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1)
ㅈ목사 문제, 도려낼 것인가, 덮을 것인가 아니면 제3의 길을…
2010년 10월 04일 (월) 신광은
최근 ㅅ교회 ㅈ목사의 성추행설로 한국교회가 큰 열병을 앓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교회 내부로부터 들려왔던 성 추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ㅈ목사의 성추행설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예견하셨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남다른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다 주고 있다. 이유는 추문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ㅈ목사라는 사실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ㅈ목사에게는 그래도 한국 교회의 미래요, 청년들의 지도자며, 개혁적인 인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건이 남다르게 충격적인 이유는 이 사건이 낡은 구세대의 구태적 행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개혁적인 신세대 지도자에 의해서 자행된 범죄라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마치 한국교회의 신세대조차, 즉 청년들의 세대조차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어느 목사는 이번 사건을 보고 한 마디로, "더 이상 한국교회는 없다"며 잘라 말했는데, 이는 한국교회를 향한 깊은 절망감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지난 500년 간 주류 교회로부터 외면받고, 비난받아 왔던 아나뱁티스트(재침례교도)로부터 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왜 하필 아나뱁티스트인가? 그것은 그들이 중단 없는 개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개혁을 촉구했던 종교 개혁자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들의 노선을 가리켜 급진 종교 개혁(radical reforma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성서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자신들의 교회를 초대 교회의 전통 속에 위치시키고 싶어 했다. 이러한 그들의 열정과 노력이 주류 교회에게 밉보였으며, 아직까지도 주류 교회로부터 '재세례파'라고 경멸적으로 불리며 멸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들의 그러한 열정과 그들의 긴 고난의 체험이야말로 위기에 처한 우리 한국교회로 하여금 우리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덮을 것인가? vs. 도려낼 것인가?
최근 일어난 ㅅ교회 ㅈ목사 건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편에서는 그냥 덮자고 한다. 덮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 않는가. 젊은 사람이 혈기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지만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가 다 얼마나 연약한 자들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젊은이는 선지자가 되지만 나이가 들면 제사장이 되는 법이다.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괜히 건드려서 상처만 덧나고 긁어 부스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문제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만 가린다. 그러니 교회 문제는 교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세상에 알리지 말라. 이 모든 문제를 다 보고 계시고,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만 맡기고 우리는 그저 잠잠히 기다리자. 그러니 이제 그만 덮자.
한편 반대 측 입장은 이러한 태도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최근 여당의 한 의원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해서 출당 조치되었는데, 성 추행 목사를 어찌 그냥 놔 둘 것인가? 어찌 교회의 도덕적 수준이 정치인들의 수준만도 못하느냐며 분노한다. 피해자를 생각해 보라. 피해자와 그의 가족이 당한 고난이 얼마나 큰 가? 그러한 약자의 편을 들지는 못할 망정 강자를 감싸고도는 것이 복음인가?
복음은 불의를 두호하고, 악을 권장하는가? 정죄 없는 복음을 복음이라 할 수 있으며, 회개 없는 용서가 십자가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한 악을 간과한다면 교회가 어찌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이야 말로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사실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암세포는 수술해서 도려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삽시간에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말 것이다. 자, 이제야말로 수술 칼을 들이댈 때다.
악순환
자신을 아나뱁티스트 침례교인(Anabaptist Baptist)이라고 부르는 풀러 신학교의 글렌 스타센 교수는 그의 하나님 나라의 윤리학(Kingdom Ethics)에서 이 세상에 만연한 악을 '악순환'(a vicious circle)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악순환이란 악이 점차 개선되기보다는 점점 더 악의 공고한 세력을 만들어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굴레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그의 악순환이라는 개념은 헤겔의 변증법과는 사뭇 다르다. 헤겔은 정과 반이 충돌하여 변증법적 긴장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제 3의 합(合)이라는 대안적 종합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하지만 스타센 교수의 악순환 개념은 정과 반이 충돌하면 대안이 만들어지기보다는 우리 인간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덫이요 굴레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예컨대, 손이 범죄 하면 손을 잘라 버리고, 눈이 범죄 하면 눈을 뽑아 버리라는 복음서의 가르침이 있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죄를 지으면 진짜로 손을 자르고 눈을 뽑아야 한다고 보는 엄격주의자가 있다. 반대로 손을 자르거나 눈을 뽑을 수 없으니 죄를 지어도 놔두어야 한다는 관용주의자가 있다. 이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 답이 찾아질까? 아니다. 도리어 복음서 독자를 혼란과 혼돈 가운데로 빠뜨릴 가능성이 많다. 이도 저도 못하니 아예 그 본문을 피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스타센 교수가 말하는 악순환이다.
완전히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ㅈ목사 건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이러한 악순환의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은 대체로 스타센 교수가 말하는 악순환의 형태로 고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통상 그 교회는 친목사파와 반목사파가 척지게 된다. 각각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성서의 본문을 끌어오기도 하고, 신학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변호하고 상대방을 비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양측은 파워 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그래서 누가 더 힘이 세냐가 점차 문제의 본질이 된다. 방관자는 둘 중 한 편에 서거나 안 그러면 교회를 떠난다. 갈등은 애초의 문제의 사안에서 떠나 '너 죽고 나 살자'식 전투로 변질된다. 그렇게 되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기려고 하고, 그러한 와중에서 남는 것은 오로지 '전투 논리'뿐이다. 비방, 욕설,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공간과 건물을 점령하고, 대자보가 나붙고, 전단지가 뿌려지고, 스프레이와 래커 글씨가 어지럽고, 심지어는 용역들까지 왔다 갔다 한다. 그야말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어느 한편이 굴복할 때까지 계속된다. 다행히 한 편이 굴복하면 싸움은 멈추지만, 양측 모두 힘이 비등하면 결국 법정으로까지 가고 만다. 물론 패배자는 제거되고 교회는 승자만 남게 된다. 세상의 법정이 문제를 가려내 주도록 교회의 문제를 들고 가는 것이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러는 이러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찌감치 전투를 포기하시는 나름 훌륭한 분들이 계시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분들의 백기 투항은 갈등의 회피이지, 갈등의 해결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한국교회는 교회 내의 갈등을 용서와 단합, 치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 길을 갈 의지와 용기가 없는 모양이다.
제3의 길
아나뱁티스트들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다. 숱한 순교자들이 피로써 써 내려간 피의 역사가 바로 그들의 교회사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 외부로부터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 중단 없는 도전과 갈등에 직면해 왔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항상 제3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제3의 길을 찾아냈으며, 그 길을 따라서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놀랍게도 그들의 제3의 길은 세속 정부와 행정가들 및 사법부 관계자들조차 머리를 숙이며 배우기를 청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이다. 회복적 정의란 법정의 정의를 죄에 대한 징벌로 보는 것이 아니라 뉘우치고, 잘못을 돌이키는 것, 나아가 가해자 및 피해자의 관계의 회복으로 보는 것이다. 프레스노 메노나이트 브레스런 대학에서는 COSA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는데,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은 성폭행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이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회복되고 살려야 한다는 것이 아나뱁티스트들이 취하고 있는 제3의 길이다.
아나뱁티스트의 제3의 길은 한마디로 구속적 길(redemptive way)이라고 할 수 있다. 구속적 길은 모두가 사는 길을 말한다. 서로 상충되는 양자 간의 갈등에서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패하는 윈-루즈(win-lose) 모델이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양자 모두 살리는 윈-윈(win-win) 모델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델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나왔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시면서도 그들에게 치마를 해 입혀 주신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아나뱁티스트가 강조하는 구속적 길이다.
자녀가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것을 알았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모르는 체 할까? 안 된다. 그러면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엄히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까? 이것 역시 교육적으로 좋지 못하다. 자칫 잘못하면 자녀에게 분노와 반발심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 부모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도둑질한 자녀를 혼내고 벌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다시 얻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죄인에게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교회의 치리에 반영하고자 노력해 왔다. 필자는 이들의 노력과 성과가 한국교회에 큰 유익을 줄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필자는 몇 번의 기고를 통해서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와 갈등, 죄와 악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아나뱁티스트들이 실천해 왔던 제3의 길, 곧 구속적 길을 적용해 볼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첫 걸음: 고통과 함께 걸으라
제3의 길을 걷기 위한 첫 걸음은 고통에 대한 태도를 확정하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이 보기에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도려낼 것이냐 덮을 것이냐를 두고 논쟁할 경우, 양편 모두 범하고 있는 오류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두 편 모두 교회에서 발생한 고통을 서둘러 제거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마치 몸이 아플 때 환자의 제1관심은 어떻게 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까 하는 것처럼 양편 모두 교회 내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서둘러 종결할 것인지가 그들의 지상 최대 관심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덮자는 사람의 편에서는 상처는 건드리면 덧나고, 긁어 부스럼이 생기니 더 큰 고통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덮자고 한다. 도려내자는 사람은 암세포는 놔두면 온 몸에 퍼지니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도려내서 애초에 싹을 자르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나뱁티스트가 볼 때 양편 모두 고통의 제거 내지는 감소를 최대의 관심사로 삼고 있는 것 같다는 점에서 동일한 입장에 서 있으며, 이 입장은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한 손에는 삶(living)을, 또 한 손에는 고통(suffering)을'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500년 동안 거의 내내 고통을 받아 왔다. 1~2년이 아니라, 500년 동안 수 십 세대에 걸쳐서 이어지는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들은 그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고통이란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은 함께 걷는 친구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소한 우리만큼은 말이다.) 그리고 고통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 내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은 절대로 그 문제를 덮어 두지 않는다. 덮어 두려는 시도는 고통을 회피하겠다는 태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을 서둘러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도 쉽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 사는 세상에서 손쉽게 제거될 수 있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주시함
그렇다면 그들이 취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들은 문제를 주시한다. 계속해서 주시한다.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별될 때까지 보고 또 본다. 물론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다. 이것은 마치 태양을 한사코 똑바로 쳐다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회피하지 않는다. 문제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들은 뭘 하는 걸까?
첫번 째로, 모두가 그 문제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어느 누구도 열 외자는 없다. 문제를 일으킨 '그(녀)'와 문제를 바라보는 '나'는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문제에 연루되어 있으며, 따라서 모두가 그 고통을 함께 나눈다.
두 번째로는 문제를 주시하면서 그 문제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과 다르다. 인간이 기껏 찾아낼 수 있는 길은 덮을 것이냐, 도려낼 것이냐 하는 두 가지 정도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무궁무진한 해결 방법이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 사안별로, 개인별로, 상황별로 그에 맞는 제3, 제4, 제5의 해결 방법을 하나님께서는 만들어 내실 수 있다. 물 가운데로도 길을 내시고, 불 가운데로도 길을 내신다. 성경을 통해서, 신학자들의 글을 통해서, 이웃 교회의 자문을 통해서, 그리고 공동체 식구들의 진지하고 정직한 논의를 통해서 그들은 길을 찾는다.
세 번째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주시는 길은 구속의 길, 곧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모두에게 임하는 구원의 길을 찾는다. 갈등 당사자 모두와 공동체가 살아나는 길, 피해자를 회복하고, 위로하고, 보상하는 길, 동시에 가해자를 쳐내지 않고, 다시 얻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맞아들이는 길을 찾는다.
물론 어떤 경우는 오랜 기간 동안의 논의를 통해서도 마땅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자신들에게 지혜가 부족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공동체가 그렇게 오랫동안 특정 문제를 주시하고, 바라보고, 함께 아파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발휘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살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필자에게 '너는 누구냐? 아군이냐, 적이냐'라고 물어 오실 분들이 분명 계실 줄로 믿는다. 필자는 양편 중 어느 편을 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는 길, 그리고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실 것이리라는 소박한 믿음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2)
비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2010년 10월 21일 (목) 신광은
필자는 그동안 교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여러 문제들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청년들을 여럿 만났다. 이들은 그런 문제들을 보면 지적하고 비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물어왔다. 또 말을 한다면 누구에게 해야 하는 건지,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다가 부조리와 문제를 고쳐 나가는 데는 교회가 세상보다 못한 것이 아니냐고 온 마음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소위 교회 내의 '의식 있는' 청년들은 신앙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간파해 내지만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혼자서 끙끙 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섣불리 공론화했다가는 교회 어른들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하고, 왕따 당하기도 하고, 잘못하면 설교 시간에 직격탄을 맞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에 맞는 몇몇이 모여 자조적인 뒷담화를 하거나, 혹은 침묵하거나, 혹은 교회를 떠나 버린다. 만일 우리가 교회 내에서 어떤 부조리나 범죄, 혹은 문제를 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판해야 할까? 아니면 침묵해야 할까?
1. 악순환
1) 침묵할 것인가?
한국교회 교인들 대부분은, 특히 목회자나 중직자들은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침묵파의 가장 큰 주장이다. 그러면서 침묵파는 비판하는 사람에게 "먼저 당신의 들보를 빼시오"라고 쏘아붙인다. 그러니까 너는 뭘 얼마나 잘하느냐는 역공이다. 이와 비슷하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시오"라는 간음한 여인을 변호하시면서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끌어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는 바울의 주장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누구나 다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뭐 대충 이런 논리다.
또 복음은 정죄나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고, 용서고, 덮어 주는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고 한다. "요한복음 3장 17절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도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하물며 감히 우리 인간이 어찌 다른 형제자매를 심판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저 사랑할 뿐…"이라고 말한다. 또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봐라. 지금 네 마음속에 사랑이 있는가?"라고 따져 묻기도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왠지 그렇다고 답하기 곤란해진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할 일은 용서"라는 말은 단골 메뉴다.
좀 강경한 침묵파가 있다. 이들은 "당신의 말이 당신의 인생을 이끌 것이다"라는 섬뜩한 말을 하기도 한다. 풀어 보면,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은 인생도 그렇게 잘 풀려 갈 것이지만,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인생도 그렇게 꼬여 갈 것이라는 일종의 저주다. 이와 비슷한 저주로는 교회와 목회자를 대적하면, 고라당과 같이 죽임을 당하거나, 아론과 미리암같이 중병에 들 것이라는 간담이 서늘한 협박을 내뱉기도 한다.
조금 온건한 침묵파는 교회의 덕을 고려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만일 네 비판이 교회 전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침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개중에 좀 너그러운 사람은 "네 말뜻은 옳다. 하지만 네 태도는 옳지 않아"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기도 한다. 아직 인격이 성숙하지 않아서, 혹은 아직 어려서 그렇게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기분 나쁜 그러나 점잖은 충고를 하기도 한다. 또 "나는 네 말을 이해하지만 교회는 분명 네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별 효과도 없는 말을 해서 너에게 도움될 일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지내라"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판하지 말고 조용히 입 다물고 지내라는 것이다.
2) 비판할 것인가?
그런가 하면 교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문제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종의 선지자적인 기질의 소유자다. 그들은 교회가 세상보다는 더 나아야 하고,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때문에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하기를, "'PD 수첩'이나 '추적 60분', 혹은 '긴급 출동 SOS'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보라. 세상의 TV 프로그램도 감추어져 있던 비리를 고발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사회를 개혁하고 개선하는 데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왜 교회는 그러한 세상만도 못하는가?"라며 슬퍼한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비리와 범죄, 부조리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침묵파의 주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주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주님 자신이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지 않으셨는가? 또 예언자들을 보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왕들을 향해 소리 높여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았는가? "내게 사랑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결국 비판의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 아닌가?" "용서하라고? 용서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지, 잘못이라고 인정도 하지 않는 자에게 용서하는 것이 주님의 용서인가?"
그들의 주장 이면에는 자고로 비판을 건강하게 제기하고 이를 또한 건강하게 수용하는 사회가 개선될 여지도 있는 것이다. 모든 비판을 막아 버린 전체주의 체제는 필경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목회자와 교회가 안팎의 비판에 귀를 계속해서 막는다면 필경 교회는 전체주의화되고, 끝내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예견이다. 교인들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온갖 비성서적인 공갈과 협박으로 막아 버린다면, 그리고 교인들을 무조건 '아멘' 성도가 되게 만든다면 그런 교회는 자끄 엘륄이 말한 것처럼 '행복한 저능아'를 만드는 단체가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교회의 덕을 말한다면 생각해 보라. 비판을 막는 것이 교회에 덕이 되겠는가, 아니면 교회가 비판을 건강하게 수용하는 것이 교회에 덕이 되겠는가? "내 태도가 문제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날을 세우는 이유는, 비판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침묵파 때문이다. 설령 내 태도가 문제라고 하더라도 내가 제기하는 비판과 문제 제기 자체가 옳다면 그것은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교회가 끝내 비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에는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런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비판을 들으라는 것이다.
2. 제3의 길
아나뱁티스트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제3의 길을 추구한다. 제3의 길이라고 했을 때 이는 완전히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위의 두 가지 주장 중에서 좋은 것들만을 가려 뽑아서 만드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서의 가르침이고, 이러한 제3의 길이야말로 현실성이 있는 진짜 대안이라는 것이 아나뱁티스트의 생각이다.
글렌 스타센은 그의 <하나님나라의 윤리학>(가제, 대장간 근간)(<Kingdom Ethics>)에서 이러한 제3의 길을 '변혁적 주도 행위(transformative initiative)'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팽팽하게 맞서는 두 가지 적대 세력이 충돌할 때,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파괴적인 열매를 맺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때 이러한 악순환을 깨부수고 주도적으로 진정한 대안을 창조해내는 행위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변혁적인 주도적 행위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나뱁티스트의 제3의 길은 가해자나 피해자, 어느 한쪽에게 손을 들어주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사는 구원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더 나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원수 관계를 다시 이어 주고, 화해와 치유가 가능한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물론 이러한 길은 기존의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어찌 보면 제3의 길은 '위장한 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훼의 군대 장관은 이스라엘 편도, 가나안 족속 편도 아니었다. 도리어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이 야훼의 군대 장관 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 4:13~15)
자 그렇다면 비판할 것이냐, 침묵할 것이냐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상황에서 제3의 길은 무엇일까?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서의 가르침에서 그 길을 찾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에베소서 4장 15절이다. 개역 성경보다는 새 번역이 본문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밝혀 주고 있는데 인용해 보자.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아나뱁티스트들은 이 말씀, 즉 "Speak truth in love"라는 구절을 교회나 집에다 써 붙여 놓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나 가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그들의 해결 방식이며, 이것은 일종의 제3의 길이다.
1) 진실을 말하라
만일 목회자나 교회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말해야 하느냐, 침묵할 것이냐만을 두고 아나뱁티스트의 입장을 묻는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공동체며,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나라의 현존의 징표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빛과 진리가 왕 노릇해야 한다. 때문에 교회에는 일절 위선이나 가식이 있어서는 안 되며, 문제나 비리를 은폐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가식 없이 진실을 말할 때 성령께서 온전히 운행하실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진실 말하기는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실을 말한다고 했을 때 이는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나 판단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말하는 이는 무엇보다도 사실을 말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야 하며, 이때 그 사실에 대한 자신의 평가나 판단은 배제해야 한다. 예컨대, "장로님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그런 OO를 하실 수 있나요?"라는 식은 진실 말하기가 아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뜻은 A라는 교인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정확히 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고 난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건에 대해서 자신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자신이 그 일에 대해서 받은 느낌도 평가나 판단이 아니라야 한다. 거대한 담론을 끌어와서 옳고 그름을 논단하는 것은 진실 말하기가 아니다.
또한 진실 말하기는 과장되거나 축소해서 말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는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당신은 만날(언제나) 행동이 그따윕니까?"와 같은 수사는 진실 말하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것도 진실 말하기가 아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애매하거나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바로 진실 말하기다. 평가하지 않으면서 직접 커뮤니케이션(direct communication)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작은 일에 상처를 받아 놓고, 자신이 상처를 받은 작은 일은 말하지 않은 채, 큰 담론을 끌어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진실 말하기가 아니다. 이처럼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이것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을 하다 보면 비판을 잘하는 사람도 사실은 자신이 의외로 진실을 잘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 사랑 안에서 말하라
"Speak truth in love(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라)." 아나뱁티스트는 우리가 진실을 말할 때, 반드시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랑 안에서 말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말할 때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라는 뜻인가? 물론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목적이 궁극적으로 사랑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죄나 문제를 바라볼 때 그 죄나 문제에 시선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깨어진 관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와 B가 다투다가 A가 B에게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혀 치료비가 100만 원이 나왔다고 해 보자. 만일 이 사건을 사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A는 B에게 치료비 100만 원과 심적인 위자료에 해당하는 변상 의무를 지게 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한 만큼 형사 처분을 받아야 한다. 만일 A가 형사 형벌을 받고 변상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해보자. 그럴 경우 사법적으로 그 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둘 사이는 영원히 원수 관계가 되고 말았는데 말이다.
관계라는 점에서 봤을 때 형벌이나 변상 의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 해결은 A와 B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선이다. 물론 그러한 관계 회복이 립서비스가 아니라 참되고 진실하기 위해서 A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B에게 용서와 선처를 구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서 A의 치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B도 A의 잘못에 대해서 보복하고 싶거나,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만큼 고통을 되안겨 주고 싶은 욕망을 제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A와 B, 모두는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진실을 말하는 것, 이것이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는 반드시 얘기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얘기는 반드시 대화라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거나, 가르치거나,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와 연루된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진실한 대화가 공동체를 공동체 되게 한다. 대화가 없는 공동체는 공동체라고 하기 어렵다. 아나뱁티스트들은 대화의 능력을 신뢰한다. 무엇보다 사랑을 세우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의 대화라면 성령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고 신뢰한다.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주제든 가리지 않고, 모든 문제에 대해서 관련 당사자들이 성실하고, 신실하고, 책임감 있게 대화에 나서라고 조언한다.
