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 문제에 대한 재고
A Review on the Problem of Exclusiveness in the Books of Ezra-Nehemiah
이한영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구약신학)
논 평 김창대 (안양대학교/구약신학)
들어가는 말
구약은 고대이스라엘의 대내외 관계를 배타주의와 관용주의간의 갈등과 긴장, 혹은 상반된 플롯으로 묘사하고 있다.1) 이는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각 시대의 다양한 지정학적, 사회화적 그리고 신학적 정황들과 모티프를 복합적으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약에서 이에 관한 하나의 통일되고 일관된 목소리를 감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구약본문은 매우 다양한 증언들을 담고 있고 때로는 표면상 모순되고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신학사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언약백성에 속하는 것에 관하여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가 야웨께 연합한 이방인(hwh" y-> la, hw"Ül.NhI ; rk찺' Eh;-!B), 과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yti(yrIb.Bi ~yqyIß zIx]m ; rv<Üa] '~ysiyrIS")l;)에게 동일하게 임할 것(사 56:1-8)과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언어와 민족들(tAn=voLh. ;w > ~yAIß Gh;-lK'-ta,) 가운데서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세워질 것(사 66:18-21)을 기술하고 있다.2)
특별히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모압여인 룻(hY"Übia]AMh; tWr, 1:22; 2:2; 4:5)의 서사는 야웨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모압(신 23:3)의 여인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이미 다문화가정을 형성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기술하고, 그리고 이에 대한 그 어떠한 부정적인 단서도 달고 있지 않다.
또한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토라의 수혼 제도의 범위를 넘어3) 남편을 잃은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한다.
이방인에 대한 포용은 포로후기유다 배타주의에 저항한 세력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4)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본문들이 모두 그 나름대로의 텍스트형성연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최종서술 형태에서는 공통적으로 이방에 대한 배타성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용주의는 야웨가 히브리인들뿐만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인류의 우주적인 하나님이라는 구약의 창조신학과 일치한다(창 1:1).5) 모든 세계는 다 하나님께 속하였다(출 19:5).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만 땅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에돔에게도 주셨다(신2:1-8; 민20:14-21).
또한 하나님은 메마른 박넝쿨의 예표를 통해 이스라엘의 적 니느웨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동일하게 아끼심을 요나에게 교훈하신다(요 4:5-11).
카이른스(Ian Cairns)가 지적한 것과 같이 야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God of Israel)인 동시 열방의 하나님(God of Nations)이시다.6)관용보편주의는 신약에서도 재확인된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야웨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主宰)로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그들과 모든 땅을 다스리시는 통치권을 가지고 계시다(행 17:24).
그러므로 예루살렘 총회에서의 결론은 “그들[이방인들]이 우리[유대인들]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행 15:11)는 포용적인 고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hm'(d"a]h' txoïP.v.mi lKoß, 창 12:3)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옛언약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이방 관계에 있어 구약의 많은 본문들은 부정할 수 없는 배타주의를 시사한다. 이는 특별히 십계명(출20:1-17, 신5:6-21), 언약서(출20:22-23:33), 성결법전(레18-20), 그리고 신명기법전(신12-25)으로 요약될 수 있는 율법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선별된 언약관계를 삶의 정황에서 어떻게 형성하며 지속할 수 있는가를 제의적 정결의식과 도덕적 규례들로 제시하는데 있어 부정한 자들과 이방으로부터의 배타적인 구분과 분리를 분명히 명시한다(출 34:11-16; 레 18:3; 신 7:1-4).7) 예로 신명기 23:1-6은 고자와 모압 사람이 야웨의 총회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계명으로서 이는 이들을 포용하고 있는 이사야서와 룻기의 관용주의와는 피상적으로 상반된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구약에서 이러한 배타주의를 가장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자손(lae(r"f.yI ~[;î, laer"f.yIû-ynE)b.)의 개념을 사마리아를 배제한 유다와 베냐민으로 제한한다(스 1:5; 2:2; 6:16; 느 7:7).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 혈족들 간의 내부적 갈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유다의 정통성을 바빌론-바사-디아스포라 귀환자들에게만 부여함으로 이들을 유배되지 않고 모국에 남아있었던 자들 혹은 이방원주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암-하아레쯔’(#r<a'êh'-~[;, 스 4:4, 그 땅 백성)와 구별한다. 이 귀환자들은 ‘골라’(hl'AG, 유배, 스 1:11; 2:1; 9:4; 느 7:6) 혹은 ‘베네-하골라’(hl'AGh; ynEÜb., 유배자의 자손들, 스 4:1; 8:35)로 언급되는데 이는 바빌론 귀향자들과 모국에 남은 자들 사이의 배타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유다의 머문 자들을 포함하여 이방원주민들과의 협동이나 통혼을 금지하고 또한 파괴함으로 그들을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절교시킨다(스 4:1-4; 9:1-10:44; 느 9:2; 13:23-31).
특별히 느헤미야의 회고록에서 유다 사람들(ydIWhy>)은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도 분명히 차별된 종족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느 4:12; 5:8).8) 그렇다면 구약 안에서의 이러한 이스라엘-이방/유다-사마리아의 배타-관용주의 관계의 갈등적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특별히 에스라-느헤미야서에 기술된 다문화가정의 강제적 해체와 같은 사례로 나타나는 비인도적 배타주의와 야웨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ds,x,, qd,c,, 시 89:14)와의 불일치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다수의 학자들은 이를 편집과정과 직면한 사회-역사적 정황의 투시로 해석한다. 포로후기 성전의 기득권을 중심으로 제사장(P)이 이끄는 베네-하골라(hl'AGh; ynEÜb.)와 그에 저항하는 암-하아레쯔(#r<a'êh'-~[;) 사이에 야기된 경제-정치적 갈등이 제2성전 유대주의의 배타성과 파벌주의를 발생시켰다고 본다.9)
그런가 하면, 이사야-룻기의 관용보편주의는 베네-하골라의 저항사상이 피력된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10) 이러한 사회-역사적 해석에 비해 데이비스(Gordon F. Davies)는 에스라-느헤미야 내러티브의 배타주의적인 요소들을 수사학적 장치(rhetorical devide)로 간주하여 이해한다.
에스라의 분리운동은 느헤미야의 성곽재건과 평행구조를 구성한다. 따라서 유다공동체의 재구성을 위한 에스라의 분리운동을 느헤미야의 성곽을 예시하는 수사학적 은유로, 예를 들어, “유다[에스라]와 예루살렘[느헤미야]의 울타리”(스 9:9)로 설명한다.11)
그런가 하면 키드너(Derek Kidner)는 그의 신학적 접근에서 에스라의 분리운동을 단순히 율법갱신운동으로 해석하고 본문의 사회-역사적 혹은 사상적 갈등에 대한 논쟁을 피해간다.12)
본 논문은 구약의 복합적인 배타주의-관용주의의 많은 논쟁과 질문을 염두에 두고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배타주의 문제를 텍스트의 면밀한 읽기를 통해 재고해 보고자 한다.13) 이는 브루게만(W. Bureggemann)이 주장한 것 같이 “구약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그 자체로 모두 인정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도 안 되며, 우리가 그러한 목소리들 중 하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14)
구약의 본문들은 그 형성 과정에서 특정정황에 따라 다양한 신학적 모티프를 내포하고 있으나 그 다양성을 넘어 동일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최종본문으로 증언한 것이며 따라서 상충되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인 원리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I)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러티브 구성과 플롯을 분석하고, 이어
(II)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나는 배타주의의 신학적 모티프를 살펴봄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I.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러티브 구성과 플롯
에스라-느헤미야서를 하나의 통일된 내러티브로 읽으려는 시도들은 사라 야펫(Sara Japhet)의 텍스트언어학 분석 이후 학계의 주목과 관심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레오폴드 춘츠(Leopold Zunz), 마틴 노트(M. Noth)에 이어 죠셉 블렌킨소프(Joseph Blenkinsopp)15)에 이르는 역대서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동일저작 설에 반하여 야펫은 역대서와 에스라-느헤미야서는, 후자의 전자 인용문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최종문학형태에서 상이한 언어학적 대치(linguistic opposition), 전문적 용어(technical terms), 그리고 문체적 특성(stylistic peculiarities)으로 구분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16)
이러한 연구결과에 이어 윌리엄슨(H. G. M. Williamson)은 그의 역사자료편집 연구를 통해 역대서와 에스라-느헤미야서가 별개의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29개의 특성들(peculiarities)과 반대로 동일 저작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6개의 특성을 분석했다.
