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굼의 기원
느헤미야기 8장을 읽어보자. 이 성경 본문은 율법학자이며 사제인 에즈라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한 일을 전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BC 597-538)를 끝내고 되돌아와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세우고 성벽 공사도 끝낸 상황이었다(BC 445). 에즈라가 율법을 읽고 난 후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느헤 8,7-8). 여기서 에즈라는 히브리어로 된 율법을 읽었고 레위인들은 그것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설명하였을 것이다(→아람어와 히브리어 아래 참고). 백성이 율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하고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이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이미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로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 아람어와 히브리어. 아람어 Aramaic language는 셈족 언어로서 BC 8세기에 아람인이 상업민족으로 서아시아 각지에서 활약한 후부터 국제통상어가 되었고, 아시리아나 신바빌로니아에서는 외교용어가 되어 고대 페르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까지 퍼졌다. 그러나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 이후 그리스어의 공용어화에 따라 아람어는 동방파와 서방파로 분열되었다. 서방파西方派에는 구약성서에서 쓰이는 아람어, 사마리아어, 그리스도께서 사용하던 팔레스티나 아람어 등이 있는데 시리아 일부에서는 오늘날도 쓰이고 있다. 동방파에는 바빌로니아 탈무드, 거기서 파생한 시리아어, 만데아어 등이 있고 현재도 아르메니아나 메소포타미아의 일부에서 쓰인다. 히브리어 Hebrew language는 BC 2000년대 중엽 북동에서 가나안에 칩입한 집단의 언어인 고대 아람어와 가나안어의 혼합언어이다. 고대 히브리어 자료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 헤브라이어Biblical Hebrew인데, 그 원자료는 부분적으로 이스라엘이 에집트 탈출 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BC 13세기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그러나 후기 자료는 사해문서死海文書(BC 2∼BC 1세기)나 다수의 유대교 문헌과 같이 아람어의 영향 하에 있어서 중기 헤브라이어에 속한다. BC 6세기 바빌론 유배 이후 히브리어는 아람어화로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으며, 문자 언어로는 중근동中近東 지역에 산재한 유다교인들에 의하여 지켜졌다. 19세기 말에는 일상어로 부활하여 1948년 이스라엘이 재건되자 현대 히브리어는 아람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되었다.
다음으로 루가복음 4장을 읽어보자. 이 본문은 예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61,1-2; 58,2절을 읽는 장면을 전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시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4,16-17). 이사야서 본문을 읽은 후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4,20-21). 이 장면은 예수시대, 즉 서기 1세기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행하여진 안식일 예식의 모습을 잘 전하고 있다. 당시 팔레스티나 유다인들의 공통된 언어는 아람어였다. 즉 아람어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용하였던 언어이다. 물론 당시 팔레스티나(舊 가나안)에서는 지역이나 사람들에 따라 그리스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루가복음 4장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예수는 먼저 성경 본문을 히브리어로 읽고 곧이어 아람어로 번역하며 가르쳤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다인들의 회당 예식에서 히브리어 성경은 아람어로 번역하고 설명되었으며, 이로부터 오랫동안 이 아람어 번역과 해석이 구두전승으로 전해졌다.
고대 근동의 공용어 아람어와 타르굼
사실 아람어는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BC 332년) 이전의 수세기 동안 고대 근동지역의 공용어였다. 특히 바빌론 유배 이후 제2차 성전시기 팔레스티나의 유다인들에게 있어 아람어는 일상적 구어였다. 히브리어가 더 이상 구어의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시기에 아람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다인들을 위하여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에 따라 나오게 된 것이 아람어 번역 주석 성경인 타르굼Targum이다. 타르굼이란 원래 '번역'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팔레스티나 혹은 바빌로니아의 유다인들이 회당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놓은 성경을 가리킨다. 이 타르굼은 BC 3세기경부터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 Septuaginta(일명 LXX) 성경과 함께 그리스도교 이전에 생겨난 대표적인 번역 성경이다.
