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건트립의 연구 by 고진
1.건트립 이론의 기본 개념
1)유아는 쾌락이 아니라 대상을 추구하며 인격 성장은 일차적으로 대상관계의 질에 달려있다
2)최초의 발달 단계는 유아적 의존기이고 그 단계의 불만족스러운 대상관계가 분열성 병리, 즉 가장 원시적인 심리적 상태의 근원이다.(페어베언 견해 받아들임)
3)자아심리학은 원본능이라는 개념을 제거함으로써만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심리학이 될수 있고 그래야만 자아가 타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격적인 경험의 중심이 될수 있다.
4)심각한 병리를 가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격이 쾌락 원칙에 따라 작용하는 모습을 찾아볼수 없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좌절된 대상 관계로 인해 자아에 균열이 생길 경우에만 성욕과 공격성이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자아가 응집력을 갖고 있고 강하다면 성욕과 공격성은 즐거움으로 경험되고 자아의 성장을 도와준다.
5)자아의 성장은 대상관계에 달려있기 때문에 인격의 건강에 결정적인 요소는 욕동의 변천이 아니라 자아와 대상 사이의 관계이다.
2.정신병리
1)건트립은 유아의 첫 욕구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며 첫 대상관계는 이 욕구를 중심으로 조직된다는 페어베언의 견해를 바탕으로 정신병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거절되면 유아는 가장 고통스러운 정서 상태 즉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감정을 경험한다. 페어베언처럼 모든 심리적 고통을 유아가 자신의 사랑이 거절될 때 발생하는 자아분열에서 비롯된다. 이런 불만족스러운 대상 경험은 그 경험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불러오고, 그 결과로 나쁜 대상이 내재화된다.
2)나쁜 대상은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절하는 대상으로 나뉜다. 그는 갈망하지만 발견할 수 없는 대상은 유기하는 대상이라고 지적했고 그것을 ‘갈망스런 유기자(desirable deserter)라고 불렀다. 건트립은 거절된 사랑 경험은 성인이건 유아이건 페어베언이 서술한 것처럼 단순히 흥분시키는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유기하는 대상으로 경험된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건트립의 이론에서 나쁜 대상은 갈망-유기 대상과 거절 대상으로 분열된다. 갈망-유기 대상은 거절대상보다 감질나게 하며 더 고통을 준다. 거절대상은 단순히 나쁘기만 하지만 갈망-유기 대상은 끊임없이 좌절을 주며 유기할 것이라고 위협을 준다. 유기 대상은 대상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일으키는 반면 거절 대상은 대상의 사랑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일으킨다. 이 둘중에서 자아는 후자가 덜 위협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후자를 훨씬 더 선호한다.
3)유아기 의존단계에서 사랑 욕구가 좌절될 때 유아는 대상 상실을 두려워하고 더욱 강렬하게 대상을 추구하게 된다. 사랑 욕구가 좌절할수록 대상에 매달리고 싶은 욕구가 좌절될수록 대상에 매달리고 싶은 욕구는 더욱 커진다. 이것이 환자가 나쁜 대상에게 집착하는 이유이다.
4)분열성 병리 역동에 대한 건트립의 의견은, 사랑이 좌절되어 대상 상실의 불안이 견딜수 없는 정도가 되면 유아는 대상을 간직하기 위해 그것을 삼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런 욕망은 더욱 강렬한 대상 상실의 공포를 일으킨다. 대상을 삼키려는 유아의 욕망은 최악의 공포 즉 대상의 파괴에 대한 공포를 일으킨다. 그리고 유아는 자신을 잠재적 파괴의 근원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유아는 자신의 사랑이 대상을 파괴시킬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대상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되고 따라서 대상 접촉에서 철수한다.