그는 역대기의 후대저작 설을 기반으로, 역대하 36:22-23은 에스라 1-2장을 인용한 것이며,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최종형태는 일인칭 서술인 초기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회고록(memoirs)을 기반으로 집필된 에스라(7:1)-느헤미야(11:20; 12:27-13:31)에 후기 에스라 1-6장을 첨가하여 완성됐음을 주장했다.17)
윌리엄슨은 최근 출판된 『Unity and Disunity in Ezra-Nehemiah』에 함께 글을 투고한 14명의 학자들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러한 그의 에스라-느헤미야 편집 설에 동의하고 있음을 밝힌다.18)
에스라-느헤미야서가 역대서와는 별개의 작품이라는 주장에 이어 에스케나지(Tamara C.Eskenazi)는 에스라-느헤미야의 문학적 구조연구를 통해 하나의 통일된 신학-서술적 단위를 제시했다.19)
그녀는 본문의 사분지 일을 차지하는 10개의 명단(list of people)에 주목한다. 이 명단들은 이 책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서술의 통일성, 역대서와의 차별성,20) 그리고 주요 주제를 구성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
특별히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에 중복서술 된 귀환자들의 명단은 에스라 1-6장과 에스라 7장-느헤미야 13장을 하나님의 집(~yhil{a/h'( tyBe, hw")hy>-tyBe)21)의 재건이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수미쌍관(inclusio)을 구성하고 있다.22)
A 목적제시(Potentiality: Objective Defined) 하나님의 집 재건(스 1:1-1:4)
귀환명단 (에스라 2장)
B 실현과정(Process of Actualization) < inclusio (스 1:5-느 7:72)
귀환명단 (느헤미야 7장)
A' 목적달성(Success: Objective Reached) 하나님의 집을 헌당함 (느 8:1-13:31)
역사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거울(mirror image)이나 입증 자료(proof text)의 모음집이라기 보다는 저자에 의해 세밀히 기획되고 편집된 하나의 문학구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물론 고대 헬라서사시와는 달리 구약서사의 저자들은 텍스트를 통해 표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 뒤에 암묵하고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불름(E. Blum)의 연구가 시사 하는바와 같이 구약은 저자(Autor)로서 보다는 야웨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전승자(Tradent)로서의 서술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23) 그러나 저자이건 전승자이건 세일해머가 지적한 것 같이 “서술 뒤에 있는 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
말하건 간에 우리는 그 세계를 본문 자체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본문은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각색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건을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서는 안 된다.”24) 이것은 에스키나지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의미를 텍스트 자체의 서술세계(narrative world)25)에서 찾는 이유이다.
다양한 시대의 복합적 역사자료들로 구성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그 최종적 문학형태에서 “하나님의 집” 즉 성전(스 1-6)과 예루살렘성벽(느 1-12)과 하나님의 말씀(스 7-10; 느 8-10)의 재건과 개혁으로 실현(Actualization)되어가는 언약공동체의 신학적 플롯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키나지의 이러한 에스라-느헤미야서 본문의 교차대구(Chiastic A-B-A‘동심구조)에서 느헤미야의 개혁서술(느 13:4-31)을 A'(목적달성) 구조에 내포시킨 것에 대해 민경진은 개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이야기는 이미 12장에서 완성된 작품임을 주장한다.
느헤미야 12장은 “성전과 성벽뿐만 아니라, 말씀의 개혁을 일구어낸 개혁된 온 백성들이 다 모여 성벽을 봉헌하는 기사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26) 느헤미야는 성벽을 52일 만에 완성한다(느 6:15). 그리고 그 재건에 따른 개혁과 영적갱신을 아닥사스다 왕 20년부터 32년까지 약 12년 동안(주전 445-433년) 주도하고 바사왕궁으로 돌아간다(느 1:1; 5: 14; 13:6).
그러나 그가 바사로 돌아간 기간 동안 유다의 남은 자들은 개혁의 열정을 상실한다. 따라서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가 다시 귀환하여 성전정결(13:4-9), 성역자들의 회복(13:10-14), 안식일 준수(13:15-22), 통혼금지(13:23-27),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언약갱신(13:28-31) 이야기들을 통해 지속적 개혁의 필요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에스라 1장에서 느헤미야 12장까지의 내용을 묶고 있는 개혁의 틀을 중복하고 있는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민경진은 에스라-느헤미야의 구조를 A-개혁 이야기(스 1장-느 12장)와 B-계속 되어야 할 개혁(느 13장)으로 나눈다.27)
니콜라이쉔(Douglas J. E. Nykolaishen)은 에스라-느헤미야서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진 3개의 평행구조 단위(스 1:1-11; 스 5:1-6:14; 느1:1-2:8)들을 다음과 같이 비교분석한다.28)
서술단위 | 하나님의 대변자의 말씀 The Word from God`s Spokesmen | 하나님의 결정적 영향 God`s Decisive Influence | 회복을 향한 단계 The Step Towards Restoration | 도구로서의 바사 왕 The Persian King Becomes a Tool |
스 1:1-11 | 예레미야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1:1) | 야웨께서 하신 말씀(1:1) 야웨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킴(1:1) 야웨께서 귀환자들을 감동시킴(1:5) | 모세와 다윗의 규레대로 회복되는 예루살렘에서의 예배(3:2, 10) | 고레스 |
스 5:1-6:14 | 학개와 스가랴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5:1;6:14) |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심(5:5) 막메다에서 조서가 발견됨(6:2)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전이 완성됨(6:14) | 완성된 성전(6:14) | 다리오 |
느 1:1-2:8 |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1:7-9) |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적절한 때(1;11)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이 느헤미야의 귀환을 허락함(2;4,8) | 성곽의 재건(6:15) | 아닥사스다 |
이들은 각기 하나의 완성된 에피소드 단위를 구성하고 있다. 에스라 1:1-11은 서두로서의 고레스의 조서(1:1-4)와 예변(prolepsis)이라 할 수 있는 칙령의 성취 예고문(1:5-6), 그리고 성전기명들의 복귀를 통한 조서의 성취(1:7-11)라는 결론으로 하나의 서술단위를 완성하고 있다.
에스라5:1-6:14는 수미쌍관을 이루는 학개-스가랴의 프롤로그(5:1)와 에필로그(6:14)로 하나의 단위를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 1:1-2:8은 ‘느헤미야의 귀환’을 요약하고 있는 단위로서 에스라1:1-11과 비교될 수 있다. 이어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요점들을 모든 에피소드 안에서 일관되게 반복하고 있다.
(1)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대변자를 통한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기술 된다,
(2) 하나님은 그 사건결과들의 절대주권자로 묘사 된다,
(3) 모든 에피소드는 이스라엘이 유배의 심판으로부터 회복되어 가는 것으로 결말 된다, 마지막으로
(4) 바사 왕을 하나님의 도구로 소개한다.
