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3·6교실/신약신학 교실

[스크랩]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ll, 1884 ? 1976)

류성련 2015. 1. 24. 07:57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ll, 1884 – 1976)

 

 

케리그마의 초월성을 외쳤던 루돌프 불트만은 조직 신학자가 아니라 신약 성경학자였다. 그이 주된 관심사는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현대의 지성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하여 신약 성경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을 채택했다. 그것은 이 고대 문서의 메시지[1]가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개인의 신앙적 반응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불트만은 자유주의에 맞서는 신정통주의의 도전에서 자신을 칼 바르트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로 여겼다. 바르트와 더불어 그는 19세기 의 신학이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불트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상황이라는 측면 안에서만 해석했는데 실존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추종한 까닭이다.

 

불트만의 생애와 배경

루돌프 불트만은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이었다. 그의 조부모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들이었고 그의 외조부는 경건주의적인 남독일에서 목사로 시무했다. 불트만은 독일의 튜빙겐, 베를린, 마부르그 등의 주요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부레스라우와 기셴 등지로 다니며 가르치다가 1921년에 그의 모교인 마부르그로 돌아와서 퇴임할 때(1951)까지 거기서 봉직했다. 불트만은 히틀러 치하에서 교수직을 박탈당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치 정책의 어떤 측면들에 대해서는 내놓고 반대를 하였다.

 

신앙과 역사적 예수

19세기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신약학자들에게 부딪혀 왔던 첫 번째 문제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문제였다. 슐라이어마흐어의 유산을 기초로 하는 자유주의는 역사적 예수 특히 그의 가르침과 행동, 내적 성장과 그 당대인들에 보여진 인상 등을 기초로 하여 재구성이 가능하다고 본 예수라는 인물을 신학적 규범으로 제시했다. 그결과 역사적 예수 연구’(quest of the historical Jesus)라고 불리게 된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은 복음서들의 이면으로 들어가서 예수 자신이 말하고 행했던 바가 정확하게 무엇인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세기 말에 이르러서 그러한 연구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 되었고 결국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의 기념비적인 작품 역사적 예수 연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1906) 에서 그러한 예수를 찾는 작업은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유주의자들이 텍스트를 바탕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 하였던 것에 반하여 슈바이쳐는 진정한 역사적 예수는 선포했던 묵시 문학적 설교가 였다 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예수는 현대인에게는 전혀 생소한 사람이었고 오늘날을 위한 아무런 메시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마틴 켈러라는 신학자는 다른 견해를 보이며 신약 성경의 의미를 푸는 열쇠는 그것이 묘사하는 역사나 역사적 연구 방법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선포한 메시지를 통하여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불트만은 그의 편에 섰고 그 주장을 급진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라고 불리는 학문적 방법을 복음서에 철저하게 적용하게 되었다. 그는 복음서의 자료들은 그것들이 쓰일 적에 이미 헬라적 맥락의 사고 형태로 뒤덮인 예수를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초점은 신앙적 예수에 있었다.

 

그러나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지식이 이렇게 결핍되어 있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에 손해가 끼쳐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신앙에 중심이 되는 것은 예수에 대한 역사라기 보다는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 즉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신앙은 역사적 연구의 결과들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역사의 예수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대면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에게 신앙은 케리그마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의 초점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그는 신정통주의의 특징인 계시의 케리그마적 이해를 충실하게 대변하는 대변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는 한 개인이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와 부딪치게 되는 그 현재적 조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과거의 사실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구속적인 행위를 하셨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위로부터 내리는 구원의 은혜라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했으며 하나의 수양을 위한 도덕 종교로 밖에 보지지 않았는데 적어도 불트만은 은혜를 베푸는 십자가의 복음은 말하고 있다.[2]

 

종말론

불트만이 다루었던 것은 종말론에 대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운동을 하는 신학자들은 신약 성경의 문헌 속에서 묵시 문학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문구들은 예수의 진정한 메시지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별로 중요치 않은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는 신약 성경에서 묵시 문학의 중심성을 재 발견하게 되었다. 그 재발견을 도운 사람들은 요하네스 바이스와 알버트 슈바이쳐였다. 그들은 예수의 설교의 메시지에서 철저하게 묵시 문학적이었으며 종말론적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쳐는 그 중심적 내용, 즉 임박한 세계의 종말에 대한 믿음이 거짓된 것으로 판명되는 바람에 결국 신약 성경을 불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불트만은 그들의 연구 결과를 기초로 종말론을 출발시켰다. 그는 예수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곧 도래 할 것이라는 결국 실현되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신약 성경의 메시지의 적실성에 대하여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신약의 종말론을 재해석 하게 된 것이다.