5)분열성환자: 대상에 대한 욕구와 음식에 대한 갈망(대상에 대한 허기와 먹는것 사이의 관계)
건트립은 남편을 볼때마다 미치도록 배가 고파지는 환자에 관해 언급한다. 그녀는 음식을 통째로 삼키고 단숨에 마셔버리고 싶어하지만 막상 음식이 주어지면 즉시 식욕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상에 대한 허기는 음식을 삼키듯이 대상을 삼켜버리고 싶은 욕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너무 배가 고파서 사랑-대상을 파괴하고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이런 불안은 매우 강렬하게 느껴진다. 분열성 개인은 사랑-대상이 마모되고 고갈되고 지쳐빠지고 마침내 상실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남편에 대해 허기를 느끼는 그 환자는 ‘남편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껴안고 싶고 자신만이 그를 독점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분석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도 느낀다고 말했다.
이것은 욕망이 대상을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정서적 유대도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역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아는 살아남기 위해서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대상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불안은 궁극적으로 자아를 상실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이 첫 발달 단계에서 심리구조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불안은 자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외상으로 경험한다. 그 결과 개인은 대상과의 모든 정서적 접촉을 회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분열성적 철수는 현실과의 모든 접촉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자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그러나 대상은 회피되는 만큼 필요해진다. 결과적으로 대상 접촉은 끔찍스럽게 느껴지면서도 계속해서 추구된다. 건트립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그가 ‘안과 밖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전부 또는 전무’의 대상 관계로 인도한다. 분열성 환자들은 대상 접촉의 현존도 부재도 견딜수 없다. 그들은 대상을 지키기 위해 그것과 융합되길 바라지만 이 욕망은 대상과 자아 모두를 위협하며 궁극적으로 분열성 정신병리의 특징적 요소인 허망감으로 인도한다.
6)대상 접촉을 너무 위협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방어적 구조를 세워 자아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위협만을 느끼면서 정서적 유대를 허용하고자 한다. 건트립에 따르면 분열성적 철수를 방어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방어는 크게 두 종류이다.
㉠ 가장 일반적인 방어 유형은 대상에 대한 환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갈등과 젖가슴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다. 페어베언에게 있어서 젖가슴에 대한 갈망은 대부분 분열성적 병리 근저에 놓여있는 문제이지만 건트립은 그런 갈망이 환자들로 하여금 모든 대상관계 유대들로부터 근본적으로 철수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분열성 환자들은 전형적으로 젖가슴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과의 유대를 취소하고자 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지배적인 근저의 환상은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태아의 존재로(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분열성적 불안에 대한 또 다른 주요한 방어 형태는 근저의 분열성적 철수를 보다 명백하게 보여준다. 무관심하고 우월하고 무감각하며 자기충족적 대인관계 유형을 보이는 환자들에게 발견된다. 대상에 대한 필요성을 부인하려는 욕구가 너무 크기 때문에 타자들에게 완전히 무관심해지는 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어적인 군집은 오이디푸스적인 신경증 방어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이러한 방어들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이 대상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환자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갖고 있는 의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그런 욕구와 연결된 압도적인 불안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대상 접촉이 자아에게 너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자아는 자기 충족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어적 군집이 건트립이 지난 20여년간에 걸쳐 확립한 자기애적 인격 대한 개념화의 본질이다. 자신이 무엇이든지 다 할수 있으며 타자들에 대한 욕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애적 환자들은 실은 사랑에 대한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엄청난 갈망을 방어하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대상접촉이라도 이루어진다면 이런 욕망은 그들의 자기감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강렬해진다. 따라서 냉담한 상태로의 철수가 그들의 ‘자율성’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그밖의 대안은 대상과의 융합인데 그것은 인격적 존재감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런 환자들은 전형적으로 자기-충족감, 우월감, 냉담함 등의 태도를 통해서 방어적 군집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 나는 아이들의 어리석은 놀이가 지루해서 울곤 했어요. 십대에는 지루함, 허망감, 흥미의 결여가 더욱 심해졌죠. 나는 사람들이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나 자신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며 더 좋은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건트립에 따르면 이런 우월한 태도는 분열성 환자의 특징인 대상 접촉에 대한 깊은 불안을 반영한다
7)이런 유형의 인격구조는 자기와 대상의 융합 갈망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그런 방어는 환자로 하여금 대상과의 정서적 접촉 없이 기능할 수 있게 하고 현실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연결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그 정서가 방어 층을 깨뜨릴 수 있다는 위협감 때문에 환자는 끊임없이 경계할 수밖에 없다. 대인관계적 정서는 가장 끔찍스러운 위협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들은 외롭고 텅 비어 있는 삶으로 철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위협에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개인은 결국 정신증 환자가 된다. 정신증 환자는 세상 안에 존재하지도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지도 못한 사람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기-대상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분열성 인격은 세상으로부터 철수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이 경계를 유지한다. 건트립은 분열성 인격구조를 ‘자아를 보존’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보았다.
