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4·6교실/경건주의세미나 교실

[스크랩]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 야콥 뵈메-감각적 인식을 넘어서

류성련 2015. 11. 30. 14:59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 야콥 뵈메
 
글쓴이 : 생각하는어부 조회수 : 2407.02.11 16:56 http://cafe.daum.net/eillm/8A8h/10주소 복사
 
 

 

 

구두쟁이였던 독일의 신비사상가 야콥 뵈메의 <감각적 인식을 넘어서>(On the Supersensual Life)는 야콥 뵈메의 사상을 잘 보여 주는 그의 대표적인 책 중 하나이다. 여기서 야콥 뵈메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를 통해 그의 신학을 전개한다.

그는 진리가 “네 안에 있으니, 만일 네가 잠시 동안 너의 모든 생각과 의지를 멈출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자아의 의지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네가 자아에 관한 생각과 의지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을 때, 영원한 들음과 봄과 말함이 네 안에 나타나나니,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듣고 보신다. 너 자신의 들음과 의지와 봄이 너를 방해하므로, 네가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그 말씀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콥 뵈메는 이런 주장을 넘어서 인간이 본질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네가 고요하거나 침묵할 때, 너는 자연과 피조물 이전에 하나님이었던 그 존재이니, 그 분께서 그것으로 너의 자연과 피조물을 지으신 것이다. 그 때 너는 너의 의지와 봄과 들음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네 안에서 보고 들으신 그 존재와 더불어 듣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영지주의와 신비주의에 공통적인 사상으로 우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과도 같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야콥 뵈메가 말하는 “피조물”이란 마음이 지은 일체의 욕망의 대상, 즉 관념을 말한다.

“사랑하는 제자여, 너의 의지가 한 시간 동안 모든 피조물에서 벗어나 아무 피조물도 없는 곳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의 가장 높은 광명을 입을 것이요, 자신 안에서 우리 주 예수의 가장 달콤한 사랑을 맛보리니, 그 사랑은 아무도 표현할 수 없다.”

“만일 네가 너의 욕망 속으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는 만유에게서 자유롭고 즉시로 만유를 지배한다. 네가 너 자신의 것으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너는 만유에게 무(無)이며, 만유 또한 너에게 무(無)이기 때문이다. 너는 사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지거나, 아니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거기서는 하나님이 만유를 지배하시고 보신다.”

 

여기서 야콥 뵈메는 “무”(無)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나아가 “하나님”을 “무”(無)라고 표현한다. 그는 “덕과 능력과 높음과 위대함”에 대한 물음에 스승의 입을 통해 이렇게 답한다.

“그것의 덕은 저 무(無)이니, 만유가 거기에서 나오며, 그 능력은 만유 안에 만유를 꿰뚫고 있다. 그 높이는 하나님과 같이 높으며, 그 위대함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 누구든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 동시에 모든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불교의 사상과 같다. 야콥 뵈메는 여기서 위(僞) 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에크하르트와 그의 제자 하인리히 조이제가 따른 길이다. 그 자신이 이 표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가 ‘이 덕은 만유가 나온 저 무(無)이다’라고 말한 것을 너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피조물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지연과 피조물인 모든 것에 대해 무(無)가 될 때, 너는 하나님 자신이신 저 영원한 하나 안에 있는 것이며, 그 때 너는 사랑의 가장 높은 덕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한 것, 즉 ‘그 높음은 하나님과 같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그것이 너를 하나님 자신처럼 높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너는 너 자신 안에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입으신 사랑스러우신 우리 주 그리스도에 의해 보일 수도 있다. 사랑은 그 인간성을 가장 높은 보좌로, 심지어는 신성의 권능 속으로 데려가셨다....

또 내가 “누구든지 그것을 발견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면서 모든 것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 또한 진실이다. 그는 자연을 넘어서고 감각을 넘어선 바닥없는 심연을 발견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것과 같은 무(無)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아무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더 깊으며, 만유에 대해 무(無)이며,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無)이므로, 그것은 만유를 벗어나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 그것이 무엇이라고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한 선이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말한 “그것을 발견하는 자는 만유를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진실이다. 그것은 만유의 시원이었고, 만유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그것을 발견한다면, 너는 만유가 나온 근원이며 그것들이 존재하는 바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너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왕이다.“

이 글에서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말은 일반적인 인식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당황케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존재”인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어떤 “존재“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궁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뵈메는 이러한 말로 어떤 ”대상“이 된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것은 에크하르트가 ”하나님“(der Gott)과 ”신성“(die Gottheit)을 구별한 것과 같은 것인데, 불이일원론적(不二一元論)인 베단따철학의 대표자인 샹까라(Samkara)도 동일한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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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인식을 넘어서

 


           야콥 뵈메

              이서하 역

 


