의 불일치를 발견케 된다는 것이다. 즉 1-7장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와의 화해를 감사하며 기쁨으로 쓰는 가운데 불의를 행한 자에게 너무 과한 벌을 주지 않도록 권면한다.

반면 고후10:1에서 전혀 새로운 어조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대적자를 향하여 공격을 퍼붓는다. 그리고 그가 고린도에 갈 때 그들이 그가 원치 않는 상태에 있을까 걱정하며(고후12:20), 죄지은 자들에 대하여는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경고하고 그 때에 가서 주께서 주신 권세로 그들을 엄하게 대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한다(고후13:10).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하여 10-13장은 1-9장 이전에 쓰여졌거나 혹은 전서와 후서 중간에 기록된 독립적 서신이거나 다른 서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고린도후서 10-13장이 바로 이 '눈물의 편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8-9장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에 관한 부분을 또 다른 별개의 편지로 보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가 하나의 통일된 서신이라고 보는 견해가 여전히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1-9장과 10-13장의 뚜렷한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 두 부분이 상당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쓰여졌다는 견해가 제시된다. 즉 1-9장을 쓴 후 얼마를 지나는 동안 고린도로부터 다른 보고를 받고 거기에 대한 경고를 10-13장에 덧붙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아무튼 1-9장은 교회 전체를 대상으로 쓴 것이고, 10-13장은 고린도 교회의 대적자들과 범죄한 자들에 대하여 쓴 것으로 그 어조에 있어 차이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두 번째 서신으로 바울은 먼저 고린도에 가지 않은 자신의 여정 변경에 대하여 변명하고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리고 사도의 직분의 역할은 화해의 직책임을 말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넓은 아량을 가지고 화해할 것을 말한다. 이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고린도 교회가 연보에 참여 할 것을 가르친다.

교회 내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게 하는 적대자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을 자랑하고 아울러 사도로서 수난받은 사실과 신비한 체험을 부득불 자랑한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을 경우 단호한 처벌이 있을 것을 말한 후 기뻐할 것을 권고하고 축도로 마친다.

제 4 강 갈라디아서

1. 배경 상황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를 개최하도록 한 일련의 초대교회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초반부(1-7장)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만 전파되고 있다. 그후 예루살렘 안에서의 박해로 인해 많은 복음 전도자들은 선교 영역을 이방 지역으로 넓혀가게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교도의 상태에서 직접 개종했거나 혹은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후 시리아의 안디옥은 많은 회랍인들을 영입하게 되었다. 갑자기 불어난 이방인들의 신앙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는 급기야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주로 희랍인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였다. 안디옥의 이방인 대량 유입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머지않아 이방인들이 초대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의 수를 압도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의 일년 동안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의 후원으로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제1차 선교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이방인 개종자의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다(행13,14장). 그러자 예루살렘에 있던 일단의 유대인 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15:1)고 강론하게 되었다. 이것이 급속히 퍼져 나가자 바울은 회람 서신을 통해 경계의 신호를 보내게 되었다.

 

 

2. 내용

 

율법을 준수하는데 대한 논쟁으로부터 나온 두 번째 기록은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야고보서가 윤리적 자유로 인한 방탕과 방존의 모습을 경고하는 유대인 신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라면 이에 반해서 갈라디아서는 윤리적 절제의 자세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이거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는 영적 해방의 대헌장이라 불려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에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는 당시의 역사적 평론의 책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부패에 대한 항의였다. 율법으로 보다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 핵심적 진리가 유대인들의 율법 강조에 의해 혼미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가르침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자유로운 삶에 멍에를 씌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단호히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의 어조는 도전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불쾌감에서 오는 분노가 아닌 영적 원리로 인한 것이었다.

 

 

3. 야고보서와의 관계

 

야고보서와 갈라디아서는 비록 실제로는 상호 보완적이지만 처음부터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독교 교리의 두 가지 양상을 예시하고 있다. 야고보서에는 그리스도의 윤리에 대한 원고한 주장과 믿음은 그 열매로 증명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서는 바울 못지않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즉 그는 "그가 그 창조물 중에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좋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갈라디아서는 윤리적 행동을 창출해 내는 복음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울이 야고보 보다 윤리적인 면을 경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전의 양변과도 같이 기독교의 이 두 가지 양상은 병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4. 갈라디아서 교회에 대한 이론

 

바울은 이 서신을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게"(갈1:2) 보내고 있다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곳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터키 중앙북편을 지칭하며 또 다른 곳은 터키 남부를 지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해석이 옳은가를 놓고 논쟁하기보다는 바울이 제1차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들에게 이 서신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지한다. 즉 갈라디아 교회는 터키 네 도시들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 도시들의 이름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그리고 더베이다(행13,14장). 이 입장을 확증해 주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갈4:14에서 바울은 독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영접했다고 말한다. '천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a[ggelo"(앙겔로스)는 '사자'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 번역은 바울의 제1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생긴 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희랍 신화 속에 한 전설이 있었다. 그 내용은 쓰스(제우스)와 그의 사자 헤메(헤르메스)가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 쓰스와 헤메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 중 어느 가난한 부부만 그들을 환대하였고, 쓰스와 헤메는 나중에 그 행위에 대하여 크게 보답하였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루스드라 사람들은 쓰스와 헤메가 각각 바나바와 바울이 몸을 입고 재림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도 그런 것이 그들은 루스드라인들이 보는 앞에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에 가서 바울은 "내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고 고백한다. 그는 루스드라의 독자들에게 제1차 선교 여행중 그 도시를 떠나기 전에 그에게 생겼던 일을 회상시키고 있는 것 같다.

 

 

5. 갈라디아서의 특이성

 

갈라디아서의 서두 몇 구절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서신이 독특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울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사도 바울은…에 있는 교회에게…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내가 감사하노라", 그러나 갈라디아서에는 몇 가지 차이점들을 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도된 바울은'이라는 시작말 앞에 권위에 관한 설명이 돌연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적 소명이 어떤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직접 온 것임을 분명히 밝히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바울은 갈1:4에서 복음을 간략히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복음의 진리와 순수성 역시 도전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바울에게는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이 서신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말을 생략하고 있다. 그는 "내가 감사하노니"라는 말 대신에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1:6)를 사용하고 있다.

