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기우스 논쟁
-- 역사적으로 볼 때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파 사이에 벌어진 분쟁은 기독교에 관한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개의 개념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었다.
-- 이 논쟁은 펠라기우스에 의하여 유발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인 코일레스티우스(Coelestius)의 일부 가르침 때문에 일어났다. 원죄를 부정하고, 복음처럼 율법도 하늘나라로 인도한다고 가르쳤다.
1. 펠라기우스의 가르침
1) 펠라기우스
그는 브리튼의 한 금욕주의자로서 390년경에 로마에 정착하였는데, 도덕적 완성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였다.
2) ‘의지의 자유’ 개념
인간은 선과 악을 일일이 선택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조화된 상태에 이르게 되는가? 혹은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조화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하나님의 은총의 영향력에 기대해야 되며, 그러한 은총의 결과로 신생된 자의 의지는 이제 선의 방향으로 참된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아야 되겠는가? 논쟁의 초점은 바로 이 문제였다.
펠라기우스는 이러한 두 가지 견해 가운데 첫째 것을 주장하였다. 펠라기우스는 ‘반대로 선택할 수 있는 힘’ 혹은 이른바 형식적 자유를 강조하였다. 그는 옳은 일을 행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능력을 찬양하였다. 그는 논증하기를,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부과하였으므로 인간은 그것을 성취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인간에게 범죄를 강요할 아무것도 없다. 본성의 선(bonum naturae)은 많은 이교도들로 하여금 최고의 덕성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하였다. 인간이 죄된 생활을 극복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3) ‘죄’의 개념
죄는 인간 본성의 상태에서나 의지의 경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개념으로 인해서 펠라기우스는 원죄의 교리 혹은 대대로 전달되는 죄된 성향에 관한 가르침을 배격하게 되었으며, 아담에게까지 소급시킬 수 있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라고 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아담의 타락은 그의 후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행위라고 간주되었다. 펠라기우스는 죄의 보편성을 설명하되, 인간의 감각적 성질은 그 자체로서는 무죄한 것이지만 시험과 범죄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설명하였다.
4) ‘은총’의 개념
펠라기우스는 진정한 의미의 은총을 믿지 않았다. 즉 그는 은총을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세력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능력에 미치는 하나님의 창조적 세력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은총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성을 계발시켜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은총은 돕는 힘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인간은 그러한 조력 없이도 옳은 일을 행할 수가 있으므로, 은총은 절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적 의미에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코일레스티우스는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는 단지 인간 의지의 바른 행위를 도와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인간편에서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일이다.
2. 어거스틴의 가르침
1) 어거스틴
그는 개종하기 이전인 그의 생애의 초기에는 마니교의 주장에 대항하여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였다. 그러나 후에 자기 자신의 개종을 회고하여 볼 때마다, 그는 점점 더 자연적 상태의 인간으로서는 개종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과의 어떠한 적극적 협동도 불가능하며 신앙의 촉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만 의존한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제 그러한 의지의 변화는 은총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2) 인간의 본래적 상태
마니교와의 논쟁을 통해서 어거스틴은 인간의 죄악성을 창조 때에 받은 본래적 성질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본래의 인간은 의로웠으며 그의 의지는 자기 자신과 조화되어 있는 동시에 하나님과도 조화되어 있었다. 의지는 정욕의 충동을 이겨낼 수가 있었으며, 따라서 고통도 없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와 같은 축복된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인간은 죄를 지을 필요도 없고 죽을 필요도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강제를 받지 않은 것은 그의 의지의 자유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만일 그 자유를 옳지 못한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그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고 죽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3) 아담의 타락
아담의 타락은 실로 큰 죄였다. 그 동기는 교만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타락은 어떤 한 가지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가 악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서 자기 자신을 의존하게 되었다. 이것이 아담으로 하여금 죄된 의지를 가진 죄인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도움을 상실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육체에 대한 지배력도 상실하였다. 마음은 정욕으로 가득차게 되었으며, 저급하고 변하기 쉽고 불확실한 사물을 의지하게 되었다.
4) 타락의 결과
아담의 죄는 인류 전체의 죄였다. 어거스틴은 전체로서의 인간의 본성이 최초의 인간에게 이미 종자 상태로 나타나 있었다고 가르쳤다. 개인적 행위로서의 최초의 죄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행위였다. 그러나 인간을 집단적 공동적 존재로 볼 때에는, 그것은 실로 인류의 공통적인 행위였다. 우리는 자진해서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책임은 전 인류가 져야 한다. 아담의 죄에는 그의 후손의 의지가 작용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전 인류의 죄이다. 어린이는 비록 실제로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모두 이러한 죄된 상태에 포함된다. 어린이도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죄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전달되는 수단은 불순한 성질의 성적 욕망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어거스틴은 그러한 성적 욕망을 죄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자식을 낳으려고 할 때에, 타오르는 색정이 없는 정당하고 훌륭한 성적 교섭이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색정으로 나지 않고 이성으로 난 것만이 자손에게 전달될 수는 없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5) 인간의 회복
인간의 회복은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이러한 은총은 상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것이다. 은총은 세례로부터 시작된다. 세례는 은총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관계를 맺게 하는 최초의 행위인 것이다. 세례를 통해서 인간의 원죄가 제거된다. 신앙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은총은 율법이 행할 수 없던 일, 즉 정욕을 이기는 일을 행한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은총은 본질적으로 점진적 과정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선한 의지에 대한 하나님의 감화력이었다.