1.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어찌하면 제가 초감각적인 삶에 이르러, 하나님을 뵙고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잠시 동안 아무 피조물도 없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
2. 제자:그것은 가깝습니까 아니면 멉니까?
   스승:그것은 네 안에 있으니, 만일 네가 잠시 동안 너의 모든 생각과 의지를 멈출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3. 제자:제가 생각과 의지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을 때, 제가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스승:네가 자아에 관한 생각과 의지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을 때, 영원한 들음과 봄과 말함이 네 안에 나타나나니,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듣고 보신다. 너 자신의 들음과 의지와 봄이 너를 방해하므로, 네가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그 말씀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4. 제자:하나님은 자연과 피조물을 넘어서 계시다고 아는데,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을 보겠습니까?
   스승:네가 고요하거나 침묵할 때, 너는 자연과 피조물 이전에 하나님이었던 그 존재이니, 그 분께서 그것으로 너의 자연과 피조물을 지으신 것이다. 그 때 너는 너의 의지와 봄과 들음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네 안에서 보고 들으신 그 존재와 더불어 듣고 보는 것이다.
5. 제자:무엇이 제가 거기 이르는 것을 방해하거나 못하게 합니까?
   스승:너 자신의 의지와 들음과 봄이 그것이니, 네가 자신이 나온 그것에 거슬러 애를 쓰므로, 너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의지에서 벗어나고, 너 자신의 봄으로 너 자신의 의지 안에서만 보며, 너의 의지가 지상의 자연적인 것들에 관한 너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너의 들음을 방해하며, 너를 바닥으로 데려가, 네가 원하는 것으로 너를 어둡게 하므로, 너는 자연을 넘어서고 감각적 인식을 넘어선 곳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6. 제자:제가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데, 제가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을 통과하여 감각적 인식의 근원으로 들어갑니까?
   스승:여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네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자비 속에 바닥까지 가라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네 의지를 미워하고, 네 의지가 시키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너 자신을 십자가 밑에 던져야 한다는 것이니, 그리하면 자연과 피조물의 유혹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네가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네게 말씀하시고, 너의 포기한 의지를 자신에게로, 초자연적 근원 속으로 가져가실 것이다. 그러면 너는 주님께서 네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것이다.
7. 제자:제가 그렇게 하려면 저는 세상과 저의 생명도 버려야 합니다.
   스승:네가 세상을 버리면, 너는 세상이 만들어진 바탕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네 생명을 잃고 너 자신의 힘이 약해지면, 네 생명은 네가 그 분을 위해 생명을 버린 그 분, 즉 네 육체 속에 있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게 된다.
8. 제자: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시고 이 세상의 만물을 지배하도록 자연적인 생명 안에서, 그리고 자연적인 생명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에 따르면,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모든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으며, 만유와 같아질 수 있습니까?
   스승:만일 네가 외적으로만 만유를 지배하면, 너의 의지와 지배는 짐승과 같은 것 속에 있으며, 그것은 단지 상상 속의 덧없는 지배일 뿐이다. 그리고 너는 또한 너의 욕망을 짐승과 같은 존재 속으로 가져가며, 그럼으로써 너는 감염되고 사로잡혀 짐승의 상태를 얻는다. 그러나 만일 네가 상상 속의 상태를 떠났다면, 너는 상상을 벗어난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된 바탕 속에서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요, 땅 위의 아무 것도 너를 해칠 수 없다. 너는 만유와 같으며, 아무 것도 너와 같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9. 제자:오 사랑하시는 스승님, 부디 제가 만유와 같아질 수 있는 지름길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내 마음을 다해 그러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으리라”라고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하거라. 만일 네가 만유와 같아지려면, 너는 만유를 버리고, 그것들에게서 욕망을 떼어내 그것들을 욕망하지도 말고, 대상인 어떤 것을 네 것으로 소유하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네가 어떤 것을 욕망하여 그것을 네 것이라고 네 안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너와 동일한 것이 되어, 네 의지 속에서 너와 더불어 작용하나니, 그러면 너는 그것을 보호해야 하며, 그것을 너 자신으로서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너의 욕망 속으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는 만유에게서 자유롭고 즉시로 만유를 지배한다. 네가 너 자신의 것으로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너는 만유에게 무(無)이며, 만유 또한 너에게 무(無)이기 때문이다. 너는 사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지거나, 아니면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거기서는 하나님이 만유를 지배하시고 보신다. 그러나 아무 것도 그 분을 포용하거나 사로잡지 못한다.
   너는 또 내가 네게 그것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내가 없이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하여라. 네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너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 너의 의지와 욕망을 그 분께 완전히 맡겨, 그 분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한, 네 능력으로는 아무런 피조물도 너를 건들지 못하는 안식에 이를 수 없다. 그 때 너는 몸으로는 세상에 있어서 특성들을 지니고 있고, 이성으로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있지만, 너의 의지로는 천상을 걷고, 모든 피조물이 나오고 다시 돌아가는 그 근원 속에 있게 된다. 그 때 너는 이성으로는 외적으로 만유를 보고 마음으로는 내적으로 만유를 볼 수 있으며, 천상에서나 지상에서 모든 권능을 위임받으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만유 안에서 만유를 다스린다.
10. 제자:오 스승님, 제 안에 사는 피조물들이 저를 억눌러서,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완전히 굴복하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스승:만일 너의 의지가 피조물들에게서 벗어나면, 피조물들은 네 안에서 너에 의해 버림을 받는다. 그것들은 세상 속에 있고, 네 육체로는 그 피조물들과 함께 있지만, 네 영으로는 너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만일 너의 의지가 피조물들을 떠나면, 피조물들은 그 의지 속에서 죽고, 오직 세상에서 육체 안에만 산다. 만일 너의 의지가 자신을 그것들에게로 데려가지 않으면, 그것들은 네 영혼을 건들 수 없다. 성 바울은 “우리의 대화는 하늘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너희는 너희 안에 거하는 성령의 성전이다”라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의지 안에 거하며, 피조물들은 육체 안에 거한다.
11. 제자:만일 성령이 마음의 의지 안에 거한다면, 성령이 저를 떠나시지 않도록 제가 어떻게 제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까?
   스승:“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느니라”라고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주목하여라. 만일 네가 네 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면, 그의 말씀과 영이 네 안에 거한다. 그러나 너의 의지가 피조물에게로 들어가면, 너는 자신을 그 분에게서 떼어놓는 것이다. 네가 포기한 겸손 가운데 계속 거하고, 끊임없는 참회로 들어감으로써, 네 안에 피조물들이 살고 있음을 늘 슬퍼하는 것 외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만일 네가 그렇게 하면, 너는 피조물들에게서 매일 죽게 되며, 너의 의지 안에서 또 너의 의지와 더불어 다시금 매일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12. 제자:오 사랑하시는 스승님, 제가 어떻게 그러한 끊임없는 참회로 들어갈 수 있는지 부디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인간은 어떻게 끊임없는 참회로 들어가 유혹을 견딜 수 있는가?
