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1.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본서는 루터가 1520년에 기록한 논문이다. 루터가 이 책을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계를 개혁시킬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점을 들어 그 당시 독일의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낸, 하나의 뜻있는 권면과 충고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기본적인 문제를 논하는 부분과 실제 문제를 취급하는 부분이다. 그 첫 부분은 1천년 가까이 서방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법조, 종교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건 문제들을 이른바 “로마의 세 가지 담
첫째 담은 세속적 계급 위에 있는 영적 계급의 담인데 이러한 계급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다.
루터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계급”에 속하는 것이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차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제는 그저 하나의 관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크리스천은 모두 세례를 통하여 사제로서 성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루터는 세속적 계급에 대한 영적 계급의 우위성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모든 크리스천은 다 사제라는 만인 제사장주의를 선언한 것이다.
둘째 담은 성서해석자인 교황과 교황의 무오설에 관한 내용이다.
루터는 교황이 성서의 유일한 교사가 되려고 한다고 비판하였다. 즉 교황은 스스로 유일한 권위자라고 생각하며, 교황은 악인이거나 선인이거나 간에 신앙문제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敎皇) 무오(無誤)의 거짓 주장을 하여 우리를 납득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한마디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유들로 인하여 교회에는 이단적이고, 부자연스럽기까지 한 규정들과 교회법이 교회에 들어왔다. 이 문제에 대하여 루터는 성서적인 근거(고린도전서 14장 30절)를 제시하면서 모든 크리스천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요한복음 6;45)고 하였다. 즉 성서 해석이나 그 해석의 확인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고 하는 것이 전혀 조작적인 이야기이며 그들은 여기에 대하여 한 글자도 증언하지 못한다고 비판을 가하였다.
셋째 담은 교황과 공의회의 담이다.
즉 공의회를 소집하거나 결의를 확인하는 것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아무런 성서적인 근거가 없이 자신들의 법령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루터는 실례로 공의회 가운데 가장 유명한 니케아 공의회가 주교에 의한 것이 아닌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소집이 되고 확인되었다는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공의회는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공의회였다는 것이다. 만약 교황청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공의회는 분명 이단적인 것이 되어야 하지만 니케야 공의회는 가장 그리스도교적이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 논문의 첫째 부분에서 직업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신자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당시 교회의 세 가지 담을 파괴한 것이다. 둘째 부분에서 루터는 공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과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27개 항목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취급하였다. 교회 내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분야 등 다방면에 걸쳐서 문제의 핵심들을 다루어 개혁을 제안한 바 있다. 루터는 먼저 교황의 교만한 마음에 대하여 질타를 가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마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날마다 울고 기도하는 일과 모든 겸손의 본을 세우는 일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황은 교만하여 영혼 구원에 관하여는 관심을 지니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을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기경은 독일의 재산들을 독일로 가져가기 위하여 만들어진 직분이기에 하나님 예배를 땅에 떨어뜨리게 하였다고 질타한다. 루터는 추기경은 단 한사람도 없을 지라도 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교황청 역시 다 없어지고 단 하나만 남더라도 신앙 문제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첫 수입세와 교황의 달, 자유 교구령, 성록령등은 교황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악법이었다는 것을 루터는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루터는 첫 수입세의 폐지와, 로마의 임명에 대한 금지, 그리고 개교회의 권리회복을 주장하였다.
교황은 이런 모든 고상한 상행위(교황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를 위하여 로마에 거래소인 교황청내의 집을 세웠는데 성록령과 교구령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다 이리로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루터는 이러한 행위를 창녀의 집에 비유하였다. 루터는 또한 세속적인 문제를 가지고 교황의 법정에서 심판하는 것에 대한 배제를 주장하였으며, 주교 법정의 재판관들에 의하여 자행되는 난폭한 착취를 모든 주교가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결혼생활에 관하여도 자신의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결혼 생활을 자유롭게 행하고,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든지 않든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루터는 죽은 자의 미사를 폐지할 것과, 성사금지를 폐기할 것, 성자의 날이나 순례도 금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즉 루터는 본 논문에서 신학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개혁의 방침을 세웠는데 교황권의 악정과 직임 임명, 과세는 억제되어야 하며, 부담이 되는 의식은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독일 교회는 마땅히 독일 민족교회 산하에 있어야 하며 교직자의 결혼은 허락되어야 하며, 수많은 성일은 줄여서 산업과 사회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탁발 교단들을 포함한 구걸은 금지되어야 할 것은 말하였다. 또한 사창가는 폐쇄되어야 하고, 낭비는 억제되어야 하며, 대학의 신학 교육은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루터는 마감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장이 바르다면 나는 지상에서는 정죄를 받아야 하고 다만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늘에서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과 전그리스도교계의 주장은 홀로 하나님 한 분에 의해서만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든 성서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2. 교회의 바벨론 감금(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이 논문은 루터가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한 2개월 후에 나온 글이다. 이 논문은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반박한 글이다. “바벨론 감금”이란 말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일례로 통칭하는 말이다. 곧,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패하여 오랫동안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 고난의 생활을 한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전이 중세기 로마 교회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현실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다.