 

신화론

성서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신화론이라는 문제를 씨름하는 동안 불트만은 홀로 신화에 대한 견해를 즐기고 있었다. 신약 성경 문헌에 대한 역사 비평적 연구의 한 결과로서 학자들은 그 문헌들 가운데 신화적 영향들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묘사하기 위하여 구속신의 강림 신화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영원한 진리들을 볼 수 있기 위하여 신화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트만은 그러한 움직임을 거부했다. 그는 신화를 제거하면 신약 성경의 진정한 메시지인 케리그마도 상실되기 때문에 신화의 제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케리그마를 종교와 윤리의 원리로 환원시켰고 그 결과 기독교를 하나의 비역사적 종교로 탈바꿈 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상실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므로 불트만은 신화를 제거하는 움직임에서 신화의 해석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였다. 이것이 바로 비신화화(demythologizing) 라는 용어를 쓸 때 의미했던 바이다.[3] 그는 텍스트에서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려 하기 보다는 그 요소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 고대의 문서가 쓰일 때의 세계관과 현대인의 사고 사이의 엄청난 격차 때문에 반드시 그것은 필요하다고 불트만은 주장했다. 그는 신화에 대하여 초월적인 실재를 현세적 용어들로 재현하는 사고의 형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되 실제로 현대 정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 과학적 지향성부터 제외되어 있는 표현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신화를 이해한다는 또 다른 설명을 부과했다.

 

불트만에 의하면 비 신화화를 통하여 신화적 언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신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의 지성으로 하여금 납득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 뿐 아니라 메시지 자체가 왜곡되어 케리그마와 진정한 조우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적이 아닌 병원을 기도가 아닌 페니실린을 믿는 20세기 인들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는 신화로서 예수의 이야기를 바라본다.  따라서 복음을 현대인에게 효과 있게 전하려면 우리는 신약에서 이 신화를 벗겨내고 그 뒤에 있는 원래의 목적을 발견해 내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결국 이러한 비신화화는 동정녀 탄생과 싲자가의 속죄의 죽음을 부정하게 되었다. 그이유는 신앙을 위한 예수의 의미를 표현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간하배, 현대신학해설, 개혁주의 신행협회, 2001. p, 66.)

 

불트만이 가지고 있던 관심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 마다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실재와 실존적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다.

 

해석학

불트만이 다루었던 신화의 문제는 해석학이라는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고대의 텍스트와 현대적 사고 사이에 벌어져 있는 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으로 그 문서들 속에서 영원한진리들을 찾아냈다.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가 가르쳤던 윤리적 원리들이었다. 그러나 불트만은 그들의 접근법을 배격했다.

 

불트만은 고대의 텍스트와 현대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격차는 우리의 주해 작업에 적절한 전이해’(preunderstanding)를 수용할 때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고대의 텍스트와 현대의 독자를 연결시켜 주는 질문은 인간 실존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실존주의는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각과 개념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성경 문서들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전이해를 제공한다고 했다. 인간 실존에 관한 결정적인 질문을 그 본문에 가지고 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성경의 케리그마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초월자와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의 초월

불트만이 찾고자 했던 마지막 문제는 신론에 대한 것이었다. 19세기의 신학은 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대단히 강조를 했다. 그러나 칼바르트는 신학자로서의 초기의 생애동안 키에르케고르의 무한한 질적차이[4]라는 개념에 기초하여 그러한 강조점에 대항을 하였다. 불트만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신학에 재도입하는데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불트만이 제시한 초월의 개념은 성경 문서들에 나타난 것과는 달랐다.

 

그가 나름대로 재구성한 바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우주를 공간적 의미의 3층 구조, 즉 하나님과 위에 있는 천국 그리고 땅 아래 지옥이 놓여 있다는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과 그것은 서로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의 초월성은 더 이상 공간적ㅇ닌 개념으로 이해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성경적 초월성이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불트만은 하나의 실존주의적인 이해를 제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의 말씀 안에 드러낸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개인적 신앙의 반응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초연하게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말로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을 말할 수 있을 뿐 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관념의 체계가 아니라 그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란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실존주의와 신학

불트만의 신학적 접근법은 신학적 과제를 위하여 신존주의 철학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신정통주의 전반에서 제기했던 문제에 놓여 있었다. 즉 하나님은 오늘의 인간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라는 질문이다. 불트만의 반응은 신약 성경 자체를 통하여 그리고 실존 철학에서 발견한 인간 실존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전적 타자로서 초월한 모습 속에서 인간 개인에게 말씀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급진적으로 삶을 바꾸는 반응을 촉구한다.