   스승:네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너를 미워하는 것을 사랑하면, 너는 끊임없이 참회에 머물 수 있다.
13. 제자:제가 그렇게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승:살과 피 속에 있는 너의 피조물과, 너를 사랑하는 다른 모든 것들이니, 그것들은 너의 의지가 그것들을 생각하고 키우고 보존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의지는 이것들을 떠나고 원수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너는 너를 미워하는 세상의 비난과 더불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며, 너는 매일 행하는 참회의 실천을 위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너는 피조물 속에서 있는 너 자신을 미워하고 너의 의지가 휴식할 영원한 안식을 추구하는 매일의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받으나, 내 안에서는 너희가 안식을 얻으리라.”
14. 제자:이러한 유혹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스승:네가 매 순간 너 자신을 모든 피조물을 넘어, 모든 감각적 이성을 넘어, 단지 하나님의 자비 속으로, 우리 주님의 고난 속으로 던져, 너 자신을 포기한다면, 너는 죄와 죽음과 악마와, 지옥과 세상을 지배할 권능을 받을 것이요, 모든 유혹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15. 제자:저는 가련한 인간이오니, 제가 마음으로 아무 피조물도 없는 곳에 이른다면, 제가 어찌 될런지요?
   스승:사랑하는 제자여, 너의 의지가 한 시간 동안 모든 피조물에서 벗어나 아무 피조물도 없는 곳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의 가장 높은 광명을 입을 것이요, 자신 안에서 우리 주 예수의 가장 달콤한 사랑을 맛보리니, 그 사랑은 아무도 표현할 수 없다. 또 그 의지는 자신 안에서 우리 주님의 크신 자비에 관한 주님의 말할 수 없는 말씀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에게 아주 기쁜 것임을 느낄 것이요, 세상의 영예와 재물보다도 그것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16. 제자:그러나 육체는 피조물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육체는 어떻게 되는지요?
   스승:육체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닮는 데로 갈 것이니,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외부와 내부에서 죽기 시작하나니, 외적으로는 세상의 허영과 악행에 대해 죽을 것이요, 모든 자만과 오만에게 철저한 원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적으로는, 그것은 모든 악한 욕망과 질투에 대해 죽을 것이요, 자신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마음과 의지를 얻을 터인데, 그 마음과 의지는 끊임없이 하나님과 선을 향할 것이다.
17. 제자:그러나 그 사람은 세상과 대립할 것이고, 세상이 하는 것과 달리 살고 행하기 때문에, 세상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그 사람을 미워하고 경멸할 것입니다.
   스승:그는 그것을 자기에게 해가 된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기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에 그렇게 합치할 자격이 있게 되었음을 기뻐할 것이고, 단지 주님께서 그 분의 달콤한 사랑의 영향을 자기에게 주시도록 우리 주님을 따라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질 것이다.
18. 제자:우리 주님에게 그랬던 거처럼, 안으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밖에서는 악한 세상이 그를 습격할 때 그는 어떻게 됩니까?
   스승:나아가 그 사람은 우리 주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그 분은 비난받고 미움 받고 세상과 사제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분은 자신의 영혼을 자기 아버지의 손에 맡기고, 이 세상의 고뇌를 떠나 영원한 기쁨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그러한 영혼은 온 세상의 비난과 고뇌에서 나와서, 자신을 꿰뚫고 들어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가장 달콤한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존속되고 새 힘을 얻을 것이요,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통해 솟아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발견할 것이다. 그 때 그 영혼은 그 속에 완전히 감싸여 만유를 동일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지옥에 있거나 지상에 있거나 간에, 그 영혼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랑 안에 있을 것이다.
19. 제자:그러나 만일 온 세상의 불쾌감을 자극한다면, 그 사람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자신을 유지합니까?
   스승:그는 그럼으로써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은혜를 얻나니,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위험과 궁핍에서 그를 보호해 주는 그 분의 모든 천사들을 자신의 친구로 삼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그의 축복이요, 때로는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이며,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끄심이어서, 그가 더욱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길을 맡기게 하려는 것이다.
20. 제자: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친구를 잃고, 그가 곤궁할 때 그를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스승:아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선한 친구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이전에 그의 허영심과 사악함을 사랑했던 원수들 외에는 아무도 잃지 않는다.
21. 제자:그가 어떻게 자신의 선한 친구들을 얻습니까?
   스승:그는 우리 주 예수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자신의 친구이자 자신의 생의 동료들로 얻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일 뿐이며, 그 하나는 만유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로 얻는다. 그들은 천상의 선을 공동으로 지니고서, 나무의 가지들이 하나이자 동일한 수액(樹液)에서 나오듯이, 하나이자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보다 더, 밖으로 자연의 친구들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 분께 속하지 않았고 그 분의 동료도 친구도 아니었던 대제사장들과 세상의 권력자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나,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들은 그 분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요, 그와 연합할 것이다. 밤에 그리스도를 찾아와 진리 때문에 마음 속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했으나 밖으로는 세상을 두려워했던 니고데모가 그리스도께 그랬듯이 말이다. 이처럼 그러한 사람은 처음에 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될 것이다.
22. 제자:그러나 온 세상에서 무시당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스승:지금 너에게 힘들고 무거워 보이는 것을 너는 나중에 무엇보다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23. 제자:제가 어떻게 저를 미워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스승:너는 지금 세상의 지혜를 사랑하지만, 네가 천상의 지혜를 옷 입으면, 세상의 모든 지혜는 어리석음일 뿐이요, 세상은 너의 원수인 죽을 목숨만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너 자신이 세상의 뜻을 미워하게 되면, 너는 죽을 목숨을 경멸하는 것을 사랑하기 시작할 것이다.
