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신학대학원3·6교실/신약신학 교실

[스크랩] 바울의 케리그마

류성련 2015. 1. 24. 08:55

 

 

 

[초기 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연구]
by J.Dunn(제임스 던)


-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

 

1. 제 1 부

 

다양성 안의 통일성

 

제 2 장

 

케리그마 혹은 케리그마들

 

5. 바울의 케리그마

 

 

지금까지 우리는 케리그마 혹은 선포적 케리그마로서 특별하게 표현되는 자료를 작성할 수 있었다. 바울의 선포를 그의 서신들로부터 드러내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바울 서신들은 이미 개종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개종을 일으키는 선포에만 관련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제는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우리는 바울이 보존하고 있고, 또 자신의 독자들에게 위임의 효과를 나타내는데 반드시 사용해야만 했던 다양한 케리그마적이며, 고백적인 신조문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바울의 메시지 전체로부터 제1의 특징을 끌어낼 수 있고 또한 바울 서신들은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제 상황들을 결정짓는 바, 바울의 초기의 복음 선포속에서 그 특징이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의 케리그마와 비교하는 방법으로서 바울의 케리그마에 대한 상당한 암시를 받아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간단한 요약적 특징들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논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바울의 서신들로부터 또다른 소재를 이끌어 낼 것이다.

 

1) 사도행전의 연설문들과 같이 바울도 예수를 선포했다.

 

우리는 바울에 의해 전해받은 케리그마적이며 고백적인 신조문들로부터 부활한 예수가 바울의 복음에 가장 뚜렷한 특징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롬1.3 이하; 4.24 이하; 8.34; 10.9; 고전15.3-11; 살전1.10; 참고 딤후2.8). 또한 사도행전에서처럼 바울의 메시지에서도 역사적 예수는 거의 아무런 특징을 이루고 있지 않다. 단지 우리는 바울의 서신들에서 예수의 생에 대하여 가장 희미한 설명만을 들으며(탄생, 다윗가의 혈통, 최후의 만찬 및 선포- 갈4.4; 롬1.3; 고전11.23-25), 또한 바울은 예수 자신이 선포한 전승을 명시적으로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또다시 여기에서 예수의 케리그마와 바울의 케리그마 사이에 통일성과 연속성의 문제가 강력히 대두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도행전에서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부각된다(롬3.24 이하; 고전1.23; 2.2; 15.3; 고후5.14-21; 갈3.1). 그리고 살전 1.10과 살후 2.5은 임박한 파루시아가 적어도 바울의 선교 경력의 전반기에 걸쳐서 중심요소였다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 중 가장 특징적이고 독자적인 표현은 주와 새 인간성의 대표자인 고양된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에서 발견된다('마지막 아담'- 특히 고전15.20-23, 45-49을 보라). 그 결과 개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예를 들면, 롬6.3; 고전13.13; 갈2.19 이하; 골3.1, 3), 신자들은 그의 몸이며(롬13.5; 고전12.27), 또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이러한 문귀는 바울 서신 안에서 160번 이상 나온다) 생활하고, 섬기며, 행동하는 것이다. 고로, 바울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속에서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의인)이며, 인간편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관계속으로 들어가 사는 것이며, 은혜 및 성령의 선물을 통해서 그 일이 가능해지며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특히 롬3.21-5.21; 갈2.16-4.7). 이것이 바울의 케리그마의 핵심이며, 그 중심적인 강조점에 있어서나 또 그것의 발전된 표현에 있어서의 특징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경우에서와 같이 바울의 케리그마에 있어서도 '이미'의 실현과 '아직 아니'의 요청 사이의 긴장이 함축되어 있다. 과거에 지나간 사건으로서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신념과 이미 이루어진 성령의 경험은 여전히 '육체속에' 살고 있는, 아직 죽은 자들에게서 부활하지 아니한, 그리고 아직도 신령한 몸에 의해 완전히 지배받지 아니한 신자들 스스로에게 하나의 종말론적인 긴장을 발생시킨다- 그 긴장은 '육'과 '영'(롬8.12 이하; 갈5.16 이하) 사이에 전투로써 그리고 '옛 본성'과 '새 본성'(롬7.22-25; 엡4.22-24; 골3.5-10) 사이에 결전으로써 가장 힘있게 표현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저서들은 우리로 하여금 바울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 기본적인 케리그마엿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도록 해준다. 이 장에서 우리는 예비적인 개괄만을 시도하기 때문에 가장 명백한 촛점에 제한해서 논의할 것이다.

