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5·6교실/한국신학사상사 교실

[스크랩] 이세종<이공>선생의 생애와 사상 -심중식

류성련 2016. 6. 19. 00:36

1. 이세종<이공>선생의 생애와 사상
  


I. 이공(李空)의 생애와 사상

1. 예수를 몰랐던 시절


맨발의 성자로 알려진 동광원의 창시자인

이현필 선생의 스승이 바로

 이공[李空] 이세종 선생(1880-1942)이다.

 

이공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형님 밑에서 자라났다.

남의 집 머슴이 되어 일만 알고

 글을 배워본 적이 없었지만 어떻게 한글을 깨쳤다.

 

정직하고 충직해서 틈틈이 짚신을 삼아서

형님께 드리고 일년 품삯을 형님께 양도하였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난리가 나서 다 못살아도

 그이만은 살 것이라고 칭찬했다.


장성해서는 형님들을 가까이 모시고 도와드렸는데

형님들의 가산이 차츰 늘어나 살만큼 되자

그제야 결혼을 생각했다.

 

나이 30세에 14살의 시골 처녀와 결혼하였다.

살림을 차린 후 지게를 맞추고

“이 지게가 다 닳도록 일해서

그간에 살림을 이루리라” 결심을 하고

이른 새벽부터 일을 나섰다.

 

겨울이면 콩 잎사귀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저축하고

형님 댁의 살림도 보살펴 드렸다.

마침내 그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치고 그에게 빚을 지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전답도 늘었지만 잘 입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고 살았다. 이렇게 이공 자신은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일가친척들은 자주 도와주었다.

 

그 동안 얼마나 지게를 지고 일을 했던지

 지게가 다 닳아져 어린애라도 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 후 15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자식을 보고 싶은 소망에 무당을 불러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무당이 하라는 그대로 복종을 하면서

정성과 지성을 다해 아들 낳기만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무당의 지시에 따라 산당을 짓고

공을 들였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지성껏 공을 들여도 헛됨을 알고

그해 이사를 했다.

 


2. 성경과의 만남과 회개


이공 이세종은 우연히 붉은 거죽의 한글로 된 책을

보았는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책이라 하니까

첫눈에 마음에 들어 빌려다 읽고,

얼마 후 “또 다른 책은 없는가?” 묻자

그들이 구약을 빌려주어 성경을 보게 되었다.

 

이공은 구약을 창세기부터 자세히 읽어 가는 중에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보게 되었는데 자신이 이제까지 신당을 짓고 상을 차리고 촛불을 켜고 떡을 차리고

백지로 꾸며 복을 비는 그 제도가

구약시대 성전의 제사의식과 흡사함이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신구약 성경을 공부하던 그이는 마침내

아들 낳게 해달라고 무당에게 공들이고 복 비는 것이 헛된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죄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의 미신 행위를 청산하고 산당에 꾸며놓은 모든 제사 기구들을 불살라 버렸다. “너희는 너희의 복이라 타라” 하시며 모든 것을 버렸다.


그 동안 공들이는 데 쓰던 모든 기구들을

다 일소한 후에 무당에 공들이던 그 열성을 하나님께로 돌려 정성을 바쳐 기도하며 말씀을 살폈다.

 

머슴들의 휴식처인 사랑방에서, 창세기 일장 일절부터

하루 밤에 한 절씩 암송하기를 몇 달을 하고,

성경 읽는 산당까지 마련하여 탐독하다가

복음에 통하였다.

 

밤이면 기도하고 낮에는 말씀을 읽곤 하는 생활을 수개월 동안 계속 하였다. 마침내 그이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실한 신자가 되었다.

 

아들을 낳겠다는 마음도 깨끗이 사라졌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식들을 얻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만 열심히 섬기며 전도도 하였다.

그이의 전도로 마을 사람들이 다 믿게 되었다.