8)건트립은 유아가 모성적 대상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유아기의 두 번째 발달 단계가 시작된다는 페어베언의 견해를 따른다. 이 단계는 유아가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질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단계라기보다는 자신이 대상을 ‘증오로 파괴’ 시키지 않고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단계이다. 이것은 두가지 병리적 자기-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에 관한 페어베언의 견해와 비슷하다.
9)건트립은 우울증 환자들이 애정 대상에 대한 억압된 증오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동의했다. 그러나 증오는 공격욕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건트립에 따르면 개인은 사랑하는 대상을 중오하기도 하고 그 대상에 애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증오는 비록 좌절스러운 것이지만 애착을 뜻한다. 따라서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개인이 증오하는 대상은 그 대상에게서 만족을 추구하지만 좌절을 얻게 되는 대상이다. 증오는 대상을 공격하고 삼키려는 욕망으로 인도하는 좌절된 사랑이다. 대상을 보존하기 위해 증오는 억압되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되며 그 결과 우울증이 발생한다. 우울증의 뿌리는 대상 상실에 대한 불안으로 인도하는 좌절된 사랑이다. 건트립은 정서적으로 분열성 상태로 철수한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믿었고 우울증이 분열성 병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방어라고 믿었다.
10)유아는 자신의 가장 깊은 욕구에 대한 반응을 갈망하지만 그런 반응을 불러 일으킬수 없을 때 자신의 사랑이 거절받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이 유아의 자아 안에 약함의 느낌을 불러온다. 이때 유아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 부적절한 것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는데 그 결과 유아는 자신을 약하고 무력하게 느끼며 자신의 욕구를 수치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 ‘약해진 자아’는 두려워하며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이런 약함에 대한 고통스러운 인식을 피하기 위해 자아는 바로 이런 약함이 자신이 나쁘기 때문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해서 죄책감은 나쁘고 무가치하다는 느낌 위에 덧씌워지고 자아는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깊숙이 간직한 채 이유가 자신이 수용될 수 없는 나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환상을 유지하게 된다. 환자들이 쉽게 죄책감의 감정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공포와 약함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1)건트립에 있어서 자아의 약함은 항상 모든 대상 접촉으로부터 철수하고 싶은 욕망을 의미하며 그 결과 자아 상실의 위협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환자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약함을 증오한다. 죄책감, 자기-증오 그리고 우울증은 현실에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데 따른 대가이다. 우울증은 모든 신경증 환자에게서 볼수 있는 전형적인 증상이다. 전통적으로 정서와 도덕적 표준 사이의 심리내적 갈등의 산물로 개념화된 신경증 상황들은 모두 대상 접촉에서 철수하고자 하는 퇴행적 갈망에 대한 방어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실의 상실에 대한 방어이다. 자궁내의 상태와 같은 안전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갈망에 대해 건트립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분열성 인격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의 삶으로부터의 깊고 비밀스런 도피 충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격의 나머지 부분이 다양한 정신증 상태와 신경증 상태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는 우울증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은 퇴행적 충동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믿는다’ 모든 우울증의 핵심에는 대상-이전 상태로 퇴행하고 싶은 갈망이 존재한다.