에스키나지(하나님의 집의 재건), 민경진(지속적인 개혁), 그리고 니콜라이쉔(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위와 같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러티브 구조분석을 통한 주제구성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재건, 개혁, 회복이라는 그 선택관계(paradigmatic)에 있어 유기적이며 유사한 신학적 의미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포로후기 언약공동체의 주체성 확립에 있어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총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여러 명확하고도 중요한 갈등구조들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예로 야웨이즘(Yahwism)에 있어 왕정을 중심으로 한 메시아종교(messianic religion)에서 토라중심의 율법종교(religion of law)로의 전환갈등;29) 이스라엘의 온전한 구원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로서 이스라엘과 바사와의 갈등(Persian-Favoritism vs. Anti-Persian) 문제;30) 그리고 귀환자들과 그 땅 백성사이의 배타적 대립과 통혼절연 등을 들 수 있다.31)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러티브 플롯은 포로후기 언약백성의 정체성과 선별에 관하여 “그의
백성 된 자”(AMª[;-lK'mi ~k,äb'-ymi( ,스 1:3) 혹은 “남은자”(ra;v', 스 1:4; 3:8; 9:8; 느 1:3; 렘 42:2; 슥 8:6,11-12)들과 이들의 종교적 정체성과 선별을 훼손하고 방해하려는 “대적”(rc;, 스 4:1; 느 4:11)32)과의 갈등구조로 조명될 수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그의 백성 된 자”로 간주되는 “이스라엘 백성”(lae(r"f.yI ~[;î, 스 2:2; 느 7:7)은 역대기와는 달리 사마리아인과 비유다인을 모두 제외한 배타성을 띄고 있다.
이들은 바빌론 지역에서 귀환한 자들로서(hl'AGh;, 스 1:1; 2:1; 4:1; ybiäV.h;me '~yaiB'h;-lk'w, 스 3:8; 느8:17) 유다-베냐민-레위인 족속으로 구성되었고 “그[이] 땅 백성”(#r<a'êh'-~[;, 스 4:4; 9:11; 10:2;10:11; 느 9:24; 10:30-31)과 명백히 분리된다.
“그의 백성 된 자”의 정체는 특별히 본문의 서두(스 1:5)와 중복되는 귀환자 명단(스 2:1-70; 8:1-20; 느 7:5-73)에서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은 귀향한 유다-베냐민 족속, 레위인, 제사장들, 성전의 일꾼들인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 그리고 아삽의 후손들로서 찬양하는 자들이며 유일하게 정당한 이스라엘의 언약공동체로 소개된다.
대적( ר?)으로 묘사되는 자들은 성전재건 이야기 초기에 등장하여 내러티브 전반에서 언급된다. 이들은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스 4:10),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브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스 9: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느 4:7),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느 9:24) 등, 귀환한 유다-베냐민-레위를 제외한 사마리아인을 포함해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나라 백성”(tAc+r"a]h' yMeÞ[;, 스 3:3)으로서 이들은 귀환자들의 성전과 성벽재건을 반대하는 자들(스 4:1-5; 느 4:7),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스 9:1,11), 혹은 모세의 율법에서 야웨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정된 자들이다(느 13:1).
성전과 성곽의 재건과 율법갱신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 확립을 둘러싸고 이들 간의대립, 알력, 갈등, 그리고 절교는 에스라-느헤미야서를 구성하는 주요플롯 안에서 전반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전개된다. 유다와 베냐민의 적들은 성전건축 초기에 귀환자들에게 도움을 제안한다(스4:1).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은 이를 즉시 거부한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스 4:3). 이스라엘의 적들은 자신들이 “앗수르 왕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스 4:2)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에스라는 이들을 “가증한 일을 행하는”(스 9:11; 신 20:16-18)자라고 비난한다, 이는 그 땅의 우상을 섬기는 혼합주의자들임을 암시한다. 열왕기하 17:33-34는 유대인들을 포함한 그 땅 백성들의 영적 종교적 정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곽시공을 비웃는 사마리아인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을 향한 느헤미야의 대답도 이러한 배타주의를 명백히 드러낸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느 2:20).
따라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언약백성의 정체성 확립의 기준을 모세의 율법과 유일신론에 두고 유다-베냐민-레위 중심으로 구성된 귀환자들만이 그 순수성을 상속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유다-베냐민의 적들은 고레스 때부터 다리오 2년까지 성전건축을 중단시켰고(스 4:1-5,24), 아하수에로부터 아닥사스다 왕 시대까지 성벽재건 공사를 방해했다(스 4:6-23). 또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신앙과 행정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통혼을 통한 “가증한 일”(hb'[eAT, 스 9:1, 11)을 행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이방인들과의 결혼이나 성적교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합을 통한 배교를 의미하며 토라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출 34:11-16; 신 7:3-4; 20:10-18). 그러므로 언약백성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이들과의 절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에스라서는 성전완공(스6:15)과 야웨께 번제를 드린데 이어(스 8:35) 이방인과 결혼한 자들의 명단과 통혼의 절연이야기를 기술하고(스 9:1-10:44), 느헤미야서는 성곽완공(느 6:15)과 에스라의 율법낭독(8:1-12)에 이어 이스라엘 자손이 사마리아인과 모든 이방 사람들(rk'nE, 느 9:2)33)로부터 절교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느헤미야 10:28-30은 이 분리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이 두 그룹의 배타적인 분리는 인종-문화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며 신앙적이다. 귀환 공동체는 성전과 성곽과 율법, 따라서 유일신 야웨주의만이 언약백성의 정체성을 확정짓는 것으로 믿었고 통혼한 자들을 포함하여 이를 방해하고 혼합주의를 추종하는 자들과 구별되고 선별되는 것을 신앙의 정결로 여겼다.
구약은 다윗의 계보에 기록된 룻과 함께 믿음의 조상들의 다인종 가정을 포용한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다(창 16:3, 41-45; 출 2:21; 민 12:1; 삼하 3:3). 그러나 이들의 사례에서 이방인들이 “가증한 일”을 행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이사야서 56장 1-12절은 야웨 공동체에 이방인들을 허락하는 동시 율법의 원리를 적용하고 그에 따른 행함, 즉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사 56:4)일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구약이 언약백성의 정체성과 선별의 궁극적 준거로서 혈육이나 민족성, 혹은 단순히 문화적이며 감정적인 요소들을 요구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배타주의를 위한 배타주의는 금물이다. 따라서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묘사된 통혼절연은 이러한 언약신앙의 정체성과 선별이라는 큰 신학적 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본문의 기본 틀을 구성하는 10개의 명단 또한 언약공동체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학적 장치임을 볼 수 있다.
레위인과 찬양하는 자들과 성전을 섬기는 자로 구성된 이 명단들은 예배와 관련된 것으로서 종교적 모티프로 선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복되고 있는 귀환자들의 명단은 단순히 역사적인 자료라기보다는 본문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선별하는 중요한 수사학적 틀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바 있듯이 실제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이야기는 느헤미야 12장에서 완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종적 내러티브 안에서 느헤미야 13장의 기능은 무엇일까? 물론 이 마지막 장을 개혁지속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장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느헤미야 13장이 모세의 율법을 낭독한 후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는 사건(느 13:1-3)을 서문에 기술하고 이어 성전과 성역자와 안식일을 선별한 후 다시금 분리를 암시하는 통혼에 대한 저주와 금지(느 13:23-31)로 결론을 맺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에스라 1:1-느헤미야 12:47의 주요 플롯인 “정체성 선별”을 반복하는 것으로서 귀환한 유다 공동체가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 나라”(출19:6)를 확립하는데 있어 신앙적 타협의 모든 가능성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며 이에 따른 구별과 분리의 중요성을 재확인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제아래 우리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러티브 구조를 “언약백성의 정체성 선별”이라는 플롯으로 착상해 볼 수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는 그 선별적 귀환명단을 기반으로 정체성 확립에 따른 제의적 정결의 재건(성전과 성벽 재건, 율법갱신)과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과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철저한 분리를 중복하여 일관되게 기술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집과 개혁 모티프를 포함해 보다 더 근본적이고 큰 틀에서 포로후기 유다공동체의 정체성을 선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우리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 구조를 구성해 볼 수 있다.
