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너의 경건한 열망이란 소책자의 내용은 그 시대의 종교적 필요를 감당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 책에서 강조한 것들이 경건주의 운동의 특색들이 되여 지기도 하였다. 그 특색들을 요약해보면 첫째는 경건생활을 위한 성경연구, 둘째 교리적 논쟁의 회피, 셋째 회개와 인격적 신앙강조, 넷째 교회 안에 핵심체의 인정, 다섯째 독립적 평신도 운동이다. 이 다섯 가지 특색 중에 경건주의 운동이 교회사적으로 공헌한 것이 있다면 평신도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경건주의 운동은 당시 성직자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또 기성 교회에 대한 위협적인 도전으로 여겨지지도 않은 채 누룩처럼 조용히 혁식화 되어지는 독일 교회를 변화시켜 가고 있었다.
비록 중세기 사제 중심의 제도에서 종교개혁 이후 많은 개혁이 따르긴 했으나 만인 제사장 교리에 입각하여 평신도들이 직접 교회 발전에 참여하는 일부 경건주의 운동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평신도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스페너의 영향은 확대되어 갔다. 예찬과 비난이 함께 쏟아졌다. 가장 심한 반대자는 멘저(Menzer)와 딤펠드(Dilfeld)였다. 그런 중에도 경건주의 운동은 지속되는 중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따라오기도 하였다.
스페너가 신자들이 교회와 분리되는 것을 극력 반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기성교회를 떠날 수 있다는 선언으로 이용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집단이 생겨나 기성 교회의 틀을 벗어나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페너의 진정한 목적은 신자들을 끌어내어 새 교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훈련시켜서 소속 교회에서 봉사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경건주의는 확산되어 갔다. 스페너가 50세에 선제후 게오르그 3세의 궁중의 설교자가 되었다. 이 기간은 경건주의 운동에 대한 열띤 논쟁으로 채워졌다. 여러 대신들과 신학자들은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바 죽은 정통이 아닌 살이 있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이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무가치한 시간은 아니었다.
거기서 스페너는 아우그스트 헤르만 프랑케 (August Hermann Franrie) 라는 후계자를 세워 이 운동을 지속하였다. 프랑케는 히브리어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고 성시회를 만들어 성경 연구와 기도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경건주의가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발휘하도록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경건주의 운동이 사회에 적용되도록 평생을 바쳐서 활동한 사람이었다. 그의 경건생활은 반대자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게 만들었다.
1687년 요한복음 20장 31절 말씀에서 크게 힘을 얻어 헌신을 결심하고 다음해에 스페너를 찾아가 몇 달을 교제하며 이 운동을 위해 여생을 보낼 것을 다짐하였다. 스페너는 베를린에 할래(Halle)대학을 세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수와 목회생활을 하면서 이 때부터 할래대학(Halle University)을 중심하여 경건주의 운동은 조직적으로 학문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후진양성에 힘쓸 뿐 아니라 할레 시민의 어려운 사정에 동정하여 사회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성서 보급을 위해 성서 출판사를 만들고 실비로 성서와 종교서적을 출판 보급했다. 그리고 해외 선교사도 파송하였다. 이렇게 해서 할래는 프랑케의 주도하에 세계선교의 센터가 되었다. 이러한 선교 사업은 독일교회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죽은 정통의 껍질을 벗고 살아있는 교회로 탈바꿈을 하는데 큰 활력소가 되게 했다.
프랑케는 1692년 교수로 초청을 받아 그의 주도로 할래 대학은 경건주의를 실천에 옮기면서 그 모양을 보여주는 실체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할래 대학은 경건주의의 중심지가 되어 독일 전역과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동부 유럽에 경견주의를 전파하였다. 많은 신앙의 지도자들이 할래 대학을 거쳐 나갔다는 것은 그 영향을 말해준다.
프랑케는 루터교 교인이었다. 그는 경건주의에 참예하게 되면서 정통 루터교를 떠났다. 경건주의의 기본요소는 신앙적인 경험과 구원의 확산에 있었다. 프랑케는 극적인 중생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모든 신자들은 다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근본적으로 삶의 태도가 달라지는데 그 대표적인 증거가 개인의 경건생활과 선행이었다.