이웃마을까지 전도하고 간증도 하고 어떤 때는 식사도 잊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그이를 보고 미쳤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동리마다 전곡을 나눠주고 길가는 나그네나 거지들이 오면 모두 대접해 보냈다.


3. 모든 빚을 탕감해줌


그이는 그에게 빚진 자들을 낱낱이 다 불러들였다.

그리고 갚을 수 없는 빚들은 다 탕감해주고 빚 문서인 차용증서는 그 자리에서 불태워 없이한 후에 “빚은 다 받았으니 안심하라.”며 위로했다

 

. 빚진 자들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고 나서

 이제 그에게 빚진 사람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물건을 꾸어간 사람들에게도 “그냥 다 가지라.”했다.

일대 희년을 선포한 것이다.

 

그 마을에서는 전무후무하게 희한하고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꿈처럼 믿을 수 없는 그런 일이 사실이었다.

모두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고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산에나 들에 나가서 일군들이 흔히 하는 대로

남의 콩 한 포기라도 뽑아먹었던 기억이 있으면

그 임자에게 찾아가 자복하고 다 갚았다.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차한 대로 무엇이나 다 도와주었다. 곡식은 모아두었다가 노인과 어린이가 있는 가난한 집에 나누어주었다.

 당신 자신은 콩 잎사귀 얼마도 아까워 못 먹고 살면서 그렇게 했다.


그러자 일년에 으레 한 두 번은 아프던 몸도 모든 병이 물러가 건강해지고 기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경이 아니면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어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따라 믿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는 그의 선심에 감동하여 그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신도들과 함께 나와서 오직 하나님만

공경할 것과 자기의 명예는 나타낼 것이 없으니

 비석을 당장 넘어뜨려라 했다.

 

 “내 손으로 이 사람들을 시켜서 비석을 없앨 수는 있으나 당신들이 세워놓은 비석을 차마 그럴 수 없으니

 당신들 손으로 무너뜨리시오” 하고 권유했다.

 

면장과 면민들은 “이왕 비용을 들여서 세운 것이니

그대로 두자” 하며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안 무너뜨리면 그이 자신이 없애겠다고

완강하게 나오자 할 수 없이 면민들은 그 자리에서 땅을 파고 묻었다.


4. 오직 말씀으로


그는 배부르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금식이 더 좋은 식사였다.

 

성경을 들고 있으면 해가 뜨는지 해가 지는 지도 몰랐다. 밤이나 낮이나 분간이 없었다. 어쩌다 병이 나면 곡기를 끊었다.

 

 병중에는 죽이나 숭늉이나 미음도 먹지 않았다.

평소에는 쑥 범벅이니 콩잎사귀 죽 같은 아주 거친 음식이 주였는데 병중에는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병석에서 일어나기까지 금식했다.

 

그이는 아파도 매양 약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죽고 싶다고 하지만 병이 나면 약을 쓰는데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약이다. 의의 약이다.

이 약을 쓰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

썩어도 썩지 않는 생명의 몸으로 부활한다.

몸은 아무 때 썩어도 썩는 것이니 그대로 버려두라.”

 

그이는 오래 아프면 “이제 죽을 것이라” 하고 죽음을 기다렸고 회복되면 살려주신 것을 감사했다.


5. 신비체험


어느 해 겨울 이상한 중병이 나서 두어 달을 아팠다. 열병에 신음하면서도 병원에도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았다.

 

 “예수보다 좋은 의사가 어디 있으며 신약보다 좋은 약이 어디 있느냐?”하며 버텼다. 열흘 이상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하루는 밤에 제자 이상복에게 산에 있는 예배당에 데려가 주기를 바랐다.

 

죽어도 산당의 기도실에서 죽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들어 드리자 해서 업고 가는데 가죽과 뼈만 남아서 가볍기가 나무 같아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추운 겨울인데 불도 없이 차가운 냉방에 뉘여 놓았다.