3. 마태복음 18장의 화해 프로세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 대원칙이라면, 마태복음 18장 15~20절은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대화의 절차와 과정을 보여 준다. 흥미롭게도 이 말씀은 '용서'라는 큰 주제 안에 있는 주님의 가르침이다. 용서는 잘못을 대충 눈감아 주거나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책망이나 징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용서란 '형제(자매)를 다시 얻는 것'의 다른 말이다. 죄지은 우리의 형제(자매)를 다시 공동체 안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용서다.
본문에서 주님은 용서의 방법에 대해서, 즉 죄지은 형제를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다. 건강한 공동체는 죄를 다룰 줄 안다. 마치 능숙한 조련사가 사나운 개를 다루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공동체는 죄를 음지가 아니라 양지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공동체는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화들짝 놀라거나 충격을 받는다. 놀라거나 충격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죄인인데도 말이다. 죄인이 죄를 짓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물론 죄짓는 것이 당연하거나 옳다는 뜻이 아니다.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죄는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 죄를 짓는다. 안 그런 척할 뿐이다. 잘 은폐되던 죄가 어쩌다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사람들이 놀라고, 충격을 받고, 실족한다. 이것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도의 증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며, 또한 공동체가 죄와 악 앞에 무력하다는 뜻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죄나 갈등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들은 만일 우리가 인간이라면 갈등은 있기 마련이고, 우리가 죄인이기에 늘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복음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 죄를 지으면 그를 공동체에서 도려내려고 하지 않는다. 형제(자매) 중 한 명이 넘어진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그를 다시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1)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교회 안의 누군가 죄를 지은 것을 한 사람이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그것을 본 사람이 당사자와 직접 일대일로 상대하여 권면해야 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아나뱁티스트 신학자 존 요더(John Yoder)는 그의 <몸 정치학>(가제, KAC 근간)(<Body Politics>)에서 주님의 이 가르침의 중요성에 대해서 힘주어 역설한다. 그는 여기서 목사나 장로, 사모, 집사, 권사, 전도사 등 그 어떠한 사역자가 아니라, 그 문제를 목격한 자가 그 죄를 지은 형제(자매)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가르침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권면이나 권징을 목회적 특권으로 여겨 왔던 가톨릭교회나 대다수 개신교회에게 큰 도전을 준다.
아나뱁티스트는 이 말씀을 공동체 안에서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상호 권면과 권징의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것이 그들이 이해하는 만인 제사장의 의미다. 이렇게 했을 때 그 형제(자매)의 죄는 음지가 아니라 양지로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찾아가는 자가 선생이 학생을 책망하듯, 그렇게 잘못한 형제(자매)를 꾸짖고 책망해서는 안 된다. 죄를 지은 자, 혹은 잘못을 범한 자에게 그가 한 잘못을 직접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대로 정확히 일러 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몰래 은밀하게 짓는 죄를 밝히 드러내서 깨닫게 하여, 그 죄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 이 대화의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대화는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라'는 원칙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이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제3자에게 일절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형제(자매)의 죄나 문제를 제3자에게 발설하는 순간 죄의 권세는 양지가 아니라 음지에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힘은 바로 뒷담화다. 뒷담화는 죄가 어둠 속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죄는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반드시 당사자 간에 대화를 먼저 해야 한다.
당사자끼리 먼저 대화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죄지은 형제(자매)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즉 그가 느낄 수치심을 최소화해서, 가급적 방어적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그가 죄를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공적이기보다는 덜 공적인 형식의 대화를 시도하라는 것이다. 간혹 어떤 공동체에서는 초대 교회가 회중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적으로 고백했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공적으로 고백하도록 강요하곤 하는데 이는 주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실천이다. 본문은 결벽증적 율법주의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구속력이 약한 덜 공식적인 대화로부터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러한 덜 공식적인 대화는 사법적 효력도 없다. 율법에 따르면 공식적인 증언은 2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화가 덜 공식적이니만큼 대화를 통해서 죄지은 형제(자매)의 사정도 이해하고, 그의 말을 잘 경청할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생긴다. 따뜻하고 격려하는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이 대화가 결국 형제(자매)를 다시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만일 형제(자매)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을 반성하며, 죄에서 돌이키겠다고 응답하면 죄의 권세는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넘어졌던 형제(자매)가 권면하는 형제(자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을 다시 얻을 수 있게 된다. 누가 얻는가? 권면한 사람은 물론이고, 공동체, 그리고 그리스도가 귀한 한 형제(자매)를 죄의 권세에서 다시 빼앗아 올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할 경우 권면한 형제(자매)는 넘어졌던 형제(자매)를 기도로 도우며, 그가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물론 제3자에게는 발설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종종 전문적인 치유 그룹이 필요할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당사자와 협의해서 치유 그룹 안에서 치유해 나갈 수도 있도록 도울 수도 있다.
2) 두세 증인의 입으로…확증하게 하라
하지만 종종 죄를 지은 형제(자매)가 자신의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니 아주 많다. 그러면 최초로 권면했던 형제(자매)는 신뢰할 만한 다른 형제(자매), 한두 명을 더 데리고 가서 권면해야 한다. 이때 역시 권면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들 이외의 3자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뒷담화는 금물이다!
두세 명을 더 데리고 가는 이유는 넘어진 형제(자매)가 한 사람의 권면을 경홀히 여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진지한 권면을 하기 위해서다. 아울러서 두세 사람이 함께 권면에 참여할 때 이제 이 문제는 다분히 공적인 사안이 된다. 따라서 넘어졌던 형제(자매)가 권면을 더 이상 사사로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된다. 또한 두세 사람의 증언은 법적인 증언의 효력을 발생하게 되며, 그만큼 대화는 구속적이 된다. 이것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증인을 확보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물론 이때의 대화도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라'는 원칙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보다 주의 깊은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종종 논의되는 문제의 사안이 복잡한 경우가 있다. 즉 명확하게 '죄'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그러한 사안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때에 따라서는 권면하는 형제(자매)의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이 반영되어 생겨난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성숙하고 현명한 지도자들이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행여나 그릇된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면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신중한 대화와 논의는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분별하고 그다음 조치를 어떤 식으로 해 나가야 할지를 정할 수 있게 된다.
3) 교회에 말하라
두세 사람의 증인의 말에도 듣지 않을 경우 교회 전체에 알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교회'를 단 두 번 언급하시는 데, 한 번은 마태복음 16장의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한 번 하고, 여기서 또 한 번이다. 그런데 두 번 다 주님은 교회가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교회의 권세는 하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즉 교회의 결정은 그만큼 중요하며, 권능이 부여된다는 뜻이다. 법원으로 치면 교회 공동체는 최고 법원 내지는 최종 심급이 된다는 뜻이다. 교회는 놀라운 치리 권능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이를 요더는 묶는 권세(binding)와 푸는 권세(loosing)로 표현했다.
교회에 알리라고 했을 때, 이제 한 사람의 문제는 교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그와 함께 교회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분별하고, 성실하게 판단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된다. 이것은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당회나 제직회, 혹은 사역자 회의에서 독점적으로 논의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한국교회의 몇몇 경우와 상반된다. 교회 전체는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성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만일 교회가 일치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판결한다면, 당사자는 이를 주님의 뜻으로 여기고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종종 교회 전체가 한 가지로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에는 교회 전체가 합의할 만한 긴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때로는 성서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며, 또 때로는 신학적인 전문적 연구가 필요하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 과학적 분석이 요구되기도 하고, 역사적, 문화적 연구가 병행되기도 하다. 그러한 긴 논의 과정에 한 사람의 목소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합의에 이르는 결정이라면 그것은 주님께서도 인정하시는 권위 있는 결정이 되리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문제의 주인공이 교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제 교회의 결정은 주님께서 부여해 주신 권능 있는 가르침이 되며, 그는 여기에 복종해야 한다.
4) 이방인과 세리같이 여기라
하지만 끝내 교회의 권면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교회는 그를 교회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쉽게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그러한 결정은 모든 교인이 동의하고 합의한 주님의 뜻에 근거해서 내려져야 한다. 어느 날 담임목사가 강단에 올라가서 전후 과정을 생략한 채 '모년 모월 모시로 OOO 형제(자매)는 교회에서 출교되었음을 알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얻기 위해서 교회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치리와 권징은 혼내고, 벌주고, 내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자매)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치 않는 자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니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제자도 아니며, 교회의 구성원도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는 더 이상 교회 안에 있을 수 없다.
4. 이것이 가능한가요?
문제는 과연 한국교회에서 이러한 프로세스를 거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글쎄,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이것이다. "이것은 대안이다. 아니 이것만이 대안이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해서 대안이 대안이 아닐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대안이 아닌가?
아니다. 불가능하지 않다. 왜냐? 아나뱁티스트들, 특히 메노나이트 교회에서는 지난 500년 간 이러한 프로세스를 신중하게 연구하고 개발하고 실천해 왔다. 비록 그들도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은 분명 한국교회에 비해서 월등하게 주님의 이 가르침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러니 불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분명 가능한 대안이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성서적인 대안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하기 어려울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이 고상한 가르침을 준수하기를 위해서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애초에 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회가 공동체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동체를 이루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메가 처치 현상이 휩쓸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공동체의 참된 의미는 잊혀진 지 오래다. 자 한 번 생각해 보라. 힘겨운 일이겠지만 어느 교회가 마태복음 18장의 화해 프로세스를 충실히 거쳤다고 해 보자. 그랬는데도 죄인이 끝내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 그 교회는 죄인을 쫓아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죄인이 쫓겨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주부터 다른 교회로 출석해 버릴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시장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인 것이다. 게든 고동이든 아무나 찾아오면 무한 환영을 하는 시대에 징계나 치리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교회는 첫 단추부터 다시 끼어야 한다. 즉 교회가 공동체를 세우는 노력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이다. 다소 허탈한 결론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도다. 필자는 이러한 식의 분석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석은 한국교회가 근본에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며, 또 한국교회가 어느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아나뱁티스트에게서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아나뱁티스트에게 배우자 3 - 봉은사 땅 밟기 유감 (1)
봉은사 땅 밟기 사태에 대한 아나뱁티스트적 이해
2010년 11월 04일 (목) 신광은
최근 강남 땅 한복판에 자리 잡은 천 년도 넘은 어느 고찰에서 땅 밟기를 한 몇몇 용감한 크리스천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덕에 땅 밟기가 요즘 장안의 화제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도 예전에 뭘 잘 몰랐을 때, 땅 밟기 여러 번 했다. 물론 소심해서 남들 모르게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기도와 찬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땐 정말 아주 진지하고 순수(?)했다. 그래서 이번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속으로 적잖이 뜨끔했다. 아마 필자와 비슷한 심정인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뉴스앤조이>에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뉴스앤조이>에 올라오는 글들 대부분은 땅 밟기를 미신적 행위요, 비성서적 행위라고 규탄하고 있다. 어느 분은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에게 사과의 글까지 써서 게재했다. 하지만 모 선교 단체의 최 대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섬으로써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그는 말하기를 "할 수만 있으면 불교 절간에서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집에까지 방문하여 우상에서 벗어나도록 축복하며 기도해야 한다"며 땅 밟기를 두둔했다. 거 참.
1. 문제의 핵심
땅 밟기, 과연 옳은가, 그른가?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땅 밟기가 옳지 않다면 대체 뭐가 문제인가? 이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봉은사 땅 밟기 문제를 논하면서 많은 분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단순히 땅 밟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보다 더 깊은 데 있다. 따라서 땅 밟기를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 제국주의이다. 사실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선교 팀 피랍 사태나 공중파 TV를 통해서도 문제시된 무례한 노방 전도 등도 따지고 보면 봉은사 땅 밟기와 비슷한 문제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장관 및 정부 관료들, 기독교 편향적 MB 정부의 종교 정책, 거기에 장단을 맞추는 주류 개신교회의 맞장구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봉헌, 소망교회 신도 내각, 불교 폄훼, 단군상 파괴, 성시화 운동 등도 따지고 보면 땅 밟기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는 해프닝들이다. 기독교로 대한민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열정인 것이다.
천 년 전, 이교도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겠다며 군대를 동원했던 십자군들처럼, 이 시대의 땅 밟기 용사들은 불교도의 손에서 사찰과 명승지를 탈환하겠다며 거룩한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계각층에서 크리스천들이 고지를 선점하고, 각 분야와 영역을 탈환하겠다고 열정을 바치고 있다. 비록 그들의 열정은 순수하고 갸륵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성서 계시와 무관하다. 그들의 열정과 행동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기독교 제국주의의 영성이다.
2. 유일신관과 기독교 제국주의
1) 성서와 제국주의
그렇다면 기독교 제국주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현한 것일까? 기독교 제국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기독교 제국주의의 기원을 성서의 유일신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서는 야훼만이 유일한 신(神)이며, 예수만이 유일한 구주(救主)라고 가르친다. 성서가 하나님을 유일신(唯一神)이라고 했을 때 이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고 다른 신은 전부 가짜라는 뜻이다. 구약 성서에 따르면 야훼 이외의 다른 신들은 모두 우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십계명의 제1계명이다. 같은 논리로 신약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원의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고 가르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언뜻 보면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으로부터 기독교 제국주의가 출현한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구약에 나타난 거룩한 전쟁, 헤렘(herem)도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기독교 제국주의가 출현한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헤렘은 그리 단순한 주제가 아니니 여기서는 일단 건너뛰기로 하자. 다만 구속사라는 보다 큰 맥락에서 봤을 때 헤렘과 제국주의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점만 여기서 밝히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구약의 헤렘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계시의 궁극이요, 완성이며,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판단의 최종 심급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살피면 된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제국주의를 지지하는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은 기독교 제국주의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 속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로, 그리고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격렬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단일 의지의 지배하에 두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제가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이, 땅에는 하나의 황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정확히 제국주의의 본질을 말했다. 제국주의는 나와 다른 남을 용납하지 않는다. 타인을 집어삼켜서 자기화한다. 제국주의 체제하에서 지상의 모든 것들은 단일한 통치 의지의 지배하에 종속된다. 타자는 없고 확장된 자아만 존재한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는다. 자유는 억제되고 지배만 존재한다. 이것이 제국주의다.
하지만 예수는 우리를 지배하기 원치 않으셨으며, 도리어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예수는 황제가 되시기보다는 형제가 되는 것을 기뻐하셨다. 그리고 제자들더러 세상의 주관자나 대인과 같이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라고 도리어 남을 섬기는 종이 되라고 명하셨다. (마 20:25~27)
복음서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예수님의 모범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면서도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요한은 이를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으려면 그런 사역을 하지 말라'며 그들의 축귀 사역을 금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님은 요한에게 그들을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막 9:40) 주님의 이 말씀에 따르면 주님을 적극적으로 반대만 하지 않으면 모두 주님의 편이다. 주님은 주님의 길을 가시고, 다른 이들은 다른 길을 가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그들을 포섭하지도 맞서지도 경쟁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놔두셨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일이 생겼다. 제자들이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가서 주님이 묵으실 곳을 마련코자 했다. 하지만 예수 일행의 행선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마을 사람들은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분노한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구한다.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9:54) 흥미롭게도 이들의 기도는 땅 밟기 용사들의 기도와 많이 닮았다. "주님, 이 사찰이 무너지게 하시고 불상이 파괴되게 하소서. 이 땅에 주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예배하는 무리가 서게 하소서."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그러한 요구를 듣고 격노하셨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의 제국주의적 영성에 분노하셨던 것이다.
3. 판테온과 콜로세움
사도들의 신앙의 핵심은 예수가 '주(kyrios)'시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군중들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2:36) 여기서 주(主)란 퀴리오스(kyrios), 즉 왕이나 황제와 같은 주군(主君)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퀴리오스라는 말은 그 자체로 '유일신관'을 함축하는 말이었다. 어느 나라든 왕은 한 명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퀴리오스도 한 분뿐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이 복음의 정수요, 사도적 신앙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유일신관이 초대 교회가 로마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주된 이유였다. 사실 로마의 종교 정책은 대단히 관대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제국과 카이사르에게 충성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수 민족들의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 시시콜콜하니 간섭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대함, 곧 톨레랑스의 정신이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곳이 바로 판테온(Pantheon)이다. 판테온은 축구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모양의 거대한 돔형 신전이다. 판테온 신전에는 어떤 신이 안치되었을까? 그 안에는 로마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세상의 모든 신들이 다 안치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신전을 판(pan)-테온(theon), 곧 만신전(萬神殿)이라고 불렀다.
물론 로마 정부는 기독교인들이 원한다면 예수도 그 안에 안치해 줄 수 있노라고 제의했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이러한 제안을 무척이나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감히 그리스도를 이방신들과 동격으로 여기다니! 그리스도 이외의 참 구주는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만신전의 숱한 신들 중 하나(a god)일 수 없었다. 하나님도 한 분이고, 그리스도도 한 분이고, 퀴리오스도 한 분이다. 그분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신앙이 가지는 극단적인 배타성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초대 교회의 이러한 신앙은 로마 황제의 권위도 상대화시켜 버렸다. 로마 정부는 황제를 제국민이 전적으로 충성을 바칠 지존자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소위 '황제 숭배' 이데올로기의 요체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행정 기능만 인정했을 뿐 상징적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절대 충성을 바칠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 로마 황제는 퀴리오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한 인간일 뿐이었다. 퀴리오스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 숭배를 단호히 거부했다. 바로 이것이 박해를 자초한 원인이었으며, 초대 교인들을 콜로세움의 사자 밥이 되게 만든 이유였다.
초대 교인들의 신앙은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결코 제국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교도를 정복하고, 국가를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늘 스스로를 국가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자들로 여겼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신비로운 타자로 존재했으며, 그러한 타자성을 거룩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교회는 결코 기독교 신앙으로 제국을 정복하겠다는 정복주의를 취하지 않았다. 2~3세기로 넘어가면 1세기 때 그토록 활발히 행했던 전도와 선교조차 별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꺼렸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주님의 이름으로 칼과 창을 가지고 이교도를 굴복시켜 개종시키겠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를 제국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요, 그들을 섬기는 자들로 여겼을 뿐이다.
4. 크리스텐둠(Christendom)과 기독교 제국주의
기독교 제국주의는 성서의 산물이 아니다. 성서의 유일신 사상은 기독교 제국주의와 무관하다. 기독교 제국주의가 역사에 제대로 등장한 시점은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이다. 그때 비로소 제국과 기독교가 결합하게 된다. 기독교(Christianity)와 제국(kingdom)이 결합하여 생겨난 체제를 크리스텐둠(Christiendom)이라고 한다. 크리스텐둠은 보통 기독교 국가 체제, 혹은 기독교 왕국 등으로 번역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크리스텐둠이라고 하겠다.
크리스텐둠은 기독교와 국가 체제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유럽의 거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총체를 말한다. 학자들은 크리스텐둠이 4세기에 등장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약 1,700년 동안이나 서구 사회를 지배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크리스텐둠이 기독교 제국주의의 기원이 된다. 그리고 이 기독교 제국주의가 이번 봉은사 땅 밟기를 가능케 한 원인이기도 하다.
크리스텐둠에서 기독교는 유일한 종교(the Religion)며, 기독교 진리도 유일한 진리(the Truth)가 된다. 여기까지는 성서의 유일신관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크리스텐둠에서 이교도는 개종되거나 아니면 타도되어야 할 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타 종교는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타 종교는 색출해서, 발본색원해야 할 악의 뿌리다. 이교도와 이단자는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고문하고, 죽여야 할 악마의 자식들이다. 크리스텐둠에서는 원칙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없다. 신앙의 자유도 없고, 양심의 자유도 없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텐둠에서의 기독교 제국주의의 특징이다.
기독교 제국주의는 기독교가 최소한 두 가지의 제국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졌다. 하나는 철학적 영향이고, 또 하나는 국가의 영향이다. 철학으로부터 기독교는 인식적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고, 국가로부터는 정치적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1) 인식적 제국주의의 영향
가. 헬라 철학의 인식적 제국주의
첫째는 인식적 제국주의다. 이것은 헬라 철학과 개념 때문에 만들어진 일종의 인식적 허위의식이다. 헬라 철학은 진리는 기본적으로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진리는 '만유인력의 법칙' 혹은 'E=MC2'등과 같은 명제, 혹은 단순한 공식(formula)의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명제 중 참인 명제를 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진리는 자명한 것, 객관적인 것, 보편적인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컨대, '2+3=5'라는 수학 명제를 생각해 보자. 수학에서 이 명제는 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명하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이다. 자명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수식은 믿고 말고 할 것이 없이 스스로 당연하다는 뜻이다. 만일 누가 '나는 이것을 안 믿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또라이일 것이다. 그가 믿건 안 믿건 그의 반응에 관계없이 그 명제는 참이다. 이것이 자명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헬라 철학의 진리에서 믿음은 인식으로 대체된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진리가 자명한 고로 그것은 객관적이다. 어떤 명제가 참이 되는 것은 인간의 반응과 무관하다. 인간의 주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만일 주관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객관적이라는 뜻은 지구상의 70억 인구에게 진리라는 뜻이다. 위의 수식은 미국인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다 똑같이 보편적인 진리다. 진리는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요구다. 그리고 그것은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 할 것 없이 늘 진리다. 진리는 항구적이며, 영원하며, 불변하다.
한편, 만일 어떤 명제가 참이 아니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거짓이다. 그리고 어떤 명제가 거짓이라는 것은 참인 명제만큼이나 자명하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거짓인 명제는 거짓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일 거짓이라면 그것은 배제되어야 한다. 모든 명제는 참 아니면 거짓이다. 중간은 없다. 만일 참이나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언명이 있다면 그것은 명제가 아니다. 모든 유의미한 언명은 명제며, 그것은 참이든지 아니면 거짓이든지 둘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어떤 명제가 진리나 혹은 거짓으로 판단되면 그다음에는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진리는 무조건 수용하고, 거짓은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기계적이다. 이것이 지난 3,000년간 서구인들을 지배해 온 진리관이다.
