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루터의 성화론>
컨템포러리 아트
2006/02/09 00:10 |
7절_루터의 성화론
<종교개혁사>(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루터의 성화론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상당히 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의인화 사상은 의인화(義認化: imputation) 곧 법적으로 전가되고(forensic), 객관적으로 옷 입혀지며(objective), 우리 밖에서 다가오며(extra nos: out of us), 낯선 손님같이 주어진 의(aliena iustitia Dei)에로 집중되어져서, ‘의로워진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실제적·본성적·내면적(in nobis: in us) 의인화(義人化: impartation)도 결코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물론 린드버그(Cater Lindberg) 같은 학자는 그의 저서 『제3의 종교개혁 The Third Reformation』에서 루터의 객관적, 수동적 의인화(義認化)만을 강조하며 루터는 결코 본성적·실제적 의인화(義人化)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홀(Karl Hall)이나 알트하우스(Paul Althaus) 등은 루터가 의인화(義人化)도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알트하우스는 『루터의 윤리 The Ethics of Martin Luther』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루터 자신의 저술 속에서 이러한 실제적 의와 선행을 포함한 성화 사상이 계속 나타난다.
“갈라디아서 강해”(1517년), 『독일 신학』(1518, 루터 편집), 『하이델베르크 논제』(1518), “두 종류의 의”(1519년 설교), 『히브리서 강해』(1519), “크리스천의 자유”(1520), “선행론”(1520), “마리아 찬양”(1521), 『십계명 강해』(1528), 『신비적 예언자들에 대항하여』, 그리고 후기 설교들 속에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초기 복음주의적 신앙의인화를 강조하는 『로마서 강해』(1515년)에서도 독일 신학에서 나타난 신비주의적 성화론이 나타난다.
어거스틴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해석의 발상에서, 강도를 만난 환자와 같은 성도들은 주막이라는 교회를 통하여 계속 치료받아야 한다고 루터는 강조한다.
따라서 어거스틴과 더불어 루터에게서도 교회는 영적 환자들인 성도들이 계속해서 치유를 받아야 하는 병원이라고 해석되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계속적인 성화의 전진을 이루어야 한다고 루터는 이해한다.60)
루터의 성화론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세상을 미워하고 악과 투쟁하는 것(the enmity of the world),
둘째 자아죽음(mortification),
셋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값비싼 은혜(costly grace) 등이다.
첫째,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성도라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이 세상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세상을 미워하는 것은 제자 된 유일의 표식이다. 복음 자체는 세상에 대한 공격이다.”61)
이것은 다시 말해서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악마와의 싸움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외적으로 세상을 미워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아의 죽음이 곧 성화이다.
“자아의 죽음은 신앙과 은총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과 죽음을 전제조건으로 일어나는 행위다”62)
따라서, 그의 자아죽음의 개념은 중세신비주의와 다르다.
루터는 그의 논문 “천상적 예언자들에 대항하며 II(Against the Heavenly Prophets Part II)”에서 칼스타트(Andreas Bodenstein of Karlstadt)와 논쟁한다(LW 40:144-223).
그는 “칼스타트는 육체의 죽음을 신앙에 두고 또한 말씀 앞에 둔다”63) 라고 비판한다.
셋째, 값비싼 은혜이다.
루터는 롬 8:17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를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짐을 지는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을 주장한다.
참 신학자는 책을 읽고 명상하고 사변하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고 삶과 죽음, 비난당함과 고난당함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64)
루터는 라이프치히 논쟁(1519) 이후 죽음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고 오직 십자가만을 붙들고 십자가 위에서만 그의 신학을 수립하였다.65)
본회퍼(Dietrich Bonh쉌fer)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값비싼 은혜(costly grace)라고 풀이한다.
루터가 수도원에서 안일하게 기도하고 명상하는 수도사적 경건(cheap grace)에 머무르지 않고 수도원 문을 박차고 나와서 세속 속에서, 역사 속에서 종교개혁 운동의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한 것은 값비싼 은혜의 결단이라고 이해한다.66)
루터는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그는 “고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제단이 된다”고 말한다.67)
고난의 목적은 은혜요 정결함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성화의 교리와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길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그의 십자가 신학은 성화의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에게는 성화이다(sanctification).
