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아른트 - 진정한 기독교
1. 머리말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경건의 위기가 일어났다. 이 위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1555년 아욱스부르크 종교평화협약 이후 신성로마제국에는 두 개의 종파가 공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로마카톨릭과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의 추종자들인 루터교이다. 아욱스부르크 종교평화협약과 더불어 종파의 시대가 시작된다. 중세기에서 있었던 기독교의 통일은 두 개의 경쟁적인 종파로 나누어졌다. 로마 카톨릭은 새롭게 힘을 얻어 프로테스탄트가 되었던 지역들을 탈환할 시도를 하였다. 이 두 종파의 진영에서는 파격적인 변화를 목표로 한 세력들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추구들은 결국 1618년부터 1648년까지의 30년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전쟁의 마지막 해인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에서 아욱스부르크 종교평화협약의 결정이 승인을 받게 되었다. 어쨌든 이제 두 개가 아닌 세 개의 종파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 루터교 그리고 칼빈파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몇 명의 신학자들은 이제 그들의 저서로 매우 결핍되어있는, 바른 기독교적인 경건생활에 대한 길을 인도하려고 시도하였다. 경건문학 저술가의 최고봉에 앉아있는 사람은 요한 아른트이다. 그의 주요작품인 ‘진정한 기독교’는 17세기 전체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종교서적이 되었다. 진정한 기독교에서 아른트는, 기독교 사회의 현저한 부패와 무미건조한 이론뿐인 정통주의를 향하여 실천적인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한 정통주의의 논쟁들에 대항한 것이다. (정통주의에 대한 비판은 실천적인 신학에 예민한 루터교의 정통주의를 향한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에 대한 창조적인 상상력을 방해해온 전통적인 기독교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제거함으로서 사회 개혁을 조장했다.
유럽의 기독교 운동안에서 요한 아른트는 이중의 사역을 해야 하는 입장을 취한다. 첫 번째 면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선행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와 세상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전인적인 그리스도인의 선행을 촉진한다는 의미였던 루터의 사상을 바로 보고, 이해하고, 적용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아른트는 제2의 루터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면은 루터의 유산을 다시 찾으려는 도전적인 주장과 직접 관련이 있다. 중세교회가 단순한 교황주의의 성장과 회개의 상업화 이상의 것을 성취해 놓았음을 자각했다는 의미에서 그가 루터의 제자였음을 증명한다.
2. 서론
요한 아른트는 루터가 죽은지 9년 후에 중부 독일에 있는 선제후국 안할트(Anhalt)에서 루터교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등교육을 마친후에 그는 헬름 슈테트(Helmstedt)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중병을 앓은 후에 그는 의사로서의 진로를 포기하고, 신학과 신비주의에 관한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결과 비텐베르크. 슈트라스버그, 바젤등을 전전하게 되었다.
같은 해에 그는 안나 와그버와 결혼을 했다. 그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으나 이들은 그 후 38년을 같이 살면서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그의 고향에 돌아왔으며 여러 지방에서 선생과 목사로서 일했다. 그의 고국의 제후는 칼빈주의에 호의를 가진 나머지 자기 나라의 루터교 목사들에게 세례시에 마귀 쫓는 의식을 폐지하라고 요구하였다. 이것은 세례예식의 기도로서 마귀가 물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요구에 대해 거절하고, 고향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는 쿠베들린부르크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로 갔고, 이 때에 아른트는 중세 후기 시대의 독일 신비주의의 여러 가지 글들을 새롭게 출판하였다. 그리고 아른트는 중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건 서적인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1605년 출판하였다.
그의 다음 활동 장소는 그 당시 중요한 상업도시인 브레멘에 있는 마르티니 교회였다. (1599-1609). 그는 여기에서 ‘진정한 기독교’의 제1권을 썼고 1605년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출판하였다. 이 책은 설교에서 나온 것으로, 아른트는 여기에서 이웃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 후 그는 루터 도시인 아이스레벤에서 청빙을 받았다. 이곳에서 2년동안 머물때에 그는 ‘진정한 기독교에 관한 4권의 책’을 완성하였다. 1611년부터 그가 죽을 때인 1621년까지 아른트는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 제후국의 지도적인 목사였다. 이 때 유명한 기도집인 ‘그리스도인의 선행으로 가득찬 천국 낙원’을 출판하였다.(1612)
그의 수많은 서적을 보면 아른트의 관심은 압도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실천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관심은 늘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행해야 할 덕을 세우는 행동들과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행해야 할 묵상, 반성, 기도 등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아른트의 저서 중 대부분은 교리적인 논문보다는 영성(靈性)에 관한 것들이었다.
저자의 사후에 출판된 ‘진정한 기독교’에는 두 권이 더 첨가되었다. 1620년도 소책자들 ‘참 믿음과 거룩한 삶에 관해’, ‘성도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에 관해’, 그리고 ‘성령에 관해’ 등을 포함시켰으며, 여섯 번째 책에는 그를 향한 비판에 대한 대답, 그의 편지들, 그리고 ‘독일신학’에의 두 서문 등이 첨가되어 있다.