 

이상복은 당시 20대의 청년인데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팔 다리를 주물러 달라 해서 주무르는데 여의치 않았다. 한 밤에 이공의 몸은 반쯤 굳어지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이공은 제자에게 자기 몸을 힘껏 흔들어 달라 했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오자 그의 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제자에게 뜨거워서 못 견디겠으니 연못의 얼음을 깨 오라 했다. 물을 떠다 머리를 축이고 몸을 문지르라고 한 후 다시 몸을 일으켜서 못 가로 갔다.

 

 못 가로 가서 옷을 벗고 얼음을 깨뜨리고 퍼낸 물을 온몸에 끼얹었다. 몸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랐다. 이렇게 세 차례나 얼음물로 샤워를 했다. 의아해 바라보는 제자에게 “이제야 정신이 드는군.” 했다.

 

그때 이공은 건너편에 이상하게 빛나는 광채를 보았다. 이공은 이상복에게 “저기 정자나무 밑에 무엇이 안보이시오?” 하고 물었다.

 

제자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그럴 것이요. 영의 눈이 열려야 보이지

육안으로는 안 보일 것이요.”

 

이렇게 말하는 이공의 얼굴에는 감격과 기쁨이 가득했다. 초자연적인 힘이 쏟아짐을 체험했다.

 

그의 열병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옷을 입고 뛰어 나와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람이 사는 것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증거 하였다.


6.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라


명예나 칭찬은 마귀의 대접으로 알고 똥처럼 피하였다. 칭찬을 마귀의 시험으로 알고 남이 높이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고 심지어 마음이 교만해질까봐 상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싫어하였다.

 

도움을 받은 이들이 감사의 사례라도 하면

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저에게 감사하다고

하시오?

저를 시험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였다.

 

 걸인에게 무엇이라도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하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으면 내 먹을 것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당신들에게 줄 수 있었겠는가 하였다.

그이는 사람을 대접하는데도 차별이 없었다.

 

거지에게 대접해도 꼭 당신 집에서 잡수시는 대로 대접했다.

누구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꼭 같이 접대하였다.

그것이 주는 이에게 복이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주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된다고 가르쳤다. 이런 바른 가르침이 곧 사랑이라 하였다.


7. 겸손과 사랑


당신은 또 절대 교만을 몰랐다.

옷만 다른 사람보다 낫게 입어도 마음이 교만해져서

다른 사람을 낮추어보게 된다고 낡은 검정색 무명옷만 입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이 거지만도 못하였다.

 

한번은 어떤 분이 식혜를 갖다 드리면서 선생님께서 잡수시고 싶어 하신 음식이라 올렸다고 했더니

두어 번 떠 잡수신 후에 숟가락은 놓고

 “이놈이 진즉 나무끄렁에라도 치어죽지 않고

이때껏 산 것이 이것을 못 잊어 못 죽었는가?” 하며

 통곡하였다.

 

 또 찰밥을 해오자 찰밥을 붙들고 가난한 사람들 생각이 나서 잡수시지 못하고 눈밭을 누비며 찰밥을 할 수 없으리만큼 가난 한 집들을 찾아다니며 나눠주셨다.

 

올기 쌀이 생기면 가난해서 농사도 짓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다 돌려주신 다음에야 비로소 당신 입에 넣으셨다.


그이는 언제나 세상의 명리를 뜬구름처럼 생각하고

어디를 가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꽃 한 송이를 볼 때도 탐이 나서 가면 허방에 빠져 넘어지고 다리가 부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남에게 덕을 베풀기를 좋아하였고 빼앗기는 것을 얻는 것보다 즐거워하였다. 일가친척들이 와서 빼앗아 가고 행패를 부려도 그들의 요구보다 더 많이 베풀었다.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고 송사하여 속옷을 갖고자 하는 이에게는 겉옷까지 주고자 했다. 한번은 그이의 살림살이를 욕심내서 빼앗고자 위조문서를 세우고 위증을 내세워 그의 살림살이가 모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나섰다.