 

제 5 강 에베소서

1. 회람 서신

 

1) 라오디게아를 거쳐서 온 편지

바울은 골4:16에서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제기되었다. 예컨대 빌레몬서를 가리킨다는 주장 혹은 손실되어 버린 바울의 한 편지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아마도 에베소서라는 주장이 좀더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이 이론을 확증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즉 바울의 말은 두 서신-골로새서와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들이 자매 서신이며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서신들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에베소서의 내용은 골로새서의 내용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이 에베소서는 루고 계곡에 잇는 여러 교회들에 보내진 회답용 서신인 듯하다. 그리고 두기고는 골로새로 가는 도중에 루고 계곡의 여러 교회들을 방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로마나 에베소로부터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은 라오디게아에서 읽혀진 우헤 도착할 한 회람 서신을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라고 했을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후에 바울서신이 수집될 때 이 서신의 사본 하나가 에베소서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사본서에는 현재의 제목이 붙여 있었고, 첫 절에는 '에베소 안에서'라는 말이 삽입되어 있었다고 한다.

 

2) 에베소서

만일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가 실제로 에베소서라면 바울은 처음부터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를 위하여 동일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다가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반 내지 3년 반 동안을 지냈으나 루고 계곡에는 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에베소서를 보면 바울이 수신자들을 잘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엡1:15 ; 엡3:2). 더욱이 이 서신을 어떤 특별한 교회와 연결시켜 줄만한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문제나 소식도 전혀 없다. 오히려 이 서신의 내용은 모든 교회에 해당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특정 교회에서 보낸 바울의 다른 서신들일 경우 직접적인 저술 동기가 본문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에베소서만큼은 이 법칙에서 예외이다. 더욱이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에베소에 있는'이란 용어가 붙여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울이 여러 교회들을 위해 회람용 서신을 쓴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제1차 선교 여행 때 세운 여러 교회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갈1:2 ; 벧전1:1 ; 계1:4,11).

 

 

2. 에베소서의 저술 목적

 

에베소서는 회람용 서신인 까닭에 어떤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에베소서의 저술 목적은 골로새서의 목적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서신은 내용도 흡사할 뿐 아니라 두 기고라는 한 사람에 의하여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골로새서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다른 교회들 역시도 그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루고 계곡의 교회에게 동일하게 보낼 편지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의 서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신앙은 루고 계곡에 성행하는 거짓 가르침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에베소서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들을 알고 있는 한 골로새 교인을 혼란시키고 있던 그 철학적인 사변에 의하여 쉽사리 혼동되지 않았을 것이다. 에베소서의 저술 목적이 이렇다고 보면 골로새서와의 유사한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에바브라가 전해 준 그 오류들을 단호하게 공박하고 있다. 에베소서에서 그는 이러한 오류들의 확산에 대하여 그들을 지켜 주기를 바라는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골로새서는 그 거짓된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에베소서는 좀더 완전한 신앙 확립과 성숙에 이르도록 권면한다.

 

 

3. 에베소서의 내용

 

에베소서의 핵심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에베소서의 주제가 2장 10절에 요약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약 이 구절을 주제로 삼을 경우 에베소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1-3장은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묘사한다. 4-6장은 교회가 선한 일을 연합으로 이뤄 갈 것을 강조한다. 즉 교리적인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으로 나눠진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창세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구원을 창세 전에 작정하셨다. 그 계획은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성령의 역사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보좌에 앉히셨을 때 그분의 구원은 이루어졌으며 그 계획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엡1:3-23). 이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값없는 선물이다. 우리의 죄성으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화해의 문을 여셨다.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생명과 영적 능력을 소유한 새 창조의 일부분이 되게 만드셨다(엡2:1-10). 그분의 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깨뜨려 버렸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하여 성별과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한 가족이 되었다(엡2:11-22). 이런 진리에 대해 바울은 우선적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하는 하나의 선교사로 봉사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업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 사업은 모든 민족을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안에서 결합시키는 일이다(엡3:1-21). 두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의 생활과 일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엡4-6장).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모시고 있는 자들이다(엡4:1-6).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이기적인 생활 방식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엡4:17-5:20). 그 새로운 삶은 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주종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부부의 그 친밀한 결합은 교회의 그리스도의 연합과 유사하다(엡5:21-6:9).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안에서 새로운 삶을 계속 유지하려면 영적인 무기들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강력한 세력들을 물리쳐야만 하기 때문이다(엡6:10-20).

제 6 강 빌립보서

1. 빌립보 교회

 

행16:12-40에 의하면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 마게도냐 지방에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다. 빌립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왕이 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이다. 주전 42년 이후에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 도시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많지 않아 유대인의 회당도 없었고 따라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유대인의 방해도 없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빌립보 교회는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여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처음으로 빌립보에서 전도하여 믿게 된 사람은 두아디라 성 출신 자주 장사인 루디아라는 여성과 그의 가족이었다. 빌립보 교회에는 바울이 "나와 함께 힘 쓰던 저 부녀들"(빌4:3)이라고 부른 바울의 여성 동역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의 첫 번째 바울의 체재 기간은 그리 길지 못하였으며, 그가 전도한 사람은 루디아의 가족 외에 그가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밖에 빌립보서에는 에바브로디도, 유오디아, 순두게, 클레멘트와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나타난다. 빌립보 교회와 바울은 계속하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빌립보 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물질적으로 바울의 선교 활동을 도왔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가이사랴에 억류되었다가 로마로 호송되기 전에 빌립보 교회를 두 번 내지 세 번 더 방문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바울이 세운 교회 중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으며, 그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람을 보내어 위문하는 뜨거운 애정을 나타내기까지 하였다.

 

 

2. 저작 연대와 장소

일반적으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본 서는 옥중서신이라고 불린다. 빌립보서가 감옥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어떤 감옥인지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바울은 빌립보(행16:23), 예루살렘(행21:33), 가이사랴(행23:25), 로마(행28:16)의 감옥에 투옥된 적이 있다. 그런데 빌립보와 예루살렘 감옥에서는 불과 하루내지 이틀동안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편 고후6:5, 11:23,24에 근거하여 바울이 에베소에도 감금되었으며 여기서 한두 편의 서신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적으로 빌립보서의 저작 장소에 관하여 로마 기록설, 가이사랴 기록설, 에베소 기록설로 견해가 나누어진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의 전통적 입장은 로마 기록설을 따르고 있다. 한편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했다고 간주한다면 그 시기는 대략 주후 61년경이 된다.

