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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마스 아퀴나스 / 하나님 존재 증명 5가지로 설명

류성련 2014. 5. 9. 19:45

 

토마스 아퀴나스 / 하나님 존재 증명 5가지로 설명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3부로 구성된 걸작 <신학대전>서 "하나님은 확고부동한 최초의 원인"
로마가톨릭 신학 규명 위해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원리 채택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5가지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 또는 1227-1274)는  '천사적 박사'라 불리며 중세 교회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신학대전' 제1부에서 그는 하나님을 '기인되지 않는 최초의 원인'(primum movens immobile)이며, 잠재력 없고 형체가 없는 순수한 활동이라고 한다. 그분의 본질은 순수하고 완전하다. 그가 말하는 5가지 방법은 1)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시는 원동자, 2)원인들의 고리들 가운데 최초의 원인, 3)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4)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 5)그리고 이성적인 설계자이다.


생애


토마스 아퀴나스는 나폴리 왕국 로카 세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란둘프는 아퀴노의 백작이었고 모친 데오도라는 테아노의 여 백작이었다. 넷째 아들로 태어난 아퀴나스의 가족은 신성로마제국 헨리 4세와 프레더릭 2세와 친분을 가졌고, 아라곤, 카스티야, 그리고 프랑스 왕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5세에 당시 관습에 따라 그는 몽트 카시노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묵상과 기도에 전념했다.


1236년 15세의 토마스는 나폴리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학습능력은 너무나 탁월해서 문법에서 당시의 마르티니를 능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아일랜드의 피터에게 가서 논리학과 자연과학을 배웠다. 당시에는 '3학'과 '4학'으로 학문이 나누어있었는데, 3학이란 문법, 논리학, 그리고 수사학이었고, 4학이란 음악작곡, 수학, 기하학, 그리고 천문학이었다. 그러면서도 종교적 삶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나폴리 베네딕트 수도회에서 신흥 도미니크 수도회로 옮겼다.


1240년과 1243년 사이 어느 날 그는 나폴리 도미니크 수도원의 유명한 설교자 율리안의 요한의 지도를 받았다. 작은 수도원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탁월한 수도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로마, 파리, 그리고 쾰른으로 보내져서 신학을 더욱 배우게 되었다. 모친과 형제들은 그의 가는 길을 막은 적도 있었지만, 토마스는 자신의 소명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두 천사가가 나타나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더욱 더 토마스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했다.


토마스는 수도사가 될 것을 맹세하고 로마로 갔다. 로마교황 이노센트 4세는 그를 자세히 점검한 후 투턴 사람 요한에게 맡겼다. 요한은 그를 파리와 쾰른으로 데리고 가서 학문을 배우도록 했다. 그가 쾰른에 도착했던 시기가 1244년이나 1245년이었다. 쾰른에서 마침내 그는 대 알베르트에게서 배우게 되었다.


1245년 알베르트가 파리로 갈 때 아퀴나스도 학생으로 동반했다. 1248년 두 사람은 다시 쾰른으로 되돌아왔다. 1250년 쾰른에서 사제가 되어 바쁘게 설교사역에 힘썼다. 알베르트의 권면에 따라 그는 파리로 가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된다. 주로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들'을 가지고 가르치면서 그것에 관한 주석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곧 그의 걸작인 '신학대전'으로 확대된다다.


1257년 그러니까 25세 대 파리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토마스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위엄성'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보나벤투라와 토마스가 같은 날에 학위를 함께 받았다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 후부터 토마스는 기도, 설교, 작품, 그리고 여행하는 일을 했다. 그의 강의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심지어 교황들도 그를 곁에 두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아나그니, 로마, 볼로냐, 오르비에타, 비테르보, 페루지아, 파리, 그리고 나폴리 등지에서 강의했다. 그러면서 열정적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고 변증하는 작품 활동을 했다.


토마스는 때로 환상에 빠진 적이 있었다. 1273년 성체식이 있은 후 환상에 빠져 제단 앞에 놓인 십자가로부터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너는 나에 대해 잘 쓰고 있는데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러자 토마스는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1259년 로마로 부름을 받아 9년 동안 교황청에서 신학자로서 가르치고, 강의하고, 그리고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계속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교부신학을 연구했다. 1267-1268년 '신학대전'의 제1부를 완성했다. 그런 후 그는 다시 파리대학교로 부름을 받아 마지막 생애, 즉 남은 6년의 삶을 살게 된다. 1269-1272년 '신학대전'의 제2부를 썼다. 1272년 나폴리로 부름을 받아 나폴리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러면서 '신학대전'의 제3부를 완성한다. 1274년 3월 7일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작품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먼저 그는 욥, 시편 1-51편, 아가, 예레미야, 요한복음, 마태복음, 히브리 1-10장을 포함한 바울서신, 그리고 이사야 주석을 썼다. 그리고 교부들의 기념비적인 교훈들인 '황금 사슬' 등이 있다. 또 그는 철학서로, 아리스토텔레스 의 저서들에 대한 주석들을 썼다. 그리고 수많은 교의학 저서들이 있는, 그 가운데 '존재와 본질에 대하여'(1252-1256), '진리에 관한 논쟁질문들'(1256-1259), '이방인들에 대한 총론'(1261-1263), 그리고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1265~1272) 들이다.
'신학대전'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하나님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창조, 천사, 창조의 6일, 사람의 본질과 속성,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등등에 관해 119가지 질문들을 논의한다. 제2부는 사람을 다루면서 사람의 목적, 습관들, 율법의 형태, 악행과 선행들, 신중과 공의, 용기와 성품, 은혜들, 그리고 세속적 삶과 종교적 삶에 관해 303가지 질문을 한다. 제3부는 그리스도에 관해 다루면서 성육신, 성례들, 그리고 부활에 관해 90가지 질문을 하면서 논의한다. 그리고 부록으로 출교, 면죄부, 고백, 결혼, 연옥, 그리고 저주받은 자들과 성도들과의 관계에 관해 99가지 질문들을 담고 있다.