24. 제자:그러나 이 두 가지, 즉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이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스승:그렇게 자신을 사랑할 때, 너는 자신을 너 자신의 것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너는 네 안에 있는 신적인 바탕을 사랑하는 것이니, 너는 그것에 의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기적의 사역과 너의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너를 미워할 때, 너는 단지 너 자신에게 속한 것만을 미워하는 것이니, 악은 그것 안에서 네게 달라붙는다. 그래서 너는 네가 “나” 또는 나 자신이 이러저러한 일을 행한다고 말할 때, 네가 너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을 네 안에서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이것을 행하는 것이다. 네가 이것을 네 안에서 완전히 부숴버리면, 너는 완전히 신성한 바탕이 될 것이라. 사랑은 자아, 또는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을 미워하나니,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둘, 즉 사랑과 자아는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천국을 소유하고 자신 안에 거하지만, 내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소유하고 자신 안에 거한다. 그리고 천국이 세상을 지배하고 영원이 시간을 지배하므로, 사랑이 자연적인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25. 제자:사랑하시는 스승님, 어찌하여 사랑과 고통, 친구와 적이 함께 있어야 하는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사랑만이 홀로 더 좋지 않습니까?
   사랑과 슬픔은 어찌하여 하나로 함께 있는가? 사랑은 무엇이며, 그 능력과 덕과 높음과 위대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어디에 거하며, 거기 이르는 지름길은 무엇인가?
   스승:사랑이 고통 속에 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할 것을 지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하는 그것의 실체, 즉 가련한 영혼은 고통과 아픔 속에 있으므로,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 자신의 실체를 해방할 이유를 지니게 되며, 그리하여 그것 자체도 다시 사랑받게 된다. 만일 그것이 사랑할 대상을 지니지 않았다면, 진실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26. 제자:덕과 능력과 높음과 위대함은 무엇입니까?
   스승:그것의 덕은 저 무(無)이니, 만유가 거기에서 나오며, 그 능력은 만유 안에 만유를 꿰뚫고 있다. 그 높이는 하나님과 같이 높으며, 그 위대함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 누구든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 동시에 모든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27. 제자:사랑하시는 스승님, 원컨대 제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제가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내가 “이 덕은 만유가 나온 저 무(無)이다”라고 말한 것을 너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피조물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지연과 피조물인 모든 것에 대해 무(無)가 될 때, 너는 하나님 자신이신 저 영원한 하나 안에 있는 것이며, 그 때 너는 사랑의 가장 높은 덕을 깨닫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권능은 만유 안에 있고 만유에 두루 퍼져 있다”라고 말한 것을 설명하자면, 너는 네 자신의 영혼과 몸 속에서 그것을 알고 느낄 것인데, 이 위대한 사랑이 네 안에서 불탈 때, 그것은 어떤 불보다도 더 강력히 태울 것이다. 너는 또한 사랑이 만유 속으로 부어졌으며, 그것이 만유 속에 있는 가장 내적이며 가장 외적인 근원임을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내적으로는 만유의 덕과 권능 속에 있으며, 외적으로는 만유의 모양과 형상과 형태 속에 있다.
   내가 말한 것, 즉 “그 높음은 하나님과 같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그것이 너를 하나님 자신처럼 높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너는 너 자신 안에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입으신 사랑스러우신 우리 주 그리스도에 의해 보일 수도 있다. 사랑은 그 인간성을 가장 높은 보좌로, 심지어는 신성의 권능 속으로 데려가셨다.
   그러나 내가 말한 “그 위대함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말도 또한 진실이다. 우리의 사랑스러우신 주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계셨을 때, 지옥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사랑이 거기 있으면서 죽음을 파괴했듯이, 사랑은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것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네가 영혼의 번민과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고통과 번민이 아니시지만, 그 분의 사랑은 거기 있으며, 네가 번민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으로 가도록 한다. 하나님께서 네 안에서 자신을 숨기실 때, 사랑은 거기 있으며 그 분이 네 안에 나투시도록 한다.
   또 내가 “누구든지 그것을 발견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면서 모든 것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 또한 진실이다. 그는 자연을 넘어서고 감각을 넘어선 바닥없는 심연을 발견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것과 같은 무(無)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아무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더 깊으며, 만유에 대해 무(無)이며,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無)이므로, 그것은 만유를 벗어나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 그것이 무엇이라고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한 선이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말한 “그것을 발견하는 자는 만유를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진실이다. 그것은 만유의 시원이었고, 만유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그것을 발견한다면, 너는 만유가 나온 근원이며 그것들이 존재하는 바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너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왕이다.
28. 제자:사랑하시는 스승님, 그것이 인간 안의 어디에 거하는지 부디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그것은 인간 속의 인간이 거하지 않는 곳에 거한다.
29. 제자:인간의 자아 속에 인간이 거하지 않는 곳이 어디입니까?
   스승:그것은 근원까지 포기한 영혼 안에 있나니, 거기서 그 영혼은 자기 의지에 대해 죽고, 자신에 대해 더 이상 아무 것도 원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한다. 그것이 인간 안에 있는 인간이 원하지 않는 곳이니, 거기에는 사랑이 거한다. 영혼 자신의 의지가 자신에 대해 죽은 만큼만, 사랑이 거기 거하기 때문이다. 전에 자신의 의지가 있던 곳에 이제는 아무 것도 없으며, 아무 것도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30. 제자:그러나 저의 의지가 죽지 않고 제가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거나 거기 이를 수 있습니까?
   스승:만일 네가 너 자신의 의지 안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너에게서 달아난다. 그러나 만일 네가 그것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긴다면, 너는 너 자신의 의지 속에서 그것에 대해 죽고, 그 때 사랑이 네 본성의 생명이 될 것이다. 그것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생명에 따라 너를 소생시키나니, 그 때 너는 너의 의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의지에 대해 사는 것이다. 너의 의지가 사랑의 의지가 되어, 너는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기 때문이다.
31. 제자:모두가 그토록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그렇게 적습니까?스승:그들은 모두 어떤 것 속에서, 즉 상상의 견해, 자기 욕망 속에서 그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향한 특별히 자연적인 욕망이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자신을 그들에게 주려고 할지라도, 사랑은 그들 안에서 안식처나 거처를 발견할 수 없나니, 그들 자신의 의지 속에 있는 상상력이 그 곳에 자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기 욕망의 상상력은 자신 안에 그 사랑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사랑은 날아가 버리나니, 사랑은 오직 무(無) 속에서만 거하므로 그런 영혼들은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32. 제자:무(無) 속에서 사랑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스승:그 역할은 끊임없이 어떤 것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사랑은 가만히 있는 어떤 것 속에서 있을 곳 발견하면, 그것의 역할은 그것을 소유하여, 이 세상의 태양보다 더한 사랑의 타오르는 불길을 가지고 그 속에서 즐거워하고, 그것 속에서 끊임없이 불을 지펴, 그것을 소진하고, 그것과 더불어 자신을 태워 버리는 것이다.
