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의 색채과학과 심리학
천미정(미디어 작가)
-색채에 대한 해석은 문화마다 다르고, 어떤 특정한 색채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분위기나 심리적 반응을 유발시킨다. 지금까지 색이 인간의 뇌세포에 영향을 주고 자극한다는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색채론이 발달해 왔지만, 여전히 그 심리적 효과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이 없다. 색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현대작가들을 통해 이들이 색채의 신비와 그 효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본다.-
파랑은 진실, 노랑은 질투, 초록은 고독, 빨강은 뻔뻔함, 흰색은 사랑, 검정은 죽음이다.(저자 미상, 1942)
정말 그럴까? 색채에 관한 해석은 문화마다 다르다. 파랑은 슬픔, 노랑은 비겁함, 초록은 신선함, 빨강은 사랑, 흰색은 죽음, 그리고 검정은 힘일 수도 있다. 어떤 색깔이 특정 분위기와 심리적 반응을 유발한다고 할 때, 그 색을 보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과학인가, 유사과학인가, 혹은 심리학인가. 색채 이론이 디자인, 회화, 사진, 영화의 원리에 적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어느 색채론이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 14세기경 첸니노 첸니니는 《공예가의 핸드북》이라는 책에서 자주색이나 금색과 같은 희귀한 색상이 신성한 기표로 사용되었다고 언급했다. 성모 마리아의 옷은 종종 자주색으로 장식되고 천사는 금색 후광으로 그려졌다는 것인데, 그러나 안료의 희귀성이 먼저인지 혹은 특정 색채가 진귀함을 나타낸다는 발상이 먼저인지에 관해서는 분명치 않다. 현대 색채론도 이와 마찬가지다. 요세프 알베르스(Joseph Albers)는 그의 저서 《색채의 상호작용》(1963)에서 ‘동시 대비론(simultaneous contrast)’ 개념을 소개하면서 색채가 눈에 작용할 수 있는 시각적 다양성을 기술,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 역시 색이 뇌세포에 영향을 주고 자극하는 방법에 관한 과학적인 근거는 있으나 그것의 심리학적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또한 특정한 환경, 의복, 젠더, 그리고 취미의 색채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통계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고 있지만, 그러한 통계 자체가 집단문화를 형성하고 그것을 규정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예술가에게 있어 색채는 그것이 예술작품 감상에 어떻게 주관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시험하는 좋은 매체다. 이제부터 색을 주제로 다루는 3명의 현대 작가를 통해 그들이 색채의 신비와 그 효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힐러리 로렌즈(Hilary Lorenz)는 색을 신비한 힘의 원천으로 간주하여 병 치료에 사용하던 고대 치료법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주역, 풍수, 주문, 마법, 색채치료법과 관련된 색채 아이디어의 연구를 기초로 색의 치유적 힘에 관한 고대 신앙과 유사과학적인 효과를 반영하는 작품들을 제작한다. 로렌즈는 에드윈 바빗(Edwin Babbitt)의 저서 《빛과 색채의 원리》(1878)와 딘쇼 가디알리(Dinshaw Ghadiali)의 《스펙트로 -- 크롬 치료법》(1920)을 참조하는 한편, 색채와 신체의 진동에 관한 산스크리트의 사상 ‘샤크라(빛의 물레바퀴)’를 신세대적으로 적용하였다. 샤크라의 7색(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은 생존, 가족생활, 직업, 관계, 창조력, 지식, 그리고 명성과 같은 인생의 다양한 양상을 통제한다고 명백히 믿어지는 정신적 에너지의 중심축들을 반영한다.
그녀는 2002년 12월 〈빛과 색채의 원리展〉에서 샤크라의 색채 원리를 이용, 관람자가 시각적, 신체적, 언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색채 치료법을 발표했다. 출품작 〈유리 뜨개질 바늘〉은 샤크라 색상으로 만든 스웨터를 입으면 ‘위카(Wicca)’마술에 걸리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바늘과 스웨터는 〈주술(Incantation)〉이라고 이름 부쳐진 커다란 사진 연작(동일한 색채의 배경에 동일한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앉아 동일한 색의 바늘로 동일한 색의 스웨터를 뜨고 있는 여인의 사진)과 함께 진열되어 있다. 로렌즈는 또한 색상에 따른 치료 효과를 위하여 제작된 남근 모양의 의학용 색유리 주조 오브제인 〈주물적 치료기구〉연작과 함께 〈치료용 색안경〉연작도 전시하였다. 이 안경은 결핍을 치유하는 7개의 샤크라 색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알의 효능으로 인해 예를 들면 노란색 안경을 매일 착용하면 2배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가장 직접적인 신체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은 〈치료의 벽〉이다. 관람객이 그 밑에 누워 색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면으로부터 약간 기울게 설치된 벽은 16개의 다양한 색상이 신체의 병든 부분에 전달되어 그 기관들을 치료하도록 되어있는데, 내레이션으로 녹음, 장착한 바빗의 1878년 텍스트가 명령하는 대로 명상적인 치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로렌즈의 모든 작품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색채 치료법의 진지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이 주제의 거짓과 유사과학적 요소를 노출하는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그녀는 권위적 의학이나 철학적 텍스트의 신중함과 함께 그것과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색채의 신비와 그것의 미신적인 경이로움을 가시화 한다.