12)건트립은 정신병리가 분열적 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중독문제에 적용하였다. 분열성 역동이 작용할 경우, 진정한 대상 대신에 대체 대상이 추구된다고 보았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새로운 인간 대상들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분열성적 철수에 포함된 절망으로 인해 자아는 대체로 음식, 마약, 알코올 같은 비인간적인 대체물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물질은 보다 쉽게 통제할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좌절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본래 분열성적 철수에는 비인격적 만족을 선호하는 특징이 포함되어있다. 분열성 환자는 초기 대상관계에서 놓친 욕구충족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그리고 사람과의 접촉에 따른 불안과 좌절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인격적인 욕구 충족 형태를 추구한다. 음식, 마약 그리고 알코올은 모두 이런 목적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그 갈망은 본래 사람과의 접촉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대리물은 필요한 만족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과 접촉하는데 따른 위험에 노출하지 않은 채 분열성적 철수에 따른 불안을 회피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일 뿐이다. 그 결과 물질에 중독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런 중독을 통해 현실과 접촉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음으로써 퇴행적인 분열성적 갈망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물질의 효력이 떨어질 때 그들은 현실감이 사라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런 환자들에게 있어 중독은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필사적이며 불가피한 노력이다.
13)섭식장애는 건트립의 이론에 특히 잘 부합된다. 분열성 환자들은 흔히 거의 먹지 않거나 먹을 수 없는 음식에 관한 꿈을 꾼다. 대상을 삼키고 싶어하는 분열성적 욕구는 ‘갈망스런 유기자’를 음식과 연결시키고 상대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음식으로 대상을 대체한다. 건트립에 따르면 모든 섭식장애에서 음식은 감질나게 하는 초기 대상을 상징한다. 폭식증은 대상을 안으로 들임으로써 대상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과식증은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상을 삼켜서 파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으로서 그 대상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토해내야만 하는 필요를 포함하고 있다. 대상을 삼키려는 갈망이 압도적으로 강렬할 경우 그것은 자아 상실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대상 갈망에 대한 압도적인 공포와 함께 그 공포에 대한 집요한 방어를 낳을 것이다. 거식증은 대상을 삼키려는 욕망에 대한 분열성적 방어이다.
14) 경계선 인격장애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경계선 정신병리의 특성인 강렬한 적대감, 혼돈, 해체, 압도적인 불안 그리고 심각하게 평가절하하고 이상화하는 대상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많은 환자들에 관해 서술했다. 건트립은 이 모든 특성들이 환자가 대상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그리고 동시에 어떤 대상 접촉에 의해서도 압도되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아의 필사적인 노력의 표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계선 병리의 특징적인 성질들을 모두 융합 갈망의 증상이거나 아니면 철수에 의한 대상 상실 공포의 증상으로 이해했다.
15)이 모든 정신병리 범주에 해당되는 환자들은 내재화된 나쁜 대상들에게 시달리고 있으며 보통 그 경험은 극도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탐구는 단순히 나쁜 대상들을 노출시키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건트립의 논지는 나쁜 대상들은 그 자체로서 자아 상실에 대한 방어들이라는 것이다.
3. 심리구조
1)건트립은 정신은 중심자아와 리비도적 자아 그리고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영한다는 페어베언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리비도적 자아가 가장 깊이 억압된 자아 구조라는 생각에 의구심을 가졌고 리비도적 흥분 자체가 심각한 억압과 정신병리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일수 없었다.
2)건트립은 리비도적 자아는 가피학적 자아와 퇴행된 자아로 분열한다고 가정했다.
㉠가피학적 자아- 적극적이고 구강적이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에 상응한다.
㉡퇴행적 자아-건트립이 모든 정신 병리에서 발견한 분열성적 핵심에 해당된다.
