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 (이하 출처- http://cafe.daum.net/43ch/2NvO)
홍해 북쪽에 돌출한 시내 반도 안에 있는 산이다. 그 이름의 뜻은 "수풀"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산에서 1년간 유하는 동안에 여호와가 모세를 불러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출20:1-17). (2)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경배한 일이 있다 (출32:4,행7:30,46). (3) 백성의 수를 조사한 것, 아비후가 거룩하지 못한 불로 분향하므로 멸망 받은 곳, 모세가 성막을 처음친 곳이 전부 이 산이다(민1:18,레10:1-2출26:30). (4) 엘리야 선지가 이세벨을 피해 40일만에 이 산에 이르렀다(왕상19:8). 1859년 독일 학자 디신딥이 이 산중 한 사원에서 고분 성경을 발견 하였는데 주후 300년경에 초한 것으로 현재에 전래하는 최고의 시내 사본인데 소련의 베드로그라드 헬라 교회당에 보관되어 있다. 홍해 북에 돌출한 시내 반도 안에 있는 산으로 모세가 출애굽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바위산이다. 붉은빛이 감돌고 울퉁불퉁 골이 진 화강암으로 뒤엉긴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 더욱 신비로운 생동감을 주는데, 시간에 따라 그 빛깔이 바뀐다. 시내산은 시내광야의 산악지대에 있는 한 산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날 가장 유력시 되는 견해는 시내산을 파이란 오아시스를 지나면 나오는 호렙산 줄기의 최고봉 무사산(아랍명 Jebel Musa(모세의 산), 2286m)과 그로부터 3.2km 서남쪽에 있는 카타린산(아랍명 Jeble Katarin; 2,621m)과 서북쪽에 있는 "라스 에스 사프사페"(Ras es-Safsafeh; 1993m) 사이의 세 정상중 한 곳으로 잡고 있다. 전통적인 주장은 무사산이라고 생각된다. 이 "무사산" 동쪽 기슭에 있는 그리스정교의 성(聖)카타리나 수도원 서고에서 1844년 시나이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시나이 사본은 4세기에 만들어진 헤브라이어 성서 사본으로서 성경 원문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이 산은 일찍부터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으로서, "야훼의 산"으로도 불렀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이 산에 올라 타지 않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리는 야훼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소명을 받은 다음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고, 다시 이 산에 올라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시내산 일출
시내산
이 건물은 4세기경에 세워졌던 조그만 교회 자리에 1934년에 다시 세운 성삼위일체 교회이다
시내산 정상 모세기념교회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시내산 정상 모세기념교회
시내산 정상 모세기념교회
<성 캐서린 수도원>
성 캐서린(카타린) 수도원 (출처- http://cafe.daum.net/43ch/2NvO)
모세가 신을 벗었다는 시내산 기슭의 희랍 정교회에 속하는 성 캐서린 수도원이다. 4세기 초, 이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황제는 사병출신이었던 막시미누스(재위 235~238) 황제였다. 그는 트라키아의 농민 출신이었는데 독일의 라인지방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거대한 체구를 지녔던 그는 세베루스 알렉산더 황제가 암살되자 군인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황제 재위 중 특히 기독교 박해를 심하게 했는데 귀족출신의 캐서린은 용모와 학식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녀가 기독교에 입문하여 황제의 우상숭배를 비판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그녀를 아끼던 황제는 몇 사람의 학자들을 보내 그녀를 회유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학자들까지 기독교도가 되고 말았다. 몹시 노한 황제는 결국 캐서린을 잡아들여 모진 고문 끝에 죽이고 말았는데 그녀의 시신이 천사들에 의하여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 후 막시미누스 황제는 도나우강과 라인강 유역을 정벌하였으나 원로원을 무시하다가 폐위되었고, 결국 부하들에 의하여 자식들까지 함께 몰살당하는 비운의 황제가 되고 말았다. 그 막시미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사람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황제의 지배지역 여러 곳에 교회를 많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수도원도 그들 교회 중의 하나로 세워진 곳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 순교한 캐서린의 이름을 따 성 캐서린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이 수도원은 6세기 중엽 동로마 제국의 유수티니아누스(Justinianus)황제의 명에 의해 건립된 후 지금까지 1,400년 이상 한 번도 파괴되거나 정복당한 일없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내산 자락을 지켜오고 있다. 과거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수도원의 문을 잠그고 밧줄로 연결된 광주리를 타고 오르내렸다고한다. 오늘날은 한 사람 정도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를 통해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1,400여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도사들이 하루에 두 번씩, 4시간 동안 장엄한 예배를 드려온 곳이다. 교회의 전면 벽은 예수와 모세, 엘리야 그리고 예언자들과 제자들을 나타낸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모자이크 작품가운데 하나는 세계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성 캐서린 수도원 (출처- http://paxkorea.co.kr)
가시 떨기나무
수도원의 경내에는 모세가 보았다는 것과 같은 종류의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시나이 반도 남부에서만 자라는 독특한 종류로서 여러 차례 다른 곳에 이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성 캐서린 수도원
성 캐서린 수도원 도서관
수도원내의 도서관은 귀중한 성경 사본과 성경 희귀본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3,000점 이상의 고대 성경 사본과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들이 있다. 바티칸의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 사본과 희귀성경들을 많이 소장한 곳이다. 바로 이 성 카타린 수도원에서 19세기 중엽 독일의 티센돌프가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수도원을 세 번 방문한 끝에 시내산 사본을 찾아냈다(1859). 서기 300년대 후반에 필사된 것으로 신약 성경 전체가 수록된 사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사본이다. 티센돌프는 이 귀중한 사본을 유럽으로 가지고 가서 당시 동방 정교회의 보호자였던 제정 러시아 황제에게 기증하였다. 그는 수도원 측으로부터 사본을 기증 받았다고 했다. 그후 러시아가 공산화되면서 제정 적으로 쪼들린 소련은 1933년 이 사본을 10만 파운드 받고 영국에 팔았다. 현재 이 귀중한 사본은 세계적인 보물로 대영 박물관에 깊숙이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수도원 측에서는 티센돌프가 사본을 가지고 갈 때 "연구가 끝나는 대로 반환하겠다"는 각서를 써놓고 빌려간 뒤돌려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독일어와 라틴어로 써놓은 각서는 지금도 수도원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975년 9월 이 수도원에서 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퇴락한 방을 고치기 위해 벽을 헐었을 때벽과 벽사이의 공간에서 50상자 분의 수많은 성경 사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수도원 측에서는 이 사실을 극비에 부쳤으나 결국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극소수의 세계적인 학자들만이 30분간의 제약된 시간 안에 구경이나 했을 뿐이다. 독일의 마틴 헹겔은 "사해사본 발견이후 최대의 사본 발견"이라고 했다.
성 캐서린 수도원 도서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우물
지하 묘지
묘지는 지하에 있다. 수도사 한 명이 지켜 서 있는 크지 않은 방에는 수많은 유골들이 부위 별로 나누어 보관되어 있다. 이 유골들은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죽은 수도사들의 유골이라고 한다.
지하 공동묘지 관리 수도사
'구약 성서 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에담광야와 마라의 샘 (0) | 2010.06.14 |
---|---|
[스크랩] 신광야 (0) | 2010.06.14 |
[스크랩] 하솔성 (0) | 2010.06.14 |
[스크랩] 엔게디 (0) | 2010.06.14 |
[스크랩] 통곡의 벽 (0) | 2010.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