 

그러나 그는 일언반구의 반론이나 변론도 없었다.

그이는 오직 탄식하며 말하길 “이제 내가 죽을 때가 당도한 것이라” 했다.

길을 가다가 훼방하는 이가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기다리다가 그 사람이 허락해야 길을 떠났다. 핍박과 능욕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으로 생각했다.


8. 정직과 진실


겉꾸밈이 없었다.

속이고 외식하는 자는 예수와 원수가 된다고 믿었다.

 

 남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으로 알고 자기밖에는 추한 것이 없다고 여겼다.

아무리 나환자라도 추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악수하고 반가운 듯하지만

속에는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것을 보고 한탄하였다.

 

오직 진실만을 사랑하였다. “내가 주는 밥은 죄가 안 될 것이다.”하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겉으로 주면서 속으로 아까워한다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안과 밖이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이 그이의 즐거움이요 자랑이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실천하시며 속을 다스리는 것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길이라 믿었다.

 

 남이 나를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욕하며 해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진실성이 없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다.

 

남이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의 거짓이 나를 해치는 원수라고 알았다.


9.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이는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몸도 자기 것이 아니고 마음도 자기 것이 아니었다.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 버리고 오직 주님께 의탁하였다.

 

밤중이라도 주님께서 인도하시면 어디든지 따라 나섰다.

한번은 밤중에 감동이 있어 집을 나가서 십리나 떨어진 마을의 뒷산에서 날이 새기까지 쪼그리고 앉아있다 왔는데 얼마 후 예수의 이름이라고는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그 마을에 교회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것도 그이가 밤새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앞집이었다.


재산도 모두 주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믿었다.

누가 손해를 끼쳐도 주님께서 알아서 처분하신 걸로 믿었다.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했다.

 

화초와 꽃나무를 심고 잉어를 기르면서 무척 기뻐하였는데 사람들이 그것들을 꺾어가고 파가고 잡아가는 것을 보고 인심의 악독함에 한탄하며 울었다.


마음과 뜻을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데 몰두했다.

 목사 장로들이 와서 믿음의 도리나 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한없이 기뻐하고 좋아하였지만

 

말이 희미하게 세상이야기나 쓸데없는 이야기로 되면

같이 담론을 하다가도 낯빛이 침울한 모습이 되어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언제나 주님의 도리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옮기지도 않았다. 누가 와서 궂은소리를 해도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곁에서 말하면 무슨 상관이냐 책망하시며

그저 듣고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버리면 된다고 하였다.


10. 만물을 한 몸처럼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든 미물들을 다 사랑하였다.

산길을 가다가 칡넝쿨을 만나도 사람들의 발에 밟혀 다치지 않게 다 치워주며 걸었다.

풀포기 하나라도 뽑지 않고 마당의 잡초도 뽑지 않았다.

 

물에 빠진 쥐를 보면 막대기를 놓아서 나오게 해주었다. 하루는 독사가 부엌에 들어와 웅크리고 있으니

 부지깽이로 조심스레 몰아서 산으로 내보내며

다른 사람에게 보였으면 큰일 날 뻔 했으니

앞으로는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하루 밤은 어둔 데서 무엇이 그를 물었다.

불을 켜고 보니 큰 지네였다.

조심조심 종이로 싸서 돌 틈으로 돌려보내며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했다간 큰일이 날 터이니

앞으로 다시는 사람들 틈으로 나오지 말라고 일렀다.

 

무엇이나 사람을 해치는 것이 나옴은 사람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번은 산이 무너지는 듯한 호랑이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놀랐다.

 

“범이 무슨 짐승이기에 만물의 영장이 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서 밤새도록 “만물의 영장이 네놈에게 져서야 되겠느냐?”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를 쫓아 보내느라 산을 헤맸다.

 

 사람이 해칠 마음이 없으면 어떤 짐승도 해치지 못하는 법이며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사자라도 사람을 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파리 모기 등 해충이 나오는 것도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 했다.