어떠한 미신도 무지개에 관한 것만큼 무성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무지개의 한쪽 끝에 금단지가 있다고 믿으며 또 어떤 이들은 쌍을 이룬 무지개 사이에 임신부가 서면 쌍둥이를 낳는다고 믿는다. 하늘이 색상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빛의 장관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데카르트와 뉴턴에 이르기까지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에 비칠 때 발생하는 광학적인 굴절에 의한 것이라고 연구되어 왔다. 그러한 무지개는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다르게 보인다. 태양빛이 색상 스펙트럼으로 분해될 때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 이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독특한 시각적 광경을 선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떠한 인공 빛도 이러한 스펙트럼을 완전하게 재창조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 레베카 커밍즈(Rebecca Cummins)는 시뮬레이트된 유사 무지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지개 기계〉를 제작하였다. 이 인공 무지개가 실제와 유일하게 다른 점은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또한 아주 높지 않게도 무지개를 띄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무지개들은 눈높이에서 직접 제작되기 때문에 그것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무지개와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경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커밍즈는 신령론자, 물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상에서 3m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안테나같은 강철 기구를 만들었다. 샤워기 꼭지처럼 물의 벽을 뿌리는 이 기구에 태양빛이 비쳐질 때 관람자는 다른 버전의 무지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밤에는 인공조명 탓에 기대하지 않았던 색깔의 무지개가 창출된다. 이 작업의 매력은 기계가 자연 무지개를 만든다는 기계적 호기심보다 관객이 무지개를 실제로 체험한다는 심리적인 효과에 있다. 커밍즈가 주장하듯이, 이 작업의 목적은 “무지개의 마술적 측면을 탈(脫) 신비화하고 해체하기보다는 자연, 예술/테크놀러지에 관해 우리가 맺고 있는 형이상학적이고 주관적이고 역설적인 관계를 호기심과 의식으로 자극하기 위함”에 있다. 이 작품의 가장 창조적인 면은 새로운 맥락으로 무지개를 만드는 섬세한 유머에 있다. 무지개를 뒷마당, 정원, 혹은 창문 밖에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새로운 감흥이 있다. 커밍즈가 이 작품을 유일한 예술품이 아니라 시장성 있는 발명품으로 공유하였다면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태도로 무지개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 다니엘 콘라드(Daniel Conrad)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빛으로 구성된 연쇄적 색면을 선보인다. 콘라드는 변하는 색상의 추상 형태의 조명상자, 그가 색채 오르간, 혹은 “크로마코드(Chromaccord)”라고 부르는 조명상자를 제작한다. 그는 요세프 알베르스의 색채관계론에 대한 텍스트를 이용하여 색상 체계의 시각적 환영을 기조로 작업한다. 즉 색상의 연쇄가 신경계를 자극하도록 느리게 변하게 함으로써 한 색상에서 다른 색상으로 연결시키는 시각적 외피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사이에, 바로 그 순간에 관객은 각기 다른 색채와 형상들이 상호 변화하는 환각적인 잔상을 시각화하게 된다. 이렇게 그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색채와 형태의 시각적인 환영을 마술적으로 생산해 내는 기계적인 애니메이션 박스를 창조하는 것이다.
프랑스 수학자 루이 베르트랑 카스텔(Louis Bertrand Castel)의 조명상자나(1735) 영국의 알렉산더 월라스 리밍톤(Alexander Wallace Rimington)이 제작한 조명상자와(1890) 같은 과거의 색채 기구 정신에 입각하여, 콘라드는 시각적 자극을 음악 세계에 결부시키는 색채 상자들을 제작한다. 그는 “이 색채 상자는 제한적인 선택 범위 내에서 위대한 아름다움을 지니기 때문에 그러한 기능의 측면에서 플롯과 비교될 수 있다. 색면들의 정적인 배열에 의해 크로마코드는 연주자가 색상 관계에 의거하여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콘라드는 사람들이 음악을 감상할 때와 같이 순수하게 추상적이고 최면적인 상태에서 이 조명상자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어떠한 주제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콘라드에게 시각성은 외부적 표현의 한 형태로서, 그는 그것을 ‘동일화(identification)’의 시각적 신호(그것을 봄으로써 대상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라고 부른다. 반면에 청각적인 신호는 ‘소통(communication)’과 내적인 감정적 체험을 위하여 사용된다.
콘라드는 간혹 벽걸이 조명상자를 제작하는데, 이 경우에 그는 상자 안에 색조의 변화를 프로그램화하는 마이크로칩 컴퓨터를 장착한다. 벽에 진열되었을 때 크로마코드는 일종의 움직이는 색면 페인팅이 된다. 그러나 그의 색면 오르간의 주요 목적은 협동으로 창출되는 음향과 시각의 퍼포먼스이다. 이안 나고스키(Ian Nagoski), 테리 릴레이(Terry Riley)와 같은 음향 예술가들과 공동작업을 할 때, 그의 조명상자는 벽면 작품에서 연극적 주역으로 그 기능을 바꾼다. 콘라드는 색채와 형태의 연쇄를 변화시키는 스위치를 작동하여 그의 추상적인 시각적 매체가 음향 퍼포먼스와 함께 즉흥적 연주를 하도록 유도한다. 크로마코드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순간을 콘라드는‘색채 구문론(chromatic syntax)’의 순간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색체계의 연쇄에 반응하거나 역반응하는 신경계의 작용을 관장하는 것이다. 콘라드의 크로마코드 발명품은 그가 언급하듯이 “미묘하고도 잠재력 있는 지각적 상호작용으로부터 그 힘을 유인하는 움직이는 색채 예술”이다. 즉 색채 조명상자는 음악감상자들에게 어떠한 음악보다도 매력적인 음을 선사하며 관람자에게는 독특한 해석적 시각 경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 번역·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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