최근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서양 철학의 이러한 진리 개념을 해체하고 나섰다. 그들은 서양 철학이 소위 진리라는 이름으로 객관성의 신화를 유포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특정 집단의 신념을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중세 교회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교리를 강요했으며, 근대 계몽주의자들 역시 진리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주장을 강요했다. '진리'라는 말은 포장만 그럴듯할 뿐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수용해야만 하는 강요다. 이것이 바로 인식적 제국주의이다.
나. 기독교의 수용
기독교는 2세기가 지나면서 헬라 철학의 주요 개념과 방법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기독교 진리는 점차 헬라 철학의 옷을 입게 되었는데, 그와 함께 기독교는 점차 인식적 제국주의로 무장하게 된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독교는 역사를 철학화하고, 계시를 개념화하기 시작한다. 성서의 계시를 기독론, 삼위일체론, 신론 등 점차 수학 공식 같은 간단하고 깔끔한 개념과 명제, 공식으로 정식화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된 명제와 개념이 진리라는 명예와 권위를 얻게 된다.
물론 이러한 명제와 개념은 성서에서 추출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계시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다분히 철학적인 개념이고 명제다. 통상 성서에서 추출된 정식화된 진리를 소위 신조(creed)라고 부른다. 교회는 신조를 만듦으로 엄청난 유익을 얻음과 동시에 인식적 제국주의에 사로잡히고 만다.
니케아 공의회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을 두고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가 무시무시한 대혈전을 벌였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비슷한 본성(homoiousios)을 지니셨으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주장했고,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완전히 동일한 본성(homoousios)을 지니셨다고 주장했다. 두 개념은 거의 비슷하고 'i'(이오타) 하나만 달랐다.
하지만 둘 다 진리일 수는 없었다. 하나가 진리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어야 했다. 결국 아타나시우스의 동일 본질론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히 다룰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칼로 두부 자르듯 싹둑 자르기 애매한 그런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성서는 교리집이 아니며 그래서 양편의 주장 모두를 지지하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했을까? 교회가 특정 교리를 정통(orthodox)으로 여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다른 교리를 선택할 자유까지 박탈한 것은 분명 제국주의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의회의 결과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이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신조가 만들어졌고, 그 신조는 진리의 정수요, 참과 거짓의 척도가 되었다. 신앙이란 정통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불신앙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점차 신조는 성서보다 더 진리가 되었다. 이와 함께 기독교 진리는 점차 헬라 철학의 인식적 제국주의에 물들게 된다.
2) 정치적 제국주의의 영향
이와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식적 제국주의가 정치적 제국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기독교 진리는 교회의 힘과 함께 국가가 칼의 힘으로 수호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헬라 철학적 전제에 따르면, 만일 기독교 진리가 보편적 진리라면 그것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진리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보호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지닌 국가라면 마땅히 기독교 진리를 수호해야 하는 의무도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어떤 주장이 교회에 의해서 거짓이라고 판명되면 그러한 이교도나 이단은 국가가 응당 척결하고 처단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교회 내의 진리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진리가 되기도 했다. 국가 진리! 이것이 크리스텐둠에서의 기독교 진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식의 전통이 수립된 것은 다름 아닌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니케아 공의회 때였다. 니케아 공의회는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 간의 기독론 논쟁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최초의 보편 공의회다. 흥미롭게도 이 회의는 주교들이나 교황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최한 회의였다. 왜 그가 공의회를 개최했는가? 그는 쇠락해 가는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강력한 제국의 통일을 원했고, 이를 위해서 기독교를 제국 통일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즉 그는 기독교가 로마의 통치 이데올로기 및 정신적 통일 에너지를 쏟아내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지도 모를 무슨 이상한 기독론 논쟁 때문에 기독교가 둘로 갈라질 판이었다. 콘스탄티누스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분열은 곧 제국의 분열이었다. 따라서 무슨 수가 있어도 기독교의 분열을 막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그가 공의회를 개최한 이유다. 그는 자금을 대서 제국의 주교들을 니케아로 불러들인 다음 죽을 쑤든 밥을 짓든 하여간에 기독교 교리를 하나로 통일해 놓으라고 요구했다. 제국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대의에는 아무래도 아타나시우스의 기독론이 더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에게 교리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진리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길고 지루한 논쟁 끝에 아타나시우스의 기독론이 정통으로 확립되었다. 아리우스는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으며 동시에 황제에 의해서 추방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리우스가 교회로부터 정죄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으로부터 정치적 처벌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정치적 처벌이 제국과 교회를 통일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 기독교의 진리는 교회의 영적 권위뿐만 아니라 국가의 칼의 권세에 의해서도 수호를 받게 되었다. 기독교 진리와 정치적 제국주의가 결합되고 만 것이다.
5. 기독교 제국주의의 비극
정치적 제국주의와 기독교 진리가 결합하자 숱한 비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레고리 9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이노센트 4세에 의해서 재가를 받은 종교 재판은 수백 년 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끔찍한 살인 도구가 되었다. 불행히도 종교 개혁가들조차 이러한 종교 재판을 거부하지 않았다.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 종교 개혁가들도 자신들이 창안하여 만든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이단자를 재판에 회부하여 칼의 권세로 그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또한 거의 500년간이나 신교와 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는 마녀를 색출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종교 재판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 다름 아닌 아나뱁티스트들이었다.
크리스텐둠 체제 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는 달리 이교도는 회심하지 않으면 죽어 마땅한 죄인이 되었다. 신앙이란 국가의 공인을 받은 신조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되었으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반국가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알비파, 왈도파, 가타리파 등이 무자비하게 숙청되었으며, 유대인들은 강제로 개종 당했다.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게토(ghetto)에 처넣었다.
또한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서 십자군이라는 이름의 군대까지 모집되었다. 약 200년에 걸친 8회 이상의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 제국주의의 광기를 잘 보여 준다. 4차 십자군 전쟁은 12~13세도 되지 않은 소년병들에 의해서 치러졌는데, 그토록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들의 신앙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은총을 베풀지 않으셨다.
십자군 전쟁은 다양한 형태로 변신을 꾀했는데, 신교와 구교 간의 30년 전쟁을 비롯한 근대의 식민지 개척과 정복적 해외 선교 등으로 형태를 바꾸어 나타났다. 콜럼버스나 코르테스 같은 탐험가들은 군대를 이끌고 총과 칼로 식민지를 개척했으며, 그들이 개척한 곳에는 늘 교회가 세워졌다. 청교도들은 북미에서 수만 명의 원주민을 죽이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인디언을 추방한 뒤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또한 선교사들은 대포와 총, 돈, 상품, 때로는 아편과 함께 복음을 들고 선교지로 들어갔으며, 선교 사업과 노예 매매를 겸업하느라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회에서는 크리스텐둠이 거의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것은 거의 1,70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다. 크리스텐둠 이후의 세계를 학자들은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ianity Society)라고 부른다.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제국주의는 더 이상 용납되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 서구의 크리스천들에게 새롭고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서구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라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 중에는 '신앙의 자유'를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 제국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번 땅 밟기 사태의 문제의 본질이다. 이번 땅 밟기 사태를 통해서 후기 기독교 사회에 들어선 지금 '신앙의 자유'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답을 잘해 줄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아나뱁티스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의 자유' 문제를 지난 500년 동안이나 계속 탐구해 왔기 때문이다. (계속)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IV - 봉은사 땅 밟기 유감 (2)
아나뱁티스트의 탈제국주의
입력 : 2010년 11월 18일 (목) 신광은
지난 봉은사 땅 밟기 사태에 대한 크리스천의 반응은 대체로 침묵하거나, 민망해하는 것이었다. 민망히 여기시는 몇몇 분들은 그 사건을 소수 몰지각한 크리스천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명하셨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필자는 앞글에서도 밝혔지만 이 문제가 단순히 땅 밟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1,700년 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해 왔던 크리스텐둠의 제국주의적 영성 때문이라고 본다. 자끄 엘륄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기독교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기독교화(Christianize)의 충동',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기독교화의 충동은 봉은사 땅 밟기뿐만 아니라, 세계 복음화나 민족 복음화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성시화 운동, 총동원 전도, 공격적 선교, 무례한 노방 전도 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더 나아가 기독교 정치, 기독교 경제, 기독교 문화 등을 건설하려는 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개신교 일각에서는 기독교 은행을 세우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세상의 모든 영역을 기독교화하려는 정복주의 세계관의 표출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화의 충동은 성서 계시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국주의적 영성의 표현일 뿐이다.
1. 제3의 길을 찾아서
그렇다면 제국주의적 영성의 대안은 무엇인가? 혹자는 종교 다원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말한다. 제국주의적 영성의 뿌리는 성서의 유일신 사상에 있다고 한다. 야훼 하나님만이 참신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라는 유일신 신앙 때문에 타 종교를 배척하고, 탄압하고, 정복하려는 태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글에서도 밝혔듯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종교 다원주의란 무엇인가? 거칠게 말해서 종교 다원주의란, 야훼 하나님은 여러 신들 중 하나며(a god), 예수는 여러 스승들 중 한 분(a teacher)이며, 기독교 진리는 여러 진리들 중 하나(a truth)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는 분명 종교 간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크리스텐둠이 붕괴된 20세기 중반 이후,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 제국주의의 뿌리는 성서의 계시가 아니다. 제국주의의 뿌리는 콘스탄틴주의(Constantianism)이다. 기독교와 제국을 결합한 콘스탄틴주의의 결과로 크리스텐둠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것이 정복적 제국주의 영성의 뿌리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영성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종교 다원주의는 올바른 답이 아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그 옛날 로마 정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판테온 신전에 모셔 주겠다며 회유했던 전략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성서를 살펴봐도 구약의 가르침은 야훼 하나님만이 참신이라는 유일신관으로 수렴되며, 신약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주시라는 그리스도 신앙으로 회귀한다. 제국주의도 아니요, 종교 다원주의도 답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주의도 아니요, 종교 다원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은 무엇일까?
2.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의 아나뱁티즘
얼마 전 영국의 아나뱁티스트 스튜어트 머레이(Stuwart Murray)가 <벌거벗은 아나뱁티스트>(Naked Anabaptist)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흥미로운 책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아나뱁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 지금, 지난 500년 동안이나 이단으로 정죄되고, 멸시받고, 박해받던, 그리고 보이지 않게 은둔해 왔던 아나뱁티스트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것일까? 기독교가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크리스텐둠의 붕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그마치 지난 1,700년 동안이나 서구 사회를 지배해 왔던 크리스텐둠이 붕괴되고 후기 기독교 사회라는 낯선 사회가 도래했다. 이는 실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낯선 환경 속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기존의 정복주의적 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종교 다원주의가 대안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대안이 뭘까?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고,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는 제국주의도 아니요, 종교 다원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지난 500년 동안 실험해 온 기독교의 한 전통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3의 길은 정확히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길이요, 초대 교회의 길이다.
아나뱁티스트 역사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을 기독교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후 313년의 기독교 공인은 승리라기보다는 교회 타락의 시초다. 바로 이 시점을 전후로 교회는 초대 교회의 순수성을 잃어버렸고, 제자도의 기준은 후퇴했으며, 신자의 삶은 형식과 제의로 대체되었다. 그 대신 교회는 제국으로부터 부와 권력을 얻어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다. 바로 이러한 그들의 역사관 때문에 그들은 크리스텐둠을 거부했던 것이다. 16세기 종교 개혁 당시 크리스텐둠 체제를 거의 유일하게 거부한 이들은 아나뱁티스트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대단한 선각자들이었다.
3. 아나뱁티스트의 정치적 탈제국주의
아나뱁티스트의 삶과 신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반제국주의적 특성을 띠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재침례(anabaptism)
아나뱁티스트는 재침례(rebaptism 혹은 anabaptism)라는 말에서 왔다. 그들이 재침례를 베푼 이유는 신앙을 고백할 수 없는 유아에게 유아 세례(infant baptism)를 베푸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해서 성인들에게 다시 침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두 번 침례를 베푼다는 의미의 아나뱁티스트라는 칭호는 외부인이 붙여 준 별명이다. 물론 아나뱁티스트 자신은 그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침례를 두 번 베푸는 자들이 아니라 단 한 번 참침례를 베푸는 자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유아 세례를 거부하고 성인에게 재침례(anabaptism)를 실시하는 순간 그들은 국가-교회(State-Church)를 향해서 정면 도전을 선언한 셈이 되었다. 왜냐?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기 이전에 유아 세례는 교회의 입교식인 동시에 호적 등록 절차였다. 따라서 이들이 유아 세례를 거부하는 순간 그들은 호적 등록을 하지 않은 무국적자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호적 등록을 통해서 조세나 징병을 할 수 있었던 국가로서는 유아 세례가 행정상 중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국가가 정 호적 등록을 하고 싶으면 유아 세례가 아닌 다른 행정 절차를 통해서 하라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신앙의 표시와 국가 행정의 분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주장은 정확히 크리스텐둠(Christendom)의 급소를 찔렀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기독교(Christianity)와 국가(kingdom)의 완전한 분리였기 때문이다. 교회와 국가가 분리된다면 더 이상 크리스텐둠은 작동할 수 없다. 국가는 국가고, 교회는 교회다. 오늘날 국교 분리는 상식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의 국가와 교회의 분리, 곧 크리스텐둠의 거부는 곧바로 기독교 제국주의의 거부를 뜻하는 것이었다.
2) 신앙의 자유(freedom of faith)
유아 세례 문제는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다. 그들은 왜 유아 세례를 거부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관에 있다. 그들은 신앙이란 복음을 전도 대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듣고, 이해하고,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결단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유아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연령의 입교자에게 침례를 베푸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신앙의 자유(freedom of faith)'다. 신앙이란 자발적이라야 한다. 강제적인 것은 신앙이 아니다. 신앙과 자유는 손등과 손바닥 같은 것이다. 자유가 없다면 신앙이 아니다. 이들의 신앙관이 이러하니 그들은 모든 종류의 강제적 개종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신앙의 자유란 '불신앙의 자유(freedom of unfaith)'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신앙은 자발적으로 결단할 수도 있고, 또 거부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신앙이란 반드시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실로 충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자유는 크리스텐둠이나 기독교 제국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으며, 용납될 수도 없는 위험 요인이다. 크리스텐툼 체제 하에서 신앙과 불신앙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혁명적 사상이었다.
아나뱁티스트의 '신앙•불신앙의 자유'는 후대의 계몽주의자들에 의해서 '양심 및 사상의 자유'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근대 자유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등장 이후 '소비의 자유' 혹은 '소비자 선택의 절대 주권'이라는 천박한 이해로 퇴락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신장과 민주주의의 도래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아나뱁티스트의 자유사상은 시대를 앞선 선구적 사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지배의 단념
제국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지배다. 만유를 단일 의지의 지배하에 두는 것, 그리하여 전체가 한 인격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제국주의이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는 철저하게 '자유'를 주장했다. 믿을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 모두를 주장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일은 가능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하물며 누가 누구를 자신의 수하에 두고 복종하게 한단 말인가?
때문에 공동체는 자유를 가진 형제자매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 선생, 아버지가 없는 형제자매 공동체(마 23:8~11), 이것이 그들의 자유사상의 산물이다. 이들은 명목상으로만 만인 제사장직을 인정했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실제적으로 만인 제사장설을 교회 안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아나뱁티스트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이층 구조를 분명하게 거부한다. 그들은 종종 스스로를 가리켜, '자신을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교회 내의 모든 신도는 동등하다. 단지 직분만 존재한다. 설교하는 직분, 치리하는 직분, 봉사하는 직분 등 은사에 따른 직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한 직분은 고정적이거나 항구적이지 않다. 필요에 따라 공동체의 합의에 따라 변화되며 공유된다.
따라서 그들은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식의 의사 결정 구조를 거부한다. 모든 의사 결정은 공동체 전체의 의사를 물어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때로는 강박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존 요더의 말대로 효율성보다는 신실함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의 의견을 들을 때까지 듣고 또 듣는다. 그런 다음 결정한다. 이러한 그들의 실천은 철저한 반제국주의적 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4) 비폭력(nonviolence)
니케아 공의회가 끝나고 아리우스는 신학 논쟁에서 패배한 후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추방을 당했다. 그 때부터 국가 공권력은 교리 및 신학 논쟁 때마다 걸핏하면 끼어들어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아나뱁티스트들은 이러한 국가 공권력을 전면 부정했다. 그들은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거부했다. 몇몇 예외들이 있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은 대체로 모든 형태의 폭력을 거부하는 역사적 평화주의(historical pacifism) 노선을 택했다.
국가의 폭력, 곧 공권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마저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서 루터는 독일 귀족들의 힘을 의지했으며, 칼뱅은 제네바 시의회의 힘을, 츠빙글리는 취리히 시의회의 힘을 입고 자신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살상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예컨대, 루터는 독일 귀족들에게 뮌처와 혁명 농민들을 칼로 찔러 죽이도록 독려했으며, 칼뱅은 세르베투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이단자라는 명목으로 죽였고, 츠빙글리는 위대한 아나뱁티스트 신학자 마이클 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아나뱁티스트들과 이단자들을 처형했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칼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거두어 가셨으니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굳게 붙들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칼이 없는 자들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그들은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도 칼을 들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북한 사람은 '빨갱이'로 여겨지는데, 16세기 유럽인들에게는 터키인들이 '빨갱이'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철천지원수, 터키인들이 침략했을 때에도 그들은 칼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로 치면 국가 보안법에 걸려 처형당했던 것이다.
그들은 왜 칼을 들지 않았을까? 이유는 비폭력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비폭력에 대한 신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lordship)에 대한 철저한 인정 때문이었다. 만유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 설교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국가의 명령보다 더 높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을 거부했다. 이러한 아나뱁티스트의 폭력의 거부는 정치적 제국주의를 해체해 버리는 결정적 조치였다.
4. 아나뱁티스트의 인식적 탈제국주의
아나뱁티스트의 정치적 탈제국주의와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들의 인식적 탈제국주의이다.
1) 인식적 제국주의
우리는 앞글에서 헬라 철학의 개념과 방법을 도입한 기독교 사상이 점차 인식적 제국주의에 물들게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헬라 철학에서 진리란 자명한 것, 객관적인 것, 보편적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진리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관계없이 스스로 진리라는 뜻이다. 이 진리는 영원하며, 모두에게 보편적이다. 기독교 진리는 보편적(catholic)이다. 따라서 기독교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서도 믿어지는(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credum est)' 진리다. 이러한 보편적(catholic) 진리는 중세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의 인식적 기초였다.
이러한 진리는 명제로 표현된다. 이렇게 명제화된 기독교 진리는 신조로, 혹은 신학적 공식으로 정식화되었으며, 이를 영원불변한 정통(orthodox)으로 고정시켰다. 명제적 진리관은 인격적 결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수학 시간에 피타고라스의 공식을 배우는 학생은 그것을 믿을지를 결단할 필요가 없다. 피타고라스의 공식이 수학적으로 오류 없이 증명되면 믿고 말고 할 것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배우고, 터득하는 것, 곧 인식이 진리에 대한 유일한 태도다. 따라서 명제적 진리관은 신앙이 아니라 인식을 요구한다. 믿음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인정과 인격적 신뢰가 아니다. 정통 교의가 합리적으로 추론되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믿음이 된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란 점차 정확 무오한 기독교 교리를 잘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 된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는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 신앙(faith)이 교조적 신념(belief)으로 변질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근대 이후 기독교의 위기의 원인인 것이다.
헬라적 진리관에서 어느 것이 진리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비진리, 곧 거짓이다. 예컨대 시험 문제를 푸는 학생은 4지 선다형 답안에서 정답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의 과제는 오답을 제거하고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관이 인식적 제국주의를 만들어 낸다. 만일 정통 교리(orthodox dogma)가 기독교 진리라면 나머지는 전부 이교도(pagan) 아니면 이단(heresy)이다.
그리고 이교도와 이단은 제거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자동적이고, 기계적이다. 바로 이것이 인식적 제국주의이다. 이러한 인식적 제국주의가 정치적 제국주의와 결합하면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지난 1,700년 동안 저질러졌던 기독교 죄악의 가장 큰 원인이다.
2) 신앙의 의미
아나뱁티스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인식이 아니다. 인식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선다. 신앙은 반드시 '예수 따름(following Jesus)'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과 아나뱁티스트들 간의 중요한 논쟁에서 드러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관에는 두 가지 두드러진 요소가 발견된다. 하나는 바른 지식이다. 성서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교리에 대한 앎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체험이다. 이는 루터의 회심 체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내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이 봤을 때 이러한 신앙관에는 '예수 따름'의 요소가 빠져 있었다. 다른 말로 '제자도'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프로테스탄티즘에도 제자도의 요소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티즘은 제자도를 믿음에서 도식적으로 분리해 냈다. 믿음과 제자도를 선후의 문제로, 혹은 즉각성과 점진성의 문제로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필수와 선택의 문제로 바뀌고 말았다. 믿음은 필수고, 제자도는 선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나뱁티스트 역사학자 해럴드 벤더(Harold Bender)는 그의 아나뱁티스트 비전(Anabaptist Vision)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아나뱁티스트는 삶 전체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단지 지적, 교리적 신앙이나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서 회심, 거룩함, 사랑을 만들어 내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아나뱁티스트에게 있어서 믿음과 제자도, 그리고 회개는 분리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통합적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기로 했다. 여기서 예수를 믿는다는 뜻은 예수를 구원자인 동시에, 주(kyrios)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며, 이것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겠다는 결단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 그는 세상의 통치를 끊어야 한다. 그는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 곧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믿음이다.
오해하지 말 것은 아나뱁티스트가 제자도를 강조했다고 해서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그들은 믿음과 행위를 나누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하지만 굳이 표현해야 한다면 삶의 변화는 믿음의 '열매'였다. 이 같은 사실은 그들과 프로테스탄티즘과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잘 보여 준다. 다만 믿음을 다른 이들보다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원했다는 점이 그들의 믿음관의 독특성이다.
