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역사적 의의
안유섭 목사
Ⅰ. 서 론
1,000 년 가까이 지속된 중세를 지탱해온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권주의가 횡행하여 본질적인 신앙의 길에서 자꾸 멀어져 갔다. 그와 더불어 중세 말에 진행된 신앙과 이성의 분리 작업을 통한 이성의 자각은 교회의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부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빙자한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 등 당시의 극도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서 종교 개혁 운동이 기폭되었던 것이다.
종교 개혁은 교회 내에서 일어난 운동이었으나 교회내의 개혁으로 그치지 않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상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또한 단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계속됨에 따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교회 개혁에 대한 경종으로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는 교회 내적인 측면과 교회 외적인 측면으로 구분하여 고찰하게 되는데 교회 내적으로는 부패의 온상이었던 로마 카톨릭을 붕괴시키고 오늘날의 기독교를 형성한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교회 외적으로는 중세 봉건주의를 무너뜨리고 인권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오늘날의 문명 발전의 기틀을 제공한 근대 사회를 시작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종교 개혁의 역사적 배경
종교 개혁은 중세 1,000 년을 지배해온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권주의로 말미암은 종교적 타락에 저항하여 성경의 본래적 정신과 초대 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16세기 초 일어난 신앙 회복 운동이다. 그러므로 로마 카톨릭을 전통적 기독교로 보고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가 만들어진 것처럼 전자를 구교(舊敎), 후자를 신교(新敎)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뒤 이은 초대교회 사도와 교부들이 온갖 박해와 싸우면서 이룩한 초대 교회의 숭고한 신앙과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AD 590 년 교황 제도와 함께 시작한 중세를 거쳐 오면서 점차 변질되어 종교 개혁 운동직전에 이르러서는 그 부패의 양상이 극도에 치달아 더 이상 교회를 통한 구원이란 기대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국가로 부터 권력을 합법적으로 부여받음으로써 구원 사역과 사랑의 실천이라는 본래적 사명을 감당하는 데 힘쓰기 보다는 외형적 교회를 더욱 정교하게 제도화하는 일과 교회의 권위를 높이고 교황을 비롯하여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사제들의 사리사욕을 종교의 명목으로 충족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었으므로 초대 교회와 비교해 볼 때 교회라고 할 수 없고 차라리 다른 어떤 무엇이라고 불러야 될 정도로 변질되어 있었음은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당시는 교회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반에 이르러 로마 카톨릭의 종교적 지배로 인한 억압과 왜곡의 심화로 인한 잠재된 반발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마치 폭풍 전야를 방불케 하는 시대였다. 중세 1,000 년이라는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내오면서 억압되었던 모든 인간 정신은 벌써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성의 해방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철학과 과학을 비롯한 문화 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서서히 자유 로운 사상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종교 개혁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태동될 수 있었고 또한 급속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예수님 탄생전 헬라 언어권의 형성과 로마 통치에 의한 도로 확충으로 실효성있는 복음 전파의 배경이 조성되었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Ⅲ.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는 교회 내적인 측면과 교회 외부에 미친 영향으로 나누어 고찰해 볼 수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로마 카톨릭의 타락에서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거듭난 오늘날의 기독교를 태어나게 하였으며, 교회 외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모든 분야에 걸친 일대 변혁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1. 교회 내적인 측면
종교 개혁은 성경주의와 신앙주의의 양대 원리를 표방하면서 중세를 지배해 온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신앙의 무가치를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종교 개혁은 일시적인 운동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인식을 같이하는 많은 개혁자들에 의해 확산되어져 가면서 오늘날의 교회를 만들어 온 것이다.
교회의 외형과 내면에서 전면적 전환을 불러온 종교 개혁이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인 효과까지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가. 긍정적 효과
1) 중세 로마 카톨릭이 부패 이후 성경중심에서 벗어나 교회의 해석이 성경의 권위를 앞서는 있을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나 종교 개혁을 통하여 성경의 절대적 권위가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는 것이 금지 되었던 데서 해방되어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인성경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성경주의)
2) 종교 개혁 이전에는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으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믿음보다는 도덕적 선행이 비중을 두고 강조됨으로써 율법적 색채가 강했으나 내면의 신앙을 강조하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통하여 복음적 기독교로회복되었다.(신앙주의)
3)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과 교회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이 교회라는 명목으로 자의적으로 교리를 해석하고 만들었으나 이제는 누구나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해석하며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성경주의)
4) 과거의 모든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틀 속에서만 이루어지던 예배행위와 종교의식이 기도와 말씀생활 등의 개인의 체험 역시 중요시되는 체험적 종교로 전환하게 되었다.(신앙주의)
5) 성직자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죄를 사할수 있다고 하는 성직자 중보를 거부하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만민 제사장 신앙을 확립하였다.(신앙주의)
6) 종교 개혁의 거센 물결에 붕괴 위기에 놓인 로마 카톨릭 자체의 자성과 자숙으로 인한 자정작업이 시작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나. 부정적 효과
종교 개혁이 전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만 있었다고 말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종교 개혁 역시 부정적인 면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그 부정적인 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종국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결과까지도 있었음도 중요한 사실이다.
