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1·6교실/교회사1교실

[스크랩] 속사도 - 인물과 신학

류성련 2014. 8. 13. 23:42

 

 

 

속사도 - 인물과 신학

 

 속사도란 가까이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직계 제자들을 의미한다. 원래는 12제자의 제 1직계제자들에게 속사도라고 하였으나 교회사에서의 속사도시대는 일반적으로 사도 요한이 죽은 후부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의 시기를 續사도시대(Post-Apostolic Age) 또는 前니케아회의시대 (Ante-Nicene Age)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교회가 보다 구체적으로 형성된 시기요 발전된 시기였다.  

 

 

 

속사도 시대의 주요 인물과 신학

 

1.로마의 클레멘스 (Clements of Rome)

  클레멘트 또는 클레멘스는 1세기 말에 로마에서 사역한 유명한 장로이다. 그의 저서로는 <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있다. 그의 저서에는 구약 인용이 많아서 약 4분의 1이나 된다. 그는 바울의 정신을 많이 이해하고 있었지만 야고보와 같이 윤리적 가르침을 많이 베풀었다. 클레멘스의 관심사는 바울과 같이 진리를 세우고 확고히 하는 데 있었다기 보다는 교회 형제들의 선행과 덕행을 격려하는데 있었다. 그는 신앙인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2.이그나티우스 (Ignatius)

  안디옥 감독으로 트라야누스 황제 때 로마에 끌려가서 맹수의 밥이 되었다. 이그나티우스의 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상은 교회의 통일, 감독의 권위, 순교자의 영광 등이다. 그의 저서로는 로마로 호송되는 도중에 쓴 7통의 서신이 있다. 이중 <에베소> <마그네시아>(Magnesia) <트라리아> <로마인에게>는 서머나에서 집필한 것이고 <빌라델피아> <서머나> < 폴리카르푸스에게>는 드로아에서 집필한 것이다. 그는 이 서신에서 대속 문제, 성육신 문제(주로 당시 교회를 괴롭히던 이단인 假現說者들을 취급하면서), 유대주의자들 문제, 감독직의 권위 문제를 취급했다.

 

 3.폴리캅(Polycarp)

  2세기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인 폴리캅은 서머나 교회 감독이었으며 사도 요한의 제자였고 이그나티우스 친구였으며 후일 이레네우스의 스승이 되었다. 폴리캅은 155년에 서머나에서 화형당하여 순교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빌립보의 서신> 한 통이 남아 있다. 여기에는 바울 서신들과 베드로서, 요한일서 등이 인용되어 있다.

 

 4.파피아스(Papias)

  브프리기아(브리기아)의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으로서 150년 경에 버가모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저서로는 다섯 권으로 된 <주의 가르침의 설명>이 있다. 이 책은 사도들과 사도들의 제자들이 전한 것을 한 데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전해지지 않고 단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속에 단편적으로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 파피아스는 열정적으로 천년왕국을 주장하였다.

 

 

5.교부들의 신학

 

 기독론

  먼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논쟁다운 논쟁은 없었다. 대체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었으나 신성을 더 강조한 편이었다.

 ①클레멘스 (Clemens of Rome)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엄한 홀(笏)이다.

 ②이그나티우스 (Ignatius) : 그리스도는 신이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③헤르마스 (Hermas) : 그리스도의 선재설(先在說)을 믿었다.

 

 삼위일체 교리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명백한 교리는 이 시대에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희미하나마 삼위일체 교리를 믿은 듯 하다.

 ①이그나티우스 : 신자는 건축재(돌)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것을 끌어올려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기계로, 성령님은 밧줄로 비유함

 ②클레멘스 : 사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충분한 확신을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되고, 성령님의 보증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복음을 듣고 이것을 전하러 나아갔다"고 말했다.

 

 속죄론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열고자 피를 흘리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 사함 받게 하는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건한 마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의)를 주신 것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될 수 있다는 以信得義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속죄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별로 철저하지 못했고 이신칭의의 근거에 대해서도 구약 말씀들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년설

 그리스도의 재림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도게서 천년간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신다고 가르쳤으며 파피아스는 상상력을 크게 활용하여 천년 시대의 상태를 묘사하기까지 했다. 전반적으로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6. 변증가들

 로마제국이 정치적 군사적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과 보조를 같이하여 문서적 사상적으로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이 등장하자 기독교 지도자들 역시 기독교의 참 진리됨을 변호하고 변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들을 변증가(apologist)라고 부른다. 이들의 변증은 기독교의 사상을 체계화하여 교리화하고 신조화하는 데와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우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변증가에는 주로 2세기에 출현한 신학자들 특히 철학적 소양이 풍부한 헬라(동방) 계통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가장 탁월한 변증가였다.