파리가 생기기 전에 예방할 것이지 파리가 생긴 뒤 죽이려고만 힘쓰지 말 것을 설명하였다.

 

욕하고 미워하고 죽이는 죄를 짓지 말라 하였다.
마을을 지나가다 보면 어린아이들이 욕을 하며 어덕뱅이니 문둥이니 손자놈이니 손가락질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러면 죄 된다 웃는 낯으로 타일렀다.

 그래도 계속 욕을 하면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요 나에게 들려주시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했다.

내 육체에 문둥병은 없지만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 안의 문둥병을 가르치신 것으로 알았다.

 세상에서 어덕뱅이는 아니지만 날마다 하나님께 빌어먹으니 어덕뱅이도 옳은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끝없이 너그러우며 관대하였고 또한 인자하였다.


11. 찬양과 자비와 기도


그이는 길을 가다가 개미 한 마리만 밟혀도 길을 멈추고 돌아보며

하나님 앞의 행위로 보아서는

내가 너한테 밟혀 죽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네가 나에게 밟혀 고생하는구나!” 하며

 슬퍼하였다.

무성하게 자라난 풀포기를 보며 기뻐하였고

 산에 올라가 우거진 모습을 보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만물들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자.”하면서 큰 소리로 찬양하였다. 죄인들을 보면 앞에서는 꾸지람을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울었다.

 

한 사람이라도 믿음에서 떨어지면 밤새도록 울었다.

“하나님 이 죄인을 잊지 마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해치는 이가 있으면 그이는 이 세상에서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연민을 가졌고 무엇을 훔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가’ 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는 걸음마다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하나님, 이 불쌍한 백성과 죄인들을 잊지 말아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탁하였다.

언제나 부지런히 말씀을 전하며 말씀하는 시간에 밥상이 들어와도 공사부터 먼저하고 사사는 뒤로 하자며 말씀을 계속하였다.

 

마음에 항상 진리의 말씀만을 생각하였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였다.

길을 가다가 피곤하여 쓰러져도 하늘만 쳐다보며

우리가 움직이려면 위에서 힘을 주셔야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욥기를 생각한다고 했다.

 야고보서[5:11]에 욥의 말씀이 있어 좋다고 하였다.

병으로 앓는 이를 보아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고

식사 때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이라도 병자를 낫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우리가 사는 힘은 밥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에 있다고 믿었다. 어디를 간다 해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길을 떠날 때 기약이 없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모른다. 가다 어찌될 지 오다가 어찌될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맡기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이 없었다.


12. 의의 옷을 입자


그는 입은 것이

 남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되면 곧 바꿔 입어야 마음이 편안했다.

하루는 새 옷을 입고 나갔다가 어떤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를 보자 곧 바꿔 입고 돌아와서 “음식이야 다른데서 얻어먹을 수도 있지만 거지가 옷을 어디서 얻어 입겠는가.” 하였다.

 

그이의 모자는 다 쭈그러진 검은색 중절모였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이 모자만을 쓰고 다니는 것을 보고 어떤 분이 그 모자를 몰래 아궁이에 불태워버리고 자기의 모자를 드렸더니 좋은 모자는 마음이 불안해서 쓸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이는 두루마기는 입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좋아하는 의복은 덕행이었고 의의 두루마기를 입고자 하였다. 그리고 정직의 허리띠를 동여매고 살았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고 의의 두루마기를 입고 정직의 허리띠를 매고 오직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자 힘썼다.

 

 


13. 예수를 잘 믿으려면


그이는 예수를 믿은 후 남들이

자기를 이공이라 불러주기를 바랐는데

이것은 철저한 자기부정의 정신이었다.

 

이공李公이 아닌 이공[李空]으로

자기가 없다는 뜻이다.

 

하루는 제자 오복희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믿을 수 있을까요?”하고 묻자 즉석에서 대답하길

 “빌어먹어라했다.

