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교실

[스크랩] 김치 이야기(역사)

류성련 2010. 6. 20. 01:25

김치 이야기(역사)

 


  

오늘날의 김치 모양은 1600년대 고추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는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말리는 방법, 즉 건조를 통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법이었다. 이후 인류는 소금으로 절이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다음 단계가 발효시키는 식품저장방법이 나왔다. 김치도 이런 식품저장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우리조상들도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이용해 식품을 절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김치의 시작이었다. 
당시 한반도는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을 채소를 통해 섭취했다. 그러나 4계절이 뚜렷한 기후 특징으로 한겨울에 채소를 먹을 수 없게되자,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게 되었고,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이다.


초기 김치모양을 옛 문헌등을 통해 추정해보면, 채소류를 장기간 저장하기 위한 단순한 소금절임 형태였다.

▶ 삼국지 위지동전(三國志 魏地東傳)에서 고구려는 발효식품을 잘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가 있으며,
▶ 일본 문헌인 정창원고문서(正倉院古文書)는 수수보리저(須須保里菹) 즉 김치무리가 일본에 전달됐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 중국 문헌인 '후주서(後周書)'등에서도 절임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이미 초기 형태의 김치류 제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6세기 중국 북위때의 책인 ▶제민요술(濟民料術)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했으며, 주로 산미료에 담그는 '엄초법' 소금과 발효 기질을 이용하는 '발효지법', 오늘날의 장아찌에 해당하는 '엄장지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역사기록을 담고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문왕편에서는 ▶혜(醯:김치무리)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김장독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든 독이 법주사경내 현존하고 있다.  


이런 점 등으로 보아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상 삼국시대는 본격적인 정착 농경생활이 발달되었던 문화적 환경이 갖추어 졌기 때문에 한반도 기후와 맞아떨어지는 소금 절임을 통한 초창기 김치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채소의 소금 절임이나, 된장 간장에 담근 장아찌식 절임과 젖산발효 초기에 머무른 비교적 담백한 야채 절임류가 많았다. 그러나 김치처럼 식품의 다섯 가지 기본 맛에다 젓갈로 인한 단백(蛋白) 맛과 발효의 훈향을 더하는, 일곱 가지 독특한 풍미를 갖춘 발효야채식품은 한국의 김치뿐이다. 이러한 김치는 한반도의 기후, 계절, 각 가정의 생활환경 및 식습관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 정착했다.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김치는 고려시대 발전기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이렇듯 김치는 우리민족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 하며, 끊임없이 발달한 <한민족 음식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치는 단순히 음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문화이며, 역사인 것이다.


김치의 역사는 정착 농경생활을 시작한 삼국형성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동절기 소금의 발견과 더불어 동절기에 영양섭취의 주요한 방법이었다.
제민요술(AD439-35)에 의하면, 배추는 소금물에 담궈 두었고, 순무는 말려서 소금을 친후 기장죽, 보리누룩, 소금을 넣어 담궜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확실한 문헌기록은 없지만, 소금절임이 성행했던 점에 비추어 초기 형태의 김치가 발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는 '한약구급방'에 처음으로 배추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시대에는 김치재료로 순무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장으로 절인 순무짱아치는 여름용으로, 소금에 절인 순무절임은 겨울 및 봄·가을 용으로 담궈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김치가 계절에 따라 먹는 조리가공 식품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미료의 발달로 인해 단순한 소금절임이 아닌 향신료를 섞어 만든 김치가 생겼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김치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발전했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초겨울 배추와 무를 절여 저장한다는 침장고(沈藏庫) 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세종실록에서도 김치를 뜻하는 저(菹)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때는 고려후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소금절임의 김치가 아니라 각종 향신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김치가 발전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후기다.
16세기 일본에서 도입된 고추가 18세기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19세기 김장김치에 적합한 결구배추가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어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오늘날과 거의 유사한 김장김치가 탄생한 것이다. 김치의 시대별 변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대

참고문헌

기록 내용

김치 형태

삼국
시대
三國志 魏地東夷傳
삼국지 위지동이전
저(菹:소금절임) 제조 라는
단어 등장
산채류와 야생채류를 이용한 소금절임
위주의 김치의 근간 등장
正倉院古文書
정창원고문서
수수보리저(須須保里菹) : 김치무리라는 용어 등장
濟民料術(제민요술) 김치 담그는 법 소개
통일
신라
三國史記(神文王)
삼국사기 신문왕
醯(혜):김치무리라는 용어등장
고려
시대
한약구급방
(漢藥救急方)
배추에 관한 기록 등장
순무장아찌(여름)와 순무소금절이(김치류)가 있었으며, 김치는 단순히 겨울용 저장식품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즐겨 먹는 조리 가공식품으로 변신
산촌잡영(山忖雜泳) 소금절이 김치 소개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순무를 절이는 방법 소개
조선
전기
태종왕조실록
(王朝實錄)
침장고(沈藏庫) 용어 등장
절이는 채소의 종류와 향신료 사용이 다양해져 가는 시기
사시찬요초
(四時纂要抄)
침채저(沈菜菹)
수운잡방(需雲雜方) 무김치, 가지김치 등 소개
조선
후기
음식디미방 산갓 김치, 생치 김치, 나박 김치, 생치 짠지, 생치지 등 소개
고추 및 결구배추가 도입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로 발전함
증보산림경제 마늘, 파, 부추 양념으로 사용되었다는 내용
농가월령가 여름의 장과 겨울의 김치는 곧, 민가에서 일년의 중요한 계획

 

   

약 3천년 전의 중국 문헌 '시경(詩經)'에 오이를 이용한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것이 김치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문헌이다.
그리고 상고시대때 김치류를 총칭하는 말로 소금에 절인 야채를 뜻하는 침채(沈菜)라는 말에서 오늘날 김치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침채(沈菜)'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침채→딤채→김채→김치로 변화하면서 김치가 되었다. '저(菹)'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성종 6년(1475)에 와서 성조의 생모인 인수대비가 부녀 교육을 위하여 엮어낸 내훈(內訓)에 보면「저(菹)」가 「딤  (딤채)」(※ 김치박물관 주: ''는 밑에 고어인 '아래아'가 있는 것인데 입력 기호상 '아래아' 표기가 되지 않아 ''로 표기하였음.)

그리고 성종 12년(1481)에 간행된 두시언해(杜時諺解)에서 「저」를 「디히」라는 말로 번역을 하였다. 그 후 중종(1505~1544)때 최세진이 한자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저」를 「딤 조」라고 하였다.


「딤」가 구개음화하여 「짐」를 거쳐 「김」 또는 「김치」로 되었다고 한다. 구개음화는 '디→지→기'로 변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홍자현대옥편에서도 「저」가 김치로 풀이되어 있다.

「디히」는 김치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디히」는 「지」로 변하여 현재도 쓰고 있는 말로써 예를 들면 오이지, 짠지 등을 들 수 있다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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