언약백성의 정체성 선별
A | 성전을 통한 언약 백성의 정체성 (스 1:1-6:22) | |
정체성 확립 | 스룹바벨과 언약백성 귀환의 일정 | 스 1:1-11 |
언약백성의 명단을 통한 정체성 | 스 2;1-70 | |
대적들과 갈등(성전건축방해) | 스 3:1-4:23 | |
언약백성의 선별과 성전봉헌 | 스 5;1-6:22 | |
율법을 통한 언약백성의 정체성(7;1-10:44) | ||
에스라와 언약백성 귀환의 정황 | 스 7:1-28 | |
언약백성의 명단을 통한 정체성 | 스 8:1-33 | |
대적들과의 갈등 | 스 9:1-15 | |
언약백성의 선별과 통혼 절연 | 스 10:1-44 | |
성벽을 통한 언약백성의 정체성(느 1;1-7:73) | ||
느헤미야와 언약백성 귀환의 정황 | 느 1;1-2:8 | |
대적들과의 갈등(성곽재건방해) | 느 2:9-6;13 | |
언약백성의 선별과 성곽완공 | 느 6;14-7:4 | |
언약백성의 명단 | 느 7:5-73 | |
에스라-느헤미야의 언약갱신과 정체성 확립(느 8:1-12:47) | ||
에스라의 율법낭독 | 느 8:1-18 | |
대적들과의 절교와 언약체결 | 느 9:1-38 | |
언약에 인봉한 자들의 명단을 통한 정체성 | 느 10:1-27 | |
언약백성의 선별과 이방인들과의 절교 | 느 10:28-36 | |
언약갱신과 정체성과 선별의 확립 | 느 12;1-47 | |
B 정체성 재확인 | 모세의 책 낭독과 섞인 무리들과의 분리 | 느 13;1-3 |
성전의 정결 | 13:4-9 | |
성역자들의 회복 | 13;10-14 | |
안식일 구별 | 13:15-22 | |
언약백성의 정체성재확인(통혼문제) | 13:23-27 |
포로후기 유다 공동체는 귀환과 더불어 그 땅의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긴 세월의 문화적 공백과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유배지에서 보수적으로 굳어진 토라중심의 종교적 정체성에 있어 지역민들과의 협력과 공존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바빌론으로부터의 귀환을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의 성취(스 1:1)로 확신했다.
이는 동 시대의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재확인된다(스 5:1; 6:14).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그 땅에서 토라 중심의 언약공동체를 정착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의 위기와 확립에 있어 배타적인 선별과 분리를 반대세력들과 대립하며 과감하게 집행한다. 다음은 이러한 정체성 선별에 있어 특별히 사마리아-이방인들과의 절교와 통혼의 절연을 기술하고 있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주요 신학적 틀은 무엇인지를 살피고 관련된 배타주의에 대한 문제를 재고해 보려고 한다.
II.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나는 배타주의의 신학적 모티프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나는 포로후기 배타주의-보편주의(particularism – universalism) 의 갈등과 긴장 모티프에 관하여 다양한 역사자료편집 견해들이 제시 되어 왔다.34) 가장 고전적인 것으로서, 블랜크(Sheldon H. Blank)는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귀환자들과 본토인들과의 갈등시초는 이미 성전재건이 완성된 시기로서 아람어 부분인 에스라 4:8-23에서 전격적으로 시작되고 그 갈등은 신명기 20:15-18에서 묘사된 배타주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았다.35)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바빌론으로 유배되고 유다에 남은 자들 중 상당의 수는 모압, 암몬, 에돔, 그리고 모든 지방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그달리야를 유다의 지도자로 세웠다는 소식과 함께 그들은 돌아와 다시금 정착하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 유다 사람들은 에돔과 같은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포함한 공존을 포용했다(렘 40:11-12; 사 56:1-12; 신 20:1-14).
그러나 그달리야가 살해당하고(왕하 25:22-25) 아하수에로의 통치가 시작된 약 기원전 485년 이후 이웃의 도시국가들이 예루살렘을 침범한 계기로 성전은 이미 완공되었으나 귀환한 유다와 이방인들과의 배타주의적 대립이 시작되었다.
블랜크는 이러한 착상을 기반으로 에스라 4장에서 느헤미야 13장까지의 배타주의를 설명한다.36)
그러나 이러한 전통역사비평학적 해석은 본문의 최종형태에서 묘사되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 또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가 후기편집으로 알려진 에스라 1-6장에서 보다는 전기편집인 에스라 7장-느헤미야 13장에서 보다 더 총체적이며 강도 높게 묘사되고 있음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에스라-느헤미야서는 본토인들과의 갈등이 아하수에로의 통치기간 초기에 시작했다기보다는 이미 고레스 이후로부터 다리오 2년까지 지속됐음을 밝히고 있다(스 4:1-5, 24).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최종본문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내용과 구조분석에서 우리는 배타주의의 신학적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에스라-느헤미야서는 본문의 사건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전개됨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본문의 화자는 고레스가 칙령을 내린 정치적 행위는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시킨 것이며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신학적 모티프로 설명한다(스 1:1).
이어 하나님은 유다의 지도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스 1:5). 여기서 “감동시키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이르( רי ??)는 히필-사역능동형이다. 그 감동의 주체는 하나님이신 것이
다. 귀환공동체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학 1:2)며 오직 “각자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다”(학 1:9). 이러한 자들을 움직인 것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이다. 그러므로 성전완공과 에스라의 개혁은 하나님께서 바사 왕 다리오의 마음을 이스라엘에게로 돌리시고(스 6:22)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에 가능했다(스 7:27).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함에 있어 “고레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대했던 이 세상에서의 제
일 마지막 사람이었을 것이다.”37) 이는 이스라엘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이며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각시킨다.
멕콘빌(J. Gordon McConville)은 이렇게 바사 왕들과 같은 이방 지도자들의 마음을 주관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이야기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정치적 열망이 바사로부터의 자유이며 이는 반제국주의적인 출애굽기와 평행을 이룬다고 주장한다.38) 에스라-느헤미야
서는 바빌론으로부터의 귀환을 애급으로부터의 출애굽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스라엘은 과거 가나안을 떠나 애급에 정착하여 종노릇하다 가나안으로 돌아간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함락 이후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가 되었던 유다백성들의 귀환을 유사하게 기술한다.
둘째, 출애굽의 상황은 우연이아니라 이미 예고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사백년 동안 괴롭힘을 받은 이후 그곳에서 나오게 될 것을 예고 하셨다(창 15:13; 출 12:41, 430년).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는 칠십년 동안의 바빌론 포로생활을 예고했다(렘 25:11-12; 29:10). 따라서 유다공동체의 귀환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묘사된다(스1:1).
셋째, 출애굽 시기 이스라엘은 바로로부터 많은 부를 얻어서 나왔다. 귀환자들 역시 바빌론을 떠날 때 바사의 왕들로부터 많은 부를 받아서 나왔다.
넷째, 이스라엘은 광야로 나아가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려야 하며 성막을 지었다(출 5:1-3). 바빌론 귀환자들도 제일 먼저 “모세의 율법”과 “기록된 규례대로”(스 3:2-4)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드리고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였다.
이에 로시엘(H. L. Rossier)은 에스라 1-2장을 “첫 번째 출애굽” 그리고 8장을 “두 번째 출애굽”이라고 말한다.39)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구성은 출애굽을 넘어 오경전체의 구조를 여러 크고 작은 평행단위에
서 반영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토라를 중심으로 집행된다.
모든 절기와 예배는 모세의 율법과 기록된 규례대로(스 3:1-4) 드려져야 하며 백성들의 통혼 문제 역시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해석함으로 해결한다(느 8-9). 이는 느헤미야의 마지막 개혁운동에서도 반복된다(느 13:1).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부자가 되어 가나안으로 귀환한 유다공동체는 “아브라함의 애급으로부터의 귀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창 12:10-20). 또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구조에 있어 언약(스 10:3; 느 9:8, 32, 38; 13:29)은 창세기-출애굽기-민수기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서술패턴을 반복한다.