 

 

3. 저작 경위와 목적

 

바울과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던 빌립보 교회는 옥중에서 고통당하는 바울을 위로하고 돕기 위하여 금품을 모아 에바브로디도를 대표로 보냈다(빌2:25 ; 빌4:14,18). 그러나 오히려 바울을 시중들려고 온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다.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위로와 안심을 주기 위하여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돌려 보내게 되었다. 바울은 그를 보내면서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 준 사랑과 후의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편지 가운데 바울은 그 동안 빌립보 교회로부터 들려온 문제들에 대하여 권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두 여인의 다툼으로 야기된 분란을 극복하고 연합과 일치를 이룰 것을 부탁한 것이며, 또한 빌립보 교인들을 미혹하는 행악자들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에 대한 경고를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본 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확신과 기쁨으로 인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사랑과 감사를 드러내고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가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면서 자기 대신에 가장 신뢰하는 동역자인 디모데를 보내어 그들을 위하여 영적 사역을 감당케 하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4. 기록 장소

빌립보서는 바울서신 중에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일반적으로 옥중서신이라 불리워진다. 바울은 본 서신이 기록될 당시 투옥되어 있었으나 그 장소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본 서신이 기록된 장소에 대해서는 네 가지의 견해가 있다.

①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전통적인 입장

② 가이사랴에서 기록되었다는 견해

③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는 설

④ 혼합된 가설로서 네 서신을 두 부류로 구분한다. 즉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에베소서는 가이사랴에서 기록되었으나 빌립보서는 로마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 서신은 에베소에서 쓰여지고 빌립보서는 로마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네 서신(옥중서신) 전체가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견해를 취한다. 그 이유는 로마와 빌립보간의 거리는 에베소와 빌립보간의 거리보다 더 먼 것이었다. 그리고 빌1:13에서 '시위대', 즉 로마의 황제에게 할당된 로마 군대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바울이 심문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으로 보아 그는 로마에서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빌1:20).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간 감금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곳에서는 그 사건의 최종적인 판결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고전15:2에 근거하여 에베소를 기록 장소로 제안하기도 하나 그 구절에서 투옥되었다는 분명한 언급이 없다.

 

 

5. 본 서의 특징

바울의 개인적 신앙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본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서신 전체에서 '기뻐하다'는 동사를 9번, '기쁨'이라는 명사를 5번 사용하고 있으며, 4장에서만 '기뻐하다'는 말을 6번 쓰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서 넘쳐나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어서 빌립보의 성도들에게도 기뻐하라고 재차 반복하여 권면한다. 빌3:12-16에서 바울은 그의 신앙 자세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여 위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상을 받기 위하여 전심으로 달려가는 그의 간절한 소망과 열정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삶의 경험을 통하여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만족함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깨달았다. 즉 비천함을 당할 때나 풍부함을 누릴 때나 외적 환경에 좌우됨이 없이 그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체험을 얻었던 것이다. 본 서신은 바울의 개인적 간증을 통한 권면이라는 뚜렷한 특성을 띠고 있다.

제 7 강 골로새서

1. 골로새서의 기록 연대

골로새서의 기록 장소는 옥중이지만 기록 연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에베소에 투옥되었을 때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추측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작별 인사 때 등장하는 마가와 누가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거한 적이 없다. 또한 가이사랴에 투옥됐을 때 기록했다는 비평가들도 있다. 그러나 좁은 지역에 많은 동료들이 함께 전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평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학자들은 골로새에서 기록한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바울이 로마에서 제1차 투옥되었을 때 기록한 거이며,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 순으로 저술한 것임이 확실하다. 따라서 기록 시기는 대략 주후 61-63년경이다.

 

 

2.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연관성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는 여러 공통적인 이유로 함께 연구되어져야 한다. 바울은 이 두 서신을 옥중에서 기록하였다(엡3:1 ; 엡4:1 ; 엡6:20 ; 골4:3,10,18). 그리고 이 두 서신은 두기고에 의해 그 시대의 각 교회로 전달되었다. 그는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과 함께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다(엡6:21,22 ; 골4:7-9). 결국 이 두 서신은 회람 서신으로 많은 부분 공통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예컨대 두 서신 모두 '생활 윤리'(엡5:22-6:9 ; 골3:18-4:1)를 포함하고 있다. 골로새서의 생활 윤리는 부부관계(골3:18,19), 부모와 자녀 관계(골3:20,21), 상전과 종의 관계(골3:22-4:1) 등이다. 특히 에베소서는 부부 관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골5:22-32). 그리고 두 서신의 주제들도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가진다. 골로새서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를 강조한다.

 

 

3. 골로새 교회의 기원

골로새 교회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골로새를 다녀갔다는 말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것은 바울이 교회를 세우지도 않고 방문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자신보다는 골로새 본토인 에바브라에게 복음을 배웠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골1:6,7 ; 골4:12). 이런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하고 있다. 즉 바울이 3차 미행 중 에베소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루고 계곡에서 온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에바브라와 빌레몬도 끼어 있었다(골4:12 ; 몬1:19,23). 후에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은 복음을 아시아 동부 지방에 전하게 되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누가는 행19:10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동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본들에는 에바브라를 복음을 전달하는 신실한 일꾼으로 묘사하기도 한다(골1:7). 왜냐하면 골로새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에바브라의 메시지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하는 복음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4. 저술 동기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여러 상황들을 보고 하였다. 그 소식 가운데는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과 서로를 아껴 주는 사랑의 모습들도 담겨 있었다(골1:3-8).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가르침'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이 침해받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조언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가르쳤다. 그 새로운 가르침은 여러 가지 점에서 에바브라와 바울이 선포한 복음과 비슷했다. 즉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 없음이 비슷하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가 비슷하였다. 그러나 구속과 속죄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바울과 에바브라는 구원과 속죄는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쳤는데, 그들은 이런 가르침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하고 믿음 대신에 비밀스러운 지식과 철학(골2:8), 할례, 음식, 절기, 월삭(골2:16)과 같은 의식들, 금욕주의(골2:21,23)등의 몇 가지를 첨가시켰다. 이런 것들은 복음과 상반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명시하는 것이었다. 특히 골로새에 퍼져 있던 새로운 가르침의 은혜를 명시하는 것이었다. 특히 골로새에 퍼져 있던 새로운 가르침의 핵심적 오류는 '천사 숭배'(골2:18)와 '세상의 초등 학문'(골2:8,20)에서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구원의 중재자로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신적 존재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의식과 금욕은 이런 신적 존재의 능력을 구하고 그의 노여움을 달래는 수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완전하지 못함에 대해 고민하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인간이 자력을 가르침으로 채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들의 견해로는 두 차원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믿음을 따르는 보통의 신자들로 이들은 낮은 그리스도인들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둘째는 의식과 금욕을 병행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들은 한 차원 높은 그리스도인이라 주장되었다. 이 가르침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에다 인간의 수단을 덧붙임으로써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능력을 공격하는 것이다. 바울은 2장에서 이런 새로운 가르침의 위협들을 기록하고 다음장에서 이 서신을 쓰게 된 동기를 제시한다. 그것은 어떤 교인들이 이 이교적 행동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골로새의 빌레몬에게 돌려 보내려 했을 때 골로새의 문제들을 대면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데리고 떠나는 두기고에게 골로새서를 써보냄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것이다.