3) 명제에서 언약으로
최근 포스트모던 신학자들 중에는 기존의 서구 신학이 '명제' 신학이었다고 보고 이를 '이야기' 신학(narrative theology)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시도는 무척 흥미로운 시도며, 한편으로는 환영할 만한 시도이다. 하지만 이미 500년 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아나뱁티스트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들은 일찍부터 교리나 명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들이 봤을 때 기독교 진리는 '명제'가 아니다. 아마도 기독교 진리는 '관계' 속에서 가장 잘 나타날 것이다. 만일 기독교 진리가 명제로 표현된다면 정통 신조를 학습하거나, 소요리문답을 잘 외우면 된다. 또 일부 루터주의나 경건주의자들처럼 만일 기독교 진리가 모종의 '신적 체험'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체험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에게 있어서 기독교 진리는 '언약적 관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적 관계를 아나뱁티스트는 '예수 따름(following Jesus)'이라고 표현했다. 신앙이 '예수 따름'을 포함한다는 뜻은 기독교 진리란 단순히 명제나, 혹은 체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언약적 관계라는 뜻이다. 진리를 명제에서 언약적 관계로 전환한 것은 가히 신학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혁명적 발상이다.
헬라적 관념으로 봤을 때 '예수는 (유일한) 주(kyrios)시다'는 하나의 명제이다. 아나뱁티스트가 봤을 때 '예수는 (유일한) 주시다'는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는 예수의 초청이요, 언약 관계로의 부르심이다. 명제는 자명한 진리인고로 사람의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리는 스스로 진리다. 하지만 언약은 다르다. 언약은 사람의 인격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예수는 주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믿는다는 뜻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초청에 결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헬라적 관점에서는 명제의 진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기독론에서는 homoousios와 homoiousios 중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이냐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만일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필연적으로 거짓이 된다. 어느 한쪽이 참으로 결정되면 패배자는 승자에게 굴복해야 한다. 즉 이기느냐, 지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진리관은 대결적이다. 신학자들의 일은 서로 경합하는 이론들이 치열하게 논쟁하게 만들어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진리관은 자연히 정복적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를 맺느냐이다. 예수를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선택이고 결단이다. 강요되지 않으며, 위협이나 협박도 없다. 참신앙을 가지기를 원하는 자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언약적 관계 속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신앙이다.
5. 아나뱁티스트의 비강제적 전도 방법
이러한 탈제국주의적 태도는 그들의 전도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제국에서의 전도는 강요, 강제, 협박, 고문, 폭력 등으로 이교도나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것이다. 교묘한 말로 설득하거나, 위협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현혹하거나, 유혹하는 것들 역시 타인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강제적인 수단들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신앙을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실존적인 결단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이나 수단도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전도나 선교를 잘 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6세기 때 가장 왕성한 복음 전도자와 선교사는 거의 대부분 아나뱁티스트였다.
아나뱁티스트가 비강제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원했기 때문에 그들은 유아 세례를 거부했다. 유아는 자유로 자신의 신앙을 결단할 수 없기에 유아 세례는 강제적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보기에 유아 세례는 국가와 교회의 기묘한 잡종을 만들어 내며, 명목상의 신자를 대량 양산한다. 물론 그들도 유아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믿음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발적인 결단과 인격적 관계 맺음이 빠져 있기에 유아는 신앙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고, 그래서 유아 세례는 합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일체의 강제적 수단을 통한 선교, 전도, 개종, 치리 등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전도하는가? 그들의 최상의 전도 전략은 '삶의 변화'였다. 메노나이트 역사학자 앨런 클라이더의 보고를 보면, 2~3세기 초대 교회의 최상의 전도 방법은 '삶의 변화'였다. 그리고 이것이 아나뱁티스트가 택하는 전도 전략이다. 전에는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바뀌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바로 여기서 전도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삶의 변화와 아울러서 그들은 구제, 나눔, 환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은 구제와 나눔을 개종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의 증거'는 그 자체로 전도다. 만일 구제나 나눔이 개종의 수단이 되는 순간 그 사랑은 불순해진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방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종종 건강하지 못한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사랑의 폭탄(love bomb)'을 대단히 사악한 개종과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사랑을 받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로 들어오기를 기대하기는 하지만, 구제나 나눔을 개종과 지배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도 말로 복음을 전하는가? 물론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초기 16세기에 가장 왕성한 복음 증거자와 선교사들은 아나뱁티스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럽인 모두는 유아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었지만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을 올바른 신자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소위 세례 받은 신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박해가 심해지면서 점차 아나뱁티스트의 복음 전도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들이 말로 복음을 전할 때에도 그들은 가급적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갖춘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를 고백하고, 그들을 신앙으로 초대한다. 고백하고, 초청하고, 설득하고, 인내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전도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아나뱁티스트의 탈제국주의적 특성에 대해서 살펴봤다. 아나뱁티스트는 제국주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물음은 이것이다. 아나뱁티즘은 혹시 종교 다원주의는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다소 겹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아나뱁티스트는 종교 다원주의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 그러는지 물으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여기서 아나뱁티즘과 종교 다원주의, 혹은 아나뱁티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 논의는 무척 지루하고 다소 학문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다루는 것이 합당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V - 응징인가? vs 용서인가?
분쟁을 해결하는 제3의 길
2010년 12월 03일 (금) 신광은
1. 철수(가명) 케이스
철수(가명)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철수가 학교에서 친구한테 맞았다는 것이다. 철수 엄마는 처음에는 중학교 2학년 남자 애들이 학교에서 싸우기도 하고 뭐 그런 게 아니겠는가 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퇴근을 하고 집엘 가서 애 상황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이빨도 부러지고 코피도 나고 머리를 맞아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큰애도 놀라서 "엄마, 쟤 왜 저래?"라고 묻는다. 일단 병원에 입원부터 시켰다. 알고 보니 점심시간에 밥 먹는 줄 때문에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다고 한다. 아빠 없이 혼자서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애가 남의 집 애한테 맞았다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철수 엄마는 혹시나 철수랑 싸운 애는 어찌 되었나 걱정이 되서 알아보니 태산(가명)이는 멀쩡하단다. 철수만 일방적으로 맞은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저쪽에서 먼저 사과를 하고 치료비 문제를 협의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철수 엄마는 위자료 따위는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저 병원 치료비랑 이빨 갈아 넣는 것만 해 주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사실 철수 엄마도 중학교 애들끼리 싸운 일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고, 먹고 살아야겠기에 자꾸 이런 일로 시간을 뺏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태산이네 식구들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 태산이 엄마는 병원에 찾아와서는 이빨 값 물어주면 되지 왜 애를 입원시켰느냐며 복도에서 화를 버럭 냈다. 철수 엄마는 "애 상태라도 보고 그런 말을 하시라"고 했지만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며 그냥 가 버렸다. 며칠 뒤 선생님하고 태산이 엄마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 그때 철수 엄마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는데, 태산이 엄마는 침상에 누워 있는 철수에게 한다는 말이, "얘, 넌 병원에 편안히 드러누워 있어서 좋겠다. 우리 태산이는 시험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몰라"라고 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것이 입원해 있는 애를 보고 가해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태산이 아빠는 한술 더 떴다. 전화로 왜 병원에 입원을 시켰느냐, 왜 병원에다 맞았다고 말했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너무도 무섭고 분했다.
경찰에 문의를 했더니 2주 정도 시간을 줄 테니 학교 측하고 문제를 잘 풀어 보란다. 그런데 학교 측의 반응은 철수 엄마를 또 한번 황당하게 만들었다. 자초지종을 묻고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학교 측은 때린 태산이보다 도리어 맞은 철수를 더 혼내고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철수가 다섯 대 맞았다고 하면 태산이는 한 대밖에 안 때렸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러면 학교 측은 "야, 야! 쟤가 한 대밖에 안 때렸다잖아. 그럼 세 대 맞았다고 하자." 엄마가 뻔히 보고 있는 데, 이런 식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더니 교감 선생님 한다는 말이, "교장 선생님이 무슨 옆집 문방구 아저씬 줄 아십니까? 아무나 만나자고 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는 학교 측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 것인데, 학교 측은 책임지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무조건 문제를 축소해서 무마시켜 버리려는 생각밖에는 없는 눈치였다. 철수 엄마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급기야 태산이네 식구들은 "당신이 고소하면 우리도 고소하겠다"는 식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태산이네 아빠는 태산이가 철수를 때린 주먹이 다쳤다면서 2주 진단을 끊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상에! 때린 주먹이 다쳤다고 진단 끊는 일도 다 있는가. 이쯤 되니 철수가 가해자가 될 판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좋다, 한번 해 보자." 결국 철수 엄마는 경찰에 고소를 했다. 변호사도 선임했고, 계약금까지 걸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철수 엄마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경찰은 경찰대로 애들 싸운 것 가지고 고소까지 하느냐는 식으로 나왔고, 학교 측도 철수랑 철수 엄마를 따가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심지어 식구들도 "이제 그만 하자. 철수 엄마가 참아"라는 식으로 나왔다. 철수 엄마를 대변해 줘야 할 변호사마저 철수 엄마를 보고 참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수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들은 피해자인데 왜 자신들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철수 엄마의 억울함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2. 응징할 것인가?
철수 엄마는 분노로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것들을 요절을 내놓으리라.' 하기야 누군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마음을 먹지 않겠는가. 철수 엄마가 이렇게까지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철수 엄마는 종교인이 아니었지만 여러 종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섭렵하면서 늘 마음 씀씀이를 바르게 가지려고 애쓰며 살아왔던 교양 있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남에게 해코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철수 엄마였다. 그런데 막상 이런 상황을 맞고 보니 교양만 챙기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철수 엄마는 태산이네 집 식구들이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분명 태산이네 집 식구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싸움은 악마와의 싸움이 되어 갔다. 증오와 분노로 몸서리를 칠수록 태산이네 식구들이 더 무서운 악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 사람을 보내서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길을 걷는 것조차 무서웠다. 분노와 증오가 공포와 뒤섞이니 거의 공황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복수심을 키웠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들 상태도 봐 가면서, 복수의 수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끝까지 가 보자! 태산이 그놈을 기어이 감옥에 보내고 말리라. 사실 태산이보다는 태산이 부모가 더 미웠다. 하지만 어쩌랴. 태산이를 처벌받게 하지 않고는 부모를 응징할 길이 없는데…. 그 집 식구들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 주기 전에는 싸움을 그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 철수 엄마는 점점 또 다른 악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응징과 복수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거울 효과(mirror effec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한 관계에 있는 두 당사자는 서로를 악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악마가 되면 될수록 나는 의롭고 선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점차 선과 악의 우주적 전쟁으로, 나아가 정의의 이름으로 사탄을 심판하는 종말론적 심판으로 비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60년간 남북한의 대결 구도에서 보아 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응징의 역설은, 응징을 하면 할수록 양측은 점점 닮아 간다는 것이다. 마치 폭력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이 점차 아버지를 닮아 가듯이 말이다. 거울상은 좌우만 바뀔 뿐 똑같은 모습을 비춘다. 마찬가지로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좌우만 바뀔 뿐 똑같아진다. 심지어는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나중에는 서로 의존적이 되고, 공생하는 관계로 비약한다. 응징은 점차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요, 방향이요, 가치요, 힘이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원수 덕분에 살아가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 관계는 원한 관계에 있는 둘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북한의 관계는 대표적인 적대적 공생 관계의 실례이다.
3. 용서할 것인가?
2007년 미국 니켈마인이라는 작은 아미쉬 마을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아미쉬 학교에 난입해서 여학생 5명을 죽이고, 여러 명에게 총상을 입힌 뒤 자신도 자살한 끔찍한 사건이 평화롭기만 하던 아미쉬 마을에서 일어났으니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건이 있은 바로 다음날 피해자 가족과 아미쉬 마을 사람들이 가해자인 찰스 로버트 가족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용서한 일이었다. 매체를 통해 보도된 아미쉬 사람들의 용서 사건은 용서의 위대한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 사건이었다. 잘 알다시피 아미쉬는 아나뱁티스트들이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는 오랫동안 용서를 생활화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용서를 말할 때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용서는 정의를 폐기 처분하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용서의 이러한 역설을 잘 보여 준다. 용서가 정의를 대체하면 용서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 준다. 태산이네 식구들로부터 그토록 몰상식한 대우를 받고 있던 철수 엄마에게 누군가 다가가서 "이제 그만 그 사람들을 용서해요"라고 한다면 이것이 옳은 조언일까? 철수 엄마는 어떤 느낌이 들까? 비록 그가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용서'를 말한다고 하더라도 철수 엄마는 그를 분명 태산이네 측에서 보낸 앞잡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특별히 개인 관계보다는 집단적인 차원에서 더 잘 일어난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용서'라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에서 자비나 사랑과 같은 것은 개인 윤리에 속하며, 정의와 평등이 집단 윤리에 속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는 아무래도 인격적인 개인 관계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기업이나 국가 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나뱁티스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용서를 늘 생활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나뱁티스트의 용서에 대해서 배우고자 할 때 그들이 용서를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그래서 그들은 용서가 비현실적이고 용서가 자칫 정의를 폐기 처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용서와 정의가 조화되는 제3의 길을 찾고자 지난 500년 동안 실험과 실천을 계속해 왔다. 그들의 이러한 이해와 실천은 최근 정의에 대한 제3의 길로 알려지고 있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로 나타나고 있다.
4. 두 가지 정의: 응징하는 정의 vs 회복하는 정의
라인홀드 니버가 착각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정의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정의 vs 자비, 평등 vs 사랑을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이분법적으로 이해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정의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응징과 같은 것이었으며, 자비란 피해를 받고도 돌려주지 않으며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정의와 자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된다. 이것이 결국 니버의 대안이 미지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의와 자비는 둘이 아니며, 하나님은 정신 분열 환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오른팔과 정의의 왼팔을 가지고 계시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춘다(시 85:10)."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비와 만나는 정의, 용서와 만나는 공의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응징하는 정의
가해자가 잘못한 만큼 고통을 안겨 주어서 응징하는 것을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라고 한다. 이러한 응징하는 정의는 한마디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레 24:20)'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눈을 뽑으면 나도 그의 눈을 뽑고, 그가 내 이를 부러뜨리면 나도 그의 이를 부러뜨리는 것이 정의라는 말이다. 이러한 '동해 보상법'은 구약의 토라뿐만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여러 법전의 기본 정신이다. 하지만 응징과 복수가 정녕 정의를 이룰 수 있을까? 글쎄,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
첫째로, 폭력의 문제다. 통상 응징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007> 시리즈나 <다이하드> 시리즈와 같은 영화를 보면 폭력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악당의 폭력이고, 또 하나는 지구를 구하는 주인공의 폭력. 하지만 폭력이 지구를 구한다는 구속적 폭력(redemptive violence)은 신화에 불과하다. 자끄 엘륄의 말대로 폭력은 폭력이라는 현실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은 끔찍하고 저주스럽다. 하지만 그 살인범을 죽이는 국가의 사형 제도 역시 끔찍하고 저주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폭력은 정의를 아주 조금 이룰 뿐 온전한 정의를 이루지는 못한다.
둘째로, 르네 지라르가 잘 말했듯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복수는 너무도 자주 복수의 무한 반복이라는 악순환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그래서 복수는 양심의 가책 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악마를 만들어 낸다. 복수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모두가 가해자가 되며, 급기야 모두가 공멸한다.
셋째로,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누가 정당한 심판자가 될 수 있는가? A와 B가 다투었다. 누가 이 두 사람을 중재할 수 있을까? 단순히 제 3자인 C가 중재자를 자청한다면 A와 B가 그의 판단에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중재자는 반드시 초월적인 존재, 곧 신이라야 한다. 때문에 현대 사법 제도에서 중재자는 초개인적인 국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월성이 사라진 세속 사회에서 국가의 중재는 여전히 의문의 대상이다. 국가란 뭔가? 국가란 그저 다수의 3자들일 뿐이다. 결국 51%의 여론이 유일하고 현실적인 중재자가 되고 만다. 따라서 사법 제도는 정당한 심판자의 부재를 은폐하는 기만이다. 나아가 국가들 간의 분쟁에서 중재자의 문제는 그러한 기만조차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남북한의 분쟁에서 누가 공정한 중재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넷째로, 재판의 공정성의 문제다. 오늘날 사법 제도는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있는가? 영화 <라쇼몽>이 보여 주듯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의 재판은 부득불 편파적이 된다. 현대 재판 제도에서 공정성은 하나의 전제일 뿐 성취될 수 없다. 예컨대, 한국 검찰의 불공정성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O. J. 심슨 사건이 보여 주듯이 미국 재판 제도의 불공정성 역시 악명 높다. 불행히도 이러한 불공정한 재판은 현실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대로 현대의 재판 제도는 힘 있는 자의 자기 정당화로 변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섯째, 소외의 문제다. 현대의 형법 제도의 특징은 개인의 복수를 국가가 가져간다는 데 있다. 예컨대, 철수가 태산이를 고발하면, 그때부터는 국가가 철수의 복수를 대신하게 된다. 그래서 경찰이 조사하고, 검찰이 기소해서, 법원이 판단한다. 국가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 말이다. 점차 최초의 문제는 철수와 태산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자신의 문제가 된다. 영화 <귀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재판 절차가 진행이 되면서 태산이와 철수는 자신들의 문제가 점차 자신의 손에서 떠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재판 비용을 대기 위해서 둘 다 막대한 돈을 법률 전문가들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우습게도 법률 전문가들이 두 사람의 분쟁과 불행으로 돈을 벌어간다. 정의는 사라지고 점차 이해관계와 사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여섯째, 응징하는 정의는 관계의 회복을 이룰 수 없다. 철수가 태산이를 고발해서 재판을 받게 하면 아마 모르긴 해도 태산이는 법이 정한 대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일정 부분 정의가 실현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두 집안은 영영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은 물론이고 두 집안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악화된다.
일곱째, 응징하는 정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거나 행실을 바로 잡지 못한다. 통상 사람들은 단호한 응징만이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예컨대, 태산이가 실형을 선고받는다고 해서 태산이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칠까? 또 그가 만에 하나 교도소에 들어갔다 해서 다시는 전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태산이는 교도소에서 철수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키우며, 복수의 칼을 갈고 나올 것이다. 또 그는 학교(교도소)에서 훨씬 더 정교한 기술과 지식, 방대한 네트워크를 습득해서 졸업(출소)하게 될 것이다. 그는 졸업 후 분명 훨씬 더 지능적이고 흉악한 범죄자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정의의 결과치고는 참 슬프다.
2) 회복하는 정의
정의에는 응징하는 정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복하는 정의도 있다. 응징하는 정의의 목표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즉 복수가 목표라면 회복하는 정의의 목표는 둘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에 이르게 하며, 다시는 악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그냥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응징하는 정의와 똑같이 회복하는 정의도 잘못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분명 정의(justice)이다. 하지만 회복과 치유, 화해, 평화, 이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완전히 다르다.
회복하는 정의는 처벌을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회복하는 정의도 분명 처벌을 한다. 하지만 회복하는 정의는 다른 차원의 처벌을 한다. 응징하는 정의의 처벌은 자신의 잘못만큼의 고통을 안겨 줌으로써 균형을 이루려는 것이다. 하지만 회복하는 정의의 처벌은 가해자에게 고통을 안겨 주기보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통합적 수치심'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신의 행동으로 생겨난 결과를 직시하게 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피해를 보상하도록 책임을 부여한다. 바로 이때 가해자는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누구를 정죄하는 부끄러움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책임을 느끼게 하여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되도록 하게 만드는 부끄러움이다.
그밖에도 회복하는 정의는 제3자가 나서기는 하지만 문제는 갈등 당사자들끼리 풀게 한다. 당사자들은 그 문제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며 관련 전문가들의 호주머니를 부풀리는 데 그들의 돈을 쓸 필요가 없다. 회복하는 정의는 폭력, 혹은 공권력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대화를 최선의 문제 해결 수단으로 택한다. 결국 둘이 만나서 대화하게 하는 것이다. 회복하는 정의는 피해자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대로 정당하고 공정한 보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은 가급적 가해자의 자발적인 결단으로 말미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회복하는 정의는 둘 사이의 막힌 관계와 쓴 뿌리가 청산되는 것을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회복하는 정의는 과거에 일어난 잘못에 대한 문책보다는 앞으로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5. 화해 조정의 길
과연 그러한 일이 가능한가? 다시 철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철수네 사례는 회복하는 정의가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놀라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 경청
분노와 증오, 공포로 얼룩져 정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던 철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도움을 주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KAC)에서 평화 조정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며 불쑥 나타난 이들의 출현을 철수 엄마는 신뢰할 수 없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일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한번 만나자고 하는데 내키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들이 저쪽에서 보낸 용역들이라면 자기 목숨도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겁부터 났다. 그래서 철수 엄마는 대로변에 있는 커피숍으로 장소를 정했다. 여차하면 대로로 뛰어나가 구조 요청을 할 참이었다.
철수 엄마는 혼자 나갔는데 저쪽에서는 남자가 셋이나 나왔다. 벌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철수 엄마에게 협상을 하라는 둥, 용서를 하라는 둥, 저쪽 편을 드는 일을 일절 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언이나 충고나 어설픈 위로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 보고는 그냥 듣기만 했다. 철수 엄마로 하여금 말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들어주었다. 들어주는 것, 이것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해 주지 않던 일이었다. 태산이 부모도, 학교 측도, 경찰도, 변호사도, 그리고 친척도, 누구도 해 주지 않던 일이었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낯선 남자 셋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철수 엄마는 낯선 남자들 앞에서 태산이네 식구들을 향해 온갖 저주와 욕설을 해 가며 푸념을 마구 늘어놓았다. 엉엉 울면서 말이다. 테이블에는 휴지가 산처럼 쌓였다. 세 시간이나 그랬을까. 그런데 이들은 시계도 한번 안 쳐다보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들어주었다. 그러자 아주 조금이지만 철수 엄마의 가슴 한쪽이 시원하게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것이 철수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냉정과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회복하는 정의는 대화의 능력을 신뢰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말만큼 천시 여기는 것도 없다. 재판에서 가장 증거 가치가 낮은 것이 사람의 말이다. 물증에 비하면 사람의 말은 바람 같은 것이다. 입에서 떠나 즉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말에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하지만 회복하는 정의는 바로 그 말에 모든 것을 다 건다. 정의란 무엇인가? 말이다. 땅에서부터 부르짖는 아벨의 피의 소리가 정의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공의다. 억압당하는 약자의 목소리가 바로 정의이다. 따라서 회복하는 정의는 약자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말로 자신의 분노와 아픔을 표현하게 한다. 여기서 정의가 시작된다.