33. 제자:오 사랑하시는 스승님이시여! 제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리이까?
   스승:만일 사랑이 네 안에서 불을 피우기만 하면, 너는 그것이 네 아상(我相, selfhood), 즉 네가 ‘나’라고 부르는 것을 소진시킨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또, 그것이 네 불길 속에서 너무도 기뻐하여, 너는 너의 어떤 것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기보다는 오히려 너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또한 사랑의 불꽃은 너무도 위대하나니, 사랑은 설사 너의 일시적인 목숨을 버리게 할지라도 너를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자신의 불꽃 속에서 너와 함께 죽음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니, 만일 네가 지옥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너를 위해 지옥을 부숴버리기까지 할 것이다.
34. 제자:사랑하시는 스승님, 저는 이제 어떤 것이라도 저를 이 사랑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리로 가는 지름길을 어떻게 찾으리이까?
   스승:너는 가장 험한 길이 있는 곳을 걸으며, 세상이 거부하는 것을 취하고, 세상이 하는 것을 하지 말라. 모든 일에서 세상과 반대로 걸어라. 그러면 너는 사랑에게로 가는 지름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35. 제자:만일 제가 모든 일에서 세상과 반대로 걷는다면, 저는 단지 비참함과 불안 속에 살 수밖에 없으며, 또 바보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나는 너에게 누구에게라도 해를 끼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오직 기만과 허영만을 사랑하여 거짓되고 악한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네가 모든 일에서 그 길과 정반대의 일을 행하고자 하면, 오직 올바른 길을 걸어라. 올바른 길은 세상의 모든 길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단순히 번민과 고통 속에 살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육신에 따르자면 참으로 그럴 것이요, 너에게 끊임없는 참회의 기회를 줄 것이며, 그러한 번민 속에서 사랑은 자신의 불을 가장 쉽게 붙일 것이다.
   네가 말하는 것, 즉 ‘네가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에게로 가는 길은 세상에는 어리석은 것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타오르는 이 사랑의 불을 알게 될 때, 그들이 바보가 되었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위대한 보물이니, 그것은 하도 위대해서 타오르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이 무엇인지 어떤 생명도 표현할 수 없으며, 어떤 혀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것은 태양보다 더 밝고 어떤 것보다도 더 달콤하다. 그것은 어떤 고기나 술보다도 훨씬 더 양분이 있고 생명에 도움이 되며, 이 세상의 온갖 즐거움보다도 더 기쁘다. 누구든지 그것을 얻는 자는 지상의 어떤 왕보다도 더 부요하고, 어떤 황제보다도 더 고귀하며, 모든 권위와 권능보다 더 능력 있고 힘 있다.
   복된 영혼들과 정죄받은 영혼들은 어디로 가며, 그들의 육신을 언제 떠나는가? 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인간 안에 있는가?
36. 그 때 제자가 자기 스승에게 또 물었다. “구원받은 영혼들과 정죄받은 영혼들은 이 멸망할 육체를 떠나면 어디로 갑니까?”
   그의 스승이 대답했다. “그 영혼은 나갈 필요가 없다. 단지 외적인 죽을 생명과 흙으로 된 육체만이 죽을 때 영혼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다. 그 영혼은 이미 자신 안에 천국과 지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밖을 바라봄으로써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하지 말 것이니, 보라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 두 상태, 즉 천국과 지옥 중 어떤 것이 그 영혼 안에 나타날 것이니, 그것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37. 제자:인간이 집으로 들어가거나 문이나 통로를 통해 다른 곳으로 가듯이, 영혼도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스승:아니다, 그렇게 들어가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나 있나니, 거기로 인도하는 것은 단지 의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향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분노로 향하느냐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는 하늘에 있느니라”라고 하신 성 바울의 말과 같이, 그것은 이 생에서 일어난다. 그리스도께서도 “내 양은 내 목소리를 듣고 나도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고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나니,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38. 제자:의지가 어떻게 이와 같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스승:의지의 근원이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때,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모든 근원과 장소를 넘어 가라앉는다. 거기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나타나 일하시며 뜻하시나니, 그 때 그것은 자신에 대해, 저기 자신의 의지에 대해 무(無)가 되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일하시고 뜻하신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 포기한 의지 속에서 일하시며, 영혼은 그것에 의해 거룩해지고, 거룩한 안식에 이른다. 이제 육체가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철저히 관통되고 삼투되며, 하나님의 빛으로 철저히 비춤을 받는다. 이는 불이 빨갛게 단 쇠를 철저히 달구어 쇠가 그 어둠을 잃는 것과 같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른손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영혼 전체를 철저히 소유하나니, 그 사랑은 그 영혼 안에 있는 빛나는 빛이며 새로운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천국에 있으며, 성령의 성전이다. 그렇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분의 천국 자체이다. 그러나 악한 영혼의 경우는 이러하니, 그것은 이 생에 자신의 의지를 거룩하게 부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 욕망과 거짓 속에, 악마의 의지 속에 행할 것이다. 그것은 사악함과 거짓말과 교만과 탐욕과 질투와 분노만을 받아들여, 그것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킨다. 지옥의 요소 또한 그러한 방법으로 나타나 그 영혼 속에서 작용하며, 그 영혼 전체를 꿰뚫고 그것을 소유하나니, 이는 불이 타오르는 뜨거운 쇠에 대해 행하는 일과 같다. 그러한 영혼은 하나님의 안식에 이를 수 없나니, 하나님의 분노가 그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그것에게서 분리될 때 그의 영원한 탄식과 절망이 시작된다. 그 영혼은 자신이 단지 자신을 괴롭히는 혐오스러운 것이 되었으며, 자신의 거짓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그럴 수가 없나니, 그것은 분노에 사로잡혀 있고, 그 자체가 분노이며, 그가 자신 안에 불러일으킨 자신의 거짓되고 악한 욕망으로 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빛이 그 안에서 빛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영혼을 만지지 못함을 보게 되나니, 그것은 큰 어둠이며, 고통스럽고 번민케 하는 불의 근원이다. 그것은 자신 안에 지옥을 가져오므로 하나님의 빛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신 안에서 지옥에 거하므로 지옥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나니, 그 영혼이 누구든지 간에 그 영혼은 지옥에 있음이라. 그 지옥이 비록 그 영혼이 있는 곳에서 수천 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어둠의 특성과 근원 속에 거하는 것이다.
39. 제자:천국과 지옥이 모두 인간 안에 있고, 그것들 중 하나가 필연적으로 인간 안에서 작용한다면, 어찌하여 이 생에서 거룩한 영혼이 저 천국의 빛과 기쁨을 완전히 알지 못하며, 악한 영혼이 지옥을 느끼지 못합니까?