 

 

5. 골로새서의 내용

골로새서의 주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이다. 골로새의 새로운 가르침이 구속자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첨가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며, 따라서 완전을 위해 어떤 행위도 첨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골1:28). 바울은 1장에서 인사, 감사를 표현한 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에 대해 상세히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의 살아 있는 형상이시며, 창조 이전부터 계셨던 창조의 주인공이시다. 그분은 가장 위대한 능력을 가지셨으며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생겨나게 하시고 머리가 되셨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속을 받았기에 구원을 위하여는 더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없다. 2장에서는 바울 자신의 임무, 하나님의 비밀 전함을 언급하고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논의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 가르침을 헛되고 기만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런 가르침은 철학과 유대주의를 혼합한 것으로 교회를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 분열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완전하고 충분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에다 다른 것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3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다룬다.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은 이전의 옛 모습과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적인 죄, 탐욕, 중상, 분노를 버리고 친절, 인내, 용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부부, 자녀, 상전과 종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4장은 개인적인 내용물을 다루고 있는데, 이 서신을 가지고 갈 두기고 주인에게 돌아가는 오네시모, 골로새의 목회자 에바브라에 대하여 각각 언급하고 있다.

제 8 강 데살로니가전서

1.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데살로니가전서를 바울이 기록한 서신이라고 하는 확실성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전서가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본 서신이 바울에 의해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서신들보다 교리적 성격이 훨씬 결여되어 있다는 것과 본 서신이 율법의 행위에 의한 칭의 사상을 공격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서 본 서를 바울의 저작이 아닌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본 서신은 바울의 저작임이 확실하다. 그것의 근거로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본 서신 자체가 바울로부터 보내어진 것임을 스스로 보여 주고 있다(살전1:1). 또한 본 서신에 등장한 사람들은 사도행전의 근거에 비추어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 때 바울과 함께 동행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어휘가 분명히 바울이 사용한 어휘라는 것,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와 일관되는 사상, 초대교부들의 증언이 바울의 저작임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2) 기록연대

사도행전 16-18장까지 나타난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의 노정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이다. 이것은 데살라노기전서에 나오는 장소들과 일치한다. 또한 살전1:1의 문안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할 당시 실라는 바울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실라는 제2차 전도 여행시에 바울과 동행했었지만 1차나 3차 여행 때에는 동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들이 본 서가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중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구체적인 시기로 보면 주후 51-53년 사이로 볼 수 있다.

 

 

2. 기록 목적과 기록 장소

 

1) 기록 목적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부터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가져온 소식은 대부분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몇몇 좋지 못한 소식도 있었다. 바울의 반대자들이 바울의 영향을 감소시키려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위로와 신앙적인 지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 서신의 기록 목적은 바울 자신의 인격과 동기에 대한 비방 운동과의 정면적인 대결(살전1,2장), 디모데가 가져온 반가운 소식에 대한 바울의 기쁨과 감사의 표현(살전3장), 그리고 시련받는 자들을 격려(살전3:3-5), 성결한 생활과 성실한 삶을 강조, 재림 때의 죽은 자들의 장래에 대한 바른 이해(살전4:13-15)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 재림에 대한 바른 준비 등을 가르치려고 한 것에 있다.

 

2) 기록 장소

본 서신은 기록 장소로는 대게 고린도로 추측하고 있다. 그것의 근거로는 행18:1-5에 보면 바울이 아덴에서 고린도로 나아갔는데, 그 때 디모데와 실라가 마게도냐로부터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디모데의 도착과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때 고린도에 있었으며, 본 서신도 거기에 기록된 것이 확실하다.

 

 

3. 주제와 특징

1) 주제

사도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할 때 염두에 두었던 여러 가지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본 서신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하며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본 서신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후로 한 사진들을 다룬 본 서신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염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됨을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본 서신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자라남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합당한 성결한 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2) 특징

본 서신에서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갖고 잇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의문과 염려에 대해 바울이 답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서신은 재림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서신은 재림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쓰여졌다. 그러므로 종말론적 교훈과 묵시 문학적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본 서신은 성결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깨어 근신해서 빛의 거룩함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며, 재림을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4. 내용구성

바울의 첫 번째 서신이며, 종말론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본 서신은 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칭찬과 자신의 기쁨을 나타내고 있으며 신앙적인 권고와 성결된 생활의 교훈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주로 언급하고 있다. 본 서신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칭찬과 염려(살전1-3장)에서는 박해를 이기는 교회에 대한 칭찬(살전1:1-10)과 전도 회고와 교회에 대한 감사와 재방문의 소망 피력(살전2:1-16)과 성도와 사도간의 끝없는 교제(살전2:17-3:13)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경건한 생활(살전4장)에서는 성결한 생활(살전4:1-8)과 형제 사랑, 근면(살전4:9-12)과 재림과 성도의 부활(살전4:13-18)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교훈(살전5장)에서는 종말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살전5:1-11)와 종말을 기다리는 구체적인 성도의 생활(살전5:12-22)과 마지막 기도와 인사(살전5:23-28)로 되어 있다.

