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어거스틴의 지적 회심
신학과 4학년 200201092 이진주
어거스틴은 장년기의 일들을 회상한다. 먼저, 그는 철학 공부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의 형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어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물체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멸하는 존재요, 침해될 수 없는 존재요, 불변하는 존재로서 그렇지 못한 존재들보다 좋다고 고백한다. 그 이후, 악신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마니교의 비논리성을 비판하면서 강력히 마니교를 거부한다. 악에 대한 마니교의 이해를 거부한 어거스틴은 악은 인간 자신의 의지와 인간이 당하는 고통, 잘못에 대한 벌로 이해한다. 어거스틴에게 끊임없이 던져지는 물음은,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은 모두 선한 것인데 그렇다면 악이 어디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면서도 서서히 어거스틴의 마음에는 신앙이 자리 잡는다. 그는 이즈음 피르미누스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미래의 사건을 미리 알아내는 기술이란 없으며 혹 맞더라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라는 사실을 알고 점성술의 오류에서 벗어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보살피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거스틴은 존재의 계층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악의 원인에 대한 질문을 풀지 못했다. 그러한 가운데 어거스틴은 플라톤 철학의 책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 책에는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나타나 있으나, 성서에 기록된 겸손을 행하신 하나님은 없었다고 말한다. 아무튼 어거스틴은 플라톤 주의 책을 통해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신의 영혼 안에서 변하지 않는 신적인 빛을 보게 된다. 그에 따라 존재의 계층은 더욱 확실해졌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사는 것이 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래 선한 것으로,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한 것의 결핍이라는 답을 얻는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창조된 모든 것에는 계층이 있고, 악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된 세계는 함께 화합해서 조화되어 있어 좋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한 어떤 것이라도 싫어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의 마음은 온전치 못하다. 더불어 그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과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서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그는 이성을 통해 스스로 계신 존재자에 도달한 신비체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육체의 정욕의 습관과 그의 약함으로 인해 계속해서 하나님을 즐기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이신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어 모실 때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초기에는 예수의 인성의 탁월성만을 주장한 오류에 빠졌으나 이후에 그 이해를 수정하였다고 밝힌다. 어거스틴은 다시 한번 플라톤주의의 길과 기독교의 길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이 적힌 성서, 그 중에서도 사도 바울의 책을 붙들었음을 이야기한다. 성서를 통해 어거스틴은 하나님 찬양과 온유와 겸손,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음을 고백한다.
창조된 모든 것은 선하며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어거스틴의 이해는 성서적이며 바람직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이해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이것은 인간 사이의 사랑을 뛰어넘어 자연까지도 사랑으로 돌볼 것을 선포하는 생태계 보존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나와 너, 그리고 그것들(창조된 모든 피조물)과의 조화를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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