루터는 본 논문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례를 비판하였다. 즉 카톨릭 교회의 7가지 성례인 세례, 성찬, 참회, 안수례, 견신례, 결혼례, 그리고 임종시의 도유식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 7가지의 성례 가운데서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첨가한다면 참회까지도 성례로 보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참회와 같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표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터는 나머지에 대하여 말하기를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인정하신 것이 아니면 성례전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루터의 논점이다.
루터는 먼저 떡의 성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루터는 성만찬에서 평신도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예로 들면서 포도주 잔을 금지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만일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한 가지 요소인 포도주를 빼앗을 수 있다면, 역시 다른 한 가지 요소인 떡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평신도들에게서 성만찬의 두 가지 요소를 거부하는 것은 사악하고 전제적이며, 어떤 교황이나 공의회도 이러한 권한을 지닐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루터는 성만찬에 있어서 화체설(化體說)의 미신적인 요소와, 성만찬을 희생으로 해석하는 점에 대하여 비판한다. 루터는 또한 희생의 미사를 비판한다. 중세 카톨릭 교회는 미사가 선행이고 희생제라는 의견보다 더 일반적으로 보유하거나 또는 확고하게 믿어지는 의견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미사 때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또한 우리의 죄사함의 보속을 위해서 인간도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노력과 공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희생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신앙이 따르며, 신앙 다음에 사랑이 따른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선행을 행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터는 세례가 성례에 관하여는 최대의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루터는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반드시 신앙을 요구하며, 이 두 가지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이 없이는 믿을 수 없고, 믿음이 없다면 약속이 수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성례에서 신앙이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례가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고, 세례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가운데 중세기 수도원 제도를 비판하면서 세례의 언약 외에 다른 언약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성례에 관하여 말하면서 성례의 첫째가는 폐해는 참회를 완전히 폐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교황청은 참회를 회개와 고백과 보상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그 하나 하나에 있어서 좋은 것은 다 제거해 버리고 거기에다 자기들의 변덕과 횡포를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3. 크리스천의 자유(On Christian Liberty)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크리스천은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는 이 두 가지 명제에 대하여 루터는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기독교인의 두 가지 모습을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인의 두 가지 모습이란 서로 모순되는 두 사람이 한 사람 안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적이고 영적인 사람이고 하나는 외적인 사람 즉 옛 사람이다. 우선 외적인 것은 어떤 것이라도 기독교적인 의나 자유를 만들어 내거나 또는 반대로 불의나 종속됨을 만들어 내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삶과 의와 자유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 한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복음이 신앙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의와 구원을 위하여 율법이나 공적이 필요치 않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루터는 말한다. 이것이 신앙의 첫 번째 능력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고귀한 예배는 우리가 진실성과 정직성과 그리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돌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로 돌리는 것이 신앙의 두 번째 능력이고, 영혼과 그리스도를 결합시키는 것이 신앙의 셋째 능력이라는 것이다.
결국 루터는 이 논문에서 만인 제사장직을 주장하고 나섰다. 즉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 아래 얽매여 있지 않고,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그리고 이웃에 도움이 되도록 사랑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종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선행이 선한 사람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한다고 하였다. 즉 선행이 선한 사람을 따르고 그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을 행하는 사람은 어떤 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신앙이라는 것이다. 신앙 외에는 아무 것도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못하며 불신 외에는 아무 것도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시여! 우리로 이 자유를 이해하고 보존하게 하옵소서. 아멘.”
출처 <진리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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