 

 

5. 본 서가 주는 의미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바울이 가장 먼저 쓴 서신이다. 특히, 먼저 쓰여진 데살로니가전서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종말론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어느 시대나 바른 신앙을 지니고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바른 영적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단 사설이나 혼합주의적 신앙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데살로니가 전서는 오늘날 혼탁한 사회와 혼합주의적 신앙이 팽배해져 가는 현실에 많은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바울이 없는 가운데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른 신앙을 지켰다. 그러므로 잘못된 종말론의 영향으로 심히 혼란스러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바울의 편지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잘못된 종말론이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서 데살로니가전서는 바른 종말론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올바른 생활 모습이 어떠했는지 보여주고있습니다.

 

 

제 9 강 데살로니가후서

 

1. 서론

교회는 옛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항상 세 가지 문제로 인해 위기를 겪게 된다. 외적인 박해, 이단 사설의 침투 그리고 교회 스스로 나태에 빠지는 일이 그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더 심화가 된 고로 사도 바울이 더 큰 목소리로 교훈과 깨우침과 경책을 하는 내용으로 쓴 서신서다. 그러므로 본 서신서는 전서와는 달리 엄중한 표현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다. 본 서는 종말의 시대에 사는 현대 신앙인들의 그릇된 신앙의식을 교정해 주는 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저자 문제

 

본 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사실을 초대교회는 의심없이 인정했다. 그와 같은 분위기는 19세기까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몇몇 비평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론을 들고 나왔다. 첫째, 살후2:3의 '불법은 사람'은 주후 60년 이후 네로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당시 사람들은 네로 황제가 죽지 않고 부활했다는 신화를 믿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본서는 바울 시대 이후 타인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둘째,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의 주제가 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신학적인 시각이 상반된다는 점이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주의 재림을 삶의 종국적인 소망과 기쁨으로 삼는 것을 권고하는 반면 후서에서는 오히려 재림이 관한 기대나 소망을 억제하는 듯한 내용으로 일관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본 서는 전서와 동일인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비평가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반박한다. 먼저 불법의 사람, 즉 적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은 네로 부활의 신화를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의 종말 예언부터 등장하는 말세의 악한 존재를 배경으로 한 것이며(단7:25 ; 단11:36 ; 사14:13)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성경의 종말론의 보편적인 주제임을 상기시킨다(요일2:18 ; 계13:6,7). 셋째, 전서와 주의 재림에 대한 자세가 다른 이유로는 재림에 관해 열광주의적인 자세를 지닌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으며 그들로 인해 교회가 무질서의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기에 열광적, 신비주의적인 재림주의자들을 경계한 것임을 주장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비평가들의 추측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며, 본 서가 일찍이 초대교회로부터 사도 바울의 서신으로, 정경으로 인정받아왔다는 사실이 사도 바울의 저작권의 가장 큰 증거일 것이다.

 

 

3. 기록 연대와 수신자 문제

 

1) 기록연대

전통적으로 본 서는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시기에 고린도에서 기록 되었으며, 그 시기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쓴 후 10개월 지나 기록한 것으로 본다. 즉 주후51년 후반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몇몇 진보적인 비평가들은(Baur, Daridson, Ewald) 먼저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살전5:1에서 바울이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는 내용, 후서보다 전서에서 문제들이 평정된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분위기 등을 들어 후서가 전서보다 먼저 기록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론에는 확실한 확증이 없다. 전후서의 내용을 비교해 볼 때 전서가 초기의 것이라는 증거를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수신자 문제

전서와 다름없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전체 구성원을 향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역시 근대 비평학자 몇 명은 이의를 제기했다. 하르낙(Harnack)은 후서가 유대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점을 들어 데살로니가 교회내 유대인 성도가 그 수신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한교회내의 어느 특정 그룹에만 따로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외에 슈바이처(Schweitzer)는 본 서가 본래 빌립보인들에게 보내려고 했던 것인데 데살로니가 지역에 보존되어 있다가 그 지역 교회로 보낸 것으로 오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 역시 본 서와 전서사이의 개연성, 즉 재림에 관한 그릇된 자세를 교정하려는 일관적인 내용이 수신자가 전서처럼 데살로니가 교인 전체임을 증명해 준다.

 

 

4. 기록 목적

 

전서의 상황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사회로부터 당하는 박해가 더 심화된 듯하다. 그래서 일부 신자들은 매우 낙심해 있고 일부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임할 신천신지를 삶의 전 소망으로 삼게 되었다. 그와 같은 신자들 가운데는 도피주의, 체념주의,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생겨나 교회의 직분에 대한 사역을 외면하고 사회인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채 오직 재림의 시기에 연연하는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재림시에 받을 보상을 상기시키고, 재림의 시기에 열중하는 자들에 대해 이단에 미혹될 것을 경계하며, 무위도식하고 현실 도피적인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본분과 책임을 다할 것을 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오늘 현대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는 미신적, 극단적 종말론에 대비한 신앙 지침으로써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5. 특징 

본 서 역시 전서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제로 삼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서가 주의 재림을 신앙적 삶의 궁극적인 소망임을 강조한 것에 반해 본 서는 재림받을 신앙의 전 내용으로 오해하는 열광주의 자들의 열기를 냉각시키는 내용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전서는 비교적 위안과 칭송과 격려로 구성된 반면 본 서는 훈계, 명령적인 내용이 많다. 특히 재림의 시기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후임을 깨우치는 내용은 본서만이 지닌 종말 신학의 큰 특징이다(살후2:1-12). 그리고 주의 재림이 가까워 왔을지라도 사회인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온당한 것임을 교훈함으로써 종말 시대에 지녀야 할 신앙의 참자세에 대한 기독교적 종말론의 귀중한 모범을 제시해 주고 있다.

 

 

6. 내용 구성

① 재림으로 인한 영광의 보상(살후1장)

② 재림 진리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그 결과(살후2장)

③ 재림을 기다리는 온전한 삶의 자세(살후3장)

제 10 강 디모데전서

1. 디모데전서 서론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이 세 개의 서신들이 교회의 목회 사역에 관한 원리들과 구체적인 지침들에 관하여 교훈하기 때문이다.