2) 만남
몇 차례 조정자들을 만나면서 철수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조정자들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태산이네 식구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철수 엄마에게는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그들과 한 자리에 마주 앉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코앞에서 본다는 것, 그들과 말을 섞는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싫었다. 하지만 철수 엄마는 조정자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상당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왠지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 중학교 2학년생에 불과한 태산이를 처벌받게 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일을 키우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두 집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만남의 자리에 나왔다. 그들은 왜 나왔을까? 화해 조정, 곧 '화해 권고 제도'는 사법부와 연계되어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법원이 재판 과정을 일시 보류하고 화해 조정 프로그램에 사건을 위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때문에 화해 조정의 결과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그 결과를 최대한 판결에 반영한다. 만일에 화해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재판은 사법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따라서 태산이네 식구들 편에서도 화해 조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이 점에서 보면 회복하는 정의와 응징하는 정의는 꼭 대립적이지 않다.
껄끄러운 두 집안 식구들이 만남의 자리에 나타났다.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만남이다. 이런 점에서 두 집안 식구들이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이로써 이미 목표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아직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얼굴을 대하고 만나는 순간 이미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진 것이다.
철수 엄마는 만남의 자리에 나오기 전에 얼마나 긴장하고 초조했는지 모른다. 만남의 장소도 전에 조정자들을 만났을 때처럼 도망치기 알맞은 곳으로 정했다. 그만큼 긴장되고 두렵고 껄끄러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철수 엄마가 태산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철수 엄마는 뭔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직 앳된 그 어린 중학생에게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태산이는 악마가 아니었다. 철수랑 똑같은 어린 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태산이를 처벌받게 하겠다고 광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도리어 악마가 아닌가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화해의 영이 철수 엄마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이다.
3) 대화
재판에서 판사는 절대 권위를 갖지만, 화해 조정의 경우 조정자는 조력자요, 협력자이다. 조정자는 서로 만나기 싫어하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서로 대화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양측이 서로 대화할 때 조정자는 나서지 않고 잠잠히 들어주고 증인이 되어 준다. 그러다가 자칫 갈등 당사자가 흥분해서 또 다른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또 조정자는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대화를 할 때 가급적 대화의 방향을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조정자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거나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 당사자끼리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고, 자신들끼리 합의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합의된 내용에 양쪽 모두 동의하고, 승인하는 합의문을 만들어 내는 것을 돕는 것이 바로 조정자가 할 역할이다.
보통 대화는 피해자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당한 피해와 고통을 하나씩 토해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즉 섭섭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철수와 철수 엄마는 그간 자신들이 어떤 물리적, 심리적 고통을 당했는지를 쏟아 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에 조정자 앞에서 다 했던 얘기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왜냐하면 가해자인 태산이와 태산이 가족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그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그때를 기억하시죠? 태산이 아빠가 제게 전화해서 막 소리 지르고 그러실 때… 그때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리고… ." 태산이네 식구들은 철수와 철수 엄마가 하는 얘기를 묵묵히 들었다. 물론 얘기 도중 서로 다른 내용이 나올 때 이에 대해서 바로잡기도 했지만 주로 철수와 철수 엄마가 얘기했고, 태산이네는 들었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철수네 사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짐작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수와 철수 엄마의 입에서 직접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이것을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체험이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이야기를 들으면 가해자들의 마음에는 동정과 공감, 미안함이 생겨난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그랬다. '아, 그랬구나. 그랬겠구나. 그렇게 아팠구나….'
4) 화해
철수네 식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태산이네 식구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입에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바로 이것이었다. 철수랑 철수 엄마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되었을 일인데, 그 말을 안 하니까 약이 오르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이 치밀었던 것이다. 그런데 직접 면전에서 그들의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이제는 살 것 같았다.
철수 엄마는 백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 됐다.' 바로 이 지점이 용서의 지점이다. 용서는 정의를 대체할 수 없다. 정의가 없는 용서는 또 다른 폭력이다. 뉘우침이 없는 '평화 선언'만큼 가증스러운 것도 없다. 그럴 경우 용서는 그 본래의 능력을 잃고,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게 된다. 회복하는 정의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말을 직접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 사과를 받아들임으로써 정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사업을 크게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얼마 전 사업이 망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이 일이 터졌고, 또 철수가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니 너무 걱정되고 힘들었다고 했다. 보험으로 처리해 주려고 했는데, 철수 엄마가 사고가 아니라 싸워서 입원했다는 얘기를 하는 바람에 보험 처리도 안 되었다고 했다. 거기다 태산이 아빠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앞뒤 안 보고 그렇게 말을 해 버리는 일이 많단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세상에, 세상에…그랬구나….' 태산이네 식구들도 악마가 아니었다. 그저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러니 이제 철수 엄마도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앉아 있는 중 2짜리 태산이를 보니 너무 짠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철수 엄마는 진심으로 태산이에게 용서를 빌었다. "태산아, 미안하다."
악마는 없었다. 갈등이 상처를 낳고, 상처가 아픔을 낳고, 아픔이 악마라는 허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알고 보면 그쪽도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이웃이요, 형제다. 문제는 바로 그렇게 그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기까지가 힘든 것이다. 회복하는 정의는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용서하고 화해하게 한다.
5) 합의
뉘우치고 용서하는 시간이 있은 뒤, 이제 대화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로 넘어가게 된다. 우선 치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화해가 없는 상태에서 치료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껄끄럽고 역겹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뉘우침과 용서가 있은 뒤 치료비 이야기는 비교적 쉽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돈은 나중 문제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갖게 되고, 피해자 역시 가해자의 상황을 배려할 수 있게 되면 돈 얘기는 금방 끝난다. 철수네 케이스도 그랬다. 어렵지 않게 치료비 문제를 해결했고,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액수와 지불 날짜까지 합의했다.
물론 합의에는 태산이가 앞으로는 철수를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었다. 철수네 역시 고소를 취하하고 이 문제를 더 이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합의문은 조정자와 함께 작성되었고 양측이 서명을 해서 법원에 넘겨졌다. 법원은 이를 그대로 판결에 반영했다. 결국 합의를 통해서 태산이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철수네 역시 원한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참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 것이다.
6) 성숙
실로 꿈같은 일이었다. 사과를 받고, 치료비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철수 엄마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악마의 탈을 벗어던질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그동안 자신이 분노와 증오의 노예가 되어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으면서도 달리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이제 더 이상 복수의 화신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꿈만 같았다. 태산이네 식구들을 생각만 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러다가도 행여나 그 집 식구들이 또 무슨 계략을 꾸미지는 않았을까 하며 두려워했는데, 이제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태산이네 식구들이 약속한 날짜에 치료비를 보내오지 않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내 이럴 줄 알았어. 그 인간들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뭐 이런 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보류했던 법적 절차를 다시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철수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정자도 없이 직접 태산이네 집에 전화를 했고, 혼자서 태산이네 집을 찾았다. 그리고 치료비 지불이 늦은 이유를 물었고,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치료비 지불이 늦었다는 해명을 들었다. 그러자 철수 엄마는 액수도 다시 조정해 주고, 일시불이 어려우면 할부(?)로라도 가능하다며 문제를 풀어 나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결국 태산이네 집 식구들은 약속을 잘 지켜 주었고 모든 문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회복하는 정의가 또 하나의 열매를 맺었다. 회복하는 정의는 대화, 조정, 사과, 보상 등을 넘어서 갈등 당사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자신감, 창조성, 여유, 용기, 관용 등을 얻어 낸다. 이것이 바로 회복하는 정의가 맺어 내는 아름다운 열매다. 이것은 응징하는 정의로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7) 헌신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철수 엄마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끔찍한 고통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겪고 있는 데 갑자기 누군가가 불쑥 자신에게 찾아와서 그 모든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철수 엄마는 '로또 복권을 맞은 것 같다'고 말하고 다녔다. 누구보다 조정자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사를 받을 분이 그들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다 준 누군가가 또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분은 천사나, 혹은 하나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큰올케가 자기 교회에 가 보자고 초청을 했다. 기독교에는 별 관심이 없던 철수 엄마였는데, 그 순간 철수 엄마는 하나님께 가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철수 엄마가 처음 예배에 참석했을 때, 철수 엄마는 서투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베풀어 주신 은혜에 깊이깊이 감사하는 기도를 올려 드렸다.
물론 조정자들은 모두 크리스천들이었으며, 한국의 아나뱁티스트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정 과정에서 일절 전도하지 않았다. 자칫 화해 조정이 어설픈 전도 행위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전도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철수 엄마는 그들의 신실함과 섬김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결국 철수 엄마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들의 섬김과 도움으로 철수 엄마는 크리스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화해 조정자로 섬기고자 훈련 프로그램을 신청해 놓고 있다. 철수 엄마는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헌신했다.
6. 마치는 글
최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적어도 네 명이 죽고 수십여 명이 다치는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에 분노할 뿐만 아니라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 하여 정부와 군을 질책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군은 두 번 다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며 무기를 재배치하고, 각종 군사 훈련을 강행하고, 교전 수칙을 재개정하고, 연일 서로를 향해 엄포를 놓고 있다. 한반도에 점점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피해자의 절규, 정부의 단호한 대응, 국민의 악화된 여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도 똑같이 반응한다면 이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십자가의 복음을 맡은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닌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 노릇을 해야 하는 교회라면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길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회복적 정의를 진지하게 묵상하는 일일 것이다. 회복적 정의는 개인 간의 분쟁뿐만 아니라 국제 분쟁에도 효과가 있다는 여러 가지 임상 결과들이 있다. 회복하는 정의는 분명 남북한의 분쟁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낼 것이다. 한국 교회는 갈등과 분쟁이 있는 그 한가운데 서서 성프란시스와 같이 평화의 중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철수네와 태산이네 식구들의 갈등과 분쟁을 평화롭게 조정해 주었던 평화 조정자들과 같이 말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 프란시스의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는 평화 조정자가 필요한 때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문의>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http://www.kac.or.kr 전화: 02-554-9615
평화 조정자 프로그램 담당자 : 이재영 간사
회복적 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 http://www.rj.or.kr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VI -동성애 찬성이냐 vs. 반대냐
동성애 목사의 커밍아웃과 메노나이트 교회의 반응
2010년 12월 31일 (금) 신광은
얼마 전 방영되었던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동성애라는 소재를 드라마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시청자들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외국에 비해서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최근 교회 안팎에서 동성애 문제로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쟁의 거의 대부분은 '동성애 찬반 논쟁'에 기울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와 관련해서 대부분,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끔찍한 범죄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일부인가? 동성애자는 회개해야 할 죄인인가, 아니면 보호받아야 성적 소수자인가? 동성애자는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까? 동성애자에게 성찬을 주어야 하는가? 또 동성애자는 목회자로 섬길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주제로 논쟁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아나뱁티스트의 관점은 어떨까? 동성애 문제와 씨름했던 북미의 한 교회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관점을 알아보자.
1. 문제의 발단
1) 새라의 커밍아웃
2002년 초, 북미의 씨헤이븐 메노나이트 교회(가명)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그 교회에서 청소년부 사역을 감당하던 여성 부목사 새라(가명)가 어느 날 리더 모임에서 충격 고백을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으며, 또한 동성연애를 해 온 사실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는 리더들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한 교회의 분별과 판단을 요청해 왔다. 물론 당시 리더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당황했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리더 그룹은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이 리더 그룹에는 담임목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연 새라의 정직한 고백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새라를 해고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사역을 하게 해야 하는가? 회개하도록 촉구할 것인가? 아니면 새라의 독특한 성적 취향을 인정하고, 축복하며, 나름의 가정을 꾸리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인가?
리더 그룹은 그날 이후 새라와 몇 차례 더 모임을 가지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깊은 논의를 계속했다. 결국 리더 그룹은 이 문제가 자신들의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결정했다. 리더 그룹에는 담임목사도 있고, 교회의 여러 사역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장로교로 치면 일종의 당회와 같은 것인데 놀랍게도 그들은 이 문제가 자신들의 권한 밖에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결정하는가? 교회 회중이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에 알리기로 결정한다.
리더 그룹이 결정한 또 한 가지는 지금의 교회 공동체가 이 문제를 현명하게 다루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 그룹은 교회가 이 문제를 잘 분별해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나눔과 배움,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세 번째 결정은 새라 목사는 이 문제가 결정될 때까지 당분간 교회 사역에서 손을 떼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결코 새라를 임의로 해고하거나 교회로부터 출교시키는 조치가 아니었다. 리더 그룹은 새라의 정직한 고백에 감사를 표했으며, 그녀의 고백에 신실하게 반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새라는 리더 그룹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기로 합의했다.
2) 한국교회라면?
자, 만일 한국교회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99%는 담임목사나 당회 차원에서 조용히 끝내 버렸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새라는 다음 주에 약간의 위로금과 함께 해고 통지를 받았을 것이다. 교회에는 새라 목사님의 신변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겨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노라고 광고하고 말이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교인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날 이후로 여기저기서 목사님에 대한 온갖 기이한 소문들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게 될 것이다. 필자는 동성애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자가 여자 청년과 스캔들이 났다는 이유로 조용히 해고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어느 교회에서는 워십 팀원들끼리 섹스 스캔들이 났는데, 담임목사 선에서 그냥 조용히 묻어 두고 넘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가급적 불미스러운 일은 조용히 처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동양 문화권이다 보니 담임목사나 교인들은 교회 내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교인들은 행여나 스캔들이 외부로 알려지면 주님 영광 가리고, 교회에 누를 끼치고, 교인들을 실족시키고,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분노하고 비난한다. 소위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체면이 구겨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이러한 한국교회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먼저 모든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하기를 즐겨한다. 새라 목사는 오랫동안 자신의 동성애 성향과 동성연애 경험을 숨겨 왔지만 결국 이를 교회에 공개했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말이다. 사실 이런 내용을 공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존경하던 사제 헨리 나우웬의 경우도 그가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사후에야 공개되었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교회를 빛과 진리가 왕 노릇하는 공동체로 보며, 위선이나 가식 없이 문제나 비리를 드러나게 말하고, 공개적으로 다루기를 즐겨한다. 따라서 새라의 정직한 자기 고백은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2. '한 손에는 삶을, 한 손에는 고통을'
4월 28일, 리더 그룹은 주일 예배 시간 중 '나눔의 시간(sharing time)'에 새라의 문제를 전 교인에게 얘기했다. 회중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교인들은 목사님이 레즈비언이라는 그 얘기를 듣고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씨헤이븐교회가 아무리 서구 교회라고 하기는 해도 동성애 문제는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였다. 더구나 4년 동안 청소년 사역을 담당해 왔던 목사님이 레즈비언이었다니….
교회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크게 두 파로 갈라졌다. 한 파는 동성애 반대파고, 다른 파는 찬성파였다. 반대파는 성서가 동성애를 분명하게 죄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새라 목사는 당장 교회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목사직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서 찬성파는 반대의 의견을 주장했다. 반대파의 성서 해석이 잘못되었으며, 성서는 도리어 약자를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라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동성애 성향을 새라의 잘못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며, 도리어 축복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보다 많은 수는 양측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 있었다.
교회에 새라 목사의 이야기를 나눈 뒤 여러 사람이 상처받고 실족했다. 벌써 몇 가정은 교회를 떠났다. 교회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자칫 잘못하면 많은 교인이 교회를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회 안에서 커져 갔다. 어쩌면 동성애 찬성파과 반대파가 교회를 둘로 찢어 놓을지도 모르고, 아예 교회가 공중분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들기 시작했다. 교회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동성애를 찬성해도 문제고, 반대해도 문제다.
만에 하나 씨헤이븐교회가 동성애를 찬성하는 쪽으로 선택한다면 교회는 자칫 교단과도 마찰이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 교단 전체의 입장은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또 씨헤이븐교회 건물은 라틴계 교회와 한국계 교회도 함께 쓰고 있었으며 세 교회는 서로 교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자칫 이들과의 교류에도 문제를 만들 소지가 있었다. 사실 이 두 외국계 교회는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라의 문제는 일파만파 퍼져 갔다. 단 한 사람의 문제 때문에 전체 교회가 이런 엄청난 어려움에 빠지게 된 것이다.
리더 그룹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그렇다. 정확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라의 이야기를 공개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고통과 맞서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뱁티스트는 500년 고난의 역사를 통과하면서 고통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법을 배워 왔다. '한 손에는 삶을, 한 손에는 고난을' 들고 그들은 미련할 정도로 신실하게 옳은 길을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을 감수하고 정면으로 문제와 맞부딪친다. 그리고 그 문제를 끊임없이 주시하고, 함께 나누고, 토론하고, 논쟁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셨던 길이고 제자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이 아나뱁티스트의 생각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리더 그룹은 교회에 다음 몇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우선 교회가 이 문제를 분별하고 어떻게 할지를 결정할 때까지 교회를 돕는 팀을 만들자는 것이다. 기존에 사역자들 위주로 이루어진 리더 그룹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팀은 가급적 평신도로 이루어진, 또한 다양한 입장의 의견을 대표하는 이들로 구성된 팀이 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교회는 이 팀을 '인간 성 문제에 관한 리더십 팀'Human Sexuality Leadership Team, HSLT)이라고 명명했다.
또한 리더 그룹은 교회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별해서 새라의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나눔과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리더 그룹은 이를 위한 일정을 제안했는데, 이 일정은 세 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시즌은 나눔과 청취, 돌봄의 시즌으로 4개월이 소요될 예정이고, 두 번째 시즌은 교육 시즌으로 6개월이 소요될 예정이며, 세 번째 시즌은 분별과 결정 시즌으로 다시 4개월이 소요될 예정이다. 총 14개월이 걸리는 엄청난 일정을 제안했다. 세상에! 전 교회가 이 하나의 문제를 분별하고 결정하기 위해서 자그마치 14개월 동안 여기에만 올인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교회의 전 부서의 모든 일정은 취소되고 오직 이 문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3. 제3의 길
1) 기술적 문제(technical problem)냐 vs 적응적 문제(adaptive problem)냐
씨헤이븐교회에 새라의 이야기를 알리자마자 교회는 곧바로 동성애 찬반 입장이 나뉘고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사실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십중팔구는 동성애에 대해서 찬성, 아니면 반대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씨헤이븐교회는 이렇게 양자택일하기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아나뱁티스트는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늘 제3의 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씨헤이븐교회 역시 공동체가 이 문제 앞에서 깨지거나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며, 도리어 서로 윈윈(win-win)하는 길이 있지 않는지 살폈다.
이를 위해서 씨헤이븐교회는 찬반 토론을 하기에 앞서서 과연 새라와 관련된 이 문제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이 문제의 성격이 기술적인가, 아니면 적응적인가에 대해서 토론했다. 기술적(technical)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동성애 문제를 찬성•반대를 판가름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다. 찬성이든 반대든 서로 자신의 의견을 정한 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가다듬고,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의견을 굴복시킬까 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기술적인 태도다.
반대로 만일 이 문제가 적응적(adaptive)이라면 이 문제를 단순히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적응적 태도는 일단 자신의 이해와 지식의 부족을 겸허히 인정한 뒤 그 문제에 대해서 세밀하게 공부하고 배운다는 뜻이다. 또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다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문제를 외부에서 판단하는 자세로 굽어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문제 안으로 들어가서 같이 배우고, 공감하고, 아파하고, 도전받고, 그래서 자신들의 관점과 생각이 변화를 받는 것, 이것이 바로 적응적인 태도다. 이 점에서 씨헤이븐교회는 새라의 문제를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적응적 문제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씨헤이븐교회는 의사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만일 새라의 문제를 찬반 양자택일을 가리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기회로 삼는 적응적 문제라면,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voting model)은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씨헤이븐교회는 이 문제를 합의 방식(consensus model)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교인들이 공감하고 합의하는 쪽으로 뭔가를 결정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2) 배움의 거부
그러나 씨헤이븐교회의 이러한 결정을 모두 환영하지는 않았다. 특히 동성애에 대해서 극단적인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그랬다. 동성애 반대 측 사람들은 배움의 시간이 왜 필요하느냐고 항의했다. 성서가 명확하게 동성애를 금하고 있으며, 바울 사도가 분명하게 동성애를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의 목록에 언급하고 있는데 뭘 더 배우고 말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새라를 회개시키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성애 찬성 측 입장을 가진 이들은 동성애 반대 측 사람들을 전통적이고, 율법주의적이고,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새라를 축복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무척 흥미로운 것은 양편 모두 공통점이 무척 많더라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배움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리더 그룹에 제시한 14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의 나눔과 배움, 대화 과정을 거부했다. 이들은 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이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행여나 자신의 입장을 바꾸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하고 의심했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입장은 확고하며, 그것이 성서적이며, 항구불변의 진리라고 확신했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바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으며, 전체 교회가 자신을 따라올 것만을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14개월 동안 교회가 정한 일정에 불출석하겠다고 결정했다.
사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성(sexuality)'이라는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금기시되어 있던 '동성애'라는 주제를 온 교회가 1년 2개월이나 집중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씨헤이븐교회는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라틴계와 한국계 형제 교회들에게도 그 과정에 동참해 주십사 하고 초청했지만 이들은 모두 거부했다.