타르굼의 형성과 종류
타르굼은 에즈라-느헤미야기와 다니엘서를 제외한 전 구약성경의 책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타르굼의 형성과정은 오랜 전승과 편집의 역사를 거친다. 약 10세기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형성된 것이 타르굼이다. 아람어 번역과 주석이 구두전승의 단계를 거쳐 기록되어지는 단계에 이르고 마침내 최종 편집되는 과정은 여러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타르굼에는 오경,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집에 관한 것들이 다양하게 있다. 오경에 대한 타르굼 중에는 옹켈로스, 차명 요나단, 그리고 네오피티 라는 세 종류의 대표적 타르굼이 있다. ① 옹켈로스 타르굼은 바빌론에서 서기 4-5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바빌로니아 타르굼이라고도 불린다. 이 타르굼은 비교적 자구적인 번역으로서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랍비들은 이것을 권위 있는 공식 타르굼으로 인정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이미 서기 2세기경에 팔레스티나에서 편집되었던 타르굼이 재수정되었을 것이다. ② 차명 요나단 타르굼은 서기 8세기경에 최종 편집된 것으로서 팔레스티나 타르굼이라고도 하는데, 매우 주석이 풍부한 번역으로서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두 배 분량이다. ③ 1956년에 발견된 네오피티 타르굼은 서기 2-3세기의 본문에 기초하여 1504년에 필사된 것으로서 후대 랍비들의 첨삭을 포함하고 있다. 이 세 종류의 타르굼 중에서 옹켈로스는 문학적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고, 차명 요나단과 네오피티는 팔레스티나의 방언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이 세 개의 타르굼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각각의 타르굼이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저작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타르굼 사본들은 타르굼 형성의 시기와 과정의 문제를 밝히는 데 획기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타르굼의 중요성과 가치
쿰란에서 발견된 레위기와 욥기에 대한 세 종류의 타르굼 사본은 4Q156, 4Q157, 11Q10 등이다. 쿰란의 네 번째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 중에서 4Q156이라고 번호 붙여진 사본은 레위기 16,12-15와 16,18-21에 대한 타르굼을 담고 있는데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쿰란의 네 번째 동굴에서 발견된 4Q157 사본은 욥기 3,5-9와 4,16-5,4에 대한 타르굼으로서 서기 1세기에 필사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한 번째 동굴에서 발견된 11Q10 사본은 기원전 1세기 후반의 것으로 욥기 17,14-42,11에 대한 아람어 번역과 주석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쿰란에서 발견된 타르굼 사본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타르굼 형성의 역사를 밝히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증거이다. 즉 타르굼은 이미 그리스도교 이전의 시기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은 상실되었지만 제2차 성전시기에 통용되던 하나의 타르굼이 있었고, 이것이 전승되어 각기 다른 지역의 각기 다른 유다인 공동체들에 의해서 옹켈로스, 차명 요나단, 네오피티 타르굼 등으로 나뉘어져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람어로 번역되고 주석된 성경 타르굼의 중요성과 가치는 무엇일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타르굼의 기원은 회당에서 행하여졌던 예식이었다. 즉 타르굼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은 후 곧이어 아람어로 번역하고 주석했던 구두전승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타르굼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본문과는 또 다른, 새로운 구약성경의 본문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번역이라는 것은 새로운 본문을 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번역은 새로운 본문의 창조를 뜻한다. 그리고 타르굼은 그것이 전승되고 편집되었던 당시에 구약성경이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구약성경의 내용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모호한 부분은 상세히 설명하고, 본문의 상이한 모순을 조화시키며, 여백은 채우고, 사람들의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에 대답하며, 논란이 있었던 문제에 대하여도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르굼은 당시에 구약성경을 해석하고 주석했던 방법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타르굼은 성경 번역에 대한 연구를 위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70인역 성경과 함께 타르굼은 그리스어와 아람어에 익숙했던 유다인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도록 번역되었다. 이 번역은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상황 안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하나의 해석학적 작업인 동시에 하나의 토착화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은 특정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맞춰 항상 새롭게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타르굼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다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성경의 번역 주석인 타르굼이 구약과 신약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신약성경은 단순히 구약성경을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번역된 성경을, 더욱이 해석된 성경을 상속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제2차 성전시기의 구두전승에서 유래하여 오랜 전승과 편집의 역사를 가진 타르굼은 구약성경에서 신약성경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대해 증언하는 고마운 사료이다.
'성경자료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서의 매체/구텐베르크 성경과 성서의 번역 출판 (0) | 2010.07.30 |
---|---|
[스크랩] 가톨릭에서 바라본 개신교의 성경 이해 (0) | 2010.07.30 |
[스크랩] 신구약 성경 사본 6 (신약사본) (0) | 2010.07.30 |
[스크랩] 신구약 성경 사본 1 (쿰란사본) (0) | 2010.07.30 |
[스크랩] 신구약 성경 사본 2 (70인역) (0) | 2010.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