 

2)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세 가지 복음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는 이방인들, 즉 바울 자신의 무할례자들을 위한 복음(갈2.7)으로써 그것은 의에 이르는 수단으로서의 율법의 저주 및 복종에서부터의 자유를 가져온다(2.16-5.12). 바울은 그것을 다른 두 복음과 분명하게 구별짓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복음을 특징짓고 있다(참고, 특히 3.1-14).

 

둘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히 베드로 및 '기둥 역할을 한 사도들'에 의해 대표되는 유대인들 즉, 할례자들을 위한 복음이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이러한 유대적인 해석을 유대인들에게 특유한 기독교 케리그마의 합법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비록 바울은 확실히 그것이 몰고 가는 필연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싫은 기색을 보였다 하더라도 내용상(2.2, 6-9) 바울의 복음과 완전히 상이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것이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한 율법에의 복종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두 복음을 각각 지지하는 자들이 상대방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한에서, 그리고 자기들의 복음과 다른 복음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복음을 강요하려고 하지 않는 한에서 바울은 만족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팔레스틴 교회들내에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는 이방인 선교를 반대했던 율법적 우익파들이 있었다. 그들의 복음이 바로 바울에게 갈1.6-9에서 맹렬한 어조로 공격받았던 '다른 복음'이다. 사도 바울이 이 세번째 복음의 기독교적 위치를 완전히 부인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1.7의 의미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의 왜곡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강요하려는 소위 '유대화한 자들'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문제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남겨 주었다. 그것은 전혀 기쁜 소식이 아니며, 노예가 되는 길이다. 그것을 선포하는 자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들은 완전한 진리를 얻는데 실패했고 스스로를 거세해야만 했다(2.4 이하; 5.12).

 

바울은 고후 10-13장에서 똑같은 어조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틀림없이 바울에게 공격받았던 그들은 스스로를 기독교인들로 과연 '그리스도의 종들''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간주했다(11.13, 23). 그러나 바울의 견해로는 그들은 '사탄의 종들'이며 '거짓 사도들'이었다(11.4, 13 이하). 바울의 이 두 서신들은 원시 교회내에는 여러가지의 케리그마가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사도성이라는 바로 그 개념과 그것에 대한 주장은 어떤 점에서 논쟁의 주제가 되는 것이며, '사도적 신앙'이라는 문귀에다 우리는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3) 바울의 다른 서신들로부터 바울에 관한한 명백해지는 사실은 거기에는 기독교적 선포에 대한 아무런 표준화된 유형이나 확대된 개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전 15.3 이하에서 발견되는 바울의 케리그마의 기본적 개요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진술과 그의 부활에 대한 단언으로 제한되었다. 그는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그러한 사실을 굳게 믿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부활의 사건이 발생할지의 여부에 관한 의심이 나타나 보일때 바울은 자신의 의견을 반대하는 자들을 배교자나 변절자로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그러한 사실을 논박할 따름이다. 바울은 신랄한 비평가이지 비난을 일삼는 공격적인 사람은 아니다. 이와 유사하게 그는 세례에 대한 믿음의 다양성도 받아들이고 있다(1.10-16; 15.29). 그는 세례에 관한 자신의 견해나 어떤 특별한 견해가 유일한 합법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그는 세례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즉, 중요한 것은 세례가 아니라 케리그마이다(1.17). 그리고 그가 비록 10.1-12에서 세례에 관한 마술적인 견해를 공박한다고 해도 그는 15.29에서 대속적인 세례, 즉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그는 세례의 실행을 부활신앙을 위한 논증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린도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다양한 믿음과 실행들로 가득찬, 그리고 여러가지 경향과 긴장들로 가득찬 기독교 공동체를 보여준다(1.11 이하; 3.1-4; 4.6-21 등). 그리고 우리는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살전5.19-22; 살후2.2; 3.14 이하), 로마서에서(특히 14.1-4; 16.17 이하), 그리고 빌립보서(1.15-18; 3.2, 12-19)와 골로새서(2.8, 16-23)에서도 이와 똑같은 불일치가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완전히 일치된 원시 교회를 상상하는 일이 역사적 실재에 보다는 교의적이며 희망적인 관측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4) 우리는 또한 바울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복음선포를 다양화시킨 그 범위에 주목해야 한다. 고전 9.19-23은 분명히 바울이 자신의 케리그마에 대한 진술을 결정하는 제 상황들을 상당한 정도로 허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갈 1.1, 11-17과 고전 15.3 이하에 나타난 바울 자신의 복음의 자료에 대한 여러가지 강조점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주목할만한 문장속에서 예수는 거의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비록 여기에서 바울의 말대로 복음은* 차치하고서라도 율법조차도 결코 듣지 못한 자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지만, [바울 자신의 복음은 행하는(혹은 더 좋은 표현으로는 동기를 유발시키는) 의(義)로 나타나고 있다(롬 2.6-16).]