평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로마가톨릭 신학과 신앙을 규명하기 위해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원리와 개념을 채택했다. 스콜라주의의 최절정을 이루는 그였지만 이성을 통해 누구든 자신의 신앙들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을 기초한 것이다. 세미-펠라기우스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신학대전'에서

"은혜없이 진리 알 수 없어"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제2부 첫 부분의 '법률에 대하여'에서 문제 109번 '은혜의 필요성'을 다룬 부분이다.



"은혜 없이 사람이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반대 1. 은혜 없이 사람은 진리를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 없이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반대 2. 더욱이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대부분의 확실한 지식들은 태양에 의해 일어난 것들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비추신 그분이십니다. 이성은 마음에 있는 것처럼 시선은 눈에 있습니다. 마음의 눈은 영혼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순수할지라도 육신적 눈은 태양의 빛없이 가시적인 대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아무리 완전할지라도 신적 빛없이 어떤 진리라도 이성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은혜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반대 3. 더욱이, 인류의 마음은 어거스틴이 분명히 말했던 것처럼 사색으로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는 고린도후서 3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은혜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 죄 없는 자들만이 진리를 알 수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간구했다고 저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죄 없는 자들이 많은 진리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은혜로 인해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을 수 있음은 시편 51편 12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므로 은혜 없이 사람은 진리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지성적 빛을 사용하거나 그 빛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사도에 의하면(엡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습니다. 빛의 사용은 폭넓은 활동에 이릅니다. 그래서 철학자'토마스 아퀴나스, De Anima iii, 4'에서도 분명히 나타나듯이 그 사용은 생각하고 의도하는 활동이라 부릅니다. 그러한 활동에는 활동의 원리나 행위라는 형태만 아니라 원동자(原動者)의 움직임을 요구한다는 것을 유형적인 일들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유형적 일들의 순서에 있어 원동자는 하늘의 몸입니다. 불이 아무리 뜨겁다하더라도 하늘의 몸의 움직임이 없으면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유형적 활동들이 최초의 유형적 운동자처럼 하늘의 몸의 활동으로 축소되는 것처럼 모든 활동들, 즉 유형적인 활동들과 영적 활동들은 단순한 원동자로 축소됩니다. 그 원동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유형적 자연이든 영적 자연이 아무리 완전하다고 예상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 그 행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그분의 섭리의 계획에 따른 것이지 하늘의 몸의 활동처럼 자연의 필요성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활동은 원동자에게서 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형식적 완전은 최초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그래서 지성의 활동이나 피조물의 활동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습니다. 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떻게 하여 활동하든지 간에 그분으로 말미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에 의해서 활동하게 됩니다. … 모든 진리를 알기 위해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것, 지성이 하나님에 의해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든 사물들에 있는 진리를 알기 위해 자연적 빛에 새로운 빛을 덧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연적 지식을 초월하는 어떤 것에만 덧붙여야합니다. 이따금 하나님은 자연적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들에서 그분의 은혜로 인해 이적으로 어떤 것을 교훈하십니다. 이는 마치 이따금 그분이 자연이 행할 수 있는 것을 이적적으로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 1의 답변. 들려진 모든 진리는 자연적 빛을 베풀고 우리에게 진리를 이해시키고 말하도록 하는 성령으로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거룩하게 하는 은혜로 인해 우리 안에 거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에 초월하는 모든 습관적 은사를 베풀기 때문임도 아닙니다. 이것은 알려지고 들려지는 어떤 진리들에 관해 그리고 사도가 말하는 믿음에 속한 것에 관해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반대 2의 답변. 물질적 태양은 우리 밖에서 그 자체의 빛을 비춥니다. 지성적 태양이신 분은 하나님이며 우리 안에 비취십니다. 영혼에 베푸시는 자연적 빛은 하나님의 계몽이며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자연적 지식에 속한 것을 볼 수 있도록 계몽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연적 지식을 초월하는 것들을 기대합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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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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