본 서는 목회의 연륜이 깊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쓴 격려의 편지이다. 디모데전서는 외형상으로 디모데 개인에게 쓴 편지로 그의 어려운 목회 사역을 격려하고 훈계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디모데전서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교회의 도덕과 조직, 교리 그리고 이단에 대한 경계, 끝으로 성도들의 윤리적인 삶의 권면 등이 교훈하고 있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디모데전서의 저자는 본 서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도 바울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서 슐라이에르마허(F.Schleiermacher)와 바우어(F.C.Baur)를 비롯한 유럽의 자유주의 비평가들은 바울이 본 서의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써 첫째는 본 서가 바울의 초기 서신들과 비교할 때 문체나 어휘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본 서에 나타난 바울과 디모데 사이의 관계(딤전1:3)가 사도행전에서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체나 어휘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저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본 서의 저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사도 바울임이 자명하다.

 

2)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바울이 1차 로마 감옥 생활을 마치고 계속해서 전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본 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때를 주후 62-63년으로 본다면 본 서는 주후63년경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바울은 본 서를 마게도냐에서 썼으며, 본 서의 수신자인 디모데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3. 주제와 기록 목적

 

1) 주제

본 서에는 3가지 중심되는 주제를 갖고 있다. 첫째는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복음을 가지고 물리쳐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 교회 안에는 율법의 선생으로 자처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끝없는 논쟁과 헛된 말로 교리를 분열시키고 성도들을 유혹하였다. 이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통해 이단의 속성을 나열하면서 말씀으로 물리쳐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위하여 종들을 세우시고 사명을 주시며 능력 또한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따라서 디모데 또한 택함받은 주의 종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셋째는 성도들의 정확한 교리를 토대로 믿음과 선한 양심이라는 영적 무기로 신앙생활을 유지하며 교회를 지켜 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

 

2) 기록 목적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였다. 거기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나면서 곧 돌아올 것을 약속함과 동시에 그곳에 디모데가 사역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약소대로 곧 에베소가 갈 수 없게 되자 이 서신을 쓰게 된 것이다. 이때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가 겪고 있는 두 가지 고충을 알고 있었다.

첫째는 에베소 교회에서 장로와 감독들로 불리던 나이 많고 학식이 풍부한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상적인 신앙 훈련을 받지 못하였기 때로는 많은 문제도 일으켰다. 그런데 디모데가 이들을 다루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두 번째로는 교회를 어지럽히고 복음을 왜곡시키는 거짓 교사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따서 사도 바울은 목회의 어려움을 당하고 잇는 디모데를 격려하면서 동시에 이단의 유혹으로부터 승리하고, 운동 선수처럼 신앙 훈련을 하도록 권면하기 위해 본 서를 기록한 것이다.

 

 

4.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본 서의 특징은 첫 번째로 목회서신이라는 점이다. 즉 본 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의 원리와 처리에 관한 구체적인 가르침을 준 개인적인 편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신이 개인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각 성도들의 영적 성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 서는 개인적인 편지라기보다는 공적인 서신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본 서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에 대한 경계가 반복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영지주의는 바울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영지주의의 분위기가 교회 내에 팽창되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러한 영지주의는 철저한 이원론에 바탕을 두어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면으로 나타난 이단 사상이었다. 세 번째로 본 서는 몇가지 신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영광을 찬양하고 있고(딤전1:17), 하나님의 무한하신 주권도 기록하고 있다(딤전6:15,16).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딤전1:15)과 그리스도의 인내(딤전1:16), 그밖에 속전으로 자신을 주셨다는 그리스도의 중보자적 진술(딤전2:5,6)도 언급하고 있다.

 

2) 내용 구성

본 서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디모데전서 1장으로 거짓 교리에 대한 바울의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 단락은 디모데전서 2장으로 예배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다. 특별히 공중기도의 중요성(딤전2:1-8)과 여자 성도의 지위와 품행(딤전2:9-15)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단락은 디모데전서 3,4장로 교회 지도자와 거짓 선생에 대한 교훈을 기록하고 잇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는 감독과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며(딤전4:1-5), 바른 교훈과 바른 규율을 지켜 나가도록 권면하고 있다(딤전4:6-16). 네 번째 단락은 디모데전서 5,6장으로 훈계와 책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늙은이와 젊은이, 과부, 장로 그리고 종에 관하여 훈계하며(딤전5:1-6:2), 끝으로 목회자의 자질과 임무(딤전6:3-21) 등을 설명함으로 디모데를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다.

제 11 강 디모데후서

1. 서론

 

본 서는 디모데전서에 이어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서신으로 목회서신 중 일부분이다. 당시 바울은 로마 황제 내로의 박해로 또다시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때 바울 주위에 있던 여러 성도들이 바울 곁은 떠났고, 점차 죽음의 시간이 임박해 오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사도 바울은 오직 디모데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기에 일종의 유언으로 디모데에게 본 서신을 보내면서 몇 가지를 권면하였다. 바울의 권면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동시에 말세의 때에 나타날 여러 징조들을 예견하면서 이때에도 복음 전파자로서의 사명에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교훈의 내용을 본 서는 기록하고 있다.

 

 

2. 저자와 수신인

 

1) 저자

일반적으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 그리고 본 서를 총칭하여 바울의 목회서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이 세편의 목회서신이 모두 바울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기에 우리들은 본 서의 저자로 바울을 지적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몇몇 학자들은 본 서가 진정으로 바울의 친필인가에 의문점을 제기하면서, 바울의 생존시에 그의 구슬을 받아 누가가 세편의 목회서신을 모두 썼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학설 또한 큰 호응은 받지 못하고, 바울의 저자설 주장에 맥을 못추고 있다. 본 서는 바울이 쓴 서신임에 틀림없다.