4. 일정 요약
1) 제1시즌: 나눔과 경청
교회에 새라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인간 성에 관한 리더십팀(HSLT)'이 발족되면서 첫 시즌이 시작되었다. 이 팀에 의해서 전체 일정이 계획되고, 논의의 방향이 제시되며, 교육 자료 등이 공급되었다. 첫 번째 시즌에서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새라의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개인적인 소감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누구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외부 강사를 두 번 정도 초청해서 조언을 듣기도 했다. 또한 교단에 이 내용을 알리며 도움과 조언을 구했다. 첫 번째 분기에서 두 번째 분기로 넘어가기 전에 숨을 고르기 위해서 잠깐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2) 제2시즌: 교육
두 번째 시즌은 9월부터 시작되어서 다음해 2월까지 6개월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HSLT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HSLT는 전체 주일학교 부서와 협력해서 전체적인 교육 과정을 짜고, 커리큘럼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역할들을 감당했다. 전 교인이 참여하는 주일학교는 전승 분과(tradition), 예언서 분과(prophecy), 지혜서 분과(wisdom) 등 세 분과로 나누어서 각자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을 시행했다. 이들 연구는 다시 성서 자료와 비성서 자료를 원천으로 하여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HSLT와 주일학교부는 주일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유년부부터 장년부까지의 모든 학생들을 위해 이들에게 맞는 교육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성서 자료를 원천으로 하기 위해서 성서에 대한 세밀한 주석 작업과 신학적 검토 작업이 있었다. 특히 성서 작업은 인간 성에 관한 모든 성서 본문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과 또한 동성애와 관련된 모든 신구약성서 본문을 일일이 세밀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포함되었다. 비성서적 자료의 바탕으로는 최근에 성 문제 및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서 논의되는 다양한 자료들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설교 팀도 6개월 동안 이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설교 주제를 선정하고 설교했다. 하지만 설교 내용을 동성애에 직접 맞추기보다는 교회가 이 문제를 풀어 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인간의 창조와 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포괄적인 성서의 가르침을 설교했다. 올드맨(가명) 담임목사가 절반 이상의 설교를 담당했지만 그는 가급적 자신의 견해가 교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주일예배와 함께 대그룹과 소그룹 모임이 조직되어 연구와 토론을 이끌었으며 여러 차례 포럼이 개최되었다. 또한 전에 동성애자였다가 지금은 돌아선 이들의 모임인 엑서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과의 만남이 있었고, 주일예배 시간에 게이와 레즈비언을 초대해서 대담하는 시간도 가졌으며, 그들 가족도 따로 초청해서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교육 시즌을 진행해 나가는 중에 11월에 씨헤이븐교회는 새라와 언약을 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은 교회 회중이 새라의 정직한 자기 고백에 감사하며, 끝까지 신실하게 반응하겠노라는 내용의 언약이었다. 이상의 교육 시즌은 2월 중 금식과 기도 주간을 가짐으로써 끝났다.
3) 제3시즌: 분별과 결정
세 번째 분별과 결정 시즌은 3월부터 6월까지 넉 달 동안 진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호불호를 표현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표현은 누구 한 사람만이 아니라 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올드맨 목사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설교를 통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목사로서의 권위나 설교의 힘(power)을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목회서신을 썼다. 그리고 전체 회중은 다시 담임목사의 서신에 반응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 설문 조사를 했다. 하지만 이때 설문 조사는 단순히 동성애 찬반을 묻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인간 성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의견을 묻는 설문이었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답변 가능성을 열어 두고 교인들의 의향을 물었다. 예컨대,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새라 목사의 사역은 찬성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고, 반대로 동성애는 찬성하지만 새라 목사의 사역은 반대한다는 뜻을 표현할 수도 있었고, 새라의 목회 사역은 반대하지만 지속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다시 긴장감이 높아졌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연장자들이 생겨났다. 담임목사는 이들을 일일이 심방하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6월이 되자 드디어 씨헤이븐교회는 씨헤이븐교회만의 인간 성에 관한 선언문 작성에 들어갔다. HSLT가 초안을 작성하고, 교회가 이를 검토하며 승인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6월 21일 최종 모임에는 '인간 성의 신앙에 관한 선언을 향해서(Toward a Statement of Beliefs on Human Sexuality)'라는 이름의 문서가 채택되었으며, 새라 목사의 목회직 유임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5. 담임목사의 목회서신
올드맨 목사는 세 번째 시즌 동안 두 차례에 걸쳐 교인들에게 목회서신을 썼다. 그는 그 서신에서 인간 성에 대한 포괄적인 자신의 신앙을 밝히고, 동성애에 대해서와 새라의 목회직 유임 여부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겸손하고 온유하게 밝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목사의 이러한 선택은 그가 자신이 가진 힘(power)을 이용해서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서신에서 자신과 공동체, 나아가 세계 교회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기초적 신앙(Foundational Conviction)을 설정했다. 여기서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믿고 따르는 공동체로 정의했으며, 교회는 성서를 표준으로 사고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과, 메노나이트 교회의 전통과 신앙을 존중할 것,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 등을 밝혔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 개인의 편향성(personal bias)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동성애에 대해서 개방적이라는 것과, 새라와 4년 동안 즐겁게 동역해 왔던 경험이 있음을 인정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다소 추상적 사유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위기의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약점이 있음도 인정했다.
세 번째로 그는 인간 성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했다. 성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아름답다는 것, 인간의 신체와 성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 성적 충동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실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그릇된 욕구의 충족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 결혼과 함께 독신도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것 등을 밝혔다.
이제 그는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여기서 자신이 문제 삼고자 하는 동성애는 선천적인 동성애자인 경우이며, 선천적 동성애자가 일부일처식(monogamy) 결혼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경우임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정확히 새라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는 성서가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성서는 일단 동성애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척 적은 내용만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나마 존재하는 동성애 본문도 자신이 문제 삼는 경우와는 다른 경우라고 그는 믿는다. 구약에서의 경우 동성애는 강간이나 성폭행 등을 주로 의미하고, 신약의 경우는 나이 많은 성인이 미(美)소년과 관계를 맺는 소위 '남색'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아동 성폭행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또 레위기에 나타나는 동성애는 여성의 월경이나 남성의 몽정, 혹은 기타 금기 음식과 같은 제의적 부정함의 목록으로 보았는데, 그가 생각할 때 이러한 부정함은 예수 이후 신약시대에는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새라 케이스의 경우, 관건은 동성끼리 '언약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는 그것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는 새라의 경우 동성 간의 언약적 관계 맺음이 가능하며 교회는 이를 축복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목회직 유임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6. 최종 결정
6월 21일, 드디어 최종 결정을 하는 마지막 모임이 열렸다. 교회는 6월 7일, 14일, 21일, 세 차례의 모임을 통해서 14개월의 전체 일정을 정리하고 21일에 최종적인 결정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씨헤이븐교회는 14개월 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는 사이 교회는 실로 엄청난 내용의 교육, 포럼, 토론, 대화, 연구 등을 해 왔으며, 그 과정을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러면서 동성애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씨헤이븐교회는 대체로 동성애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바뀌었으며 새라의 목회직 유임에 대체로 긍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날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모임이 있던 날, 모임 참석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지난 14개월 동안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우르르 나타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동성애에 대해서 극단적이고 완고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었다. 대체로 동성애 반대자들이 많았지만 동성애 찬성론자도 더러 있었다. 물론 이들은 중간 중간 교회가 진행하는 과정들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여러 차례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임에 참석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이 마지막 날 자신의 의견 개진을 위해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비록 그들이 14개월 동안의 긴 여정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출석을 제지할 길이 없었다. 교인들은 당황하고 또 분노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들은 투표를 요구했다. 새라 목사의 목회직 유임을 표결에 붙여서 찬반을 묻자는 것이다. 목회자 청빙에 관한 교회법을 근거로 이들은 이 문제를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씨헤이븐교회가 투표 방식이 아니라 합의 방식을 택하기로 한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었고, 그동안 힘겹게 지나왔던 씨헤이븐교회의 모든 과정을 일순간 수포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요구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 꽤 많은 교인들이 바쁜 일정으로 교회 모임에 빠졌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결석한 교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으며, 그동안의 분위기를 보건대 아마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결석을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지혜롭게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오던 교회 지도자들이나 교인들도 막상 이렇게 험악한 상황이 닥치니 함께 흥분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 사람이 지금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가 아니니 조금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지만 금방 목소리가 묻히고 말았다. 애초의 약속대로 뭔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세였다. 결국 새라 목사의 재계약을 표결에 붙였다. 교회법에 따르면 표결 인원의 2/3이상(66%)이 찬성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63% 찬성이었다.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라 목사에게 목사직 없이 평교인으로 동일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 역시 표결에 붙였다. 하지만 좀 더 근소한 차이로 다시 부결되었다. 결국 새라 목사는 해고되고 말았다.
7. 교훈
이상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대단히 크다. 특히 마지막 모임은 동성애의 문제를 단순하게 찬반의 문제로 보는 것이 얼마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씨헤이븐교회의 마지막 모임은 별로 아름답지 않게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손가락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힘(power)과 진리(truth)
아나뱁티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통찰 중 하나는 바로 '힘'에 대한 통찰이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힘(power)'의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현실적이고, 정직하게 주목해 왔다. 사실 한국교회의 문제들 중 많은 부분은 결국 이 힘의 문제를 간과하는 데서 온다.
앞서 올드맨 목사는 담임목사라는 직위와 설교라는 행위에 힘이 들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힘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으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설교가 아니라 목회서신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교인들에게 알렸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교회의 모습과는 얼마나 다른가? 목사와 장로들이 힘 대결을 하고, 원로목사와 신임목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사역자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린 한국교회에서는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힘을 통해서 진리를 증거하고 수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메가 처치는 무엇인가? 힘 있는 교회다. 메가 처치 목사는 힘 있는 목사다. 그가 구사할 수 있는 힘은 인력, 재력, 정보력, 심지어 정치력까지 막대하다. 소위 훌륭한 목사는 그 막대한 힘을 이용해서 복음을 잘 전하고 교회를 잘 운영하는 목사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힘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힘은 반드시 나누어져야 한다. 그래서 메노나이트 교회에서는 공동의회 의장은 담임목사가 맡지 않는다. 힘을 나누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힘으로 다른 이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힘으로 진리를 효율적으로 전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진리는 진리고 힘은 힘이다. 힘은 강제력이며 강제력은 자유와 반대된다. 따라서 힘은 필연적으로 자유 없는 진리를 강요하기 마련이다. 힘으로 진리를 전하거나 수호하는 것은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 물론 인간이 있는 곳에 힘은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힘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힘은 세심한 조율과 안배를 통해서 잘 다루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 진리는 힘없이도 스스로 진리 됨을 드러낸다. 그래서 성서는 예수에 대해서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소리 지르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마12:19)"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모임에서는 바로 이 힘에 대한 아나뱁티스트의 원칙이 무너졌다. 왜냐하면 마지막 모임에서 중심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힘 대결의 문제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표도 일종의 힘이다. 갑자기 나타난 이들은 자신들의 머릿수라는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고 말았다. 그와 함께 합의가 무너졌고 교회는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이 동성애의 문제를 논할 때 피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동성애의 문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힘 대결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2) 해석학적 공동체
씨헤이븐교회를 통해서 배워야 할 중요한 또 한 가지 교훈은 그들의 교회에 대한 관점이다. 새라 목사의 일은 어찌 보면 교인 중 고작 한 사람의 사적인 문제일 수 있었다. 또 그것은 굳이 14개월이라는 긴 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몇 주 동안 당회나 제직회, 혹은 공동의회에서 상의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도로 전문적인 작업들을 진행해 나갔다. 마치 정부나 연구 기관이 하듯이 하나의 지역 교회가 그토록 심도 깊고,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해 나갔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아나뱁티스트의 독특한 교회관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지역 교회의 권위는 성서 다음으로 높다. 교회는 맺고 푸는 권세를 가진 신적 기관이다. 그 권세는 로마 교황청의 주교 좌에 있거나, 혹은 세계 교회에 있거나, 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 교회 공동체에 주어졌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따라서 새라의 문제가 터졌을 때, 이 일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씨헤이븐교회 공동체에 있다.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위도 그 교회 공동체에 있다. 담임목사나, 장로나, 신학자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교회 공동체의 권위를 넘을 수 없다. 그래서 리더 그룹은 새라 문제를 교회 공동체에 알렸으며,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수행하고 결정하는 힘과 책임, 권위는 오직 씨헤이븐교회 공동체에 있다'고 천명했던 것이다.
사실 동성애에 대한 메노나이트 교단의 입장은 아직 보수적이다. 1986년 사스카툰 선언이나 1987년 퍼듀 선언 등은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결혼이라는 성서적 언약 관계에 포함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씨헤이븐교회가 동성애에 대해서 다소 개방적인 입장의 선언문을 작성했을 때 다른 교단 교회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물론 씨헤이븐교회는 자신들의 선언문에 사스카툰과 퍼듀 선언문의 핵심 내용을 인용했으며 교단 지도자의 자문을 여러 차례 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헤이븐교회는 새라의 일과 관련한 결정이 일차적으로는 씨헤이븐교회 공동체가 내려야 할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는 먼저 전 신자 제사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모든 침례받은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따라서 왕 같은 제사장들의 회(會)인 교회 공동체보다 상급 기관이 있을 수 없다. 두 번째로는 공동체에 대한 신앙 때문이다. 공동체는 한 몸을 이룬다. 따라서 이 일에 대한 결정은 한 몸을 이룬 씨헤이븐교회 공동체가 내려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 그들은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또 논쟁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고 덕스럽게 진행된다면 이를 통해서 도출된 합의안은 성서 다음의 권위를 갖는 결정이 된다.
때문에 아나뱁티스트는 성서를 읽는 독자를 각 개인에 앞서 교회 공동체로 본다. 성서의 독자는 공동체이며 그 성서에 대한 해석자도 공동체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해석학적 공동체(hermeneutic community)'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러한 신념 때문에 오랫동안 소위 공동체적 성서 읽기 방법을 개발해 왔다. 함께 성서를 읽고, 각자 해석하여, 서로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해서 공동체의 해석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성서 읽기 방식이다.
3)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
아나뱁티스트는 통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이들은 공동체의 연합과 연대를 누구보다 강조한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강제적으로나 획일적으로 통일시키려 하지 않는다. 차이를 그대로 인정한다. 그래서 공동체는 통일성과 함께 다양성이 공존한다.
차이(difference)는 현대 포스트모던 사회의 중요한 화두다. 기존의 모던 사회에서는 차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인간, 서양, 백인, 남성, 이성, 과학, 합리성 등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통일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이러한 획일적 통일을 거부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그대로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나뱁티스트는 일찍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가치를 선구적으로 알아차렸다고 할 수 있다.
진리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누구보다 다양한 진리 가능성을 인정한다. 500년 전부터 이들은 다원주의(pluralism)를 실험해 온 것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즘을 종교 다원주의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리의 다원성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성서를 양보할 수 없는 진리라고 주장한다. 성서 중에서도 사복음서, 그중에서도 예수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산상설교를 절대적인 진리로 주장한다. 물론 이들이 진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인식적 진리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말한다. 즉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양보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요, 모든 판단의 시금석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종교개혁 시절에 유아세례는 틀렸고 재침례가 맞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또 이들은 국가 교회는 틀렸고 자유 교회가 맞다고 주장했고, 폭력과 전쟁은 틀렸고 평화와 화해가 맞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성서가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씨헤이븐교회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메노나이트 교회는 동성애 문제를 이러한 성격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 경우, 이것은 지속적인 성찰, 성서 묵상, 토론, 대화, 문화적 컨텍스트에 대한 고려 등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는 있지만 어느 한 의견으로 다른 의견을 강제로 획일화할 수 없다. 서로는 서로의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며, 함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4) 여정
아나뱁티스트는 신앙생활을 자주 '여정(journey)'이라고 표현한다. 여정은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인을 나그네(paroikoi)로 표현한 것을 연상시킨다. 씨헤이븐교회의 14개월 동안의 긴 과정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왜 신앙생활을 여정으로 표현하는지 감이 잡힌다. 그들은 신앙생활이란 끊임없이 문제와 만나서 그 문제와 부대끼며, 토론하며, 대화하며, 함께 풀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문제나 갈등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을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서 신실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면 기다리고 공부하고 대화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따라서 이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의 신앙생활은 시간과 함께 간다. 기도했더니 문제가 쫙 해결됐더라, 담임목사님 한마디에 꼬였던 문제가 확 풀리더라, 어느 날 갑자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막혔던 문이 활짝 열리더라…, 이런 식보다는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서 끊임없이 문제를 주시하고, 대화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한다.
씨헤이븐교회가 채택한 선언문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인간 성의 신앙에 관한 선언을 향해서(Toward a Statement of Beliefs on Human Sexuality)'에서 주목할 것은 toward, 즉 '향해서'라는 단어이다. 씨헤이븐교회는 14개월의 기간을 거치면서 하나의 선언문을 채택했지만 이들은 그 선언문이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라고 보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언문을 다만 결론을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동성애 문제를 과정으로 보는 관점은 사스카툰 선언문이나 퍼듀 선언문 모두 마찬가지였다.
올드맨 목사의 목회서신의 말미에도 그는 자신의 의견이 문제를 종결짓는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인간 성의 문제와 특별히 동성애에 관해서 우리는 최선의 해답이나, 최종적인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신중한 메노나이트 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예컨대, 데이빗 슈뢰더(David Schroeder)는 동성애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수용이든 배제든 둘 다 완전한 답은 아니다.… 한 가지 가능한 대안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것이다. 동성 간 언약적 관계를 맺은 그리스도인을 수용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최종적 답변을 내놓을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말이다."
우리는 성서를 묵상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고통을 공감하며, 토론하고, 논쟁하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한다. 신중하게 생각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차원에서도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혹은 동성애 찬성을, 혹은 반대를….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난 뒤 아직 우리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새로운 여정을 떠나야 한다.
5) 신실함
존 요더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은 효율성(effecive)보다는 신실함(faithful)을 추구해야 한다. 씨헤이븐교회를 보면 우리는 그들의 미련할 정도의 신실함에 충격을 받는다. 교회란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교회는 믿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배신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라는 씨헤이븐교회가 믿을 만한 공동체라고 보았기에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 놓고 공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과연 씨헤이븐교회는 그 한 사람의 정직한 고백에 신실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배신하지 않았다. 물론 마지막 모임의 불미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종일관 신실하게 반응했다. 그랬기에 새라는 최종 결정에 대해서 존중하며 서로는 서로를 위해서 축복할 수 있었다.
씨헤이븐교회는 최종 결정이 난 뒤에도 끝까지 신실했다. 교회는 2003년 7월부터 약 4개월 정도 회복과 치유의 네 번째 시즌을 가졌다. 올드맨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은 전 교인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심방하며 대화했다. 그리고 분노와 상처, 아픔, 좌절감 등을 어루만졌다. 교회 밖의 한 학생이 새라의 건으로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교회에 전해 왔다. 교회는 그에게 아예 유급 임시직을 제안했다. 그것은 방대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를 통해서 그들의 잘했던 점과 못했던 점까지 빠짐없이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끝까지 신실했다.
동성애와 관련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성애의 문제에 개방적 입장을 취할 권리도 있고, 또한 그렇지 않은 입장을 취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신실하지 않아야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과 동조하는 입장에 대해서든, 그렇지 않은 입장에 대해서든 우리는 서로에게 신실해야 한다. 적이 아니라, 원수가 아니라, 혐오스러운 흉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설복시킬지 궁리하기보다는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서로의 얘기에 신실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씨헤이븐교회는 완벽한 교회가 아니다. 마지막 모임은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는 흩어지지 않았다.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도 돌아왔고, 교회를 떠났던 이들 중에서도 몇 명은 다시 돌아왔다. 이 점에서 그들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동체를 지켜 냈으며, 공동체가 한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신실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찬성과 반대를 넘어 제3의 길을 찾아냈다. 대립과 갈등이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씨헤이븐교회의 모습은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VII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워야 하는 세 가지 이유 (1)
2011년 02월 23일 (수) 신광은
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 현대,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아나뱁티스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터툴리안식으로 말해서 아나뱁티스트와 한국교회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도대체 500년이나 된 낡은(?) 종교개혁의 한 흐름에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말이다. 왜 우리는 교회사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대한 교회의 전통과 신앙인의 모범 중에서 하필 오랫동안 이단처럼 취급받고, 사회로부터 물러나 은둔형 외톨이로 수백 년을 살아온 한 줌의 무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첫째로,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은 도래하고 있는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 Society)의 훌륭한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1.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 Society)의 도래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에서 1963년 어느 주일날을 후기 기독교 사회로 진입한 때라고 말한바 있다. 후기 기독교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것이 교회와 국가가 완전히 분리된 사회라는 것이며, 그와 함께 그동안 기독교가 누리던 모든 특권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예컨대 1962년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주기도문 암송 금지 결정이라든지, 최근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말을 쓰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즉 현대사회는 다른 종교에는 주어지지 않는 어떠한 특혜나 특권도 기독교에 제공하지 않는 사회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 이후 처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1,700년 만에 최초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서구 교회는 지난 1,70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여러 가지 충격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세계 교회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더 이상 국가의 강제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된 점이나,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질 만한 어떠한 특권이나 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당혹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크리스천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다원주의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요청으로 열린 니케아공의회에서 공인된 니케아신조는 단숨에 기독교를 유일 종교로, 그리고 기독교 진리를 유일 진리로 통일시켜 버렸다. 그래서 지난 1,700년 동안 서양에서 종교(religion)는 기독교(Christianity)와 동의어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유일 종교나 유일 진리는 없다. 기독교는 더 이상 유일 종교(the Religion)가 아니며 기독교 진리도 더 이상 유일 진리(the Truth)가 아니다. 기독교는 많은 종교 중 하나(a religion)며, 기독교 진리 역시 여러 진리들 중 하나(a truth)에 불과하다.