창세기 | 출애굽기 | 민수기 | 에스라-느헤미야 |
인류의 타락 | 애굽에서의 노예 | 광야에서의 배역 | 다윗왕조의 폐망 |
노아(남은 자)의 구속 | 유월절 구속 | 광야신세대의 구속 | 남은 자들의 귀환 |
아브라함의 언약 | 시내산 언약 | 모압에서의 언약갱신 | 하나님의 언약성취 |
이러한 서술구조와 관련하여 느헤미야 13장은 안식일 기술에 있어 오경에서 반복되는 가장 일관된 패턴을 보여준다.
창세기 | 출애굽기 | 레위기 | 민수기 | 느헤미야 | |
주제 | 우주만물 창조 (창 1ㅣ1-2:3) | 성막건축 규레들 (출 25:1-31:11) | 백성들의 성결규례 (레 18:1-24:23) | 약속의 땅에서의 제의 (민 15:1-31) | 백성과 성전과 에배의 정결(유다공동체 의 정체성 선별) (느 13:4-14) |
안식일 | 거룩한 안식일 (창 2:3) | 안식일 표징 (출 21:12-17) | 안식년-희년-인식일 (레 25:1-26) | 안식일 위법에 대한 처벌 (민 15:32-36) | 안식일의 회복 (느 13;15-22) |
부정 | 아담과 하와의 타락 (창 3:1-14) | 금송아지 숭배 (출 32:1-35) | 불순종에 대한 저주 (레 26:14-39) | 고라의 반역 (민 16:1-18:32) | 통혼의 문제 (느 3:23-27) |
언약 | 구속언약 (창 3:15) | 언약갱신 (출 33:1-35:3) | 족장들과의 언약 (레 26:40-42) | 붉은 암송아지 (민 19:1-22) |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의 언약 갱신 (느 13:27-31) |
위와 같은 오경서술구조와의 평행구성에서 우리는 에스라-느헤미야서가 유다 언약공동체의 정체성을 토라에서 찾고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프리드(Lisbeth S. Fried)는 ‘에스라 7-느헤미야 13’의 저자가 에스겔서에서 그려진 제사장이 다스리는 미래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학사상(겔21:31-32; 44:24)을 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0)
먼저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 명단에 나열된 그룹은 에스겔서에서 부각되고 있는 그룹들과 일치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해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 그리고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느 7:7, 39, 43, 44, 45,46, 57)이다. 이는 에스겔이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리드하게 될 것(겔 44:15)과 레위 사람들이 성전관리와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로 봉사하게 될 것(겔 44:11/느 13:22; 겔8:22, 30, 33/느 10:33; 13:13; 겔 40:44/느 7:44; 12:8, 24, 27)을 예고한 것에 대한 성취로 보인다.
특별히 에스겔은 “그 땅의 백성들”(겔 22:29-31)과 “이스라엘 집의 장로들”(겔 8:11-12, 40-48)과 선지자들(겔 13:9)을 비난하며 회복된 이스라엘에서 그들의 자리가 없을 것을 예고하는데 이들은 모두 에스라-느헤미야서 명단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는 거룩함과 세속으로 구분되는 제사장 중심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선별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P 문서의 정결사상을 투시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에스겔서에서 언급한 “성(rdeG")을 쌓으며 무너진 곳(#r,P,)을 막을 사람”(겔 22:30)으로서 토라를 갱신하고 성전과 성곽을 재건하여 유다언약공동체를 그 땅의 백성들로부터 분리시킨다.
에스라-느헤미야서와 토라 그리고 그 토라의 제의(P 문서)에 기반을 둔 에스겔서와의 평행서술구조는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땅 백성들과의 배타적 관계와 통혼절연의 신학적 모티프가 토라의 제사장적인 정결-부정 사상에서 도래되었음을 추측케 한다.
창세기의 족장이야기(창 12-50장)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데라의 가계로부터 아내를 삼은 반면 에서는 헷 족속의 딸들을 그의 배우자로 맞이함으로 할례를 받은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언약백성에서 제외되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창 26:34-35; 27:46-28:2).
이 또한 에스라-느헤미야서가 이야기하고 있는 통혼문제의 신학적 모티프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포로후기 유다공동체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한 선별된 그룹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그들은 에스겔이 예고한 제사장 나라를 꿈꾸었고, 토라가 제시한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 나라”(출 19:6)를 향해 예배와 정결(성전과 제의) 그리고 세속으로부터의 구별(성곽)된 분리를 추구했다.
나가는 말
출애굽 하여 시내 산에 이른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주위와 분리된 경계를 정해야 했다(출19:12). 그런데 그 이전에 그들은 자신들을 정결케 해야 했다(출 19:10-11), 그리고 경계를 정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율법(십계명)을 부여하시고 또 낭독케 하신다(출 24:3).
이와 유사한 3부적 구조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통혼절연을 통한 정결(스 2), 성곽재건을 통한 경계((느 3), 그리고 율법낭독(느 8)으로 포로후기 유다공동체의 정체성을 출애굽 언약백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왜 다문화 가정의 파괴와 같은 극적인 배타적 행동을 취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과거 애급으로부터 출애굽 한 조상들이 우상숭배의 가증한 일로 광야에서 사십년을 방황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때로부터 오늘까지”(스 9:7) 바빌론 유배와 같은 비참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언약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야웨 하나님만이 다스리시는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 나라로 거듭나야만 했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유다공동체와 통혼한 그 땅의 배우자들을 가증한 일의 주요원인으로 명백히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해결은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통혼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에스라는 급진적이고 과격적인 방식으로 해체를 집행했다(스 9:10-11).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느헤미야가 바빌론으로부터 두 번째로 귀환 했을 때(느 13:6) 그는 이방여인과 그의 사역을 반대하여 적으로 여겼던 유다내부에 속한 여인들과의 결혼이 대제사장 집안을 포함해 유다공동체 내에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정착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느 13:28).
이에 느헤미야는 그 가정들을 해체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통혼을 방지하기 위한 서약을 강요하는 것으로 문제를 마무리한다.41) 왜냐하면 가정의 파괴가 그동안 적지 않은 혹은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유발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쩠든 이러한 해체나 금지 그 어느 한쪽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타적 분리는 공동체의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을 동반했을 것이다.
우리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를 단순히 상황윤리나 공리주의 혹은 정언명령법으로 이해해서는 아닐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정경 안에서 보다 더 복합적이며 총괄적인 분석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는 규범적이기 보다는 서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포로후기 언약공동체가 그들의 신앙의 순수성과 구별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실제로 그 얼마나 극적인 희생을 자처하고 고투하였는지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온전한 개혁이 아니었을지라도, 포로후기 유다 언약공동체의 배타성은 다원주의 사회에 너무나도 편하게 혼합되어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과연 그 정체성과 구별된 삶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한층 더 심중히 고민케 한다.
각 주
1) 배타주의(exclusiveness)와 관용주의(tolerance, inclusiveness)는 문맥과 정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방과 이스라엘 지파들과의 대내외 관계 속에서의 양립(분리)과 포용을 의미한다. 영문 Inclusiveness는 문맥에 따라 포용, 관용, 혹은 보편주의로 번역될 수 있다. Jacob Katz, Exclusiveness and Tolerance Studies in Jewish-Gentile Relations in Medieval and Modern Times (Springfield, N.J.: Behrman House Pub., 1995) 참고.
2) 이사야서 66장 21절에 “그들 가운데”의 הם?־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18절의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필자는 66장 21절의 ם?ה־을 18절의 ם?ה־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이는 66:18-24를 이사야서 56-66장의 요약-결론으로 해석할 때 가능하다. 이방인을 언약관계에 포함시키는 이사야서의 관용보편주의는 제1이사야서(14:2)와 제2이사야서(44:5)에도 암시되어 있다.
3) 보아스의 행동은 고대근동과 구약에서의 역사적인 수혼 제도를 초월한다. 이는 본문이 다윗의 정통성과 언약을 부각함에 있어 다윗 가계에 포함된 모압 여인 룻의 정당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Donald A. Legget, The Levirate and Goel Institutions in Old Testament (Cherry Hill, N.J.: Mack Pub. Company, 1974), 292-293 참고.
