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악
善惡皆吾師也. 善則從之, 惡則改之. 均之爲我益也.
然善之可傚, 爲岐也多, 故有得有否.
惡之可鑑, 止一路爾, 故師惡易於師善. -「醒言」
선과 악은 모두 나의 스승이다.
선은 따르고 악은 고쳐서
모두 나에게 보탬이 된다.
하지만 선을 본받는 것은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악을 거울 삼는 것은 단지 한 가지 길 뿐이다.
그런 까닭에 악을 스승으로 삼기가
선을 스승으로 삼기보다 쉽다.
선한 것은 배워 따르고, 악한 것은 고쳐서 멀리한다.
이것이 선과 악을 나의 스승으로 삼는 방법이다.
나쁜 사람을 보면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둔다.
좋은 행실을 보면
어찌해야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며 본받으려 노력한다.
선한 일은 때로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지만,
악한 일은 시비가 분명해서 따지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본받기 보다 나쁜 짓 본뜨기를 더 좋아한다.
좋은 것은 내버려두고 못된 것만 배운다.
'나는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해야 할 일을
'저 사람도 저러는데 뭘'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 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 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 주다가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다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 처럼
-<정호승시인의 '이 짧은 시간 동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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