 

하이데거와 신약성경 그리고 실존주의의 범주들

불트만은 성경 메시지의 근본적인 의미를 명백히 설명하는데 마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의 범주들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실존주의에서 발견되는 기본적인 방향성이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믿음의 구조들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글들은 불트만에게 여러 가지 개념을 제공했고 그는 그것을 그의 신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매우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실존이란 결코 일반적인 것이나 보편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 그 개인과 그의 인격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불트만 신학의 핵심에는 실존과 세계사이의 구분이 존재한다.  불트만은 또한 하이데거의 역사성 이해에 그 기초를 두었다. 그것은 우리가 각 개인을 볼 때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보아야지 자연의 영원한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적 실존

불트만은 불신앙이라고 하는 죄와 신앙이라는 성경의 용어들 사이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이데거의 존재의 양식에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던져 졌다는 도전을 수용할 때마다 일종의 본래적 실존(authentic existence)을 발현시키는 것과 그들이 이 세상과 자신 사이의 구분을 상실할 때마다 비본래적 실존(inauthentic existence)을 발현 시키는 것을 적용했다.

 

역사

불트만이 사용한 또 하나의 주요한 실존주의적 개념은 역사이다. 불트만은 시간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누는 일반적 구분이 현재를 비차원적인 수학적 점으로 삼고 과거와 미래를 나누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그는 현재를 결단의 시점으로 보고 현재에 초점을 맞추었다. 과거는 고정이 되어 있어서 더 이상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하지만 한 사람이 과거와 연관되어 있는 비본래성은 과거의 죄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실존에 부가된다. 마찬가지로 미래는 아직 아닌 것 이상이다. 그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현재와 같이 이제 있을 결단의 가능성의 영역인 것이다. 한 사람의 현 존재 속에서 그 개인은 미래, 곧 가능성의 영역에 직면한다. 결과적으로 각 사람은 미래로부터 살도록 요청받는 것이다. 이제 현재는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책임적 결단의 상황이며 과거와 미래를 통합시켜 본래적 실존으로 만들어야 할 결단의 상황인 것이다.

 

신앙과 복음

불트만은 신앙과 복음이라는 기독교적 케리그마를 도입하면서 그의 실존주의와 결별을 한다. 불트만은 하이데거와 달리 본래적 실존은 기독교적 선포에 제시된 하나님의 은혜에 오직 믿음의 반응을 보임으로써만 나타나며 그 반응 자체는 하나님이 일으킨 하나의 기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속죄와 용서의 능력을 가족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모든 이론들을 배척했다. 다만 케리그마에 의하여 반응할 때 십자가의 부활은 우리의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 할 때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인류에 대한 심판이다. 더불어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이가 주님의 위상으로 격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불트만은 다음과 같이 부활에 대하여 말한다. “부활을 믿는 것은 참으로 십자가의 구원의 효력을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기독교 메시지의 선포가 믿음을 낳는다고 공언했다. 믿음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의미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와 대면하는 장소이며 그것을 듣는 자에게 그것은 종말론적 사건이 되는 것이다.

 

비판

지난 세월 불트만의 프로그램은 많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대의 복음과 현대 정신을 통합하는 한 방법을 제공해 줌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현대인들이 기독교의 메시지에 거부하고 문제시 하는 것에 대하여 말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강조하였다. 또한 불트만은 내재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시기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재확립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보수주의 자들의 견해와 같이 그는 성경의 권위를 위태롭게 했으며 신화적 범주를 성경에 적용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 신학을 교회의 고백으로 보는 신조주의자들은 수다한 교리적 요점에 대한 그의 해석은 전통적 이해와 상반된다고 단언했다.

 

불트만의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주요한 신학적 문제가 놓여있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주해에 관한 것이고 신앙생활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

 

일방적인 주해

불트만은 실존주의라는 여과망을 신약학에 적용함으로써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해를 하는 경해를 낳았다. 그는 한쪽 측만을 말하는 기형적인 신학을 낳은 것이다. 많은 본문들은 단순히 불트만의 공식처럼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인간 실존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인간 실존이라는 여과망도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과 현대의 신앙 경험을 너무 급진적으로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그의 문제점은 그가 신앙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했다는 메시지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백하건대 우리의 신앙은 그 역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의 주장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그 역사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유화된 신앙

불트만의 신학적 접근법은 복음 메시지에 대한 너무 좁은 이해와 함께 곧 너무 좁고 사유화한 신앙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본래적 삶의 문제에서 그것도 매우 개인화된 모습의 인격적 결단이다. 그러나 성경의 메시지는 그 이상이다. 개인적 결단이라는 사적 영역을 넘어 삶의 전반에 주어진 메시지이다. 따라서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강조는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적이며 사회적인 차원들을 제외시킬 위험이 있다. 그는 믿음이 신자의 삶에 미치는 외적 영향이나 신자들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서는 거의 강조하지 않았다.