 

예수 잘 믿으려면 거지 오장치 짊어지듯

 믿어야 한다.

물에 빠지듯 풍덩 빠져서 믿어야 된다.”하고 가르쳤다.

 

개구리가 물에 뛰어들 듯

믿음의 바다에 풍덩 빠지라는 것이다.

 

그이는 진실로 진리의 바다에 몸을 바쳐 풍덩 빠졌다.

그리고 그가 풍덩 빠질 때 나던 그 소리는

지금도 영원한 울림으로 퍼지고 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에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누가14:26-27]

 

 


14. 순결생활


남녀의 순결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결혼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큰 은혜라고 하였다.

 

 복음을 받은 후

하나님과 부자유친(父子有親)하게 되자

부인과는 남매처럼 살았다.

부부관계를 끊고 순결의 삶을 살았다.

 

나이 어린 아내가 참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그러자 아내의 살림도구를 손수

지게에 지고 갖다 주며 언제든 돌아오라고 했다.

 

그 아내가 얼마 못 가서 되돌아왔을 때

 말없이 받아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매로 살았다.

 

아내가 다시 참지 못하고 두 번째 집을 나갔다.

이공은 신령으로 정성으로 기도를 했다.

며칠이고 기도한 후 찾아가서 돌아오라고 권했다.

그 아내는 다시는 안 돌아갈 것이라며

온갖 악담을 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기를 찾아 왔느냐?”

하면서 물을 끼얹고 야단을 했다.

 

그이는 심한 냉대를 받았지만

온유한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여인의 간부에 대해서도 선하고

관대한 태도로 대하며

그 여인을 데리고 살아도 유망할 것이 없으니

돌려보내라고 권유했다.

 

머지않아 그 집에 재앙이 닥쳐 아내는 할 수없이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한글도 모르는 아내에게 한글을 깨우쳐주고

성경을 읽게 하였다.

그리고 찬송을 가르쳤다.

그 아내도 마침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다.

그리고 그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정성으로 보살폈다.

 

 

15. 마지막 가는 길 - 고난 받은 종의 노래


그이가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가까워 옴을 알았다.

그리고 세상 떠날 준비를 착실히 하였다.

믿는 이들에게 모든 진리를 아낌없이 풀어서 가르쳐 주었다.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었다. 집도 전답도 다 없이하였다.

 

곡식 한 톨까지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 지방에 보일 증거는 다 보였다 생각해서 그 마을을 떠났다. 그를 받아들이고 모셔드리는 데는 세상에서 한 군데도 없었다.

 

그이는 산으로 들어갔다.

고요히 운명할 장소를 택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보릿가루 콩가루 도토리가루로 연명하면서

분량을 점점 줄여갔다.

마침내 마지막 40일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않았다.

공기로 연명하면서

바람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기운이라 했다.

최후 마지막 일주일간은 더없이 장엄하였다.

 

들어내 갈 수 있도록 손수 나무로 만든 틀,

즉 상여 위에 요를 깔고 누워서 세상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과 육체의 땀나는 고통 속에 일주일을 보냈다.

임종시간이 가까웠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유언을 남겼다.

부인에게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부탁하고

젊은 남녀들에게는 정욕을 극복하라 하고 장년들에게는 가정에 얽매여 진리사랑을 소홀히 할까 염려하라 경계했다.

어떤 이에게는 가시덤불 속에서라도 성경을 볼 것을 부탁하였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양 발과 머리를 붙들라 하였다.

 “놓치면 죽는다, 단단히 붙잡아서 높이 들라” 하고 소리를 높였다.

높이 들어올리자 그때 말씀하였다. “누가 나를 받들어 올리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로다.” 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제자들은 이사야서의 다음 말씀을 생각하였다.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오르리라.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만방은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제왕들조차 그 앞에서 입을 가리우리라.
이런 일은 일찍이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귀로 들어본 사람도 없다.[사52:13-15]

출처 : ★진달래교회★
글쓴이 : 씨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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