6) 예정
어거스틴의 견해에 의하면 은총은 불가항력적이고 예정된 것이다. 이 교리가 완성된 형식으로 제시된 것은 어거스틴이 죄와 은총의 교리를 발전시킨 이후였다. 이 교리는 412년에 펠라기우스 논쟁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 제베르크는 “어거스틴의 신 개념에 나타난 신플라톤주의적 색채, 그의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 은총의 독점적 작용에 대한 인식, 석의적 고찰 등, 그의 사상의 많은 면은 모두 이 예정이라는 용어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은, 은총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은 의지의 자유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표현하되, 의지는 항상 자유를 가지고 선택을 행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지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마음의 경향에 달려 있다. 마음의 경향이 타고난 본성 그대로의 것을 지향하고 있는 한, 그것은 영적인 것을 선택할 수도 없고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은총은 마음을 변화시키며, 따라서 의지는 자유를 가지고 영적인 것을 선택하게 된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은총의 역사를 인간의 의지는 거역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의지 작용에 의해서 개심하는 것이 아니라, 개심하였기 때문에 의지 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어거스틴은 도한 선택된 자에게는 인내의 은사를 주신다고 하였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그러한 인내의 은사는 인간의 개개의 행위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은총의 상태에 보존하는 데 관계되는 것이며, 개개의 행위는 그러한 은총의 상태로부터 자연적 결과로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모두 은총에 순종하지 않는가? 어거스틴은 이에 대하여 예정의 교리를 가지고 답변하였다.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형벌을 받도록 예정되었다. 이처럼 예정된 자들의 수는 고정되어 있고 변경시킬 수 없으며 또한 서로 교체될 수도 없다. 예정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정의 특별한 효험으로 인내의 은사를 주신다. 예정되지 못한 자들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이다. 그들은 비록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세례를 통하여 신생되고 새로워진 참된 기독교도인 것 같이 보일지라도 결국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3. 펠라기우스주의 정죄
펠라기우스주의는 412년에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펠라기우스의 동료였던 코일레스티우스가 파문당함으로써 교회에 의하여 배격되었으며, 또한 418년에 열린 카르타고의 교회회의와 431년에 에베소에서 열린 제2차 공의회에서도 펠라기우스주의는 정죄되었다.
4. 반(半)펠라기우스주의
펠라기우스주의가 배격을 당한 것이 곧 어거스틴의 체계 전체가 받아들여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어거스틴의 예정 교리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들에게까지도 반감을 사게 되었다.
1) 논쟁
⑴ 반(半) 펠라기우스주의자들
① 어거스틴의 예정교리로 인해서 애굽의 수도사들간에는 적지 않은 혼란이 야기되었다. 예정의 교리를 그 두 가지 논리적 결론에까지 추구함으로써 어떤 사람들은 경솔한 신념을 가지고 낙관주의적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절망의 구렁에 빠지게 되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에 있어서의 공적을 인간적 요인으로 돌리는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
② 더 맹렬한 반대는 남부 고올에서 일어났다. 마실리아에는 크리소스톰의 제자요 친구인 카시아누스(John Cassianus)가 주관하는 한 수도원이 있었는데, 이 수도원의 수도사들과 그리고 그와 동일한 학파에 소속된 신학자들은 어거스틴의 예정 교리에 반대하였다.
③ 반펠라기우스주의를 가르친 파우스투스 주교(d.495)는 카시아누스보다도 뛰어났으며 반펠라기우스주의의 가장 믿음직한 대변자였다.그의 중요한 저작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 정신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De Gratia Dei et Humanae Mentis Libero Arbitrio)인데 이 저작은 475년의 알레(Arles) 교회회의 직후에 씌어졌다. 그것은 반펠라기우스주의의 강령이라고도 불리워질 만한 것이었다.
--> 어거스틴의 예정론에 대한 이와 같은 반대자들은 반(半) 펠라기우스주의자들(Semi Pelagians)이라고 불리워졌다. 그들은 어거스틴의 예정론과 같은 교리를 전통과 상충되는 새로운 것이라고 보았으며, 전도의 목적을 파기하고 도덕적 정신을 약화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절망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교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다양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모든 점에 반대하여 그들은 선언하기를, 은총은 전혀 일반적인 것이며 그리스도는 만인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예정은 예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은총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협동하는 것이다.
⑵ 어거스틴주의자들의 주장
① 430년에 어거스틴이 죽은 후에 아퀴타니아의 프로스페르는 어거스틴의 교리를 위하여 궐기해서 모든 반대자들과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는 반펠라기우스주의를 어거스틴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로부터 생겨난 불가능한 제3의 어떤 것이라고 보았다.
② 「종족의 부르심에 관하여」(De Vocatione Gentium)이라는 표제하에 익명의 한 어거스틴주의자에 의하여 씌어진 저작에는 어거스틴의 개념에 근거해서 죄와 은총에 관한 교리를 확립해 보려는 시도가 나타나 있다.
⑶ 논쟁의 잠정적 해결
반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529년에 오렌지 교회회의에서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회의에서는 인간이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점이 배격되었을 뿐 예정의 교리에 관하여 그 이상은 아무런 결정도 없었다. 또한 어거스틴의 거절할 수 없는 은총의 교리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죄와 은총의 문제에 관해서는 영적인 일에 있어서의 자연적 인간의 전적 무능력과 모든 선한 일을 은총의 결과로 돌려야 된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은총이 선행된다고 선언하였다. 성화의 과정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지 작용이 처음 촉발되는 것까지도 은총의 역사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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