   스승:하늘나라는 성인들 속에서 작용하고 있고, 그들의 믿음 안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 믿음에 의해 의지를 하나님께 맡긴다. 그러나 자연적인 삶은 살과 피로 싸여 있고, 하나님의 분노 속에 있나니, 그것은 이 외부세계에 대한 헛된 욕망으로 감싸여 있고, 그것에 꽁꽁 에워싸여 있다. 그러므로 그 가련한 영혼은 한 편으로는 세상을 소유하고 있는 원수들의 한 복판에 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악마 가운데서 살고, 세 번째로는 피와 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분노로 인한 저주 가운데 사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이러한 몇 가지 지옥의 공격을 통해, 종종 쓰라린 번민 속에 빠지는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걸러내고 시험하고 철저히 꿰뚫는다. 그러나 그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소망 속으로 침잠하며, 육신의 죽음 속에서 이 세상나라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갈 때까지 가시덤불 한 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장미처럼 서 있다. 그 때 그 영혼은 처음으로, 참으로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드러나게 되어, 자신을 숨기거나 괴롭힐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러나 육체 속에 있는 이 생 동안에 그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야 하나니, 그리스도는 그 영혼 곁에 서 계시사,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철저히 꿰뚫으시어, 그를 그 자신의 지옥에서 구원하실 것이요, 그리하여 그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실 것이다.
   그러나 왜 악한 영혼이 이 생에서 지옥을 느끼지 못하느냐고 하는 너의 질문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는 참으로 지옥을 지니고 있으며, 때때로 자신의 악한 의식 속에서 그것을 느끼지만, 완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이 지옥인 줄 알지도 못한다. 그는 아직 세속의 허영심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 빠져 있어서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적인 삶이 아직도 외적인 자연의 빛을 지니고 있으므로, 지옥의 고통이 완전히 나타나거나 느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가 죽어 그 영혼이 더 이상 덧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거나 이 외적인 세계의 빛을 기뻐할 수 없게 될 때, 그는 여기서 사랑에 빠져 있던 저 허영심에 대한 영원한 배고픔과 갈증 가운데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영혼은 자신이 자신 안에 새겨 넣은 악한 의지 외에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나니, 비록 그가 그것에 대한 그러한 즐거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실로 만족할 수도 없지만, 그는 이 생에서 그 악한 의지를 너무도 즐거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전혀 만족케 할 수 없으며, 그로 하여금 허영심과 악과 나쁜 음탕함에 대한 영속적이고 헛된 배고픔과 갈망에 빠지게 만든다. 그는 여전히 더 많은 악을 행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행할 곳이나 함께할 자가 없으므로, 오직 자신 안에서만, 자신의 의지 속에서만 그것을 행한다. 그런데 그 영혼이 육욕 가운데서 더불어 싸돌아다니던 육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영혼에게 행하도록 하던 그 육신이 죽을 때까지는, 이 지옥 같은 배고픔과 목마름은 그 속에서 완전히 나타날 수 없다.
40. 제자:천국과 지옥이 이 생을 사는 동안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가까지 계신다면, 천사들과 악마들은 어디 있습니까?
   천사들과 악마들은 이 세상의 시간 속에서 어디에 있고, 천국과 지옥은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천사들과 인간의 영혼은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가?
   스승:네가 너 자신과 네 의지에 따라 살지 않는 곳에서 천사들이 너와 함께 있나니, 그들은 우주의 모든 곳에 있다. 그러나 네가 너와 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는 곳에는 악마들이 너와 함께 있나니, 그들은 우주의 모든 곳에 있다.
41. 제자:저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스승:하나님의 의지가 어떤 존재 속에서 작용하시든, 하나님은 그 존재 속에 나타나 계시며, 그 나타나심 속에는 천사들도 거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존재 안에서 그 존재의 의지와 더불어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시는 경우에는, 하나님은 그 존재 안에 나타나지 않으시나니, 그 존재와 협력하지 않으시고 자신 안에 거하신다. 그 존재 안에서는 그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 없이 있으며, 거기에는 악마가 거하나니, 무엇이든지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는다.
42. 제자:천국과 지옥은 서로 얼마나 멉니까?
   스승:밤과 낮이 먼 것만큼 멀고, 존재와 무(無)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안에 있어서 서로에게 기쁨과 고통을 일으킨다. 천국은 온 세상에 있고, 세상 밖에서는 자연의 우주적인 체계 도처에 있으며, 나누어져 있거나 어느 한 곳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통해 작용하지만, 오직 천국 자체 안에, 그리고 천국 속으로 들어오는 것 안에, 또는 천국이 그 속에 나타나는 존재 안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드러나신다. 천국은 영원하신 분의 현현일 뿐이니, 거기서는 만유가 고요한 사랑 속에서 작용하고 뜻을 발휘한다.
   지옥도 온 세상에 있으나, 그 자체 안에서만 거하고 작용하나니, 지옥의 토대가 나타나 있는 곳, 즉 자신 안에, 그리고 거짓되고 악한 의지 안에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 안에 천국과 지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인간의 덧없는 생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만 속해 있으므로, 이 생 동안 그는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다. 외적인 세계는 그것의 본질과 더불어, 육체가 영혼에 대해 그런 것처럼 영적인 세계의 껍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적인 인간이 죽으면, 영적인 세계가 영원한 빛 속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또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악마들과 함께, 그 영혼 안에, 그리고 그 영혼에게 나타난다.
43. 제자:천사나 인간의 영혼이 무엇이길래 하나님의 사랑이나 분노 속에 그렇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스승:그들은 하나의 원형(原型)에게서 왔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의지의 거룩한 지식의 갈래, 또는 산물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영원의 근원에서 나왔나니, 그 근원에서 빛과 어둠, 즉 자기 욕망을 품고 아끼는 데서 나타나는 어둠과, 하나님과 더불어 같은 것을 원하는 데서 나타나는 빛이 나온다. 그런 원함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쉽고도 즐겁게 일하시지만, 영혼의 원함 속에서 자아를 용납하고 기쁘게 하는 속에서는 하나님의 의지가 수고롭게 일하시고 어둠이 되나니, 이는 빛을 알리고자 하심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영적 세계의 특성에 따라 빛 속에서든 어둠 속에서든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난 것일 뿐이다.
44. 제자:그러면 인간의 육체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육체는 무엇이며, 영혼은 왜 선과 악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스승: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이니, 만유 곧 세계의 형상(an image)이자 정수(精髓) 또는 복합체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세계는 내적인 영적 세계의 나타남이며, 영원한 빛과 영원한 어둠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영원의 형상 또는 모습이니, 영원은 그것에 의해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거기서 자아 의지와 포기한 의지, 즉 악과 선이 서로 더불어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존재가 외적인 인간이다. 하나님께서는 외적인 세계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에게 영혼과 지성적인 생명으로 영적인 세계를 불어 넣으셨나니, 그러므로 외적인 세계의 존재들 속에서 인간은 선과 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한다.