4) 이사야서와 룻기의 연대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왕조시대로부터 포로후기 3세기까지 다양한 가설들이 있다. 특별히 본 논문은 제3이사야서와 룻기의 포로후기 편집 설에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최종형태에서의 신학적 메시지에 초점을 두었다.
Ronald E. Clemens, "The Unity of the Book of Isaiah," Interpretation 36:2 (1982), 117-129; Anna L. Grant-Henderson, Inclusive Voices in Post-Exilic Judah (Minnesota: The Order of St. Benedict, 2002), 1-2 참고.
5)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을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대하 2:12)로 불렀다. 보편주의는 이러한 구약의 창조신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한영, 『구약 어떻게 읽을 것인가?』(서울: 성서유니온, 2004), 46-52 참고.
6) Ian Cairns, Word and Presence, Deuteronomy. ITC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92), 39.
7) 로벗슨은 성경의 언약들을 아담의 언약(창 1:28-30; 3:14-15), 노아의 언약(창 6:18), 아브라함의 언약(창 15:18), 이스라엘의 언약(출 24:8), 다윗의 언약(시 89:3), 그리고 새언약 (렘 31:31; 눅 22:20)으로 정리하여 이들 사이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공시적-신학적 접근에서 율법은 전후 언약들과 보편적이며 원리적인 연속성을 갖는다. 그러나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율법은 혈족(kinship) 중심의 언약개념으로 양립된 국가주의(statism)와 파벌주의(sectarianism)의 출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스 9-10; 느 5:1-13; 느 10:1-40). 이는 제2성전 유대주의의 정황을 반영한 것으로 주장된다.
O. Palmer Robertson, The Christ of the Covenants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80); Richard J. Bautch, "The Function of Covenant Across Ezra-Nehemiah," In Mark J. Boda & Paul L. Redditt, Unity and Disunity in Ezra-Nehemiah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08), 8-24 참고.
8) 느헤미야의 회고록은 유다의 적은 “외부”(without)와 “내부”(within)로 구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다와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분하여, ‘이스라엘’ 외에는 다 적이며, 유다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도 느헤미야의 사역을 반대하는 자들은 다 적으로 묘사된다. Knoppers는 ‘도비야’와 ‘산발랏’을 내부의 적으로 보고 이들은 유다와 에브라임과 혈연을 지닌 자들 이라고 주장한다. Gary N. Knoppers, "Nehemiah and Sanballat: The Enemy Without or Within?" in Oded Lipschits & Al., Judah and the Judeans in the Fourth Century B.C.E. (Winona Lake, Indiana: Eisenbrauns, 2007), 305-331 참고.
9) Joseph Blenkinsopp, Ezra-Nehemiah, OTL (Philadelphia, P.A.: Westminster Press, 1988), 69; Peter R. Bedford, "Diaspora: Homeland Relations in Ezra-Nehemiah," Vetus Testamentum LII (2002), 147-165 참고.
10) 물론 이러한 가설은 제3이사야서와 룻기의 저작연대를 제2성전 시기로 전제한 것이다. 이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로 룻기의 연대에 대한 논의는 9세기(E. F. Campbell)부터 3세기(M. Goulder)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Grant-Henderson은 이러한 연대의 논쟁과는 상관없이 룻기의 관용주의는 에스라-느헤미야의 배타주의를 반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Inclusive Voices in Post-Exilic Judah (2002), 85-96.
11) Gordon F. Davies, Ezra & Nehemiah, Berit Olam (Collegeville, Mennesota: Michael Glazier Book, 1999), 57.
12) Derek Kidner, Ezra and Nehemiah, TOTC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79), 76-77.
13) 면밀한 읽기(close reading)라는 용어는 오래전부터 문학에서 사용되어 왔으나 문학비평가이며 수사학비평가인 I. A. Richards에 의해 보다 더 전문적인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정의와 적용은 C. K. Ogden and I. A. Richards, Meaning of Meaning (Orlando, Fl: Harcourt Brace Jovanovich, Pub., 1989)과 이한영, “구약텍스트의 면밀한 읽기,” 제3회 성서학학술마당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2009), 4-25 참고.
14) W. 브루그만 공저, 차준희 옮김,『구약신학과의 만남』2판 개정증보판, (서울: 프리칭아카데미, 2010), 58.
15) Blenkinsopp (2002), 47-54.
16) 야펫에 의하면 역대서는 보다 더 일관된 언어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로, (1) 1인칭 공동단수 연계형 미완료의 완전형태 사용, 예: 대하 18:6 ה?????; (2) 긴 연계형 미완료의 절대부재; (3) 긴 야웨 접미사( יהו ־)를 가진 이름, 예: הו ???? (대하11:2). 에스라에는 짧은 야웨 접미사가 사용된다, 예: ה???, ה???ה? (스 2:2). 전체적으로 에스라-느헤미야는 역대서에 비해 후기성서히브리어(Late Biblical Hebrew, LBH)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ra Japhet, "The Supposed Common Authorship of Chronicle, Ezra, Nehemiah, Investigated Anew," VT 18 (1968), 330-371. 이에 관하여 Robert Polzin은 오히려 역대서가 LBH를 더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Mark A. Throntveit, "Linguistic Analysis and the Question of Authorship in Chronicles, Ezra and Nehemiah," VT XXXII, 2 (1982), 204.
17) H. G. M. Williamson, Israel in the Books of Chronicl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1-70. 에스라 1-2장은 역대하 마지막 부분인 36:11-23에서 묘사되고 있는 유다의 황폐함을 정반대로 회복시키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역대하 36:11-23 에스라 1-2
시드기야 왕 시대 때 유다의 몰락(대하 36:11-12) 유다총독 세스바살 시대 때 유다의 회복(스 1:8)
바빌론 왕(느브갓네살)을 통해 예루살렘이 바사 고레스 왕을 통해 예루살렘이 재건됨
함락함(대하 36:13-17) (스 1:2-4)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이 탈취되고 성벽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했던 보물들을 돌려줌
무너짐(대하 36:18-19) (스 1:7-11)
남은 자들이 노예로 끌려감(대하 36:20) 남은 자들이 귀환함(스 2:1-7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바사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킴(대하 36:21-23)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킴(스 1:1)
18) H. G. M. Williamson, "More Unity than Diversity" In Mark J. Boda & Paul L. Redditt, Unity and Disunity in
Ezra-Nehemiah (2008), 329.
19) Tamara Cohen Eskenazi, “The Structure of Ezra-Nehemiah and the Integrity of the Book," JBL 107/4 (1988), 641-656.
20) 역대기의 명단은 북이스라엘을 포함한 12지파를 소개한다. 그러나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이스라엘(스 1:5)은 유다와 베냐민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을 의미한다.
21) ‘하나님의 집’(~yhli a{ h/ ( ' tyBe, hw")hy>-tyB)은 포로후기에 ‘성전’을 대체하는 어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단어의 인용이 문서전체의 포로후기편집 설을 인증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Yehuda Radday, "Vocabulary richness in post-exilic prophetic books," ZAW 92:3 (1980), 333-346 참고.
22) 에스키나지는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의 명단이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1) 명단의 이름들이 이야기 흐름 속에 역할들을 감당함; (2) 과거(1차 귀환)와 현재(2-3차 귀환)를 연결함; (3) "some heads"(스 2:68)에서 “rest of the people"(느 7:71)로의 묘사는 공동체의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함을 나타냄; (4) 에스라 2장은 재단과 제의의 서문이고 느헤미야 7장은 토라의 낭독의 서문이다. 이는 제의와 말씀의 등가를 암시한다. Eskenazi (1988), 8-10.
23) Erhard Blum, “Das Alte Testament - Ein Geschichtsbuch?" Beiträge des Symposiums Das Alte Testament und die Kultur der Modernes anlässlich des 100. Geburtstags Gerhard von Rads (1901-1971), Heildelberg, 18-21 Oktober 2001 (Monograph).
24) 죤 H. 세일해머, 김동진 역. 『모세오경』(상), (서울: 새순출판사, 1994), 50.