이러한 후기 기독교 사회는 선교의 개념도 바꿔 놓았다. 크리스텐둠에서는 세계가 기독교 세계와 이교 세계(비기독교 세계)로 양분된다. 때문에 선교란 기독교 세계에서 이교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세계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크리스텐둠에서 선교는 '기독교 세계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레슬리 뉴비긴과 같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가들은 더 이상 확장시킬 기독교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계몽주의 이후 불어닥친 세속화의 바람과 함께 세계는 이미 이교화되어 버렸으며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교회는 이교 세계 속에 점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선교의 개념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휩쓸고 있는 21세기 초두에 교회는 이 새로운 현상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다. 혹자는 과거 D. L. 무디(D. L. Moody)와 근본주의자들이 현대주의(Modernism)에 맞섰던 그러한 방식으로 지금의 역사적 흐름을 정죄하고 그에 맞서려고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시류에 편승하여 기독교의 독특성을 포기하는 것이 마치 시대를 앞서는 선구자적 태도인양 우쭐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기는 매 한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현대 교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신앙의 위기, 전도와 선교의 위기 등과 무관하지 않다.
2. 포스트 MB 시대(Post-MB)의 도래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와 국가 교회의 해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교회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양상은 사뭇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 국가 교회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지난 60여 년 동안 10명의 대통령 중 4명의 개신교인(이 중 세 명은 장로)과 1명의 가톨릭 신자를 배출했다. 역대 대통령의 절반이 기독교인이었던 것이다. 이 수치는 한국에서 국가와 기독교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1965년 비기독교인이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국가 조찬 기도회'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비기독교인 대통령들도 하나같이 큰 교세를 자랑하는 한국교회와 다양한 형태로 협력을 꾀했다.
기독교와 정부의 유착 관계는 이명박 대통령과 MB 정부에 이르러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의 개신교회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MB 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며, MB 정부 역시 다양한 형태로 한국 개신교회에 수많은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임기 내내 종교 편향 논쟁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고소영 내각'이라는 말에 걸맞게 기독교인들은 많은 정부 요직에 진출했으며, 많은 목사와 신자들도 다양한 형태로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 예컨대 김진홍 목사를 필두로 하는 뉴라이트 연합(New Right Union)은 MB 정부 하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들의 취지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러한 시도 자체가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라는 세계사적 흐름과 역행한다는 것이다. 구미 사회는 국가 교회(State-Church)가 해체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국가 교회가 완성되고 있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교회의 역사적 시계를 중세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칼과 창을 들지 않았다 뿐이지 봉은사 땅 밟기나 조계사 난입 같은 한국판 십자군 전쟁마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MB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며, 여론을 수렴하기보다는 조작하는 등 다분히 독재적인 형태의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과 MB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적개심은 쉽게 한국교회로 옮겨 가고 있다.
때문에 2013년 대통령 선거와 함께 도래하게 될 포스트 MB 시대에 한국교회에 불어닥칠 역풍의 크기가 과연 어느 정도나 될는지 가늠조차 잘 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MB 정권이 끝나면서 한국교회는 상당히 많은 권력과 특권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노골적인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바이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의 쇠락의 속도는 지금보다 더 빨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 MB 시대에 이르러서야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포스트 MB 시대에 대한 대비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는 성장의 감소라는 통계 수치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열심히 전도와 선교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상황을 도리어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19세기 미국의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인해 다분히 공격적인 형태의 전도와 선교를 해 왔다.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 즉 기독교 세계의 확장을 시도해 온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그 방법 말고는 전도와 선교를 할 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도 그렇거니와 포스트 MB 시대에도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 여전히 엄청난 물량, 조직,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공격적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러한 전도 방식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몇 년 전 물의를 빚었던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이나 선교 단체 인터콥의 공격적 선교 방식, 또한 공영 방송에서 몇 차례 비판적으로 보도한 바 있는 몰상식한 노방전도, 무례한 방문 전도, 초대형 전도 초청 집회 등의 전통적 방식도 그렇거니와 구도자 예배, 두 날개 시스템, G12/J12, 해피 데이 등 새로운 전도법도 별로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외길 영성>에서 데이빗 옥스버거(David Augsburger)의 말대로 "위대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전도 명령을 수행하면 단지 큰 소란만 피울 뿐"이다.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라는 역사적 현실 인식과 그에 맞는 새로운 선교•전도법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위기는 타개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아나뱁티스트의 유산
하지만 바로 이러한 현상은 아나뱁티스트에게는 도리어 커다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아나뱁티스트는 처음부터 신앙의 자유와 함께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의 신앙에 대한 헌신은 놀라울 정도로 투철하다. 초대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나뱁티스트들도 자신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가장 가까이 일치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 만큼 확고한 진리를 알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증언할 때 어떠한 강제력이나 물리력, 혹은 정부의 공권력 등을 활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들의 유아세례 거부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국가의 권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교회(free church)를 모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후기 기독교 사회의 출현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이미 국가로부터 분리된 자유 교회를 실험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기독교 세계와 비기독교 세계라는 이분법도 거부했으며, 기독교 세계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선교를 이해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다만 세상 속에서 신실한 신자 됨과 교회 됨으로 복음을 증거하고자 했다.
이들은 또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서 국가 권위를 사용한다거나, 총과 칼을 앞세운다거나, 혹은 돈과 무역의 힘을 빌리거나 하지 않았다. 아나뱁티스트 500년 역사 속에서 참으로 두드러진 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향해 단 한 번도 칼로써 그들을 제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세 교회나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개신교회 모두와 현저하게 차별되는 특징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 죽음에 대해서만 증거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직접 살아 냄으로써 확증하기 원했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복음 전도 전략은 복음 자체의 권위를 의지하여,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하며, 말로써 설득하고, 인내하고, 또한 복음을 몸으로 살아 낸 삶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복음을 전한 이유는 참된 신앙이란 오직 복음을 듣는 자의 자유로운 결단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상대방의 생각과 사상,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공손한 태도이며, 성령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겸손한 태도였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이들의 헌신은 전도 대상자의 자유, 곧 복음을 믿을 자유와 함께 거부할 자유 모두를 인정했다는 뜻이며, 그들이 복음이 아닌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존중했다는 뜻이다. 이들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사상은 계몽주의자들보다 거의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으며, 이들은 후기 기독교 사회가 도래하기 500년 전부터 기독교 신앙을 다원적 상황 가운데 위치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원주의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그리고 그동안 교회가 누렸던 특혜와 권리를 박탈당한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여전히 기독교 신앙이 가능하며, 또한 그 신앙의 증언이 가능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일찍부터 아나뱁티스트 전통이 보여 왔던 신앙의 자유 및 자유 교회의 전통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리라. 다원주의적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의 진리성을 굳게 수호하며, 변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그리고 그 자유의 실천이 아닐까. 바로 이 점에서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은 후기 기독교 사회에 처한 오늘날의 세계 교회와 한국교회에 중요한 교훈을 전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신광은 목사 / 열음터교회
프로테스탄티즘의 위기에 대한 대안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VIII
2011년 03월 24일 (목) 신광은
21세기 한국교회가 아나뱁티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위기 때문이다. 자끄 엘륄(Jacques Ellul)이 말했듯이 16세기의 로마 가톨릭처럼 현대사회에서 프로테스탄트는 더 이상 사회적 실재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사회는 후기 개신교 사회(Post-Protestantism Society)라고 할 수 있다.
1. 후기 개신교 사회(Post-Protestantism Society)의 징후
어찌 보면 후기 개신교 사회는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 Society)의 개신교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루터와 칼뱅과 같은 500년 전 종교개혁자들이 닦은 터 위에 세워진 프로테스탄티즘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프로테스탄티즘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1) Sola Gratia!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은총'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략적으로 가톨릭교회의 공덕 교리에 반대하기 위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은총 교리는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값싼 은총'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거칠게 말해서 프로테스탄티즘이 위기를 맞은 이유 중 하나는 신앙과 행위, 종교와 윤리, 칭의와 성화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일찍이 루터와 독일 교회의 고민이었으며 칼뱅이 해결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칼뱅을 따라 청교도들도 삶의 열매에 대해서 많은 강조를 하기는 했지만 청교도들의 윤리는 종종 금욕주의와 율법주의로 기울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개신교회는 그들이 개혁하고자 했던 로마 가톨릭교회를 능가할 만한 삶의 열매를 별로 보여 주지 못했다. 유럽을 피로 물들였던 30년 전쟁이나 종교재판, 마녀사냥, 노예무역, 제국주의적 선교 등은 프로테스탄트나 가톨릭교회 공히 저질렀던 기독교 죄악의 역사들이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고 히틀러 정권과 아우슈비츠라는 가공할 만한 악에 직면해서 개신교회는 세상을 감동시킬 만한 삶의 열매를 보여 준 것이 별로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했던 본회퍼는 저급한 개신교 구원론을 '값싼 은총'이라고 질타했으며 잊혀졌던 제자도에 대한 강조를 새롭게 했던 것이다. 본회퍼의 일갈 이후 개신교회는 제자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제자도에 대한 강조는 개신교회 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제자도에 대한 강조는 종종 방향을 잘못 잡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몇몇 선교 단체에서는 제자도를 오지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쯤으로만 이해하거나 혹은 사랑과 돌봄을 빌미로 순종을 강요하는 목양 이론(shepherding theory)으로 무장한 권위주의적 공동체주의로 타락하기도 하며, 상당히 많은 지역 교회는 제자도를 제자 훈련 과정을 이수하는 것, 성경 공부를 하는 것, 교회 봉사에 열심을 내는 것, 혹은 개인적 경건 생활에 헌신하는 것 등으로 오해한다.
2) Sola Fide!
종교개혁자들은 또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것 역시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른다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을 회복한 것이었다. 전략적으로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주의 및 성례전주의에 대한 반대로 선언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도대체 구원을 얻는 '믿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주의자들은 올바른 교리에 대한 지식을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 교리는 최소한 1,500년이나 지속된 정통주의 안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믿음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루터의 회심 체험을 잇는 경험주의적 답변에 따르면 믿음이란 뭔가 신적인 존재와의 조우, 말로 형언할 수 없으며 저항할 수 없는 강렬한 심리적 체험, 신비한 조명, 회개와 애통의 눈물 등으로 묘사된다. 그런가 하면 아르미니우스적 입장에서 믿음은 제단 초청(altar calling)에 대한 응답이나 예수님 영접 등 믿음의 결단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결국 삶의 열매를 만들어 냈느냐는 물음을 던졌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란 쉽지 않다. 오늘도 여전히 숱하게 많은 경건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숱하게 많은 회심 체험과 신앙 간증들이 넘쳐 나고 여전히 많은 회심자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신자다움' '교회다움' '기독교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믿음에 대한 프로테스탄티즘의 한계 중 하나는 그것을 '개인의 신앙'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메섹에서 바울이 그랬듯이 주님과의 만남과 신앙의 결단에서 개인의 실존적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도 잘 지적했듯이 프로테스탄티즘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교회론'이며 이것은 신앙이 가지는 공동체적 차원을 설명하는 데 치명적 약점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나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관의 정치, 경제, 사회적 차원에 대한 설명은 더더욱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신앙관은 '나 홀로 신자'를 만들어 낼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3) Sola Scriptura!
종교개혁자들의 세 번째 캐치프레이즈는 '오직 성서로'이다. 이는 중세 가톨릭교회가 순수한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라 오만 가지 잡다한 교회의 전승, 교황의 칙서, 예배 전통 등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선포된 선언이다. 그리하여 성도에게 성서 본연의 가르침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획기적인 개혁 선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개신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아직도 강단의 설교가 너무나 비성서적이라는 데에 있다. 여전히 교회는 주님의 말씀보다는 조상들의 유전과 썩어 빠진 전통, 이교적 상상력, 각종 신화와 미신, 개인이 고안해 낸 생각, 세속의 정신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연 프로테스탄티즘은 한 번이라도 주님의 가르침의 근본에 도달한 적이 있었는지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한 가지 예로, 프로테스탄티즘이 주님의 '산상설교'를 제대로 가르친 적이 있었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회는 초대교회와는 반대로 거의 언제나 주님의 산상설교를 비실제적이고 비현실적인 가르침으로 치부하고 그것이 강단에서 액면 그대로 선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울러서 개신교회는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의 모범, 비폭력, 무저항, 가족주의의 거부, 급진적 구제와 재산의 공유 등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가르친 적이 많지 않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성서주의를 주장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보다는 구약의 가르침과 실천으로 도피해서 자의적인 윤리학을 만들어 내곤 했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티즘이 성서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성서의 본뜻, 곧 계시의 중심이신 주님의 성육신, 삶, 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구와 문자에 초점을 맞추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고등비평학자들이나 인본주의적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맞서서 기계적 축자영감을 주장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 즉 일부 보수 개신교 신자들은 '오직 성서'를 성서의 글자를 수호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고등비평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성서주의가 낳은 사생아다. 그러고 보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성서주의는 고등비평과 축자영감이라는 아들을 낳은 셈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순종의 일에는 그만큼 등한히 하고 말았다.
바로 이상의 징후들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위기를 알려 주는 표지들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프로테스탄티즘이 겪고 있는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개신교 신자들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찬찬히 살펴 또 한 번의 개혁에 불을 댕기지 않을 수 없다.
2. 한국교회의 메가 처치 현상의 말기적 증상
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위기, 그중에서도 삶의 부재 및 제자도의 실종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개신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빠른 성장을 경험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에 주신 큰 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큰 시험 거리이기도 하다. 자고로 교회의 위기는 늘 교회의 성공과 함께 뒤따라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자신의 위기가 자신의 성공 때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한국 교회는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다 같이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성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에만 너무 매진한 나머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등한히 함으로써 생겨난 메가 처치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메가 처치 현상은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와서 특히 심해졌다. 그래서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10대 교회 중 무려 5~6개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메가 처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대략 19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3,000명 이상 모이는 메가 처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메가 처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교회가 메가 처치로 성장할 수 있으며 또 메가 처치로 성장해야만 건강한 교회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분명 과거와는 사뭇 다른 생각이었다. 그 때문인지 1980년대 이후 한국에는 가히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메가 처치 현상이 몰아닥치고 있다.
메가 처치 현상에 물든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양적 성장을 위해 올인(all-in)하기 시작했다. 소위 '부흥'을 위한 노력이다. 그러면서 서울 강남의 몇몇 메가 처치와 사역자는 모든 한국교회의 표준이요, 모든 목회자들의 모델이 되기 시작했다. 때문에 현재 한국에는 약 5% 내외의 메가 처치가 있지만 나머지 95%의 교회도 모두 메가 처치를 지향하고 있는 잠재적 메가 처치가 되고 말았다. 이와 함께 온갖 형태의 교회 성장 도구와 이론이 한국교회를 뒤덮고 말았다. 부흥, 전도, 세계 선교, 영혼 구원, 비전, 하나님나라 확장 등…교회 내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용어들은 결국 교회 성장을 위한 세일즈 용어에 불과하다.
이러한 메가 처치 현상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한국교회를 명목상의 신자로 가득 차게 만든 것이다. 제자도는 찾아볼 수 없으며 세상과 교회는 아무런 차이도 없어지고 말았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보다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종교 단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를 개선할 능력조차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메가 처치 현상에 사로잡힌 한국교회는 제자도에 대해서 강조할 수 없는 구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드물게 제자도를 강조하는 교회도 알고 보면 결국 진짜 목표는 양적 성장인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제자도를 강조하는 순간 양적 성장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한국교회는 여전히 부흥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건강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교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최악으로 추락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개독'이라는 용어는 이제 한국 개신교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화되고 있으며 암암리에 활동하던 안티 기독교 운동도 점차 조직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많은 개신교인은 가톨릭교회와 불교로, 혹은 무종교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아울러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교인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래저래 개신교 인구는 빠르게 감소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2000년 초반부터 메가 처치 패러다임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전체 개신교인의 수가 줄어들면서 교회 간의 성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지고,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 숫자는 더욱 줄어들고,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는 더욱 성장을 위해 올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1980년 이후 소위 건강한 메가 처치로 역할 모델을 자처해 왔던 교회들이 속속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강남의 모 교회는 전국과 전 세계에 체인점을 만들어 제국을 꿈꾸고 있고 제자 훈련으로 존경을 받던 다른 모 교회도 최근 천문학적 액수의 헌금을 들여서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함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이처럼 리더급인 메가 처치들이 올바른 본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리더십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메가 처치 패러다임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양상이다. 리더십의 부재는 결국 방향성의 상실로 나아간다. 때문에 조만간 한국교회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물음을 던지게 될 시점이 올 것 같다.
3.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
이 문제에 대해서도 아나뱁티스트 신앙은 우리에게 귀중한 증언을 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아나뱁티스트 신앙의 핵심 중 하나는 '제자도'에 대한 강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는 통상 개신교회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자도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일관되며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가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제자도를 믿음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정확히 간파했듯이 제자도는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요, 나아가 복음의 이해 곧 믿음의 문제다. 바르트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교의학은 윤리학이고 윤리학은 교의학이라고 했다. 믿음과 삶은 하나요, 칭의와 성화도 하나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아나뱁티스트는 믿음을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용서하신 것을 믿고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구속자(redeemer/savior)이면서 모범(model)이고 스승(teacher)이며, 궁극적으로 주님(Lord)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 특히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제자도는 바로 이 그리스도 신앙에서 직접 연유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제자도는 근본적이다.
이런 이유로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는 칭의와 성화, 믿음과 행위, 은총과 노력 간의 오래된 모순을 극복한다. 이는 그들이 제자도를 칭의와 구별되는 성화 과정에 국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신교 구원론에서 믿음과 행위 간의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제자도를 칭의 뒤에 따라 나오는 성화의 과정에 가두어 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논리적으로 제자도는 칭의나 중생 뒤에 위치한다. 칭의, 성화의 논리적 선후 관계는 점차 시간적 선후 관계로 바뀌고 이는 다시 필수와 선택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칭의는 필수지만 성화, 곧 제자도는 선택으로 생각하고 만다. 칭의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지만 성화는 부족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구원관이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자도는 신앙이 참됨을 증명하는 표지다. 그리고 침례•세례는 참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만 베푸는 의식이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는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참신앙을 표현한 자들에게 비로소 침례를 베푼다. 고로 제자도는 물 침례보다 앞서 요구된다.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이나 발타자르 휘브마이어(Balthasar Hubmaier) 등은 물 침례 앞에 '영의 침례'를 강조했는데, 여기서 영의 침례란 말씀을 듣고 믿을 뿐만 아니라 순종하여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 모두를 가리킨다. 이러한 영의 침례를 먼저 받은 자라야 비로소 물 침례를 받을 수 있다. 물 침례는 영으로 침례 받은 사실을 외적으로 공인하는 의식이다. 앨런 크라이더가 <회심의 변질>(대장간 근간)에서 밝혔듯이 이러한 아나뱁티스트의 침례관은 초대교회의 전통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관점과 실천이 믿음과 행위의 모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아나뱁티스트의 그리스도 주권 사상과 제자도가 단순히 개인 경건의 영역을 넘어서 정치, 경제의 영역까지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요더(John Yoder)의 <예수의 정치학>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주권은 개인 경건이나 교회의 영역을 넘어서 정치, 경제적 영역에서도 양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히 칼뱅과 바르트가 '하나님 주권 사상'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신앙은 황제 숭배를 거부했던 초대교회의 전통을 계승한다. 이러한 관점은 세속화된 현대사회에서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새롭고 참신한 빛을 비춰 준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주인(Lord)이시기도 하다. 교회(ekklesia)는 종교 단체이면서 정치적 존재이기도 하다. 산상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이면서 정치, 경제적 의제(agenda)이기도 하다. 이것이 요더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KAP)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불가불 정치적 책임이 있음을 강변한 이유다. 이러한 아나뱁티스트의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산상설교에 대한 지극한 존경, 제자도에 대한 확고한 헌신은 개혁 교회에서 말하는 공공 신학(public theology)에 비견할 만한 기독교 신앙의 공적 증언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러한 공적 증언의 기초 역시 산상설교와 주님의 본이다. 물론 국가는 영적 언어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번역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는 교회를 교회답게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교회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놀라운 포괄성을 갖는다.
아나뱁티스트가 강조하는 제자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그것이 공동체라는 컨텍스트에서 실천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는 공동체를 교회 제도나 조직이기 앞서 형제들의 코이노니아로 본다. 때문에 제자도가 개인 경건이나 특정 훈련 프로그램, 세계 선교에로 헌신, 주교나 담임목사, 리더나 목자, 제도적 교회, 혹은 선교 단체에 대한 충성 등으로 변질되지 않는다.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는 공동체의 컨텍스트 내에서 사랑과 섬김, 화해, 용서, 구제, 원수 사랑 등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오늘날 위기에 빠진 프로테스탄티즘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일관적이며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는 명목상의 신자 문제를 해결한다. 이들은 자신의 입술로 신앙을 고백하고 삶의 변화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한 자들에게만 침례를 베푸는 '신자의 침례(believer's baptism)' 전통을 만들어 냈다. 신자의 침례 전통은 교회가 신자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자의 교회(believer's church)' 전통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신자의 교회 전통은 앨런 크라이더(Alan Kreider)가 몇몇 책에서 자주 강조했던 것처럼 초대교회 300년의 전통과 일치한다. 교회는 참신자들, 곧 영으로 침례 받아 물 침례로 확증받으며 피 침례, 곧 고난을 기꺼이 받는 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교회에 명목상의 신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또한 교회는 곧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끊임없이 서로를 독려하고 권면한다. 이것은 명목상의 신자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한 가지 방식이다.