 

*우리가 나중에 논의할 것이지만, 이 싯점에서 마태와 바울 사이에 가장 밀접한 유사점들이 로마서 2장에 정확히 나타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팔레스틴 기독교인들이 선포한 복음에 대해서 반박하는데 즉, 자신의 복음은 강하게 수호되었고, 베드로는 안디옥에서의 타협으로 인해 비난 받았다(갈 2); 혹은 재차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선교사들은 공공연하게 거짓 사도들로 힐난을 받았으며(고후 10-13), 율법의 복음은 강력하게 거부되었다(갈 5.1-13; 골 2.16, 23). 다른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의 교회들에 영향력을 남기고 있는 할례자(유대인)를 위한 복음에 만족하고 있으며(고전 8장, 참고, 롬 14장), 또한 그 복음이 바울에게 분풀이를 하고, 그를 대적하고 있는 자들에 의해서조차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기뻐하고 있다(빌 1.15-18). 그러므로 여기에서 유의할만한 가치가 있는 또 한 가지의 사실은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바울의 메시지 안에는 분명한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가장 뚜렷한 실례는 바울의 종말론적인 메시지이다.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엿보이는 파루시아의 임박성은 매우 실제적이다. 비록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의 선포는 어느 정도 개발이 진척된 형편이기도 하지만 임박한 파루시아는 바울의 선포에 있어서 중요한 구성요인이 되고 있다(특히, 살전 1.9 이하; 4.13-18; 살후 2.5을 보라). 그와 똑같은 강조가 고전 7.29-31, 15.51 이하에서도 두드러져 있다. 그러나 빌 1.20 이하에서 바울은 파루시아 전에 자기가 죽을 것 같음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골로새서에서도 촛점이 미래에서 과거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롬 6.5, 8, 11에서 바울은 여전히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와의 부활에 대해서, 골 2.12, 3.1에서는 그리스도와의 부활이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단순히 상이한 상황속에서 형성된 동일한 메시지에 대한 상이한 표현들이 아니다. 이것은 바울의 메시지의 발전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고 또 그러한 발전에 대해 일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파루시아 이전의 몇몇 신자들의 죽음이 바울의 개종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임박한 것으로 선포된 파루시아에 대한 기대로부터 비록 바울에게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것 같긴해도 얼마의 사람들이 파루시아 전에 죽을 것이라는 확실한 인식에로, 또 바울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파루시아 전에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냉정히 받아들이는 태도에로 발전이 이루어졌고, 또한 그리스도와의 부활이라는 은유가 예기되고 있고, 그 임박성은 아직 실현이 않된 상태로 유보되고 있다는 신앙의 초기 진술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유는 과거에 이미 성취된 사실을 회고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그 강조점이 변화되었다. 일견, 이것은 확실한 변화로 보인다.

 

5) 이제 다음과 같이 우리의 결론을 요약할 수 있다.

 

(1)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에 대한 아주 명확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그의 이해나 표현은 어떤 최종적이거나 고정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2) 왜냐하면 바울은 다른 선포들의 타당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그것들도 '복음'이라고 불렀다.

 

(3) 그리고 바울 자신의 고유한 케리그마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하였으며, 수년에 걸쳐 그 강조점과 억양의 변화를 가져왔다.

 

(4)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사실은 몇 차례의 상황속에서 바울은 다른 신자들이 진정한 것으로 간주했던 복음의 양식들에 단호히 반대했으며, 그것들은 복음이 아니라고까지 했다. 과연 바울이 케리그마에 대한 유대 기독교적인 이해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두개의 신약 문서 즉, 마태복음과 야고보서를 전심으로 승인한 적이 있었는가 하는 점은 다소 의문으로 남는다. 확실히 바울은 율법을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율법'(약 1.25)으로 말한 적이 결코 없었다. 약 1.25의 그 말은 자기 자신의 경험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주장이었고 이방선교의 제 상황속에서 항상 부적당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마찬가지로 의심없이 바울의 케리그마에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결정적인 요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즉, 신약성서 자체 내에서 우리는 단순히 다양한 케리그마들이 아니라 사실상 상반되는 케리그마들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선포들이 상이한 삶의 상황들과 관계없이 상호간 직접 비교하게 될 때에 그 선포들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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