1) 종교 개혁으로 인하여 과거 통일된 교회에서 행해지던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고 새롭게 시도되기 시작하자 개혁 교회내에서는 해석을 달리하면 등을 돌리고 갈라지는 행태가 속출함에 따라 많은 교파로 분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교파들이 제각기 크게 성장하게 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수 많은 기독교의 부흥을 이루는 순기능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2) 신ㆍ구교로 대립된 카톨릭과 개혁 교회 간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많은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이에 따른 인명 피해와 경제적 파탄이 큰 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2. 교회 외적인 측면
종교 개혁은 성경과 순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지만 그 물결은 교회내의 개혁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중세를 무너뜨리고 근대 사회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사적으로도 큰 파급효과를 가져온 엄청난 사건이었다.
종교 개혁의 동기와 시작은 신앙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영향력은 온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인류 역사의 모든 분야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종교 개혁 이전에 이미 인간 존중과 인간성 해방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영향력은 미미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통치의 중심 세력이었던 로마 교회에 정면으로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이란 엄청난 사건을 통해 카톨릭 교회의 전횡은 하루 아침에 종지부를 찍고 중세의 암흑 천지는 광명의 등불에 의해 대낮처럼 밝혀지게 된 것이다.
종교 개혁을 통해 일어난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교회 내외에서 일어난 개인의 내면적 가치의 자각이었다. 개인의 내면적 가치에 대한 자각은 봉건적인 사회 질서에서의 지위로부터 개인을 분리하여 인간을 개인으로서 존중함과 동시에 개인의 책임을 요구하게 되었으므로 사회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어간 것이다.
이러한 인간 존중과 개인 주의 사상은 마침내 중세의 봉건주의를 무너뜨리는 발파제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카톨릭 교회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비생산적인 국가 재정의 편중성이 시정되면서 중산계급과 노동자 농민을 주축으로 한 생산적 산업구조로 전환하게 되었다.
철학과 문화 예술 방면에 대한 자유로운 연구에의 억제당하였던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됨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속도의 지식의 발전이 거듭됨으로 학문과 문화 예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며, 각종 공업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근대 산업 사회의 기틀이 조속히 마련되고 발전하게 되었다.
Ⅳ. 결 론
종교 개혁은 1,000 년간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중세를 지배하면서 기독교의 원형을 거의 상실한 채 왜곡되고 변질된 그래서 더 이상 기독교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에 이르른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초대 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부르짖음이었다. 루터와 칼빈이 주축이 되어 부르짖은 이 부르짖음은 인식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급속히 확산되어 드디어 교회를 회복하는 위업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인권이 말살되고 개인의 창의성이 억압당하던 봉건주의 중세의 막을 내리게 하고 근대라고 하는 새시대를 여는 기폭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주님이 피흘리시고 세우신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온갖 부패와 만행이 자행되고 그 위에 성직자라고 하는 자들이 치부하면서 영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칼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 개혁의 역사적 의의는 신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비합리와 무지와 인간의 탐심이 형식과 제도라는 너울을 쓰고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한 번의 반성도 없이 공공연한 폭행을 일삼아 오던 만행의 종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분명 목적된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간섭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부패하고 배역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주셨던 하나님께서 부패한 중세 교회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회복케 하심은 정녕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목회신학대학원2·6교실 > 교회사2 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종교개혁사 (0) | 2014.11.01 |
---|---|
[스크랩] 쯔빙글리의 종교개혁 (0) | 2014.11.01 |
[스크랩] 종교개혁자 루터의 생애와 사상 (0) | 2014.11.01 |
[스크랩]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종교개혁 : 생애와 신학 / 안명준 교수 (0) | 2014.11.01 |
[스크랩] 멜란히톤과 부처 Melanchthon and Bucer (0) | 2014.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