‘진정한 기독교’는 제1권부터 제3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3권의 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이루어진 기독교적인 참된 신앙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아른트에게 있어서 특히 인간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환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4권은 자연의 책의 해설이다. 여기에서 아른트는 파라첼수스와 연관하여 자연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제4권에서는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안내되었다.
‘진정한 기독교’가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가 중세, 혹은 그 외 다른 시대의 신비적, 혹은 영감적 자료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영혼이 완전한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바, 첫째로는 회개와 금욕을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그 다음은 기도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노력에 의해 내적 덕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주기적인 연합이 맺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른트와 루터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는바, 아른트는 사랑이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전인적인 믿음의 삶에 대한 궁극적 표현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의 종착은 완전한 인내와 찬양이다.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인간의 사랑과 찬양의 대상은 인간이 평생을 통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이시다. 사랑의 삶에 대한 강조는 하나님의 형상복귀와 묵상기도를 향한 점차적인 성화의 신비주의적 해석에 관한한 루터의 사상에 있는 그것보다 훨씬 더 넓은 활동범위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아른트에게는 처음부터 반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른트가 바른 루터교 정통의 교리에서 벗어났다고 비난하였다. 1618년부터 아른트를 반박하는 여러 가지 글들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아른트 논쟁’이다. 루터교 정통주의는 경건의 연습, 즉 개인적 변화, 성결에 있어서의 개인적 성숙, 신앙적 체험 등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처럼 실제적인 방향을 제시했던 반대파들은 아른트를 대변인으로 내세웠고, 그는 당시 신학자들에 의해 이단이라는 신랄한 힐책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변호해 주었는데, 특히 요한 게하르트는 그 자신이 비정통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아른트을 변호해 주었다.
아른트가 중세 후기 신비주의 원본을 사용한 것은 17세기 후반 필립 야곱 스페너와 프랑케, 진젠돌프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건주의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또한 그들은 그의 신학을(더우기 그들의 19세기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의 후계자들)추종하였다.
3. 서문 :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진정한 기독교의 요소, 즉 진실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제시, 살아 움직이는 참된 경건과 의의 열매 등을 평범한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하였다. 또한 참된 회개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어떻게 흘러나와야 하는가? 하는 것과 그리스도나 그의 거룩한 복음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 어떻게 말씀에 의해 새로워져야 하는가? 등을 보이고 싶었다. 한 마디로 우리 속에서 아담은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는 살아야 한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생명력 있는 방법으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유력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아무도 경건하게 사는 법을 배우려 하고 있지 않다. 예술과 언어, 지혜를 배우기 위해 많이 배운 사람들을 찾고 있을 뿐, 아무도 우리의 유일하신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유와 진실한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그는 최고의 지혜와 지식이므로 우리는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순결한 삶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요한복음 12:26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비록 자신의 육체가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의 거룩한 생활, 겸손, 온유, 오래 참으심, 고난, 수치, 모욕의 본(本, example)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당당하고 위대하고 부요하신 그리스도를 원할 뿐, 아무도 가난하고 겸손하고 멸시받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고백하고, 영접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너희가 나의 겸손 중에 나를 알려 하지 않았으니 나도 너의 교만 중에 너를 알지 못하노라(마 7 ;23)”라고 말씀하시리라. 그러므로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설 대,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때, 그를 진심으로 믿고 그리스도인 땅에 살 때이다.
이 책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어떻게 죄사함을 받는가 하는 것 뿐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적절하게 사용할 것인가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사는 법에 의해 어떻게 믿음을 장식하고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시해주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의와 의의 열매는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믿음을 통하여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행이나 새로운 삶의 은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칭의와 연관시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 인간의 선행이나 상급, 은사, 혹은 선이라도, 비록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의에 미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영원한 구원을 잃지 않기 위한 필수 조건인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질투에 관한 말씀이 많이 있다.
이 책을 씀에 있어 프랑크푸르트판(Frankfurt), 요한 타울러(Johann Tauler),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a Kempis)과 같은 초기 저자들의 글을 인용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인간의 능력과 행위에 의존하는 듯한 경향이 있어, 이 책에서는 그러한 오류을 피하도록 노력을 했다. 동시에 천주교, 신인합력설을 추종하는자들(Synergists), 메이저주의자(Majorists)들의 교리는 논박되고 반박되었다. 더 나아가서 이 책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칭의에 관한 교리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경건의 위기의 시대에 나온 “진정한 기독교”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서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설 때,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때”
이 문구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세상을 어지럽게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로 가고 나약하고, 기복신앙에 젖어서 축복은 원하지만, 축복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는 멀리하는 이 때에 경건의 회복에 일침을 가하는 외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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