 

신학적으로 볼 때 그는 개인적인 칭의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그것은 성화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재적인 삶에 있어서 연합하는 공동체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들로서 영적 성장을 해나가는 것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교회에 대하여 거의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하나님

블트만은 그의 실존주의적 여과망의 영향 아래 무한한 질적 차이라는 주제를 급진적으로 적용한 결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영원한 실제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행동 등에 대한 주장을 배제 시킨 것이다. 그의 의도는 분명히 자유주의의 내재성 신학을 맞이 하여 하나님을 초월자로 개개 인간과는 대조적으로 서 계시는 전적 타자로서 하나님을 격상시키려고 했었기에 칭찬 할 만하다. 그러나 불트만은 이 하나님이 내 안에서 행동하시는 경우에만 그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신학을 본래적 실존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님과의 체험적 만남에 대한 성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한에서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고 한 불트만의 주장은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을 인간의 신학적 주장의 한계 밖에 놓이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원한 신적 실재로는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라 역사적 예수를 영원한 로고스로 보는 예수의 위상에 대한 주장을 배격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신약 성경이나 교회가 긍정하고 있는 예수 안에서 행하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행동의 의미는 부적절한 것이다.

 

결론

불트만은 복음이 고대 세계의 신화들에 의하여 방해 받지 않고 현대의 지성을 향하여 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한 가지 관심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그는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신앙의 영역으로 좁혀 놓게 되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 발견되는 내재성의 강조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되찾으려는 고상한 시도를 했지만 실존주의라는 여과망이 문제였다.

 

그가 실존주의의 범주에 따라 비신화화 하려는 급진적인 계획은 고대의 메시지를 현대 지성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결과로 초월하신 하나님은 왜곡되었다. 불트만의 체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련이 아니고서는 이야기 될 수 없고 개인의 신앙이라는 사적 영역 밖에서는 이 세상에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성이라는 좀더 넓은 차원들이 이 신학자의 시야로부터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계시된 성경에서부터 찾지 않은 것이 이러한 문제를 가져 오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신약의 참목적인 주권적인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신약의 중심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는 사람으로 대처시켰다. ‘비신화화는 역사에 근거한 기독교의 기초를 파괴한다. 성경의 종교가 신화에 기초한 종교가 된 까닭이다. 그의 비신화화는 종종 신자유주의라고 불린다. 불트만의 작업은 고전적인 기독교의 초자연주의의 완전 배제를 요구한 까닭이다. 신약에서 사실이라 부르는 모든 교리를 불트만은 신화라 부른다. 오직 하나님 중심인 신약이 인간 중심적 사상으로 바뀐 비극이 되었다.

 

그는 복음이 현대인에게 적응되리라는 것을 잊은 것 같다. 불트만의 가상은 인간성의 부패를 생각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하였다. 불신의 흑암을 몰아내고 죄인으로 복음을 보게 하는 것은 성령이다. 복음을 자연인에게 적응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성령의 일은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고전 2: 14)[5]



[1] 그는 이 메시지를 기독교 복음과 신화적인 성격을 지닌 제 1세기 세계관에 있다고 주장했다. 간하배, 현대신학해설, 개혁주의 신행협회, 2001. p, 64.

 

[2]김의환, 도전받는 보수 신학, 생명의 말씀사,2009. p. 27.

 

[3]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는 원시 기독교에서 신화화 하였으므로 결국 인간 예수의 역사적인 지식은 기독교 신앙에 관련이 없다고 불트만은 주장한다. 그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전재하는 진적 존재가 성육하고 자기 피로 사람의 죄를 속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 갔다가 세계를 심한 하며 새 세대를 도입하기 위하여 속히 오시리라는 신화적인 이야기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간하배, 현대신학해설, 개혁주의 신행협회, 2001. p, 65.

 

[4]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인간은 피조물로서의 차이를 말한다.

[5]간하배, 현대신학해설, 개혁주의 신행협회, 2001.p. 70.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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