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2·6교실/교회사2 교실

[스크랩] 마틴루터 3

류성련 2014. 9. 13. 00:06

독일 인물, Martin Luther 3

루터의 그림자

독인인들이 뽑은 역사가운데 존경하며 자랑스러운 인물중 루터는 2위 자리에 있다. 어둡고 침침한 중세의 역사를 끊고 유럽에 새로운 희망을 준 그 공로를 인정을 한다. 특히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정리하고 성경을 번역한 루터를 아주 자랑스레 여긴다. 하지만 그의 공적을 찾아 여러가지의 글과 주장들을 찾아 읽으면서, 루터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접하는 전문가들의 글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영웅 루터의 모습과는 완전 상반되는 루터를 알리는 글들이 상당수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요구였을까, 민중을 위한 영웅과 같은 인물이 대중과는 반대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였음에 놀랍다. 대표적으로 유대인과 농민들 특히 대중에 대한 그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오늘은 엉뚱하게 루터의 그러한 면만을 들쳐, 존경받는 인물들도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되는 어두운 부분이 있음을 이야기하자. 인물들도 실수가 많은 인간에 더 가깝다.


그는 시편 강해에서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반유대 사상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예수를 구세주로 보지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유대인들의 죄는 하나님 예언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사용이 됨이다 라 설명을 하면서, 1520년 부터 그는 기독교 믿음안에서 자신이 가진 기독교 사상에 유대인들의 기독교로의 개종을 희망한다. 그리고 시편 14장을 비유하여 유대인들 자신을 위한 슬픔과 아픔 그리고 통해의 기도만 유발하게하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저주받을 광포한 행위라 한다. 루터의 초기 시절 정도되는 1519년에 유대인들의 고리대금업과 매점매석은 전혀 설교도 입을 섞여 이야기하지를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자식교육과 일을 즐겨하는 습성을 강조하면서 이야기 한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교황청파들의 주장이 반대되는 입장에서 유대인들을 감싸며, 교황청파들을 겨냥하여 심지어는 성모인 마리아의 처녀성까지 의심을 하는 말을 한다. 유대인들의 거주지 게토와의 경계를 두는 것에 심한 비난을 하며, 기독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을 기독교의 사회로 인도하여 함께 거주하며,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여야 그들이 비난은 받는 매점매석과 고리대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 주장을 한다. 루터의 이러한 유대인에 대한 사상으로 인하여인지 1530년에서 1540년 사이로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생긴다.

사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살인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기독교와 원수로 천년이상의 세월 가운데 나라를 잃고 헤매는 민족의 한을 이 개혁자의 개혁을 통하여 시작된 희망이다. 하지만 루터는 개혁의 초기에서 가졌던 한정적이였던 유대인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갑자기 바뀌게 된다.


점점 나이가 먹어가면서 루터는 반 유대주의자로 변한다. 당시에 사회적 분위기일지도 모를 그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후세에 600만 유대인들이 희생되는 나찌의 반 유대주의인 히틀러의 논제로 이용된다.

후대에 역사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왜 그가 갑자기 친유대주의에서 반유대주의자로 변하는가를 찾으나 어떠한 증빙이 될만한 내용을 밝히지 못하였다.

당시로 루터는 집권자, 정치통치자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처분을 요구하게 되는데,

1. 유대회교당은  황산이나 역청으로 태워야 한다.

2. 유대인의 집들을 파괴해야 한다.

3. 유대성경과 책자들은 태워없애야한다.

4. 유대교와 랍비들의 가르침은 금지이다. ( 어길시는 사형에 처함)

5.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 사용금지

6. 유대인들의 상업행위를 금지하며, 모든 거리에서의 집회를 금지한다.

7. 유대인 남자와 여자들의 강제노역


루터는 이러한 사항들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유대인들을 모아 파레스틴구역으로 추방을 해야 한다는 설교를 교회에서 조차 시행한다. 죽기전까지 나머지의 일생을 이러한 과격한 반유대운동을 하며,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세계 지도자들에게 개종하지않은 유대인들을 정치나 사회의 중요한 위치에서 쫒아내야 함을 주장한다.

한 사람의 일생가운데 어느 순간 180도로 변한 루터의 반유대사상에 대한 원인을 후대에서는 아래의 3가지의 이유를 들어 밝히고 있으나 아무런 증거도 없는 추측일 뿐이다.


1. 유태인들이 종교의 개혁을 통하여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개종하기를 원하였으나, 만족할만한 숫자가 없이 종교개혁자로서의 체면을 손상되었다는 생각

2. 당시 지방 권력자들은 종교와 사회의 합일화에 관심이 있었지 유대인들의 문제는 관심 밖이였다

3. 나이가 들면서 심하게 약해진 건강과 정신상태로 인하여

라는 원인을 나열한다.


역사 가운데 히틀러가 루터의 영향을 받아 그러한 살인마로 변하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히틀러도 초기에는 친유대주의자였다. 유대인들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던 그는 정권을 잡은후 자신의 정권의 연계로 유대인을 이용하는데, 그 이용의 논리는 루터의 반유대적 이론에서 가져온다. 루터가 주장하였던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의 내용들은 나찌정권에서 이행하였던 모든 대학살의 내용과 똑 같다. 이렇게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무섭고, 잔인한 마귀들의 무리인 나찌는 국민들의 인기를 안고, 개신교에서 영웅시하며 신성시조차하는 마틴루터가 만든 반유태논제를 따라 행한다. 유태인들을 사람이 아닌 돼지라 칭하며, 그들을 잡아 모든 재산을 빼앗고 집단 수용하며, 그리고 무참하게 학살한다.



제국회의 장소였던 Worms 시에있는 루터와 그를 도와주었던 당시 제후들의 동상이다. 당시 그의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장소를 제공하고, 그의 생명을 보호하였던 제후 가운데 현자 후리드릭은 생전에 루터를 만난적이 없었다. 선제후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는 권력을 가진 그는 당시의 병든종교와 면죄부에 대하여 반기를 든 젊은 신부를 보호한다. 그의 막강한 세력으로 인하여 루터는 신변의 안전을 가지고 성경번역과 개혁의 임무를 행할 수가 있었다.



집무실에서의 모습이다. 그에 관하여는 많이 알려져 있어, 필자는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을 종합하여 필자의 블러그 "인물" 편에 올린다.



박동수

출처 : 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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