스페너와 프랑케가 여러 경건주의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중에 니콜라스 폰 진제도르프(Ludwig Von Zinzendorf) 백작이라는 모리비안 교회 지도자가 있었다. 그는 프랑케의 학생이었고 스펜너는 그의 대부였다, 진제 도르프는 30년 전쟁과 가톨릭 박해의 희생자로 유랑하던 모라비아 사람들은 자기 영토에 받아드려 돌보았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해서 결국 그들의 목사가 되었다. 그의 꿈은 선교사업에 일생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재산을 정리하여 넓은 땅을 사서 제2의 할래를 계획하였다.
1727년에 자기 집을 내놓아 종교적 박해를 피해 피난 온 난민들의 안식처로 제공하였다. 그 안식처로 모여든 피난민들은 주로 죤 후쓰(John Huss)의 추종자들로 그 수가 300명이 넘자 피난민촌을 만들어 주님의 망대(Hermhut)라 이름을 지었다. 이 마을은 진젠도르프를 지도자로 모시고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사회를 이룩하였다. 진젠도르프는 1734년에 루터파 목사가 되고 프랑스 및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중에 선교의 비전을 넓히고 국제적인 선교를 위한 조직을 시도하였다. 1736년에 평화교란의 이유로 삭손에서 추방된 진젠도르프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영국과 미국까지 가서 선교하였다.
이 모라비안들의 신앙과 열정은 복음을 앞세우지는 못했으나 특출하였다. 이들의 경건 운동은 결국 영어 문화권으로 전파되었으니 웨슬레의 형제도 이들에게 감화를 받게 되었다. 요한 웨슬레는 선교지로 가던 중 풍랑 속에서 너무도 평온히 찬송하며 기도하는 모라비안들의 행동을 보고 놀라고 은혜를 받았다. 나중에 영국에 돌아간 웨슬레는 이들을 찾아가서 배우고 새 힘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의 삶이 복음적인 각성운동으로 영국교회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스페너와 프랑케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무리는 뷔르덴버그의 독일 루터란들이다. 여기의 지도자로는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Bengel) 이있다. 벵겔은 신약 성경의 유능한 주석가로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로 지금까지도 후세에 감동을 주고 있다. 이처럼 경건주의 자들은 계속 여러 종파에 영향을 주었다. 복음이 희미해가던 17세기 교회의 필요에 응하여 일어난 필수적 운동이었다. 교리적인 논쟁으로 복음의 진수를 잃어버린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분열로 치닫고 신앙을 전인격적인 것으로 보기 보다는 단순한 성경진리에 대한 지적 수단으로 받아드려 영적생활에 생기를 잃고 있을 때 생활과 사랑을 강조하고 회개와 성결을 추구한 경건주의 운동은 분명히 메마른 17세기 교회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대륙의 개신교회가 교파의 자체 정비에 여념이 없을 때 로마 천주교회는 반 종교 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세계 선교에 힘써 모든 선교지가 천주교화 되어갈 무렵 프랑케와 진젠도르프의 선교열정은 많았다. 그러나 경건주의 운동은 반드시 밝은 공허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빛에도 그늘이 따르듯이 여러 가지 역사적 과오를 남기기도 하였다. 첫째는 그들의 세계관의 문제다. 경건주의는 현세 도피적 성향이 있어 수도원 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신비주의 경향으로 흐르게 되면서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처럼 보여 지기도 하였다. 둘째는 교회관이다. 교회안의 교회운동을 전개한 것은 지나친 독선주의적인 구별의식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는 교리의 경시로 기독교인의 별질을 쉽게 초래하는 결과를 갖게 한 점이다. 그것은 성경적 뒷받침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경건생활의 열매를 강조함으로 복음적 정통 신앙고백의 중요성이 외면되었다.
경건주의 운동의 보루인 할래 대학이 그렇게 쉽게 18세기 합리주의 사상의 영향을 입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경건주의 운동이 짧게 유럽에서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지도자들의 복음이 아닌 경건의 절대성이 후대를 세우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후대를 세우지 못하면 어떤 운동이라도 장구하게 지속할 수 없고 그 당대로 끝나게 되는 일이 많다. 참된 복음적 경건 운동은 후대를 길러야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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