25) 에스라-느헤미야의 서술세계에서 우리는 역사적 지리(historical geography)보다는 지리의 역사(history of geography), 즉 지리적 이데올로기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스라 4:7-23(아닥사스다)의 자리는 연대적으로 4:1-5(다리오)와 4:24(다리오) 사이에 있는 것이 불일치하다. 그러나 에스라-느헤미야에서의 서술적구성에서 이러한 삽입은 전략적이다. 고레스 때부터 다리오 2년까지의 성전건축 중단을 기술하다 중간에 훗날 아닥사스다 왕 시대 때 성벽재건 공사를 방해한 이야기를 언급하여 “방해”를 부각시킨 후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온다. 특별히 4:7-23에서 반복되는 “강 건너편”(hr"Þ hn]: -rb) [: ] ,스 4:10, 11, 16, 17, 20)은 이러한 서술세계 안에서 실제지리라기 보다는 바사제국의 통치를 부각시키는 ‘지리의 역사’를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Thomas B. Dozeman, "Geography and History in Herodotus and in Ezra-Nehemiah," JBL 122/3 (2003), 449-466.
26) 민경진은 느헤미야 1:1(`hr(y" Bhi ; !v:ïWvB. ytyi yIhß ' ynaIï ]w: ~yrIfê [. , tnv:å . 'Îwylse K. iÐ 퓑lse K. iÀ-vdx< bo) . yhiÛy>w:) 마소라역에 ‘아닥사스다’의 이름이 부재한 것을 주목한다. 이 서두에 그 누구의 이십년임을 밝히지 않고 단순히 ‘이십년’이라고 기술한 것은 느헤미야 1:1이 새로운 책의 시작이 아니고 아닥사스다 왕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에스라 7장의 연속 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 에스키나지의 문학구성과 언어학적 분석 그리고 느헤미야의 회고록(느 13:4-23) 중심으로 레위 저작설의 가능성, “하나님의 집”보다는 “개혁”의 주제에 초점을 두는 등, 에스라-느헤미야의 통일성과 주제를 총괄적으로 분석한다.
Kyung-Jin Min, "Nehemiah without Ezra?" In Unity and Disunity in Ezra-Nehemiah (2008), 160-175; 민경진,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문학적 구조분석,” 『에스라-느헤미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HOW 주석 14, (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09), 43.
27) Ibid, 43.
28) Douglas J. E. Nykolaishen, "The Restoration of Israel by God's Word in Three Episodes from Ezra-Nehemiah," In Unity and Disunity in Ezra-Nehemiah (2008), 176-199.
29) Dozeman (2003), 405.
30) 이스라엘의 귀환에는 기쁨과 울음(스 3:11-13)이 공존한다. 이는 예언자들이 말한 온전한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귀환한 자들의 죄는 심각하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스 9:9). 그런데도 그들은 바사를 의존한다. 바사의 왕들은 다만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스 4:6-23). 그러므로 본문은 그들을 부정적으로 암시한다(스 4:6-23; 6:22; 느9:32; 9:36). 통혼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스 9:7; 느 13).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성취된 예언과 아직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예언의 갈등을 이스라엘-바사 그리고 통혼의 갈등구조로 묘사하고 있다. J. Gordon McConville, "Ezra-Nehemiah and the Fulfillment of Prophecy," VT XXXVI, 2 (1986), 205-225 참고.
31) Henderson (2002); Bedford (2002) 참고.
32) 이 “대적”은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귀환자들과 갈등을 겪는 모든 자들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스 3:3; 4:4; 9:1-2, 11; 10:2, 11; 느 9:24, 30; 10:31-32). 이들은 앗수르에 의해 제국에 속한 여러 지방에서 이주하여 사마리아로부터 내려 온 자들일 것이다(스 4:10; 느 4:2). Mervin Breneman, Ezra Nehemiah Esther, The New Amrican Commentary Vol. 10 (Grand Rapids: Boradman & Homan Pub., 1993), 96-97 참고.
33) 네카르(rk'nE)는 포로후기 용어로 여겨지며 에스라-느헤미야에서는 배타적으로 암시된다. 이는 에스겔서(44장), 성결법전(레 21:21; 22:10ff), 에스라서(10:1ff), 느헤미야서(13:23ff)에서 볼 수 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호세아서 그리고 오경에서는 보다 다 포용적으로 구르( גוּר ), 투쉐브( ב? וּתּ ), 쭈르( צוּר ), 혹은 이방인 보다는 열방인 고임( ם? וֹגּ )으로 묘사된다. Henderson (2002), 9-11 참고.
34) 예로 헨데르손은 포로후기 배타주의에 저항하는 자들이 이사야서 56:1-12를 편집했다고 본다. Henderson (2002),
69-83.
35) Sheldon H. Blank, "Studies in Post-Exilic Universalism," Hebrew Union College Annual 11 (1936), 159-191.
36) Ibid., 190-191. 블랜크에 의하면 학개와 스가랴는 이 갈등이 시작하기 이전의 사람들로서 통혼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미 갈등이 시작된 후기에 사역한 말라기는 유대인들 사이에 이혼을 금지하면서 동시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금지한다(말 2:11).
37) F. Wayne Mac Leod, Ezra, Nehemiah and Esther (Waynesboro, G.A.: Authentic Media, 2004), 8.
38) J. Gordon McConville (1986), 207-208.
39) H. L. Rossier, Ezra-Nehemiah and Esther (Barbados, W.I.: Believers' Bookshelf, 2003)
40) Lisbeth S. Fried, "Who Wrote Ezra-Nehemiah and Why Dlid They?" In Unity and Disunity in Ezra-Nehemiah (2008),75-97.
41) 에스라에 비해 느헤미야의 대응이 보다 더 온화하고 유연했던 것에 대해 이를 에스라의 후기편집 설의 증거로 논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는 에스라의 개혁이 온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본문의 최종적 서술의 시각에서, 모든 개혁이란 완전할 수 없으며 에스라의 과격한 통혼절연이 많은 후유증을 낳았고 이에 느헤미야는 보다 더 포용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Derek Kidner, Ezra and Nehemiah, TOTC 12 (Downers Grove, I.L.: IVP Press, 1979), 168-169 참조.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 문제에 대한 재고”에 대한 논평
논 평 김창대 (안양대학교/구약신학)
I. 들어가는 말
논문에서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서에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등장하는 배타주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들을 제시한다. 한 예로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서 당시 배타주의와 관용주의라는 두 세력들이 존재했다는 역사 비평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하지만 발표자는 그런 통시적 접근방법 보다 공시적인 본문 읽기를 통해서 배타주의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려고 시도한다.
이를 위해 먼저 에스라-느헤미야를 하나의 통일적 내러티브 본문으로 전제하고 내러티브의 중요요소인 플롯에 초점을 맞추어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의미의 흐름이 어떻게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되는지를 논의한다.
최종 본문으로서 에스라-느헤미야의 정경성을 이야기할 때 거기서 어떤 통일적 구조를 찾을 수 있는지는 뜨거운 감자이다.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의 플롯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기 전에 먼저 구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 에스케나지(1988년)와 민경진 박사(2008년), 그리고 니콜라이쉔(2008년)의 주장들을 짧게 소개한다. 그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에스키나지(하나님의 집의 재건), 민경진(지속적인 개혁), 그리고 니콜라이쉔(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위와 같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내러티브 구조분석을 통한 주제구성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재건, 개혁, 회복이라는 그 선택관계(paradigmatic)에 있어 유기적이며 유사한 신학적 의미를 공유한다.”