45. 제자: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날 때, 이 세상 다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세상의 멸망에 대하여. 부활 때와 그 후의 인간의 육체에 대하여. 천국과 지옥은 어디 있는가? 마지막 심판에 대하여. 피조세계의 투쟁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스승:물질적인 존재, 즉 원소, 해와 달과 별은 모두 사라진다. 그 후에 내적인 세계가 완전히 보이고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인간의 의지나 영에 이해 만들어진 것, 즉 그런 모든 일은 무엇이나 영적인 방법으로, 영원한 빛이나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갈라져 들어갈 것이다. 각각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은 자신과 닮은 것 속으로 다시금 뚫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어둠을 지옥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모든 선의 영원한 망각이다. 그리고 빛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악으로 인한 고통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데 대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는 성인들 안의, 그리고 그 성인들에 대한 영원한 기쁨이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과 분노의 불이 타오르는 것이니, 그 때 모든 존재에게 있는 물질이 멸망한다. 또 각각의 불은 자신의 것, 즉 자신과 닮은 존재를 자신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불, 또는 사랑의 원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태어난 것을 모두 자신 안으로 끌어당길 것이요, 그 불은 사랑 안에서 사랑의 방법으로 타올라 그 본질에 자신을 맡길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어둠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분노 속에서 만들어진 것을 자신 안으로 끌어당겨 그 거짓된 본질을 태울 것이다. 그 후에 거기에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의지만이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형상과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46. 제자:인간의 몸은 어떤 물질과 형상으로 부활합니까?
   스승:그것은 이 생에서는 외부의 요소들과 같은, 자연적이고 조잡하고 원소로 이루어진 몸으로 씨 뿌려진다. 그러나 이 조잡한 육체 속에는 미묘한 권능이자 덕성인 것이 있다. 또한 흙에는 미묘하고 선한 덕성이 있는데, 그것은 태양과 같고, 태양과 하나이며 동일하다. 그것은 또한 태초에 나왔으며, 하나님의 권능이자 덕성인 것에서 나왔고, 거기에서 인간의 육체의 모든 선한 덕성이 파생된 것이다. 멸망할 육체의 이 선한 덕성은 다시 와서 일종의 투명하고 수정 같은 물질적 특성 속에서, 영적인 살과 피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흙의 선한 덕성도 그러하리니, 흙도 수정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빛은 존재, 본질, 또는 실체를 지닌 모든 것 속에서 빛난다. 조잡한 흙이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듯이, 인간의 조잡한 육체도 사라지고 영원히 살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심판 이전에 나타나야 하며, 심판 때에 불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렇다, 흙과 인간 육체의 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한 번 영적인 세계를 움직이시면, 모든 영이 자신의 영적인 실체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길 것이다. 선한 영과 혼은 자신의 선한 실체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길 것이요, 악한 것은 자신의 악한 실체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실체라는 말이 물질적인 권능과 덕성을 말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의 본질은 물질적인 기미(모든 형상, 색체, 덕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투명한 것)와 같은 단순한 덕성이며, 그것의 조야함은 만유 속에서 사라진다.
47. 제자:우리가 눈에 보이는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여 그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까? [?영혼에 관한 40가지 질문?(Forty Questions of the Soul)에 나오는 질문 의 절을 보라].
   스승:눈에 보이는 세계가 사라질 때, 거기서 나와 외부로 나타난 모든 것은 그것과 함께 사라진다. 세계에 대해서는 천상적이고 수정 같은 특성과 형상만이 남고, 인간에 대해서는 영적인 땅만이 남을 것이다. 그 때 인간은 완전히 영적인 세계 같을 것인데, 그것은 지금은 숨겨져 있다.
48. 제자:천국의 삶에도 남편과 아내나 자식이나 친척이 있습니까? 또는 이 생에서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 결합합니까?
   스승:너는 왜 그렇게 육신적인 마음을 품고 있느냐? 거기에는 남편도 아내도 없고, 모두가 하나님의 천사들 같을 것이니, 말하자면 남성인 처녀들 같으리라. 거기에는 아들딸도 형제자매도 없을 것이며, 모두 한 줄기에서 나온 한 친족일 것이다. 나무와 줄기가 피조물로서는 구별되지만 사실은 하나이듯이,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유 안의 만유이시다(God is All in All). 진실로, 모든 존재의 본질과 모든 존재가 행한 것에 대한 영적인 지식이 있을 것이지만, 소유나 향유나 지상의 것들을 소유하려는 욕망이나 육신의 관계를 향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49. 제자:그들은 모두 영원히 기뻐하고 찬양합니까?
   스승:성서에서는 ‘사람들이 현재의 상태가 그들의 하나님이다’(Such as the people is, such is their God)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너는 거룩한 자들과 더불어 거룩하고, 미혹한 자들과 더불어 미혹한다‘라는 말씀이 있다. 성 바울은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서로 다르듯이, 부활의 날에 한 사람의 영광이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복된 자들은 모두 진실로 그들 내면과 그들 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즐길 것이지만, 그들의 덕과 비춤 또는 영광은, 그것들이 이 생에서 그들의 고역 속에서 어느 정도와 분량의 권능과 덕을 부여받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르리라는 것을 알라. 이 생에서 피조물이 고역을 하는 것은 거룩한 권능을 열어 얻는 것이니, 그 권능은 이를 통해 움직일 수 있고 작용하게 된다. 이제 이 생에서 육체의 정욕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일한 자들은, 그들의 내면과 위에 위대한 권능과 초월적인 영화로움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덧씌워진 만족만을 기대하고 그것에 의지하여, 자기들의 배[腹]라는 신(神)을 섬기다가, 마침내 돌아서서 은혜를 얻은 자들은 그리 높은 권능과 비춤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들도 그렇고, 들판의 꽃들도 아름다움과 권능과 덕에서 차이가 있듯이, 그들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50. 제자:세상은 어떻게 심판을 받으며, 누가 심판합니까?
   스승: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활동 또는 운동의 권능에 의해 그 분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그 분 자신에게서 분리하실 것이며, 지금 이 세상이 있는 곳에 그 분의 나라를 완전히 나투실 것이다. 분리하는 운동이 온 우주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51. 제자:이 세상의 거처가 그리스도의 나라여서 그렇게 영화롭게 된다면, 악마들과 저주받은 자들은 어디로 던져집니까? 그들은 이 세상의 거처 밖으로 던져집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영역이나 거처 밖에 그 분의 영역을 가지고 계셔서 그것을 나타내십니까?
   스승:지옥은 이 세상의 거처나 영역 어디에나 남아 있을 것이지만, 밤이 낮 속에 또 낮에게 숨겨져 있듯이 하늘나라에는 숨겨져 있다. ‘빛은 영원히 어둠 속에서 빛나겠지만 어둠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거기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빛은 그리스도의 나라이지만, 어둠은 악마들과 사악한 자들이 거하는 지옥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의해 제압당해 그의 발등상 즉 비난거리가 될 것이다.
52. 제자:모든 민족과 나라가 어떻게 심판에 이릅니까?
   스승:그 때 영적인 모든 피조물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영원으로부터 나온 모든 생명 속에서 사랑과 분노에 따라 움직이사, 모든 피조물이 말씀의 이 운동에 따라 선고를 받도록 그리스도의 심판 앞으로 이끌 것이다. 그 다음에 생명이 그것의 모든 피조물 속에 나타날 것이며, 모든 영혼이 자신 안에서 생명의 심판과 선고를 보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로 심판은 육체를 벗어날 때 즉시로 모든 영혼 안에서 그 영혼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은 악이 선에게서 분리될 때 세상과 육체의 본질 속에서 영적인 몸이 회복되고 세상에서 분리되며, 만유가 그 영원한 저장고(貯藏庫)로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53. 제자:선고(宣告)는 어떻게 선포됩니까?