<종교개혁사>(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루터의 성화론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상당히 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의인화 사상은 의인화(義認化: imputation) 곧 법적으로 전가되고(forensic), 객관적으로 옷 입혀지며(objective), 우리 밖에서 다가오며(extra nos: out of us), 낯선 손님같이 주어진 의(aliena iustitia Dei)에로 집중되어져서, ‘의로워진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실제적·본성적·내면적(in nobis: in us) 의인화(義人化: impartation)도 결코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물론 린드버그(Cater Lindberg) 같은 학자는 그의 저서 『제3의 종교개혁 The Third Reformation』에서 루터의 객관적, 수동적 의인화(義認化)만을 강조하며 루터는 결코 본성적·실제적 의인화(義人化)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홀(Karl Hall)이나 알트하우스(Paul Althaus) 등은 루터가 의인화(義人化)도 결코 배제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알트하우스는 『루터의 윤리 The Ethics of Martin Luther』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루터 자신의 저술 속에서 이러한 실제적 의와 선행을 포함한 성화 사상이 계속 나타난다.
“갈라디아서 강해”(1517년), 『독일 신학』(1518, 루터 편집), 『하이델베르크 논제』(1518), “두 종류의 의”(1519년 설교), 『히브리서 강해』(1519), “크리스천의 자유”(1520), “선행론”(1520), “마리아 찬양”(1521), 『십계명 강해』(1528), 『신비적 예언자들에 대항하여』, 그리고 후기 설교들 속에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초기 복음주의적 신앙의인화를 강조하는 『로마서 강해』(1515년)에서도 독일 신학에서 나타난 신비주의적 성화론이 나타난다.
어거스틴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해석의 발상에서, 강도를 만난 환자와 같은 성도들은 주막이라는 교회를 통하여 계속 치료받아야 한다고 루터는 강조한다.
따라서 어거스틴과 더불어 루터에게서도 교회는 영적 환자들인 성도들이 계속해서 치유를 받아야 하는 병원이라고 해석되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계속적인 성화의 전진을 이루어야 한다고 루터는 이해한다.60)
루터의 성화론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세상을 미워하고 악과 투쟁하는 것(the enmity of the world),
둘째 자아죽음(mortification),
셋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값비싼 은혜(costly grace) 등이다.
첫째,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성도라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이 세상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세상을 미워하는 것은 제자 된 유일의 표식이다. 복음 자체는 세상에 대한 공격이다.”61)
이것은 다시 말해서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악마와의 싸움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외적으로 세상을 미워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아의 죽음이 곧 성화이다.
“자아의 죽음은 신앙과 은총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과 죽음을 전제조건으로 일어나는 행위다”62)
따라서, 그의 자아죽음의 개념은 중세신비주의와 다르다.
루터는 그의 논문 “천상적 예언자들에 대항하며 II(Against the Heavenly Prophets Part II)”에서 칼스타트(Andreas Bodenstein of Karlstadt)와 논쟁한다(LW 40:144-223).
그는 “칼스타트는 육체의 죽음을 신앙에 두고 또한 말씀 앞에 둔다”63) 라고 비판한다.
셋째, 값비싼 은혜이다.
루터는 롬 8:17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를 강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짐을 지는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을 주장한다.
참 신학자는 책을 읽고 명상하고 사변하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고 삶과 죽음, 비난당함과 고난당함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64)
루터는 라이프치히 논쟁(1519) 이후 죽음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고 오직 십자가만을 붙들고 십자가 위에서만 그의 신학을 수립하였다.65)
본회퍼(Dietrich Bonh쉌fer)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값비싼 은혜(costly grace)라고 풀이한다.
루터가 수도원에서 안일하게 기도하고 명상하는 수도사적 경건(cheap grace)에 머무르지 않고 수도원 문을 박차고 나와서 세속 속에서, 역사 속에서 종교개혁 운동의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한 것은 값비싼 은혜의 결단이라고 이해한다.66)
루터는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그는 “고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제단이 된다”고 말한다.67)
고난의 목적은 은혜요 정결함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성화의 교리와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는 길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그의 십자가 신학은 성화의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에게는 성화이다(sanc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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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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