하지만 이들의 구조분석의 약점은 에스라-느헤미야서 안에 여러 갈등들을 간과한다는 것에 있다고 발표자는 지적한다. 특별히 대적자들의 언급과 잡혼 금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배타주의의 갈등을 제대로 무게 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의 플롯은 배타적인 대립관계라는 관점에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난 배타적 대립관계들을 설명한다(하지만 여기서 논평자는 논문 전개에 있어서 배타적 대립관계를 이미 중요한 구성 축으로 전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발표자의 말대로 에스라-느헤미야서 안에는 배타적 대립 외에도 왕정 중심의 메시야 종교에서 율법 종교로의 전환갈등과 같은 여러 갈등요인들이 있는데, 이런 갈등들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고 꼭 배타적 대립관계의 갈등만을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발표자는 배타적 대립관계를 에스라-느헤미야서의 플롯의 핵심 열쇠로 이해했기 때문에 본문 안에서 배타적 대립관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대적자들의 정체를 분석하면서 발표자는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베냐민-레위인들로 정의되었고, 그 외에는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다는 양자 구도를 주장한다(스 4:2; 느 2:20).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 심지어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유다 땅에 있었던 사람들도 포함된다. 또한 이들과의 잡혼을 금지함으로써 배타적 특성은 더욱 절정에 이른다(스 9:1,11; 느 9:2; 느 13장 참조).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적 특성은 “인종-문화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며 신앙적”이라는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이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플롯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한 마디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플롯은 언약백성의 선별과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이야기 전개에서 반복됨으로써 정체성 선별이라는 차원에서 배타적인 선별과 분리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성은 신앙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목적이라는 발표자의 주장을 다시 뒷받침 한다.
이런 결론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플롯뿐만 아니라 신학적 모티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사실 발표자가 사용하는 신학적 모티프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했다).
신학적 모티프에 대한 논의에서 발표자는 다시 구성의 문제를 언급한다. 그래서 에스라-느헤미야서 제 2의 출애굽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구성 면에서 모세오경의 패턴들을 따르는 여러 본문들이 있음에 주목한다. 모세오경과 비슷한 언어적 패턴(verbal correspondence)은 “유다 언약공동체의 정체성을 토라”에서 찾고 있다는 증거로 본다.
더 나아가 프리드(2008년)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제사장 문서에 기초한, 제사장이 다스리는 미래 공동체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찰을 통해서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 요소는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의 나라를 향한 구별에 있음을 다시 강조한다.
II. 의문점
이제 발표자의 글과 관련해서 의문점들을 논문의 논지와 전체적 흐름에 대한 의문점, 그리고 세부사항에 대한 의문점으로 나누어 제시하겠다. 하지만 이런 의문점 제시는 발표자의 글을 폄훼하기 위함이 아니라 논문의 주장을 더욱 세련화시키고 이해를 돕기 위함임을 밝힌다.
1. 논문의 논지와 전체적 흐름
첫째, 논문에서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 문제가 인종적-문화적 배타성이 아니라 신앙에 있음을 주장했다. 이론 논지와 관련해서 이미 스 6:21에서 신앙적으로 전향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올 수 있었음을 말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성은 인종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논문의 가치는 구조적으로 종교적 배타성임을 더욱 증거하는 플롯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발표자의 내용은 매우 단편적이고 거의 한 페이지에 그치는 점은 무엇인가?
둘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배타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나는 다른 갈등들을 외면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플롯도 배타적 갈등에 틀에서 무조건 보는 듯한 형국이다. 이미 자신의 전제(presupposition)를 품고 플롯을 정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또한 내러티브의 플롯은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 매우 귀중한 해석적 힌트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언약백성의 선별과 정체성이 전체 이야기 흐름 속에서 나타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 전개 속에서 그런 것들이 나오는지 주위문맥과의 상호읽기를 통해 파헤쳐 진정으로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그런 해석적 작업 없이 언약백성 선별과 정체성 주제가 반복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타주의 문제가 종교성에 기인한다고 성급하게 결론내릴 수 있는가?
셋째, 에스라-느헤미야서의 플롯에서 발표자가 말하는 언약백성의 선별이라는 단락을 분석해 보면 상당히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잡혼금지 명령은 선별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귀환명단 목록, 성전 봉헌과 유월절 행사(스 5:1-6:22), 단순한 대적자들에 대한 언급(느 6:14-7:4) 등이 언약백성의 선별을 제시한다는 주장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좀 더 구체적인 기준들을 마련해서 언약백성의 선별과 정체성을 말해주는 요소들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넷째, 발표자는 마지막에 배타주의의 신학적 모티프라는 단락을 만들어 배타성이 종교적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배타주의의 신학적 모티프는 이미 종교적이라고 말한 상태이기에 그 종교적 배타성이 어떤 다른 신학적 함의와 연결되어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시도인것 같다. 그런데 그 신학적 함의에서 발표자는 다시 구조로 돌아가 모세오경과 유사한 패턴들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제사장 문서(P 문서)에 제시되는 제사장적 성결 신학(거룩한 백성과 제사장 나라)이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성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의문점은 두 가지이다. 먼저 에스라-느헤미야서가 모세오경과 유사한 구조적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난 배타주의가 토라에 입각한 배타주의라는 도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맥콘빌은 신23:3을 인용한 느 13:1-3에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라는 말은 신명기를 잘못 경직되게 인용한 것이라고 말한다(실제로 신명기 23장에서는 “10대까지”라는 말이 들어 있다).
이 말이 맞는다면 오히려 에스라-느헤미야서는 모세오경보다 더 배타적인 셈이다. 그래서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나타난 인종적 배타주의(종교적 배타주의가 아님)가 결국에 가서 개혁의 실패를 낳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느헤미야 13장 참조). 또 다른 의문점은 에스라-느헤미야서의 배타주의가 제사장 신학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잡혼 금지에 대한 명령은 신명기에서 더 잘 드러난다(신 7:3 참조). 따라서 에스라-느헤미야의 배타성은 제사장 문서보다 신명기법에 근거를 둔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2. 세부사항에 대한 의문점
첫째, 발표자는 논문에서 역사비평가들의 용어들을 줄곧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 1 이사야,”“제 2 이사야,” “제 3 이사야,” 그리고 “P 문서” 등. 이런 용어들 앞에 “소위”라는 말을 첨부해 사용할 용의는 없는가?
둘째, 발표자는 플롯을 이야기할 때 잠시 다음과 같은 세일해머의 말을 인용하며 그 말에 동조한다. “서술 뒤에 있는 세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건 간에 우리는 그 세계를 본문 자체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본문은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각색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건을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사건의 세계와 이야기(내러티브)의 세계를 서로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에스라-느헤미야의 내러티브는 실제 일어난 사건의 문학적 엮음이 아니라, 단순히 이야기 세계 속에서 신학적 의도만을 전달하려는 예술적 구성물이라는 뜻인가? 사건의 각색이라고 할 때에 에스라-느헤미야서를 읽고 우리는 당시의 진실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인가?
셋째,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서와 모세오경간의 유사한 패턴을 근거로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다윗왕조의 패망-남은 자들의 귀환-하나님의 언약성취”라는 도식을 도출해 낸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패턴은 매우 광범위하고 그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발표자는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정말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본문에서 백성들이 언약을 다짐하는 말이 등장한다(느 9:38).
하지만 이것은 포로기 직전에 선지자들이 포로후기에 맺어질 새언약의 체결은 아니다. 새언약은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따라서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언약”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라 율법을 향한 백성들의 맹세 정도로 이
해되어야 한다.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하나님의 새언약이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미리 선취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학자들 간에 뜨거운 논쟁인데 발표자는 너무 단순하게 언약이라는 용어를 보고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할 용의는 없는가?
III. 나가는 말
이와 같은 의문점들에 대해서 발표자의 고견을 기대한다. 끝으로 발표자의 논문은 다문화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적실성 있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또한 여러 학자들에 대한 견해들을 간추려 설명하고 거기서 문제제기를 통해 논지를 전개하려는 모습은 배우는 학생들에게 매우 좋은 모델을 제공한다. 또한 나름대로 매우 논리정연하게 논의를 이끄는 참신한 모습이 돋보이는 잘 짜여진 글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구조분석에서 에스라-느헤미야서와 모세오경간의 언어적 패턴 제시는 정말 통찰력 있는 발견이다. 발표자의 글을 논평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발표자의 노고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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