3)리비도적 자아를 둘로 나눈 것은 나쁜 대상관계에 투자된 자아와 대상관계가 없는 출생 이전이 안전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아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대상에 의해 흥분되는 리비도적 자아의 측면은 어느정도 현실과 연결되어있다. 그런 자아는 젖가슴 그리고 근친상간적 갈망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욕망을 상실하지 않고 있으며 원시적인 대상을 추구한다. 이 적극적인 자아는 오이디푸스적 및 전오이디푸스적 상황으로부터 오는 갈등 및 죄책감과 함께 성적 및 공격적 에너지를 초기 대상에게 투자한다.
4)반리비도적 자아의 공격은 흥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수동적 의존성을 지향한다. 건트립은 우울증 환자의 자기 증오를 그러한 공격의 예로 보았다.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공격성이 대상에게서 자기에게로 향하는데, 그들은 동시에 수동적이고 절대적인 의존에 대한 갈망을 공격하며 그런 사실에 대한 인식을 방어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분열된 리비도적 자아를 가지고 있고 대상 접촉으로부터 철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정신병리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퇴행에 대한 갈망의 정도가 훨씬 더 지배적이다
5)퇴행한 자아라는 개념이 정신의 가장 깊은 수준에 있는 두려움과 수치를 의미있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이 개념이 정신 분석 치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퇴행적 자아 개념은 궁극적으로 정신분석 이론이 욕동심리학에서 대상관계 이론으로 이동한 결과이다.
4. 치료
1) 모든 정신 병리의 핵심에 퇴행한 자아가 존재한다. 정신병리는 자아 없는 상태로 퇴행하려는 욕망에 뿌리가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근거로 해서 정신분석치료는 환자의 이런 퇴행적 갈망에까지 도달해야한다고 믿었다. 전형적인 분석치료에서 치료 목표는 정서, 충동 그리고 소망을 의식화한다는 것으로서 이런 목적에 적절한 수단으로 언어적 해석 양태를 선호한다. 그러나 건트립은 의식에서 떨어져나간 정서를 의식으로 데려오는 것보다는 떨어져나간 자아를 중심 자아에게로 데려와야한다. 이것은 단순히 올바른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선 환자로 하여금 파묻혀 있던 자기의 부분을 경험하도록 허용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2)일단 인격안에 이러한 요소가 존재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치료자는 분석과정에서 그것이 출현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안전하게 느껴지는 환경을 환자에게 제공해야한다. 퇴행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못하다.
3)건트립의 견해에서 자아의 한 부분이 발달하지 못한 채 뒤에 처지게 될 때 그것은 계속해서 인격의 성장을 방해한다. 자아의 기능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떨어져 나간 자아의 부분은 인격의 나머지 부분과 재통합되어야한다. 이것은 자아의 퇴행한 부분이 출현하고 통합하는 것을 허용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요구한다.
4)건트립에 따르면 퇴행한 자아는 아이가 대상과 사랑을 주고 받는 갈망과 관련해서 생긴 외상의 산물이다. 유아의 갈망이 떨어져나가 인격의 깊은 곳에 파묻힌 부분이 되게 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최초의 관계이다. 이런 외상을 입은 인격의 요소가 다시 출현할 수 있으려면 아이의 유아적 자아가 다시 손상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경험이 제공되어야한다. 이런 식으로 분석가가 환자에게 제공하는 관계는 성공적인 치료를 위한 결정적인 요소이다. 분석가의 태도는 퇴행한 자아가 출현할 수 있는 안전한 상황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분석가는 본래 부모 인물보다 ‘ 더 좋은 부모’ 이어야한다. 분석가가 환자에게 철수한 자기(self)의 부분이 처음으로 현실과 만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만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분석가가 환자와 동일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달려있다. 환자가 이전에는 시도한 적이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석가는 환자가 과거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관계 경험을 그에게 제공해야한다.