 

2) 수신자

본 서의 수신자는 본 서의 서두에서 언급된 것 같이 사도 바울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제자이며, 동역자였던 디모데이다. 그의 고향은 루스드라로서 그의 부친은 헬라인이고 모친은 유대인이었던 유니게였다. 그의 외조모는 로이스여쓴 , 디모데는 모계로부터 경건한 종교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는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중 루스드라에 방문했을 때 이미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요, 조력자로서 바울의 사역을 도왔다. 때로는 바울과 동행하면서, 때로는 바울을 대신하여 여러 지방에 들르곤 하였다. 그러던 중 디모데는 바울의 권유로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다. 바울은 얼마 후 로마 옥에 갇히고, 석방된지 며칠만에 또다시 옥에 갇히게 되자 디모데후서를 디모데에게 보내게 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디모데는 신실하게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3.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바울은 2번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 첫 번째가 주후 62-62년경이었다. 이때 석방된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에서 전도 사역을 하던중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라는 첫 번째 서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는 주후 63년경의 일이다. 그 후 네로 황제가 다스리던 로마 제국에 주후 64년 7월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이때 네로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비난을 모면하고자 이 화재를 기독교인들의 소행으로 몰아부쳤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바울은 또다시 체포되어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는 주후 66-67년경의 일이다. 그런데 본서는 바울의 2차 투옥 기간중에 기록되었으며, 사도 바울이 결국은 주후 67년경에 순교하였기 때문에 본서는 주후 66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딤후4:21) 마가를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요청한 것을 보아 순교하기 전 해인 주후 66년에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기록 목적

바울이 본 서를 기록하여 디모데에게 보낸 목적은 당시 교회와 사회속에서 기승을 부리던 이단 교리에 대한 교훈과 복음으로 교회의 질서를 세우고 믿음을 유지하도록 권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한 성도로서, 장차 겪게 될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복음 전파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였기에 그 동안 사랑으로 교제하던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간절히 보고 싶었고, 아울러 추운 감옥에서도 성경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겉옷과 책들 그리고 양피지 문서들을 가져오도록 부탁하고자 본 서를 기록했던 것이다.

 

 

4.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본 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목회서신이라 부른다. 따라서 목회와 목회자에 관한 일반적인 원리 내지는 기본적인 지침 사항들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본 서는 목회서신 중의 다른 두 서신, 곧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와는 약간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본 서는 개인적인 편지의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 서에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인 권면과 격려가 많으며, 아울러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간증 등도 많이 기록하고 있다. 둘째, 다른 목회서신이 교리적인 부분에 비중을 많이 두었다면 본 서는 생활 속에서 겪게 될 실제적인 부분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즉 디모데가 겪게 될 핍박과 고난 등을 예고하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권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다른 목회서신과는 달리 디모데에 대한 격려, 위로, 권면 등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바울이 어쩌면 마지막 편지 내지는 만남이 될지 모른다는 착잡한 마음속에서 디모데에 대한 애뜻한 사랑을 전하다보니 디모데를 수없이 위로하고 권면하게 된 것이다.

 

2) 내용 구성

본 서는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디모데후서 1장으로 복음을 굳게 붙들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권면(딤후1:1-8)과 복음을 지키라는 권면(딤후1:9-14)이 담겨 있고, 또한 복음과 바울을 위해 수고한 오네시모로에 대한 감사(딤후1:15-18)의 내용이 적혀 있다. 두 번째 단락은 복음 전파에 대해 언급한 디모데후서 2장과 4장이 있다. 여기에는 복음 전파자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 담겨 있는데, 복음 전파자의 모습(딤후2:1-13)과 복음 전파자의 자격과 자세(딤후2:1-16) 그리고 복음 전파자의 사명(딤후4:1-22) 등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단락은 디모데후서 3장으로 복음의 보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단락에서는 말세에 나타날 죄악상(딤후3:1-9)을 언급한 후 이때에도 배우고 확산한 일에 거하라(딤후3:10-14)고 권면하고 있다. 끝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의 효율성(딤후3:15-17)을 말하고 있다.

제 12 강 디도서

1. 저자

본 서는 고대 문헌들과 외증을 통하여 바울이 기록하였다는 것이 입증되므로, 목회서신 중에서도 비교적 논쟁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목회서신들과 마찬가지로 19C 초부터 대두된 비평주의적 성경 해석에 따른 비판적 견해, 즉 ① 역사적인 이유, ② 교회사적인 이유, ③교리적인 이유, ④ 문체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바울의 저작성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디모데전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행적을 사도행전에 나타난 것으로만 제한하려는 의도와 바울서신을 도식적으로 이해한 나머지 문체, 내용, 교리 등을 고정된 형태로 본 것에서 기안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서의 바울 저작성은 의심받을 수 없는 것이다.

 

2. 수신자

바울의 다른 서신(롬1:7 ; 고전1:1 ; 엡1:1)들과는 달리 본 서의 수신자는 '디도'라는 한 개인으로 되어 있다(딛1:4). 사실 디도는 헬라인 기독교 신자로서 할례는 받지 않았으나 안디옥 교회의 회원으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총회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이미 상당한 기간 동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갈2:1-5).

한편 본 서가 기록될 당시 디도가 목회하고 있던 그레데 교회는 교회내의 질서 확립과 바른 신앙관의 정립의 시급할 정도로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믿음의 서한 행위가 없었다(딛1:10-13 ; 딛2:1-10). 따라서 바울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목회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디도에게 신앙인의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은 여러 규범을 제시하여 그를 격려하고 또 권면하기 위해 본 서를 작성하였던 것이다.

 

 

3. 본 서의 특징

 

본 서에 언급된 장로의 자격에 관한 규정(딛1:6-8)이나 교회의 여러 그룹에 대하여 취해야 할 태도(딛2:1-10) 등은 디모데전서의 내용과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바울의 다른 서신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십자가'나 '십자가에 못박는다'라는 말은 본 서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전1:18 ; 고후13:4 ; 갈6:12 ; 엡12:16 ; 빌2:8 ; 골1:20). 이것은 곧 본 서가 신앙의 윤리적이며 실천적인 면인 선한 생활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이다.(딛1:6 ; 딛2:7 ; 딛3:1,8,14).

한편 본 서에서 보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중대한 교리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선택(딛1:1), 영생(딛1:2 ; 딛3:7), 그리스도의 메시야성과 신성(딛1:3,4 ; 딛2:13), 영감(딛2:5),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보편성(딛2:11), 그리스도의 대속과 재림(딛2:13,14),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딛3:4,5), 성령의 사역과 칭의 그리고 상속권(딛3:5,7) 등이다. 따라서 본 서에는 성도에게 맡겨진 복음의 교리와 경건한 생활의 중요성, 즉 은혜(grace)와 성도의 선행(good works)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기록 목적

본 서의 1차적인 목적은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감독이 되어 목회를 하고 있은 디도에게 바울이 보장하는 권위가 그에게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본 서는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다루었으며, 또 교회 내의 여러 집단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훈계가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첫째로 디도를 바울이 있는 니고볼리로 빨리 오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로 율법학자인 세나(Zena)와 아볼로를 먼저 보내어 그레데 교회에 영적인 궁핍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고, 셋째로 어렵게 목회하고 있는 디도를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였다.