결국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는 신자를 신자답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교회는 바로 이러한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일부 명목상의 신자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변혁에 대한 최상의 전략은 교회요, 교회 갱신의 최상의 전략 역시 교회다. 신자가 신자 되고, 교회가 교회 될 때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은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복음, '참인간으로 사는 삶'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우자 (IX)…인간의 위기에 대한 대안
2011년 04월 09일 신광은
우리가 아나뱁티스트에게서 배워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오늘날 인간 삶이 직면하는 거대한 위기 때문이다. 이 위기는 너무도 거대하고 심각하여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것에다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아마 '인간의 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유사 인간(pseudo human)' 종족의 출현을 보고 있다. 영화 '서로게이트'가 보여 주듯 거리에는 진짜 인간은 자취를 감추고 인간처럼 생긴 낯선 존재들만이 서성대고 있는 그런 세상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 그들은 자유를 포기한 대가로 거대한 매트릭스에 의해 기꺼이 사육되기를 선택한 가련한 노예들이다.
인간종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의 인간, 곧 포스트 휴먼(post human)이 등장했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인간다운 인간이 사라져 버렸으니 포스트 휴먼 사회(post human society)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미래학자 호세 코르데이로(Jose Cordeiro)나 도미니크 바뱅(Dominique Babin)은 나노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 테크놀로지 등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진짜로 죽지 않고 영생하는 포스트 휴먼(Post Human)이 조만간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다니지만, 이는 사실 인간의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선고나 다름없다.
인간종의 멸종과 함께 역사가 끝났다. 이런 점에서 자끄 엘륄은 20세기 이후 인간의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고 했다. 역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엘륄은 국가 기술 복합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가 역사로부터 창조성과 신기성을 제거해 버리고, 역사를 하나의 기술적 프로세스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탈역사 시대(post historical era)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1. 현대적 삶의 위기
아담의 범죄 이후 어느 시대나 문제가 없었던 때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새로운 문제 앞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아주 독특한 문제이다.
지난 달 일본 동부 해안을 강타한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는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케 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자연 못지않게 인간 문명의 파괴력도 얼마나 큰지를 절감케 하고 있다. 자연의 파괴력과 인간 문명의 파괴력 중 누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하는 양상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궁금해진다. 과연 이번 일본 대지진에서 진짜 위험한 것은 자연인가, 인간인가?
학자들에 따르면, 이미 인류는 지구를 열네 번이나 완전히 파괴하고도 남을 만한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는 물론이고 자신이 사는 세계를 완전히 파괴하고도 남을 만한 그런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역사상 그 어떤 제국도 이만한 힘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현대인은 그런 힘을 가졌다. 이제 인류는 최초로 자신과 세계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불완전하고 탐욕스러우며 이기적인 인간이 감당하기에 그것은 너무도 큰 결정권이다. 하여튼 우리는 지금 '핵 시대'라고 하는 대단히 특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핵 기술은 단순히 하나의 기술이 아니다. 핵은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이다. 우리는 먼저 핵 개발로부터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발견한다. 왜 인간은 핵을 개발한 것일까? 욕심 때문이다. 기필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혹은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적국으로 하여금 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또 무한정 전기를 쓰기 위해서, 그리고 엄청난 떼돈을 벌기 위해서 인간은 핵을 개발했다. 그리고 인류는 1945년 이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이러한 핵 개발의 열정을 우리는 무한한 부의 추구와 무한한 경제성장의 추구에서도 비슷하게 발견할 수 있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저 무한한 욕망을 보라. 그 욕망이 지구를 삼키고, 우리 인간과 우리의 삶을 삼켜 버렸다.
핵 개발의 배후에 존재하는 욕망은 놀라울 정도로 종교적이다. 잘 아는 얘기겠지만, 인간이 핵 개발에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힘에 대한 추구 때문이다. 핵은 힘(power)의 동의어다. 쇠락해 가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위해서 그토록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도 핵이 제공하는 힘 때문이다. 핵만 있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인의 힘에 대한 무제한적 욕망은 그 옛날 바벨탑을 쌓아 신과 겨루려고 했던 니므롯과 그의 백성들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고든 카우프만(Gordon Kaufman)이 잘 지적한 대로 핵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상징물이다. 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은 하늘을 향하는 탑을 쌓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려는 반역과 도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핵 기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성과 종교성의 아우라가 서려 있는 반역의 바벨탑이며, 현대인은 그 거대한 바벨탑 역사에 동원된 니므롯의 후예들이다.
핵 기술만 반역적인 것이 아니다. 자끄 엘륄이 잘 분석하고 있듯이 현대 기술 자체가 반역적이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옛날 장인들의 기술과는 완전히 다르다. 현대의 기술은 하나님의 초월적 간섭을 원천 봉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추방하며 세상을 철저하게 인간의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다. 뭔가 목표로 하는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기술의 목적이다. 따라서 기술 사회는 기도(prayer)가 불가능한 사회다. 현대인은 기도가 아니라 기술로써 구하는 모든 것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인간의 지배와 통제가 절정에 달한 지점에서 그 기술로부터 소외된다. 현대 기술은 인간의 주체적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적 조건(the optimum condition),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최적 조건은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가 찾아낸다. 인간은 결정할 필요가 없고 다만 수행할 뿐이다.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기에 결정할 수 없고 결정할 수 없기에 통제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어진다. 오직 기술이 홀로 지배하고 통제한다. 인간은 점차 기술의 노예가 된다.
핵 개발과 함께 주목할 만한 현상은 국민국가의 부상이다. 핵 기술과 같은 거대 기술(mega technology)의 개발 권한은 국가가 독점한다. 핵은 국가의 힘의 비정상적 비대화를 잘 보여 주는 증거다. 현대 국가는 필요 없이 강력해졌다. 19세기 이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국민국가(Nation State)는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실체가 되었다. 본래 국가는 하나님께서 질서 유지를 위해서 지상에 세우신 기관이다. 하지만 국가는 언제나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요한이 말했듯이 국가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되고 만다. 오늘날 국가는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주장하며 국민들의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스스로를 드높이고 하나님의 보좌에 오르고자 한다. 국가는 점차 선과 악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국민 모두의 삶을 책임지겠노라며 허풍을 치고 있다. 불행히도 국민들은 이러한 국가를 뿌듯해하며 국가에 대한 의존도와 기대치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가에 대한 의존은 결국 자신의 자유를 상실하고 노예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가와 핵, 이 둘의 결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톨스토이(Leo N. Tolstoi)가 잘 지적했듯이 국가는 폭력이다. 그 국가가 핵을 가졌으니 폭력의 극대화가 일어난다. 핵 시대는 폭력의 시대다. 핵은 파괴의 다른 이름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핵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는 파괴자를 볼 수도 없다. 다만 볼 수 있는 것은 밝은 버섯구름과 남은 폐허뿐이다. 핵이 방출하는 죽음의 광선과 재와 공기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고 병들고 왜곡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과 파괴는 수만 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핵은 영원한 폭력과 죽음과 파괴의 상징이 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 핵을 두 발로 딛고, 또 핵과 핵이 만들어 주는 지붕 아래에서 위험스러운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 이 얼마나 희극적인가?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기막히게 잘 보여 주듯 핵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분명 얼빠진 인간들임이 분명하다.
핵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소외(alineation)에 대한 훌륭한 유비이기도 하다. '핵가족'이라는 표현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사회는 모든 개인과 집단이 원자화된 사회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이러한 현대사회의 질병을 '소외(alineation)'라는 말로 잘 표현한 바 있는데, 오늘날 현대인은 그가 잘 지적한 대로 만연해 있는 소외로 고통 받고 있다. 불행히도 소외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며 점점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은 하나님과의 소외는 물론이고 자신과의 소외, 이웃과의 소외, 자연과의 소외 등 모든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는 소외로 고통하고 있다.
관계는 단절되고,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으며, 생태계는 위협받고, 인류 문명은 큰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기술 문명이 제공하는 얄팍한 상품과 문명의 장난감,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혐오스러운 물질적 부, 대중매체가 주는 천박한 쾌락과 선전 등에 의해 양심은 마비되고 있으며, 의식은 신화와 허위의식에 빠져 깨어날 줄을 모른다. 이러한 현대의 문명은 하나님을 내쫓은 세속적 문명이요, 모든 인간과의 관계를 추상적인 계약의 관계로 바꾸어 버린 게셀샤프트(Gesellschaft)요, 자연을 착취하는 폭력적 문명이다. 교황 바오로 2세가 지적한 대로 오늘날 '죽음의 문화'가 온 땅을 덮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끔찍한 종말적 상황에 처해 있는 가련한 인간을 향해서 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교회는 현대 문명의 가장 큰 소비자요, 수혜자로 자리매김하려고 애쓰고 있다. 세상에 폭력과 파괴와 소외 현상이 만연해 있지만 교회 안에도 똑같이 폭력과 파괴와 소외가 창궐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현대 교회를 볼 때마다 세상과 교회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고 실망하고 있다. 교회는 점점 맛을 잃은 소금 신세가 되고 있다.
2. 현대병을 앓고 있는 한국 사회
한국 사회는 지난 100여 년간 너무도 빠르게 현대화되고 산업화되었다. 약 100여 년 전 한국은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일본과 서구 열강에 의한 강제 개화, 일제의 35년간의 식민 통치, 전국토를 초토화한 6.25전쟁, 그리고 광범위한 산업화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21세기 초, 한국에서 100여 년 전 옛 조선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로 인해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가 겪고 있는 현대병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문제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고 있다.
아마도 지금 한국은 반만 년 역사 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인간다움을 그 풍요로 맞바꾸어 버린 듯싶다. WTO체제의 개막과 신자유주의의 유입 덕택에 지금 한국인은 유치원생까지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살인적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 사회는 점점 삭막해 가고 있다. 입시난, 취업난, 주택난 등에 찌든 한국의 청년들에게 푸르른 이상을 품는 것은 이제 사치가 되어 버렸다. 한국 최고의 인재들의 산실인 KAIST에서 징벌적 등록금 때문에 연달아 죽음을 택하는 아까운 청년들이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바쁘다', '정신없다', '힘들다', '피곤하다', 이것이 평범한 한국인의 입에서 버릇처럼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다.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한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가 쓸쓸하게 혼자 죽어 갔다는 뉴스 보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죽어 가는 죽음을 가리켜 소위 '고독사'라고 한다. 고독사는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급증과 함께 점차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비좁은 원룸에 달랑 혼자 살아가는 1인 가구의 숫자가 자그마치 400만 가구나 된다고 한다. 이는 전체 가구 수의 약 1/4에 달하는 수치며, 특히 20대 청년 중 절반 이상이 1인 가구라고 한다. 이러한 수치가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21세기 현대 한국인을 괴롭히는 가장 큰 영혼의 질병은 고독이라는 사실이다.
고독은 1인 가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2인 이상 다인 가구의 경우라도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는 어린이, '외톨이 증후군'을 앓는 청소년, 성적과 취업 때문에 고통 받는 학생, 대화 없이 지내는 쇼 윈도우 커플, 주말 부부, 기러기 가족 등…소외와 고독은 이제 현대 한국인이 겪는 국민병이 되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사회 내의 대립과 갈등도 점차 첨예해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남과 북이 늘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전라도와 경상도 간의 지역감정, 정치적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 기업과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강남과 강북, 기성세대와 젊은이 세대 간의 갈등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탈북자, 중국 동포, 이주 외국인의 증가와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점차 문화 간의 대립과 갈등도 생겨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대립과 갈등은 너무나 쉽게 폭력의 형태로 표출되곤 한다. 작년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한국전쟁은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심성 속에 폭력성을 깊숙이 각인해 주었다. 군사 문화는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징이 되었으며, 그 덕에 우리 사회는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초•중•고등학교에 만연해 있는 학교 폭력은 우리 모두를 경악케 하고 있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이러한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만한 치료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동체는 해체되고 유교는 사회적 규범 노릇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대안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슬프게도 한국교회 역시 한국 사회를 치유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신•구교를 합하여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대안적 사회규범 및 질서를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한국교회는 이렇게 소외로 고통 받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전도 대상자나 잠재적 교인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전도(?)해서 자기네 교회로 끌어와서 교인 숫자만 늘릴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교세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명예를 드높이고 더 크고 웅장한 건물을 짓는 데 교인들의 헌금을 낭비하고 있는데, 이런 한국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다.
3. 아나뱁티스트의 대안 사회의 비전
실로 인간의 위기다. 여기저기서 위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는 세상에 어떤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 것인가? 현대사회가 듣고자 하는 복음은 아마도 '참인간으로 사는 삶'을 제시해 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면 노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1) 대안 사회로서의 교회 공동체
아나뱁티스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의 대안 사회(counter society)에 대한 비전이 아닐까 싶다. 아나뱁티스트는 교회와 세상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이러한 분리 때문에 종종 아나뱁티스트는 이원론자요, 분리주의자, 혹은 분파주의자라는 오명을 낳기도 했다. 예컨대 한국에서 아나뱁티스트를 통상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재세례파'다. 그런데 이 용어에는 아나뱁티스트를 주류 교회의 일원으로 보기보다는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분파, 혹은 종파(sect)로 보려는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의 원인 중 하나는 아나뱁티스트가 교회와 세상을 칼처럼 날카롭게 구분하는 데에 있다.
아나뱁티스트가 교회와 세상을 날카롭게 구별하는 이유는 교회를 참신자의 공동체로 보기 때문이다. 신자와 불신자가 구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신자로 이루어진 교회가 불신자로 이루어진 세상과 구별되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후터라이트 장로 클라우스 펠빙거(Claus Felbinger)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이방인처럼 사는 사람은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교회는 교회고 세상은 세상이다. 세상은 언제나 세상이었으며 앞으로도 세상일 것이다. 세상은 세상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하지만 교회는 다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군으로 섬기고 충성하는 새 이스라엘이다. 그런 교회가 세상과 같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종종 개혁주의자들은 교회의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의 문화 변혁에 대한 부르심을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서 세상에 대한 책임, 문화 변혁에 대한 부르심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더의 말처럼, 사회에 대한 최상의 전략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신자가 신자답고 교회가 교회다울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을 온전히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아나뱁티스트의 생각이다. 교회가 세상과 똑같으면서 어떻게 교회가 세상을 섬긴단 말인가.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섬기지 않겠는가.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그들은 교회와 세상을 날카롭게 분리하며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끄 엘륄은 말하기를, 현대의 국가 기술 복합체가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최고의 윤리는 '순응주의(conformism)'라고 했다. 즉 현대의 국가 기술 복합체는 국가 권위에 순복하고 기술 사회의 효율성의 원리를 따르고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는 인간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 용감하게 뛰어 들어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맹랑한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던가? 세상은 한없이 순진하기만 한 그런 크리스천에 의해서 변화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순응주의(non conformism)이다. 거대한 매트릭스 체제 내에서 동화되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비순응주의자들만큼 세상이 두려워하는 이들도 없다. 아나뱁티스트는 지난 500년 동안 이러한 비순응주의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해 왔다. 후터라이트나 아미쉬와 같은 비순응주의적 삶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아나뱁티스트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나라의 정부가 칼이나 창, 총을 전혀 들지 않는 한없이 유약하기만 한 아나뱁티스트를 혐오하고 두려워했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두려움은 대통령 하야 운동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J 목사나 한기총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위협을 만들어 냈다. 세상에 끝내 동화되지 않고 대안 사회로 존재하는 교회, 이것이야 말로 우리 시대의 교회의 사회 전략이 아닐까 싶다.
2) 아나뱁티스트의 대안 문화
대안 사회로서의 교회는 대안 문화(counter culture)를 창출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종종 아나뱁티스트의 제자도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는 것 때문에 놀라곤 한다. 이들이 제자도의 수준을 높이 잡은 이유는 먼저 주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설교를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는 데, 그것은 아나뱁티스트의 급진적 제자도는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라고 본다는 점이다. 혼자서는 지키기 힘들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는 훨씬 쉽다. 산상설교의 준수도 가능하다! 즉 이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세상의 유혹을 최소화하고 그리스도의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제공하는 장이다. 다른 말로, 교회는 세상에 대한 대안적•대항적 문화(counter culture)를 담지하는 공동체다.
2007년 미국 니켈마인의 아미쉬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때, 미국 사회와 전 세계는 아나뱁티스트의 위대한 용서와 사랑의 능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피해를 당한 아미쉬 가족과 공동체는 가해자인 찰스 로버트(Charles Robert)의 유가족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고 용서하며 사랑의 사귐의 관계로 초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것은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꾸준하게 화해와 용서를 배우고 훈련하여 생활화했기 때문이었다. 아나뱁티스트가 보기에 교회는 용서와 화해를 생활화하고 그것이 문화로 정착된 공동체라야 한다.
아나뱁티스트의 용서와 화해의 실천은 공동체 내부의 갈등뿐만 아니라 공동체 밖의 갈등하는 당사자를 중재하는 탁월한 평화 중재 기술을 개발해 냈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의 평화 조정 기법이 사법 체계 내에서도 활용 가능함을 증명해 냈다. 그래서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에서는 아나뱁티스트의 평화 조정 절차를 사법 체계 내에서 수용하여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 들어가서 응보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를 이루는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조정을 통해서 세상을 치유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과 같은 이들은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 등지에 들어가서 탁월한 분쟁 해결의 열매를 맺고 있다. 이들의 신앙과 실천은 분명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를 섬기는 데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뱁티스트 공동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평화 공동체라는 것이다. 아나뱁티스트들 사이에도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아나뱁티스트는 역사적 평화 교회였다. 폭력, 전쟁, 무기, 군대의 거부는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삶의 표지다. 그리고 이들의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은 지금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폭력과 파괴에 대한 치료책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교회는 또한 '형제 사랑'의 공동체다. 사랑 없는 세상 가운데서 사랑을 얻기 위해 기갈난 영혼들을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스스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믿으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것은 먼저 사랑이 실재하는 공동체를 보여 주는 것이다. 사랑은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의 가시적 표지이다. 무엇이 보이는가? 로마의 주교좌와 바티칸 궁, 교황, 질서 정연한 성직자 서열, 장엄한 제의와 예배 장면, 예배당 등이 보이는가? 아니다. 보이는 교회는 사랑이 보이는 교회다.
데이빗 옥스버거(David Augsburger)는 아나뱁티스트의 영성의 결정적인 특징은 이웃 사랑이라고 말한다. 아나뱁티스트의 영성은 자신의 내면적 영성(1차원적 영성)이나 초월자 하나님과의 관계의 영성(2차원적 영성)을 넘어서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의 영성(3차원적 영성)이다. 이웃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보기 싫고, 껄끄러운 '그•그녀'와 공동체를 이루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영성이다. 그것은 또한 인종과 민족, 국가, 문화, 언어, 신분과 지위를 초월하는 형제자매 공동체를 이루는 영성을 말한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공동체 밖으로 내치지 않는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의 열매가 코이노니아(koinonia)다.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고독으로 몸부림치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랑의 샘물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힘과 부의 무한한 추구에 대해서도 아나뱁티스트는 대안적 영성을 제공해 준다. 이들의 영성은 요즘 유행하는 '내려놓음'의 영성이다. 이들은 서구의 개인주의를 세속적 정신으로 본다.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근대적 주체는 죄성의 표현일 뿐이다. 개인은 공동체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는 성서의 가르침에 복종해야 한다. 결국 성서가 중심이다. 그래서 아미쉬 공동체의 경우 공동체의 규율인 오르드눙(Ordnung)을 어기는 자는 치리를 받는다. 회심이란 자신의 주관이나 고집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포함하며 이로써 데무트(Demut), 곧 순종과 순명을 생활화한다. 이러한 순종과 순명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신뢰로 나아가며, 이러한 신뢰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 곧 안도, 헌신, 위탁, 방하(放下), 곧 '내려놓음'의 영성으로 나아간다.
또한 성공, 성장, 경쟁으로 만물이 피곤하고 지쳐 있는 세상 한복판에서 아나뱁티스트는 쉼과 안식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쉼과 안식을 강조한다고 해서 아나뱁티스트는 일과 노동을 정죄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그들은 일과 노동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명령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과 함께 안식을 강조한다. 또한 이들의 노동은 자신의 업적과 성취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예배요, 섬김이요, 누림의 수단임을 부단히 상기시킨다. 따라서 타인과 경쟁하여 자신의 업적 쌓기의 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다하기 위한 노동을 추구한다. 아나뱁티스트는 탁월한 업적을 쌓아 인간 이상이 되려는 시도도, 부족한 능력 때문에 열등한 인간 취급을 하는 것도 모두 거부한다. 인간은 다만 언제나 인간이어야 하며 인간으로서 일하고 쉬고 누리기를 힘쓴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아미쉬 공동체의 기술 문명의 거부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 전기와 전화를 거부하고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고 다니며 단추 달린 옷을 입지 않고 보험, 사회보장제도, 군 입대 등을 거부하며 18세기 농촌 생활을 유지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옛 농촌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성과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술 문명을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즉 문명의 장난감 때문에 공동체가 해체되고 인간성이 말살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며 바깥세상과 관계 맺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긴장이 우리가 볼 때는 종종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과 구별된 대안 공동체를 유지하고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도전, 변화, 제도 등을 공동체 회의를 통해서 조심스럽게 결정해 나가는 노력을 진지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후터라이트의 경우 그들은 아직도 사유재산을 거부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부(富)를 정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의 사유화는 악이라고 본다. 부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소유며 또한 공동체의 소유며 또한 가난한 자의 소유라는 신념을 야콥 후터 이후 줄곧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이윤 추구에 함몰되지 않으며, 무한한 경제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일을 하지 않으며 가진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전전긍긍하거나 자신의 부 때문에 스스로 교만하거나 타인을 무시하거나 지배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사유재산이 없으니 말이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후터라이트를 보았다면 자신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이미 500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후터라이트의 대안적 공동체는 현대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가공할 만한 비인간화 현상을 막아 내고 있다.
인간의 자율성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현대 문명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켜 버렸다. 현대인은 더 이상 인간이기를 그만두어 버렸으며 점차 삶을 사는 법(living a life)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실로 인간의 위기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복음은 참인간으로 사는 법이다. 참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법을 말하며,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사는 법을 말한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서 선포해야 할 복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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