   스승: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다음 말씀을 생각해 보라. “그가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라, 너희 내 아버지의 복 받은 자들이여, 세상이 놓일 때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나라를 유산으로 받으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해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 내게 옷을 입혀 주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들이 대답하기를, ‘주여 저희가 언제 당신께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시고 헐벗고 편찮으시고 옥에 갇힌 것을 보고 당신을 도와 드렸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 그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너희가 나의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왼편에 있는 악한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내가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아프고 옥에 갇혔을 때 너희가 나를 돌보지 아니 했기 때문이다’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가 언제 당신이 그러한 것을 보고 당신을 돕지 아니 했습니까?’ 할 것이다.
   그러면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보잘 것 없는 자 중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영원한 징벌로 들어갈 것이요,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54. 제자:사랑하시는 스승님, 청컨대 왜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이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지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그리스도 자신께 행하듯이 이렇게 합니까?
   스승: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본질적으로, 그 분께 완전히 귀의한 사람들의 믿음 안에 거하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살을 밥으로 주시고 자신이 피를 마실 것으로 주시나니, 그리하여 내적인 또는 내면적인 인간에 따라 그들의 믿음의 바탕을 소유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의 가지라고 부르나니,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영적으로 거하시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자신의 육체적인 곤궁함 가운데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러한 것을 행한다면, 그것은 그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에게 행한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리스도께 맡겨진 것이므로 그 분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으며, 따라서 그 선한 행위는 그리스도 자신에게 행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러한 곤궁에 처한 그리스도인을 돕지 않고 곤궁 속에 있는 그 사람을 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내팽개치고 그 분의 지체들 속에 계신 그 분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 속하는 가난한 사람이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네가 곤궁에 처한 그 사람에게 그것을 거부하면, 너는 그것을 그리스도 자신에게 거부하는 것이다. 또 누가 그러한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상해를 입히면, 그는 그리스도 자신께 그렇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런 사람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욕하고, 거부하거나 쫓아내면, 그는 그 모든 짓을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여 그에게 음식이나 옷을 주어 곤궁에 처한 그를 돕는 자는 그리스도와 그 분의 몸의 지체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니, 만일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니, 나무와 가지가 하나이듯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55. 제자:그러면 가난하고 곤궁한 자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그들에게서 노고의 결실을 빼앗은 자들은 저 혹독한 심판의 날에 어떻게 살까요? 그들은 그 가난한 자들을 억지로 자기들 뜻에 복종하게 강요하고, 그들을 제 맘대로 짓밟았으니, 이는 자기들이 허식과 권세 속에 살며, 호색과 자만과 허영을 위해 이 가난한 사람들의 땀의 결실을 허비하기 위함입니다.
   스승: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지체들이 박해받는 가운데 수난당하신다. 그러므로 그런 가혹한 자들이 자신들의 통제 아래 있는 가난한 자들에게 행하는 모든 악행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행한 것이어서, 그 분의 엄격한 심판과 단죄를 받게 된다. 그 외에도, 그들은 악마가 자기의 나라를 늘리는 것을 돕는 것이니,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그렇게 억압함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내어, 배를 채우기 위해 불법적인 길을 추구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악마 자신을 위해 그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니, 그가 행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사랑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쉬지 않고 반대하는 자이다. 이 모든 압제자들이 온 맘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서 그 분을 섬기고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옥불로 들어갈 수밖에 없나니, 그 불은 그들이 이 곳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행사한 것과 같은 자아만을 먹고 산다.
56. 제자: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되며, 이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고, 자기들의 종교에 대해 서로 비난하고 욕하고 박해하는 자들은 저 혹독한 시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습니까?
   스승:그런 자들은 모두 아직 그리스도를 안 것이 아니고, 단지 천국과 지옥의 형태나 모습으로서 승리를 위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견해에 대해 싸우는, 자기를 내세우고 뽐내는 모든 자만심은 자아의 형상이다. 누구라도 믿음과 겸손을 지니지 않고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살지 않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분노에 감싸여 있는 것이며, 상상적인 자아, 즉 어둠의 나라의 승리와 하나님의 분노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인간의 무익한 모든 다툼이 그렇듯이, 심판 날에 모든 자아는 어둠에게 넘겨진다. 인간은 그런 다툼 속에서 사랑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상상적인 자아를 추구하나니,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높이고 세워 자신들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들은 같은 목적으로 군주들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백성의 온 나라를 황폐하게 한다. 그런 모든 일들은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심판을 받나니, 그 때 모든 심상(心象)이나 견해가 끝나고,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그리고 그 사랑은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이 투쟁의 때에, 즉 타락했을 때부터 부활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열심이 없고 평화와 사랑을 증진시키려고 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을 위해서만 추구하고 애쓰는 자는 악마에 속한 자이며, 어둠의 구덩이에 속한 자이니,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모든 자들이 겸손한 사랑 속에서 자기들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이다.
57. 제자: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그런 투쟁과 다툼이 있게 하십니까?
   스승:생명 자체가 싸움 속에 있는 것이니, 이는 그것이 나타나고 인식되고 알려지기 위해서요, 또 지혜가 분리되어 알려지기 위해서이다.
   싸움은 또한 승리의 영원한 기쁨을 이룬다.

 

출처 : 매혹된 영혼
글쓴이 : 존재의 마법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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