5)분석가에게서 제공된 관계는 그 자체로서 불안의 원천이 되는데, 그것은 환자가 지금 퇴행한 자아가 세상에서 철수하면서까지 피하고자 했던 대상과의 접촉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자아 상실의 위협은 아주 실제적인 것이 되며 이전에 철수했던 자아는 다시 한번 퇴행을 갈망하게 된다. 건트립은 자아는 관계가 없으면 통합할 수도 성장할 수도 없지만 ‘관계를 항상 두려워하는 약한 자아는 관계 속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압도되고 만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환자는 치료관계 안에서 안과밖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분석가에게 다가왔다가 멀어져 가는 일을 반복한다. 퇴행한 자아와 접촉이 이루어질때마다 그는 지금껏 벗어나고자 애써왔던 바로 그 철수 상태 안에 자신을 다시 묻어버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자주 치료적 침체 상태로 인도한다. 환자는 치료자를 더 가깝게 느끼면서 불안해지고 그 다음에는 철수한다. 한편으로 치료자와 연결되면서 증상이 호전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철수하면서 임상 상황이 악화되는 것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분석과정을 바라볼 때 저항의 개념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건트립은 분석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을 분석가와 접촉에서 철수하여 대상 없는 상태로 돌아가려는 환자의 퇴행적인 노력이라고 보았다. 대상없는 상태는 환자가 유지해온 자아감을 위협하기 때문에 저항은 환자가 분석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못하는 (그 어느것도 자아의 상실을 위협하기 때문에) ‘타협적 관계’에서 가장 자주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저항은 주지화, 정서의 고립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방어들로 나타난다. 기러한 방어들은 항상 환자로 하여금 대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6)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방어는 그것이 치료과정을 가로막을 때조차도 환자가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접촉 유형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저항은 분석되어야하지만 그것은 또한 환자가 현재 할 수 있는 대상접촉의 형태로서 인식되어야한다.
ex> 배신의 공포로 인해 자신을 밀어내는 여자환자에게 건트립은 치료자가 그녀의 철수 욕구에 직면해서 그녀를 유기하지 않고 그녀의 독립성을 수용해 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녀가 늦게 왔고 치료자에게서 철수하려고 했다고 해석해주었다. 이러한 그의 반응은 방어를 단순히 치료자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방어해야만 하는 환자의 필요를 인정해준 것이었다.
해석이 효과적인것임에도 불구하고 건트립은 무의식적 내용을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 자아의 재통합과 성장으로 인도하는 주된 요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해석 그자체로서는 분석적 진전을 위한 충분한 조건이 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분석은 치료자가 환자에게 마치 아동이 성장하도록 기다려주는 부모처럼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관계를 제공해줌으로써 환자의 발달이 정지된 부분을 새로운 안전한 관계와 자극에 노출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어야한다. 저항을 대상 접촉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이러한 저항 개념과 새로운 관계에 ‘노출시키는 것’으로서의 치료개념은 코헛이 말하는 새로운 관계의 맥락에서 방어가 점차 포기될때까지 전이 관계를 형성하도록 환자의 방어를 허용해야한다는 생각을 예견하고 있다.
7)건트립은 분석과정의 세 단계를 말한다.
㉠첫째 단계- 성적 및 공격적 감정과 죄책감을 포함하는 오이디푸스적인 대상-관계 갈등을 다루는 단계. 그러나 그 같은 역동은 건트립에 따르면 항상 어느 정도 유아기 의존과 관련된 약하고 미숙한 인격적 요소가 노출되는 것에 대한 방어이다. 결과적으로 오이디푸스 갈등이 해석될 때 퇴행한 자아와 연관된 유아의 의존 갈망과 수치심의 조짐을 드러내며 그러한 위협에 대한 분열성적 타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목회신학대학원2·6교실 > 성격심리와 종교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왜 내적치유가 필요한가? (0) | 2014.09.26 |
---|---|
[스크랩] 제 2 장 코헛사상의 고전적 토대 (0) | 2014.09.17 |
[스크랩] 제 3 장 멜라니 클라인의 연구 (0) | 2014.09.17 |
[스크랩] 제 3장 초기 논문들: 출현하는 새로운 무늬의 천 (0) | 2014.09.17 |
[스크랩] <대상관계 이론과 정신병리학> 제 1장 대상관계 이론의 기원 (0) | 2014.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