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1·6교실/신학이해교실

[스크랩] 제5권 마니교의 감독 파우스투스와 기독교의 감독 암브로시우스

류성련 2014. 3. 9. 20:01

제5권 마니교의 감독 파우스투스와 기독교의 감독 암브로시우스

 


  어거스틴은 자신의 영혼으로 하여금 주님을 찬양하게 해달라는 기도로 5권을 시작한다. 뒤이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으며 누군가 주님을 버렸어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버리지 않으시며 그들을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시어 위안을 주신다고 고백한다.

  어거스틴은 29세 때 카르타고로 마니교의 감독인 파우스투스가 왔던 일을 회상하면서 마니교와 자연철학자(천문학자)들의 학문을 비교한다. 이 둘 중에서 어거스틴은 철학자들의 이론이 훨씬 더 합리적이며 세계를 바로 인식하고 판단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세계를 관찰함에 있어 하나님과 자신들의 재능의 근원을 알지 못했고 주님께 자신들을 헌신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을 발전시켜 그는 참 행복은 창조주가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mensura, humero, pondus)을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밝힌다.

  어거스틴은 경건의 지혜를 모르고 마니 스스로 주님의 보혜사 성령이라고 거짓 증거하였던 마니와 더불어 마니교의 교리를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당시 자연철학의 내용들과 불일치하는 마니교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그러한 의심들을 마니교도들에게 털어놓고 함께 해결하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감독인 파우스투스가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카르타고에 방문했던 파우스투스와의 토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비록 언변과 화술에는 능통하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여느 마니교도들과 다를 바 없었던 파우스투스를 보고 실망한다. 그리고 어거스틴이 파우스투스에게 의심했던 여러 문제들을 털어 놓을 때마다 그의 무지와 겸손을 발견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점점 어거스틴은 마니교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카르타고 학생들의 태도에 대한 회의로 인해 로마로 이적한 뒤 처음으로 겪었던 열병사건을 회고한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로마에서 역시 마니교도들 및 성직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러한 관계가 나중에는 어거스틴이 마니교로부터 떠나려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 때, 어거스틴은 회의론을 이야기하던 아카데미파와 접촉하게 되면서 마니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진다.

  어거스틴은 카르타고 학생들에게서 느꼈던 회의를 로마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느끼고 로마의 시장 추천을 통해 밀라노수사학 교사로 삶의 자리를 옯긴다. 그 때 드디어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김독인 암브로시우스를 접촉한다. 그는 처음에 암브로시우스의 친절함에 깊은 호감을 느꼈으나 점차 그의 우의적인 설교 내용과 그 형식에 빠져들었다. 기독교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어거스틴은 암브로시우스를 통해 확실한 구원의 교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다. 어거스틴은 점차 암브로시우스의 도움과 아카데미파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회의 예비 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거스틴은 지난 날 마니교에서 기독교로 옮기게 된 경유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밀한 인도하심과 그분의 섭리를 강조한다.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밀라노로 장소를 옮긴 것은 자신을 올바른 잣대 위에 세우시려던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일어난 일임을 고백한다. 또한 로마에서 겪었던 열병이 치료된 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영광을 돌리고 있다. 5권을 읽으면서 어거스틴의 이러한 고백들이 지난 날 나의 삶에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에 달려있음을...

(질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강조하다보면, 자칫 결정론/운명론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데 어거스틴은 운명론적 입장을 지닌 사람이었나요?

출처 : 푸른 향기
글쓴이 : 푸른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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