 

유스티누스 (Justinus)

 그는 125년에 사마리아에서 출생하여 166년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핍박 때 죽었다. 그는 헬라 학문과 철학을 공부하는 중에 진리를 찾아보려고 스토아 학파,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또는 피타고라스 학파 등을 전전하며 사숙하였으며 플라톤 학파의 학설에 깊이 심취하기도 하였다. 그가 플라톤 철학을 열심히 연구한 결과 거의 철학의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특별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그가 어느 날 해변을 산보할 때 한 노인을 만난 것이다. 그 노인은 유스티누스에게 구약 성경을 주면서 이 책의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다 성취되었다고 말한 후 사라졌다. 노인을 만난 후 유스티누스는 모든 인간적인 지혜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고 노인의 충고에 따라 구약을 연구하였고 또한 신약을 연구하는 중에 그리스도가 구약을 성취하신 것을 발견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되었다.

 유스티누스의 글에는 <대 변증서>와 <소 변증서>, <트리포(Trypho)와의 대화> 등이 있다. 이 중 대변증서는 황제와 원로원, 로마 국민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터무니없고 상투적인 비난 곧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이며 국가에 반대하고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등의 주장들을 반박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기독교의 참된 신앙 됨과 고상한 도덕적 종교임을 변증하며 이방 종교에 비교할 때 기독교가 매우 우월한 종교라는 것을 강조했다.

 

 아리스티데스 (Aristides)

 아리스티데스는 아테네 사람인데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글을 올려 기독교를 변증했다. 이 글은 시내산에서 발견되었다. 이 글에서 그는 참 신의 성질을 설명했고 이교의 신화를 공격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의 풍성한 삶에 대해 설명했다.

 

 콰드라투스 (Quadratus)

 아테네의 감독으로서 기독교 최초의 변증가이다. 그는 126년 경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변증서 제출했는데 그 내용 중에는 예수님에게 병 고침을 받은 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타티아누스 (Tatianus, 110-170)

 앗시리아인으로서 유스티누스의 제자였다. 철학자인 그는 로마에 거주했는데 나중에는 그노시스 종파에 들어갔다고 한다. 저서에는 헬라인의 신화를 반박한 {헬라인에 대한 담론}, 사복음서를 종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한 {디아테사론}(傳記)} 등이 있다. 디아테사론은 가장 오래된 예수님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160-170년 경에 요한복음이 교회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으로 말미암아 증명된 것이다.

 

 아테나고라스 (Athenagoras)

 2세기 후반의 인물로서 아테네에서 출생하여 철학자로 활동하다가 후에 기독교를 믿었다. 177년 경에 쓴 저서 <기독교에 관한 사명>과 주님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변호한 <부활>이 유명하다. 그는 변증가 중에서도 뛰어난 문장력을 갖춘 강력한 이론가였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철학적으로 변호한 첫 그리스도인이다.

 

 멜리토 (Melito)

 소아시아의 사데 교회 감독이었으며 당시 유명한 대작가였으나 전해오는 저서는 없다. 힐라 신화를 비판한 글을 많이 썼다. 최근 {주의 수난}이라는 논문이 발견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존중하여 주님을 '본질상 神 人'이라고 칭했다.

 

 미누키우스 펠릭스 (Minucius Felix)

 원래 유명한 로마의 법률가로서 230년 경에 활동했고 저서로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친구 간의 대화 형식으로 된 <옥타비우스>라고 하는 글이 있다.

 

 아르노비우스 (Arnobius)

 아프리카에서 수사학 교사를 지낸 아르노비우스는 주님을 믿은 후 세례받기 전에 (주후 303년 경) 7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 내용은 다신교의 불합리성을 공격하고 기독교의 장점을 칭찬한 것이다.

 

 락탄티우스 (Lactantius)

 아르노비우스의 제자로서 문장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며 그리스찬 키케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는데 이 책은 독창적이지는 않으나 당시의 변증론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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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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