 

5. 전체 내용 요약

본 서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건전하고 올바른 교리의 보호와 전파를 언급한 부분(딛1,2장)과, 둘째는 올바른 교리의 실천과 성도의 바른 사회 생활에 대하여 권면을 하고 있는 부분(딛3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은 바울의 다른 서신들인 고린도전서, 디모데전서와 유사점을 갖고 있기는 하나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 복음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목회를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6. 구속사적 의미

 

본 서는 특히 '선한 생활'(딛1:16)이라는 주제를 비교적 짧은 본 서신에서 6번이나 강조하고 있다(딛1:16 ; 딛2:7,14 ; 딛3:1,8,14), 이는 신자에게 은혜로 주어진 선한 생활이 실제 삶의 현장에서 경건하고 의로운 모습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 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바울은 이 선한 생활을 하나님의 은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딛2:14 ; 약2:14,17). 이는 결국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되고 선한 생활을 통하여 그 말씀과 실천이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7. 내용 분해

 

Ⅰ. 인사(1:1-4)

Ⅱ. 그레데에 있는 디도의 의무(1:5-2:16)

    1. 장로의 필요성(1:5)

    2. 장로의 자격(1:5-9)

    3. 교회 내의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1:10-16)

    4. 바른 교훈과 복음에 대한 권면(2:1-16)

Ⅲ. 성도의 사회 생활에 대한 권면(3:1-11)

    1. 국가에 대한 태도(3:1)

    2. 일반 생활에 대한 태도(3:2-11)

Ⅳ. 개인적인 부탁과 인사(3:12-15)

제 13 강 빌레몬서

1. 저자

 

혹자들은 본 서 속에 교리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 때문에 바울의 저작설을 부인하나 본 서는 전통적으로 내·외적인 증거에 의하여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되어 왔다.

 

1) 외적 증거

초대교회의 교부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 터툴리안(Tertullian), 오리겐(Origen) 등은 본 서의 저자를 바울로 인정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Fragment)과 마르시온 정경(Marcionical Canon)도 바울이 본 서를 기록하였다고 인정하였다.

 

2) 내적 증거

19세기 튀빙겐 학파(Tubingen Schule)의 비평학자들은 본 서가 위경 클레멘트와 마찬가지로 정경이 아니고 그리스도교 문학의 맹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이 서신은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주후 2세기경 교회의 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익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본 서의 내용을 보면 서두에서부터 바울이 발신임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만이 전개 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몬1:1,9,10,13)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의 일상 생활을 언급함으로 자신이 본 서의 저자임을 강하게 나타내 주고 있기도 하다(몬1:23,24).

 

 

2. 기록 장소와 연대

 

본문에 의하면 본 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기록하였다고 하는데(몬1:9,10), 이때는 바울의 1차 옥중 생활에 해당되는 때로 비교적 자유로운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때 오네시모를 만나 그를 회심시켰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를 위해 본 서신을 써 두기고를 통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는 그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있을 때인 주후 58년이었다(행19-21 ; 행21:17). 그리고 가이샤로 호송되어 약 2년을 보냈다(행24:27). 이때에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가이사의 재판을 호소하였고 따라서 다시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때가 주후 61년경이었다. 그러므로 본 서를 위시한 옥중 서신들은 주후 62년 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3. 기록 목적

 

주인인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추정되는 노예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일꾼이자 바울의 조력자로서 그의 총애를 받았다(몬1:11-13).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로마에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를 더 이상 노예로서가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서 받아들이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빌레몬에게 보냈다. 또한 바울은 서신에서 자신이 풀려날 것을 소망하고 있으며 빌레몬이 자신의 처소를 마련할 것을 기대하였다(몬1:22).

따라서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노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도록 지혜롭게 요구함으로써 노예 제도를 정죄하지는 않지만 그 근본 정신을 뒤집어 노예들도 형제들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셋째, 바울 자신이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자신을 위한 처소를 빌레몬이 예비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4. 내용 전개

 

노예 신분의 형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제시하고 있는 본 서신은 세 부분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①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칭찬(몬1:1-7): 특히 본문은 본 서가 단순히 빌레몬과 그 가족들만이 아니라 그의 집에 모이는 모든 회중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② 오네시모를 위한 사도 바울의 간구(몬1:8-16):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따뜻한 한 형제로 받아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③ 바울의 개인적인 문제(몬1:17-25): 바울은 자신의 소망의 헛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면서 동료에 대한 안부와 축복으로 본 서를 끝맺는다.

 

 

5. 구속사적 의미

 

사실 오네시모는 타인의 물품을 훔친 자요, 더욱이 도망친 노예로서 당시 법으로 처리한다면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인(重罪人)이다. 그러나 바울은 겸손한 자세로 이같은 중죄인을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 줄 것을 그 주인 빌레몬에게 간청함으로써 사랑의 도리를 보여 주고 있다. 사실 바울의 이같은 간청은 분명히 죄와 허물로 죽어 마땅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사함받고 생명을 얻은 그 은혜와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허물 있는 형제들을 은혜로 용납할 수 있어야 함을 본 서는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해야 할 한 형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마12:50).

 

 

6. 내용 분해

 

Ⅰ. 빌레본에 대한 감사(1:1-7)

    1. 분안 인사(1:1-3)

    2. 빌레몬에 대한 칭찬(1:4-7)

Ⅱ. 빌레몬에 대한 부탁(1:8-16)

    1. 오네시모를 위한 간구(1:8-10)

    2. 오네시모의 변화(1:11-16)

Ⅲ. 빌레몬에 대한 약속(1:17-25)

    1. 부채에 대한 변재 약속(1:17-19)

    2. 처소 마련을 부탁함(1:20-22)

    3. 작별 인사(1:23-25)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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